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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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라지자마자 모나한이 티 테이블을 두 손으로 집고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매우 힘들고 고단한 일을 끝마친 가장의 뒷모습의 무게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쟁반이 필요했나요?”

로나가 그 모습을 보며 멍하니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나한이 쟁반을 들 상황이 아니었었다.

“빡쳐서 던졌습니다. 어떻게든 저 상황을 깨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아…….”

순식간에 퀭해져 퇴폐미도 어디론가 던져 버리고, 그냥 퇴폐 상태인 모나한이 지친 걸음걸이로 카운터로 걸어왔다.

그는 가슴에 손을 얻으며 매우 힘겹게 말했다.

“제가…… 배상할게요…….”

“아뇨, 잘했어요. 매우, 아주, 엄청 잘했어요.”

“……그렇죠. 역시 그렇죠!? 도저히 더 이상 들어 줄 수가 없었어요! 아니, 오히려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전 공포에 떨고 있었다고요!”

“아…….”

“저건 도대체 뭐죠? 신종 괴롭힘이나, 저주인가요?”

“아뇨. 그냥 플러팅이에요.”

“플러팅요!? 저게 플러팅이면 전 그냥 동굴에 들어가서 도시에 나오지 않겠어요. 설마 저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통했잖아요. 봤죠? 아실라가 부끄러워하는 거.”

“……미쳤나 보군요.”

“뭐…….”

로나는 도저히 아실라 대신 변명해 줄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사실 변명해 주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모른 척하고 싶었다.

“방금 장면을 본 제 눈과 귀를 도려내 버리고 싶은데요.”

“익숙해지세요, 모나한.”

“……네?”

“앞으로 많이 보게 될 거니까, 익숙해지라고요.”

“하. 하. 하. 농담이시죠?”

모나한이 그런 끔찍한 농담은 하지 말라면서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언제나 자연스럽고 예쁘게 올라갔던 입꼬리가 처음으로 올라가다 말고 부들부들 떨렸다.

“제가 게임 속이라고 했잖아요. 아실라는 여주인공이고, 그녀의 앞에 많은 남자들이 저런 대사를 할 거란 말이죠.”

“미친놈이 한둘이 아닌가 보죠?”

“방금 그 금발은 이 나라의 왕자인데요.”

“나라의 미래가 어둡군요.”

“왕자 말고 기사, 마법사, 상인이 있어요. 총 네 명이죠. 차례대로 따뜻, 무뚝뚝, 까칠, 능글한 성격이죠.”

“아…… 저번에 중얼거렸던 게 이건가요…….”

“참고로 이 빵집은 그 게임을 플레이했던 사람들이 ‘그 빵집은 무슨 죄냐’라고 했던 빵집입니다. 앞으로 많은 사건이 여기서 일어난다는 뜻이죠.”

“……이사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돈 없어요. 게다가 아실라가 제 빵에 반했다잖아요. 어떻게든 찾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왜 로나가 그렇게 좌절하고 현실과 헷갈렸는지 알겠어요. 제가 지금 그런 기분이에요. 로나, 여기 현실…… 맞죠?”

“네.”

로나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모나한은 매우 좌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이런 게임을 하셨죠……?”

“전 제가 했다고는 안 했는데요.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봤어요.”

“왜 보신 거죠?”

“이 게임을 하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기려고?”

“……벌을 받으시나 봐요.”

“몇백 명이 봤는데, 저 혼자 받네요.”

“처음으로 주인님과 계약한 게 후회되는 중입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도 있나요?”

“……아니요.”

“아하.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모나한.”

게임 BJ가 방송하면서 괴로워하는 것을 본 게 죄라면 죄겠지. 뭐.

구독과 좋아요도 눌렀지만, 그거론 죄가 용서되지 않았나 보지 뭐.

젠장. 광고 건너뛰기를 누르면 안 됐나. 봤어야 했나.

“자, 모나한. 저기 가서 슈크림 빵이나 먹어요.”

“……다 먹어 버릴 거예요.”

“좋아요. 더 구워 줄까요?”

“젠장할. 밑도 끝도 없이 먹을 거니까 있는 반죽 다 구워요!”

워워. 울먹거리지 말고 진정해.

인생이 매우 잔인하고 쓰게 느껴지겠지만 자, 달콤한 걸 먹어 보렴?

이래 봬도 이 누나가 달콤한 걸 잘 만든단다?

“케이크도 먹을래요?”

