소설리스트

23 (23/154)

23

모나한이 매우 떨떠름하다는 얼굴로 아실라와 프리먼을 바라보다가 로나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로나의 귓가에 작게 투덜거렸다.

“그래서 언제 가는 겁니까, 저 두 사람.”

“몰라요. 언젠가 가겠죠.”

“다쳤다면서요. 빠르게 신전이라도 가라고 해요.”

“둘만의 세계에 빠져 있잖아요. 끼어들기 싫어요.”

“부디 제가 저기에 끼어들라는 명령을 내리시지 않았으면 합니다만.”

“오, 모나한. 저는 그렇게 끔찍한 주인은 아니에요.”

“아, 다행입니다. 저들은 주위에 보는 눈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요.”

“그럴 나이잖아요.”

“네?”

로나의 묘하게 이해심 깊은 표정에 모나한은 그녀를 보며 두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어떻게 저걸 이해할 수 있냐는, 경악이 섞인 눈동자였다.

“딱 열다섯 살 전후잖아요. 제 전생에선 그런 말이 있죠. 중2병.”

“중2병?”

“열다섯 살 전후의 청소년들이 사춘기를 겪으며 흔히 가지게 되는 허세 같은 거요. 저 때는 다들 한 번씩 겪잖아요.”

“아…… 그 나중에 매우 부끄러워하게 되는 시절.”

“누구나 바보가 되곤 하는 시절이 있죠.”

“이해했습니다. 저들은 지금 사춘기를 겪고 있군요.”

그럼 어쩔 수 없지. 저 때는 저럴 수 있어.

모나한이 이제 자신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잠은 어떻게 하죠? 문이 뻥 뚫렸으니.”

“으음…… 제가 주위에 좋은 여관을 아는데.”

“네?”

“저쪽 산 쪽에 온천을 할 수 있는 고급 여관이 있다 하더라고요. 며칠 정도 거기 머무는 건 어떨까요?”

“……너무 비싸지 않을까요?”

“공작가에서 책임지겠다 했으니, 며칠 숙박 비용 정도는 대주겠죠. 아니면 제 사비로 해도 되고요. 도시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니, 수리나 경비대 일로 왔다 갔다 하기도 편할 거고요.”

“모나한, 사비가 있었어요?”

“……제가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이래 봬도 부자입니다.”

“흠…… 앞으로 종종 뜯어먹어야겠어요.”

“데이트해 주신다면 저야말로 환영이죠.”

모나한은 로나가 승낙한 것을 눈치채고 가벼운 걸음으로 그녀를 2층으로 끌었다.

“짐을 좀 싸는 게 좋겠죠? 얼마든지 챙기세요. 제 아공간에 넣어 놓으면 되니까.”

“아공간도 있었어요?”

“물론이죠. 크진 않지만 짐 정돈 충분히 넣을 수 있어요.”

로나는 모나한의 아공간을 잠깐 생각하다가 왠지 신나 보이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방은 두 개 잡을 거죠?”

“아니요.”

모나한이 상큼하게 미소 지었다.

“……안 가.”

“너무해라. 따뜻하고 예쁜 온천인데. 방도 고급에 침대도 폭신거릴 텐데.”

“…….”

“하루 종일 맛있는 게 왕창 나올 텐데…….”

“크, 크윽……! 하지만 같은 침실에서 자는 건 아직……!”

“방은 하나고 침실은 두 개라면 어떨까요? 멀리 있으면 제가 걱정돼서 그래요, 응?”

“그 걱정이 핑계로 들리지만, 침실이 두 개라면.”

“열쇠로 안 잠기는 방으로 골라야지-”

“지금도 딱히 방문을 잠그진 않았는데요.”

“아앗. 제가 멋대로 들어가도?”

“그 순간 아예 집에서 쫓겨나는 거죠.”

“안 되는군요…….”

“당연한 말 들었으면서 슬픈 얼굴 하지 말아요.”

결국, 둘은 평소와 같이 키득대면서 짐을 챙겼다.

복도를 하나 두고 방문을 열어 둔 채, 이게 좋으니, 저걸 입어 달라니 하며 티격태격했다.

언제나와 같이.

* * *

“오오오.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그렇네요.”

