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아, 안녕하세요오…….”
로나는 거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인사하며 빵집에 들어오는 아실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매우 우물쭈물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는데, 프리먼 왕자님과 보였던 모습이 매우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어서 오세요.”
“저, 저어…… 죄송합니다. 부끄러운 걸 보여 드렸어요오…….”
“괜찮아요.”
로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정말 괜찮았다.
앞으로 당신이 내게 보여 줄 건 아직 많을 테니까.
로나의 미소에도 아실라는 얼굴을 푹 숙이고 진열대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빵집에 들르면 제일 먼저 빵집을 한번 둘러보고는 카운터로 다가와 재잘거렸는데, 오늘은 재잘거림을 건너뛸 생각인 듯하다.
로나는 아직도 빨간 얼굴로 빵을 고르는 아실라와 어느새 문가로 가서 밖을 감시하듯이 둘러보고 있는 모나한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모나한은 또 그 오글거리기 그지없는 왕자님이 오는지 경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표정이 매우 진지한 것이 그 왕자님이 정말로 싫었나 보다.
하긴, 나도 바로 앞에서 듣는데 영혼이 날아가는 줄 알았지.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던 내가 그 정도였는데, 모나한은 어떻겠어.
인생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끔찍한 광경…….
다행히 아실라를 따라오는 사람은 없는지 모나한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보아하니 오늘은 별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고 빵만 사 갈 모양이었다.
언제나 빵집에서 이벤트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벤트가 생겼다가 빵집에 오기도 하고, 빵집에 들렀다가 돌아가는 길에 이벤트가 일어나기도 했다.
물론 언제나 빵집에 들르긴 했지만…….
로나는 살짝 업적의 이벤트가 일어날 확률이 올라간다는 문구가 신경 쓰였지만, 이내 고개를 잘게 흔들어 떨쳐 버렸다.
그녀는 쟁반 가득 빵을 올리고, 치즈 조각 케이크와 몽블랑 중에 고민하느라 입술을 톡 튀어나오게 한 아실라와 안심했는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쿠키를 진열하는 모나한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뒤쪽에서 ‘띵-!’ 하고 타이머가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구운 빵을 빼낼 시간이 되었다는 알림이었다.
“모나한, 카운터 좀 봐주세요.”
“네, 로나.”
로나는 모나한에게 카운터를 맡기고 가게 안 부엌으로 들어갔다.
막 만들어진 커피번들을 하나하나 오븐 안에서 꺼내어 부엌을 벗어났을 때, 상기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아실라와 뒷모습의 모나한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번 대화해 보고 싶었어요! 너무 잘생기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시골에 살아서 잘 몰랐는데, 도시에 오니까 잘생기고 예쁘신 분들이 엄청 많은 거예요! 근데 종업원님은 그중에서도 정말 잘생기셨네요!”
“너무 띄워 주시네요. 학생분도 아주 귀엽게 생기셨어요.”
“아앗, 아니에요! 저는 뭐랄까…… 너무 몽실몽실하게 생기지 않았나요? 저두 똑 부러지게 생기고 싶은데…… 너무 어린애 같아요!”
아실라는 언제나처럼 귀엽고 어여쁜 표정으로 말했다.
커다란 제스처와 활발하게 바뀌는 표정들은 그녀를 생기 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하늘색 눈동자는 별처럼 반짝이고, 상기된 볼은 뽀얗게 물들고, 웃는 입의 치아는 새하얗기만 했다.
그야말로 분홍색 꽃에서 태어난 요정 같은 아이.
로나는 왠지 그 어여쁘기 그지없는 얼굴과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표정을 보고 있는 모나한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그는 언제나와 같이 웃고 있는 걸까.
눈가를 사르르 접고, 입꼬리를 매혹적으로 올리며, 약간의 순종을 담은 것처럼 속눈썹을 나붓이 내리며.
“아, 로나. 제가 진열할게요. 이리 주세요.”
로나가 그의 표정을 확인하기도 전에 모나한이 로나의 기척을 감지하고 뒤돌았다.