“앞으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련이 절 기다리고 있는 거죠!?”

“포기하면 편해요. 그래요, 저처럼.”

로나는 모든 걸 포기한 현자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모나한은 절망했다.

* * *

-평생 고급진 음식만 먹어 온 자를 놀라게 했습니다.

-중량의 경험치와 57 빵 코인을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

“왜 그러세요?”

“아실라가 학원에 돌아가서 왕자님이랑 같이 빵을 먹었나 봐요. 레벨이 올랐어요.”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레시피도 열렸나요?”

“네! 새로운 상점 창도 열렸어요.”

로나가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허공에 손짓했다.

상태창이 반짝이며 레벨이 올라간 것을 칭찬했지만, 로나는 눈앞의 반짝이를 무시한 채 상점 창을 열었다.

자신에게 중요한 건 한식이 나올 상점 창이지, 레벨 업따위! 저리 꺼져!

이번엔- 어떤- 한식이 날 기다릴까---.

모나한은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기에 그 ‘시스템창’이라는 것을 만지는구나 하고 가만히 있었다.

처음에는 허공에 손짓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혹시나 상점 창이란 것이 자신의 눈에도 보일까 하여 주의 깊게 보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보이지 않는 것에 포기한 지 오래였다.

다만, 그 레벨이라는 것이 올라가고 새로운 레시피와 상점 창이 열릴 때마다, 로나의 제빵 실력이 향상되고, 새로운 빵이 나오기에 모나한은 그녀의 레벨 업을 즐겁게 기다렸다.

“허억……!”

“로나?”

“이건…… 이건, 이건, 이건!!”

그래서 모나한은 로나가 갑자기 허공을 보며 경악한 얼굴을 했을 때, 무언가 큰일이라도 펼쳐진 줄 알고 놀라 먹던 슈크림 빵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그 시스템 창이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자신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데.

포기하지 말고 뭔가 더 알아봤어야 했나.

모나한은 얼굴을 딱딱히 굳히고 로나의 시선이 머무는 허공의 무언가를 찾으려 노력했다.

“로나, 괜찮아요? 무슨 일이죠?”

“고추!”

“……네?”

로나가 자신의 긴 생에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단어를 내뱉었다.

“고추가 생겼어요!”

“어…… 괜찮으신 건가요?”

“네! 무지! 엄청!”

“……제가 다시 슈크림 빵을 먹어도 될 만큼 괜찮은 거죠?”

“아뇨!”

“괜찮지 않은 건가요? 역시 무슨 일이 생긴 거-”

“챙겨요, 그거! 걸어가면서 먹어요!”

“……네?”

“시장에 갈 거예요! 가서 고기랑, 호박이랑, 버섯, 파…… 아무튼, 요리 재료를 사러 가야 해요!”

모나한은 왠지 모를 로나의 광기 어린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그녀의 말에 따라 슈크림을 종이봉투에 챙기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은 고추튀김을 먹을 거야! 고추 안에 고기랑 야채랑 듬뿍 넣어서 튀겨 먹는다! 매운맛, 매운맛!!”

“저기…… 로나?”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고 싶은데, 그러면 고추장을 만들어야 하는 슬픔이 흐르고-”

“로나? 괜찮은 거죠?”

“하지만 우선 고추가 있으니까, 말리면 고춧가루!”

“안 괜찮은 거 같은데…….”

모나한이 흥분해서 장바구니를 들고 나가는 로나의 뒤를 따라가 장바구니를 뺏어 들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로나는 모나한의 그런 모습에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추로 만들 수 있는 게 더 뭐가 있을까…… 전에다 넣어 먹어 봐? 전생에 고추장을 만들어 본 적이 없으니, 도통 방법을 모르겠네. 이것저것 섞어 봐?” 등등을 중얼거리느라 바빴다.

고추장을 만드는 데, 뭐가 들어가지?

물엿…… 이라고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난 물엿이 없는데요!?

상점 창 일 안 하시는 거죠?

로나가 이제는 잘 생각나지 않는 전생의 레시피에 이마를 부여잡고 낑낑거리기도 잠깐.

“어떤 것이든 일단 만들어 보면 되겠지!!”라고 소리치며 달려 나갔다.

그 뒤를 모나한이 한 손엔 장바구니를, 한 손엔 슈크림 빵이 가득 든 종이봉투를 들고 따랐다.

