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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한은 한껏 행복하다는 얼굴로 로나를 품에 안고 입을 열었다.

“아까 하던 말 계속하실래요?”

“네?”

“제 이름 부르면서 ‘당신이-’ 그랬잖아요. 엄청 두근거리게 말하셨는데.”

“아, 아아.”

로나가 생각났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랬지. 뭔가 분위기에 휩싸여서 부끄러운 말 하려 했지.

뭐였더라.

당신이- 생각보다 소중해졌어요. 였던가.

“고백하는 분위기였잖아요. 심장이 막 뛰고 있었는데. 계속해 주시면 안 돼요?”

모나한이 애교 부리며 자기 가슴에 있던 로나의 손을 다시 볼에 가져다 대었다.

“……기회는 떠나갔다!”

그딴 부끄러운 말 할 거 같냐!

“아앗!”

모나한이 충격받았다.

“마차는 가 버렸다. 다시 오지 않는다.”

로나가 아주 단호한 표정을 했다.

“로나, 2층이나 부엌에 들어가 있을래요?”

“네?”

“저 자식의 숨통 좀 끊어 놓고 올게요. 하하하.”

“흠.”

“걱정 마세요. 이번엔 비명도 들리지 않을 거예요.”

“경비병이 온다면서요.”

“유리창으로 들어오다가 파편이 박혀서 죽었나 보죠.”

모나한이 상큼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로나는 그 얼굴에서 흉폭함을 충분히 찾아볼 수 있었다.

로나는 진지하게 정말로 부엌이나 2층으로 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녀가 떠나기 전에 한 학생이 가게에 들어오면서 고민을 그만두었다.

“괜찮으십니까?”

남학생은 남보다 훤칠하게 큰 키에 넓은 어깨를 가지고 있었다.

검정색 머리카락과 남색 눈동자는 진중했고, 묵직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야말로 남에겐 무뚝뚝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

-축하합니다! ‘틸레아 분홍 꽃’의 남주인공 중 한 명을 만났습니다.

-업적이 업그레이드됩니다.

-<‘틸레아의 분홍 꽃’의 빵집 업적이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 ‘틸레아의 분홍 꽃’의 남주인공 중 한 명을 만났습니다. 관련 이벤트가 빵집에서 벌어질 확률이 더욱 올라갑니다.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에게서 얻는 경험치와 빵 코인이 상승합니다.>

로나가 마치 전형적인 기사 남주인공 같은 외모다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띠링- 하면서 업적이 업그레이드됐다는 알림이 떴다.

“아, 맞구나.”

“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싶었더니, 아실라의 남주 중 한 명이에요. 이거, 이벤트였나 본데요.”

“민폐네요.”

“정말로요.”

기사에 가까워 보이는 학생은 굳은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복면인을 발견하고 놀랐다.

“이놈은…….”

“유리창을 깨고 들어오다가 다친 것 같더군요.”

“피해는 없었습니까?”

“네, 물건만 부서졌습니다.”

로나가 모나한의 품에서 빠져나와 말했다.

모나한이 미련이 남았는지, 로나의 허리에 손을 떼지 않았다.

로나는 그 손을 쳐 버릴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대로 두고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인가요?”

“복면을 쓴 자 몇 명이 한 여학생의 뒤를 몰래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걸 발견하고 붙잡으려다 그만…… 다른 이들은 전부 잡았는데, 한 녀석이 도망갔죠.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쳤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그 여학생 분명 아실라다. 아실라가 틀림없다.

뭐, 그건 그거고. 가게는 어떡한담.

로나는 방금 전의 두둥실한 분위기와 다르게 갑자기 현실이 몰려들어 오는 듯한 감각에 미간을 찌푸렸다.

만들어 놓은 빵을 못 팔게 된 건 그렇다고 치고, 이 유리들과 부서진 물건들을 어떻게 치우며, 안 그래도 비싼 유리창 값은 어쩔 것이며, 수리비는 또…….

며칠 동안 장사를 하지 못할 게 분명한데 그 비용은?

모아 놓은 돈이 얼마나 있더라…… 한동안 노점상이라도 해야 하나?

“그 여학생은 괜찮은 거죠?”

로나는 몰려오는 걱정을 잠시 접어 두고 아실라의 상태를 물었다.