로나와 모나한은 깔끔한 방의 모습을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마을에 있는 평범한 여관보다 훨씬 고급진 곳인 만큼, 로나와 모나한이 고른 방은 작은 응접실, 화장실, 방 두 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에 한 방은 두 사람이 잘 수 있을 만큼의 크기의 침대가, 다른 방에는 한 사람이 잘 수 있는 크기의 침대가 놓여 있었다.

로나는 그 방을 한두 번 왔다 갔다 하더니 방긋 웃고는 큰 침대가 있는 방에 짐을 내려놓았다.

“자, 이제 저쪽 방으로 사라져.”

“이런.”

모나한이 한발 늦었다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건너편 작은 침대가 있는 방에 짐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양보할 생각이었다는 게 눈에 뻔히 보였지만, 이런 자잘한 거로 놀려 먹어야 인생이 평탄하고 재미있어지는 법.

“이 몸이 주인이시니 큰 방을 쓰겠어요.”

“걱정 마십시오, 주인님. 저는 밤에 몰래 숨어들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집에서는 침대가 작아서 무리였지만, 여기 침대는 딱 봐도 두 사람이 자기 충분하지 않습니까? 로나 님이 자고 계시면 제가 부담되지 않도록 숨어들어 가겠습니다.”

“뭐라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 산뜻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건 어떠신지?”

모나한이 빙글빙글 웃으며 하는 말에 로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농담이죠?”

“글쎄요.”

“문 잠그고 잘 거예요.”

“이런.”

모나한이 또다시 어깨를 장난스레 으쓱 올렸다가 내렸다.

로나는 그 뻔뻔한 모습을 보다가 짐을 마저 정리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따뜻한 물에 몸 좀 녹여야겠어요.”

“식사 시간까지 시간이 좀 애매한데…… 저녁을 좀 늦게 먹을까요?”

“좋아요. 오늘은 야식을 먹자구요!”

“신났네요, 로나.”

“이 세계에서 여행을 온 건 처음이에요. 가까운 곳에 소풍 간 적은 있지만…… 아무래도 여행하기엔 위험한 곳이잖아요. 제가 살던 곳은 시골이었고.”

“주위에 관광할 만한 곳이 하나도 없긴 했죠.”

“맞아요. 사실 큰 도시에 온 만큼 도시 구경도 해 보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장사가 잘돼서 둘러볼 시간이 적었죠. 여기서 오래 살 거니까 구경은 천천히 하기로 해요.”

“좋아요.”

모나한이 신난 발걸음으로 가볍게 나가려는 로나의 어깨에 외투를 하나 얹어 주었다.

“따뜻한 물속에 있다가 나오면 추울 거예요. 지금은 조금 덥더라도 가져가세요.”

“아, 감사합니다.”

“원래 점수를 더 따려면 제가 몰래 가지고 갔다가 로나가 목욕 후 추워할 때 딱 외투를 둘러주는 게 좋겠지만-”

“흠-”

모나한이 유혹적으로 눈웃음치며 말했다.

“로나 씨가 잠깐이라도 추운 게 더 싫거든요.”

“좋아요.”

“점수 땄나요?”

“네. 땄어요, 방금.”

모나한의 말에 로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고개를 로나쪽으로 숙였다.

그러고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자신의 볼을 콕 찔렀다.

“그러면 여기, 뽀뽀해 주세요.”

“……우와.”

“상으로요, 네?”

그가 회색 머리가 예쁘게 사르르 넘어가도록 완벽한 각도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평소보다 더욱 달콤한 목소리는 기본이었고, 전등 불빛에 반짝이는 선홍색 눈동자는 덤이었다.

처음엔 어이없다는 듯 건조한 감탄사를 내던 로나는 모나한의 애교 담긴 애원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입술을 몇 번 우물거리다가, 바닥 여기저기를 보며 눈을 굴리다가 다시 모나한의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나한이 시선이 마주치자 입술을 끌어 올리며 씨익 웃었다.

“아, 진짜.”

“흐흐.”

“……눈 감아요.”

로나는 모나한의 선홍색 눈동자가 회색 속눈썹 사이로 사라지는 걸 보았다.

시선이 사라지자 그녀는 모나한의 얼굴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둥그런 선을 담아 올라간 눈썹이나, 살짝 상기된 볼이나, 장난과 기대를 섞은 채 올라간 입가의 주름 같은 것들.