그의 얼굴이 방금 자신이 했던 묘사와 별다르지 않았다.
사르르 웃고, 매혹적이며, 순종을 담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것을 보는 듯이 웃는 남자.
모나한이 커피번을 담은 쟁반을 가져갈 때 즈음에야 로나는 자신이 생각보다 강한 힘으로 쟁반을 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나는 빨개진 손바닥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븐에서 나온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방금 타오르는 것 같았던 감정 때문인지, 알 수 없게 빨개진 손바닥.
로나는 커피번을 진열하러 움직이는 모나한의 뒷모습과, 그 모습을 빤히 보고 있는 아실라의 뒷모습을 한 번에 눈에 담았다.
그리고 그녀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발을 놀려 카운터에 섰다.
“계산, 하시겠어요?”
목소리가 조금 딱딱한 것 같아서, 로나는 살짝 말을 늘였다.
그 목소리에 아실라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본다.
“점장님, 저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모나한. 모나한이라고 해요. 무슨 문제라도?”
“아뇨. 아니에요. 너무 잘생기셔서 깜짝 놀랐어요. 뭔가 기척이 없으신 분이라, 저렇게 잘생긴 줄 몰랐는데…….”
“아아. 그렇죠. 모나한이 잘생기긴 했죠.”
“맞아요! 정말 잘생기셨어요! 무슨…… 신전의 성직자 같은…….”
아실라가 멍하니 볼을 붉히며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며 로나는 문득 몰려오는 현기증에 몸을 굳혔다.
어딘가에서 자신이 쌓아 올린 것에 금 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을 게 분명한 소녀가 가장 사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모나한 씨를 보기 위해서라도 또 와야겠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로나는 아실라가 건넨 돈을 받으며 웃었다.
생각보다 입꼬리는 쉽게 올라갔다.
사랑받는 소녀는 총총거리며 언제나와 같이 달콤한 발걸음으로 빵집을 나갔고, 모나한이 걱정하는 얼굴로 다가왔다.
“괜찮아요, 로나?”
“……아아. 네. 괜찮아요.”
“제가 레몬티라도 타 올게요. 잠깐 저기 앉아 있어요.”
로나는 부엌으로 가려는 모나한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걱정이 가득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현실감 없는 얼굴에 손을 올렸다.
보드라운 뺨과 살짝 차가운 체온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로나?”
당신이 그 소녀를 바라보았던 얼굴이 궁금해.
나를 향해 돌아보았던 얼굴과 같았어?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이번엔 내가 그걸 바라더라도 상처 입지 않는 걸까.
“모나한.”
“네, 로나.”
“당신이-”
와장창-!
로나가 어떤 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로나가 반사적으로 모나한의 품 안으로 몸을 웅크리고, 모나한 또한 그녀를 ‘휙-!’ 품에 안았다.
그리고 카운터에 있던 쟁반으로 날라오던 유리 조각들을 빠르게 막았다.
“무슨 일이죠?”
“글쎄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는 건 알겠습니다만.”
모나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검은 복면인이 유리 조각을 뒤집어쓴 채 바닥에서 일어났다.
강도나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쳐들어왔기보다는, 밖에서 거대한 힘에 치여 들어온 것 같았다.
복면인은 충격에 몇 번 휘청거리다가 로나와 모나한을 발견하고 손에 들고 있던 검을 세웠다.
“가만히 있어! 안 그러면 죽여 버릴 줄 알아!”
벌써 누군가를 해쳤는지, 그의 검에선 붉은 피가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칼 밥을 먹고 사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는지 그의 전신에선 살기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로나는 평범한 민간인에겐 무섭기 그지없을 사내의 모습에도 왠지 조금의 공포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생각나는 건 ‘오늘 장사 끝났네’ 정도였으니.
그녀는 자신을 안심하게 만드는 게 분명한 이를 올려다보았다.
허리를 감싼 든든한 팔과 그의 품으로 파고드느라 만지게 된 가슴 근육, 평소와 달리 굳은 얼굴의 냉철함과 날카로운 턱선.