아무리 여주인공이라 안전할 확률이 높다고 해도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아, 그녀는 무사합니다.”

“다행이네요.”

기사가 뭔가 감명받았다는 듯이 로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걱정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나? 뭐, 그럴 수 있지.

로나는 대충 생각하며, 다시 가게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지만, 모나한은 그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몸을 한 발자국 앞으로 움직였다.

“그 여학생이 무사하다면 다행입니다만…… 저희 가게에 대한 배상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 그건-”

“점장님! 모나한 씨!”

기사가 대답하기 전에 아실라가 분홍 머리를 휘날리며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게, 이게 무슨-! 어떡해!”

그녀는 신발에 채는 유리 조각에 한 번, 바닥에 포박되어 누워 있는 복면인에 두 번 놀라고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로나와 모나한에게 걸어왔다.

“괜찮으세요!? 괜히, 괜히 저 때문에…….”

“아, 그 여학생이 아실라 님이셨군요.”

모나한이 그렇게 말하자 아실라의 하늘색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유리 조각이 널브러진 곳에서도 그녀의 눈물은 CG 처리를 한 것처럼 반짝였다.

다이아몬드같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동그라미가 하얀 볼을 타고 방울져 흘러내렸다.

“죄송, 죄송해요.”

아실라의 옆에서 기사 남학생이 무뚝뚝한 얼굴은 어디갔는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위로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당황한 손이 위로 열심히 방황했다.

로나는 그 얼굴을 보다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모나한을 바라보았다.

모나한은 아실라의 아름답고도 서글픈 표정 앞에서도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로나는 그 표정을 잠시 바라보다가 아실라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아실라 님.”

“네, 네에.”

“저희한테 미안해하지 마세요.”

“하지만, 하지만 저 때문에!”

“아실라 님이 제 가게를 부수라고 사주했나요?”

“아니요!”

“그럼 복면인을 놓아줬나요?”

“아니, 아니에요!”

아실라가 고개를 붕붕 저으며 부정했다.

분홍색 머리카락이 고갯짓에 따라 몽실대며 휘날렸다.

“그럼 아실라 님도 피해자일 뿐이잖아요. 그렇죠?”

“네에.”

“그럼 미안해하지 마세요.”

“하지만,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인 걸요! 제가 없었다면-”

“아뇨, 그 말은 틀렸어요.”

“네?”

로나의 단호한 말에 아실라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실라 님의 말에 따르면 도둑질당한 집은 거기에 살고 있어서 일어난 일이고, 살인을 당한 사람은 그 길을 걸어가서 문제인 거잖아요. 그런가요?”

“……아니요.”

“그렇죠. 피해자는 피해자일 뿐이에요. 저에게 미안해야 할 건 저 복면인이지 아실라 님이 아니죠. 아실라 님은 그냥 괜찮냐고 물어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괜찮으신가요?”

“네, 조금도 다치지 않았답니다.”

“가게는…….”

“뭐, 부서지긴 했지만, 꼬박꼬박 세금을 냈으니 나라에서 도와주겠죠. 모아 놓은 돈도 있고요. 아, 아실라 님이 한동안 저희 가게 빵은 못 먹겠네요.”

“앗! 그건 안 되는데…….”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상황을 보고 있던 기사 학생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전 질란 라이언이라고 합니다. 질란 공작가 사람이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질란 공작가는 수도의 경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라이언이란 기사 학생은 다시 무뚝뚝하고 진중한 얼굴로 돌아와 말했다.

“경비에 틈이 생긴 것과 그로 인해 피해가 간 것은 저희 공작가에서 책임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른 시일 안에 가게를 다시 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로나는 순간 그의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환상을 보았다.

게임 속에서도 진중한 기사 캐릭터이며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성격인 건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그걸 보니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아실라에게 점수를 따기 위한 수작인 듯했지만…….

“라이언 님…….”

로나는 옆에 아실라가 감동한 얼굴로 라이언을 바라보는 것을 잠시 보았다가, 라이언에게 조심스럽게 허리를 굽혔다.

“그래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무엇보다 아실라 님께서 좋아하시는 곳인 듯한데…… 오늘 못 팔게 된 빵의 값까지 계산하겠습니다.”