살짝 굽혀진 허리나, 살랑이며 흔들리는 머리카락이나, 뒷짐 진 채 기다리는 손 같은 것들.

로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고개를 움직였다.

입술에 생각보다 더 차갑고 부드러운 피부가 닿았다.

그리고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와 비슷한 속도로 모나한이 천천히 속눈썹을 들어 올렸다.

창백한 피부 아래 숨겨져 있던 선홍색 눈동자가 천천히 들어 올려져, 그녀와 눈 맞췄을 때. 로나는 제 얼굴의 열기에 그만 미간을 와락 찌푸리고 말았다.

“……얼굴 엄청 빨갈 것 같은데요.”

“네, 무척. 아주 귀여워요.”

“……젠장할.”

“입 맞춰도 돼요?”

모나한이 속삭이듯이 물어봤을 때, 로나는 반사적으로 ‘아뇨!’라고 말할 뻔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가 꼬시는 듯한 말을 할 때마다 튕기는 말을 하는 것이 버릇이라도 돼 버린 것 같았다.

로나는 입술을 몇 번 우물거리다가 모나한을 한 번 봤다가 제 뜨거운 볼을 손등으로 한 번 훔치고는 작게 말하곤 여관 복도로 걸어 나갔다.

“……다음에요.”

보통이라면 들리지 않았을 그 작은 소리는, 모나한의 예민한 귀에 충분히 들어왔으므로, 모나한은 로나의 뒤를 따라가며 잘게 웃었다.

“좋아요. 다음에요.”

“…….”

모나한은 로나의 뒤를 따라가며, 그녀의 갈색 머릿속에 숨어 있는 새빨개진 목과 귀를 보며 웃었다.

만져 보고 싶은데, 화내겠지?

“귀 만져 봐도 돼요?”

“아뇨!”

“다음에 만져 봐도 돼요?”

“아뇨!”

그럼 목은요? 안 돼요.

볼은? 안 돼요, 싫어요, 꺼져요.

둘은 온천이 나올 때까지 서로 티격태격하며 걸었다.

어느새 뒤따라가던 모나한이 로나의 옆에서 같이 걷고 있었다.

“쉽게 빨개지지 않더니, 한번 빨개지니까 잘 안 가라앉네요?”

“그 검지 치워요. 물어 버린다.”

로나가 그녀의 볼을 호시탐탐 노리는 모나한의 손가락을 째려보며 말했다.

“자, 물어요.”

“미쳤어요?”

“한쪽 손을 희생하고, 이쪽 손으로 원하는 걸 쟁취하겠어요.”

“미쳤네요.”

“아, 다시 하얘졌다. 아쉬워라.”

“안 돼요, 싫어요, 꺼져요.”

“머리 만져도 돼요? 양옆으로 땋은 거 만져 보고 싶던데.”

“풀어 버릴 거야.”

“내가 풀어 줄게요.”

“왜 그렇게 만지고 싶어 해요?”

“몰라서 묻는 거예요?”

“……도착했다! 잘 가요. 잘 있어요. 잘 갈게요.”

로나가 모나한의 손을 피해서 여탕 문 안으로 쏙 사라졌다.

아무래도 로나는 부끄러움에 치사량을 넘으면 하악거리는 고양이라도 되는 모양이라고, 모나한은 생각하며 손은 살랑살랑 흔들었다.

또 그걸 어떻게 본 모양인지 문 안으로 사라졌던 로나의 얼굴이 빼꼼 나오더니 모나한을 한번 째려보고는 마주 손을 흔들고 들어갔다.

혹시 그녀가 또 나올까 봐 모나한은 남탕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몇 번을 기웃거렸다가 겨우 발걸음을 옮겼다.

모나한은 남탕으로 들어가며 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가, 로나가 닿았던 볼을 몇 번 만지작거렸다가 눈을 몇 번 깜박거렸다가 옅게 웃고 말았다.

로나가 온천에서 나오기 전에 나가 있어야지.

맛있고 시원한 음료수라도 사 놔야겠군.

아이스크림도 괜찮겠고.

모나한은 로나가 좋아하는 간식이 무얼까 고민하며 온천으로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