쟁반을 들고 있는 게 분명한데도, 전설의 명검이라도 들고 있는 듯한 날카로운 기세.
“와, 잘생겼다.”
“아, 로나.”
로나가 멍하니 뱉어 버린 말에 모나한이 못 말리겠다는 듯 웃었다.
그 웃음에 손에 만져지는 가슴 근육의 움직임이 아주 잘 느껴진다.
손바닥에 온 신경이 집중된 줄.
“와, 모나한. 몸이 좋은 줄은 알았지만…… 가슴이 생각보다 단단하군요?”
“아, 진짜. 못 말리겠네. 로나, 지금 심각한 상황이에요.”
“딱히 심각하게 안 느껴져서 그만. 물론 오늘 장사가 걱정되긴 하지만, 우선 눈앞의 미남이 황홀하네요.”
“제가 로나의 솔직함이 정말 좋다고 말했나요?”
“아뇨.”
“정말 좋아요.”
모나한이 복면인에게 시선은 떼지 않은 채 머리만 움직여 턱을 로나의 이마 즈음에 비비며 말했다.
“어이, 너희들!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몰라!? 뭐 하는 짓거리야!”
복면인이 화났는지 검을 흔들며 소리쳤다.
얼굴은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주름이 져 있는 모양새를 보니 얼굴을 와락 찡그리고 있는가 보다.
“보면 모르십니까? 연애 중입니다.”
“음…… 뭐……. 아니라곤 못 하겠네요.”
모나한이 뻔뻔하게 대답했고, 로나가 떨떠름하게 동의했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이건 연애질에 가까웠다. 아니, 그냥 연애질이다.
“이, 이이- 눈치도 없는 놈들이! 뒷문 어딨어, 뒷문!”
“제 가게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사람한테 왜 눈치를 봐야 하는데요? 손님도 아닌데. 하는 꼴 보니 보상해 줄 것도 아니고.”
“이 미친 계집이! 죽고 싶냐!?”
“아뇨. 잘 살고 싶은데요. 당신이 걱정 안 해도 알아서 잘 살 거예요.”
로나는 모나한의 품에 안긴 채 복면인의 말에 꼬박꼬박 반박했고, 모나한은 이제 그 상황이 즐거운지 계속 잘게 웃고 있었다.
음, 손에 느껴지는 단단함과 진동이 매우 즐겁군.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자동으로 만져져!
합법적이야!
“이, 이. 미친 연놈들이! 네놈들을 죽이고 뒷문을 찾는 게 빠르겠다!”
복면인이 소리치며 검을 든 채로 다가왔다.
아주 흉흉한 모습임에도 로나는 멀뚱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음, 제가 떨어지는 편이 움직이기 편하겠죠?”
“아뇨. 조금의 방해도 되지 않으니 부디 계속 붙어 있어 주세요.”
찰각.
모나한이 발밑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밟는 소리가 들리고, 그가 다리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크악!”
검은 제복을 입은 긴 다리가 시원하게 휘둘리고, 모나한이 발로 밟았던 유리 조각이 복면인의 허벅지에 틀어박혔다.
“와아아.”
로나가 긴장감 없이 감탄하자, 모나한이 싱긋 웃으며 다시 유리 조각 하나를 발로 밟았다.
“한 번 더?”
“안 죽여요?”
모나한이 가볍게 말하자, 로나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우선 소리 때문에 경비병이 곧 올 거고요, 무엇보다 로나에게 그런 잔인한 걸 보여 줄 순 없죠.”
“허벅지에 꽂는 건 안 잔인하구요?”
“목이랑 허벅지는 전혀 다른 느낌이잖아요.”
“그렇긴 하죠.”
잘각.
다시 모나한의 신발과 유리 조각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고, 모나한의 다리가 움직였다.
“아아악!!”
그리고 복면인의 반대쪽 허벅지에 또 다른 유리 조각이 틀어박혔다.
복면인이 고통에 바닥에 쓰러져 바르작거리는 것까지 확인하자, 모나한은 이제 완전히 로나를 품에 안은 채 머리를 비비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