“아니, 그러실 필요까지야.”

“괜찮습니다. 받으시는 게 제 마음도 편합니다.”

라이언은 단호하게 말하고선 돌아가자마자 사람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그러니, 아실라 님. 아실라 님께서도 마음의 짐을 덜으셨으면 합니다.”

“아…… 그럴게요, 라이언 님. 정말 감사해요.”

“아닙니다. 제가 완벽히 지켜 드리지 못해 죄송할 뿐입니다.”

“아니, 아니에요! 전 그냥 다리만 조금 삐었을 뿐인걸요. 제가 다쳐서 복면인을 놓친 거잖아요.”

“제 수련이 부족한 탓입니다. 제가 좀 더 강했더라면…….”

“아뇨, 제가 함부로 돌아다녀서 그래요. 제가 좀 더 주의 깊은 성격이었다면…….”

아, 쟤들도 둘만의 세계에 빠졌다.

로나는 떨떠름하게 둘을 보며 생각했다.

왕자와 있는 것보다는 덜 오글거리니까 봐줄 만한 거 같기도 하고…….

“저건 뭡니까? 사과 대결?”

“원래 기사 캐릭터가 무뚝뚝 고지식이거든요. 전형적이죠.”

“아하. 그래서 저 사과 릴레이는 언제 끝나는 겁니까?”

“글쎄요, 게임에선 누가 난입해야 끝나던데.”

“설마 그 역할이 저희에게 주어진 건 아니죠? 저 사이에 끼어들기 싫은데요.”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다행히 모나한이나 로나가 나서기 전에 경비병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경비대인가. 잘 왔군. 여기 도망간 한 명을 잡았다.”

“헉! 이자가!”

“포박해 놓았으니 끌고 가도록. 우리 질란 공작가에서 직접 심문하겠다.”

“알겠습니다!”

경비대는 등장한 것과 비슷한 속도로 복면인을 데리고 빠르게 퇴장했다.

그제야 사과 릴레이를 멈춘 둘이 조금 붉어진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저번 왕자와의 분위기와는 또 다른 분홍색 기류가 둥실둥실 흘렀다.

“그, 그럼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학원까지 모셔다드려도…….”

“앗! 물론 괜찮죠! 오히려 제가 부탁하고 싶어요. 읏!”

아실라가 밝게 말하며 움직이다가 갑자기 신음하며 휘청거렸다.

라이언이 그 모습에 신속하게 움직여 아실라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괜찮으십니까!?”

“으읏…… 아까 다쳤던 발목이…….”

“설마 그 발목으로 뛰신 겁니까!?”

“라이언 님도 그렇고, 빵집에서 사고가 났다는 말에 그만…….”

“하…….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바보 같긴.”

라이언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남색 눈동자에 슬픔과 자책이 가득 찼다.

“꺄악!”

“안 되겠습니다.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학원보다 먼저 신전에 들르는 게 좋겠습니다.”

“그냥 접질린 거예요! 신전은 너무-”

“당신처럼 연약한 사람이 가라고 있는 곳이 신전입니다!”

아닙니다. 신전은 큰 병이 있는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다리 접질린 건 병원 가세요.

로나는 모나한이 옆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걸 들었다.

“저, 저는 그렇게 연약하지 않아요!”

“하! 발목이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무슨…….”

보통 발목이 접질리면 당연히 제대로 못 걷습니다.

아실라와 라이언이 둘만의 세계에 빠졌을 때부터 모나한은 어느새 무심을 넘어 경멸을 눈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들을 수 없게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태클 걸었다.

“제가 부디 너무 걱정하지 않게 해 주세요, 아실라 님…….”

라이언이 우수에 찬 눈빛으로 아실라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에 아실라는 볼을 붉힌 채 조그마한 입을 몇 번 우물거리더니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그 끄덕임에 라이언이 조금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 당신은…… 연약하기 그지없는 토끼 같아요.”

아, 저 토끼. 또 나왔다.

“제가 부디 평생……. 지켜 드릴 수 있다면…….”

“라이언 님…….”

둘은 어느새 지고 있는 노을을 배경으로 아련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뒤에 배경이 되어 있는 반파된 빵집과 짜게 식은 얼굴을 한 로나와 모나한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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