* * *

드디어 상점 창에 나온 새로운 한식 재료 고추에 기뻐하던 로나는, 우선 가장 먼저 생각났던 음식인 고추튀김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접시 위에 고추튀김을 왕창 쌓아 놓고 환호하며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 고추튀김을 모나한이 매우 떨떠름하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로나의 전생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입맛에 맞춰서 ‘밥’이란 것에 적당히 익숙해진 모나한이었지만, 아무리 오래 산 그에게도 매운맛은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이 세계의 매운맛을 내는 식물들은 절대로 이렇게 통째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무기로 쓰이거나, 아니면 아주 소량을 음식에 넣어 먹곤 했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것들과 비슷해 보이는 야채가 이렇게 통으로 튀겨져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이라니.

그것도 이상하게 초록색을 통째로 튀긴 듯한 비주얼…….

물론 저 안에 고기나 야채를 넣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겉보기에야 고추라는 야채를 통째로 튀겨 놓은 것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며 환호하는 로나라니.

도대체 로나의 전생인 한국인들은 얼마나 매운맛을 즐겼던 거지……?

모나한은 매우 망설이다가 로나가 고추튀김을 베어 물고, 망설임 없이 씹어 댈 때 즈음에야 겨우 입으로 가져갔다.

그는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고추튀김을 베어 물었다.

“오…….”

그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맛있게 몰려오는 매콤함에 감탄했다.

튀김의 겉면이 입 안에서 바삭거리며 부서지고 난 후 고추 특유의 시원한 향이 느껴지고, 그 후에 오는 매운맛은 딱 맛있을 정도로 맵다기보다는 매콤하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그리고 느껴지는 안을 채워 넣은 야채와 고기의 육즙.

고추 향과 함께 느껴지는 짭조름함과 고소함.

튀김 특유의 요리법으로 인해 그 안에 가득 담긴 맛과 수분의 하모니.

“이거 맛있네요! 생각보다 맵지도 않고. 로나 씨가 왜 그렇게 먹고 싶어 했는지 알겠어요.”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로나?”

고추튀김의 맛에 감탄하며 로나를 바라보았던 모나한은 자신과는 전혀 다르게 온몸을 붉힌 채 하악거리고 있는 로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모나한은 당황한 얼굴로 눈을 깜박이며 자신이 들고 있는 고추튀김과 로나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아니, 매운 것 좋아한다며?

아닌 거 같은데?

죽어 가는 중인데?

“……괜찮으세요?”

“하아, 하아, 하아. 매워요.”

“네. 그래 보여요.”

로나는 안 괜찮다며 반쯤 우는 얼굴로 고개를 도리질하고는 상점 창에서 우유를 사서 벌컥벌컥 마셔 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 컵을 전부 비우고는 탁자에 ‘탕!’ 소리 나게 내려놓더니 새빨개진 얼굴로 눈물을 글썽거리고 화를 냈다.

“뭐야! 왜 이렇게 매운 거야!”

“음…… 그렇게 많이 맵지는 않은 것 같은데.”

“딱 봐도 오이고추인데! 오이고추도 못 먹는 혀라니!”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얼굴이 된 로나가 엉엉거리며 다시 고추튀김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외쳤다.

“매워!!”

“……그, 그만 드시는 게.”

“좋아한단 말이에요! 고추튀김!!”

“음, 네.”

“이 혀! 단련이 하나도 안 됐잖아!!”

로나의 말대로 매운맛을 즐겨 먹지 않는 이 세계에서 살았던 혀는 고추의 매운맛을 감당하지 못했다.

마치 김치를 물에 씻어 먹던 어린 시절처럼, 매운맛에 하나도 익숙하지 않은 혀가 고추튀김의 공격에 쓰러지고 만 것이었다.

눈앞에 고추튀김이 있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모나한은 억울해하는 로나를 떨떠름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자신의 몫으로 놓인 고추튀김을 다시 베어 물었다.

“음.”

다시 먹어도 참 적절한 매운맛과 시원한 향, 야채와 고기의 육즙이 잘 어우러지는 음식이었다.

로나에 비해 모나한은 오래 산 만큼 매운 음식을 많이 먹어 보았었다.

로나가 사는 이 나라야 매운 음식을 즐기지 않지만, 예전에 돌아다녔던 다른 나라 중에 한 곳은 매운 음식들을 즐겨 먹기도 했고.

모나한은 익숙하지 않지만 새로운 매운맛을 즐기며 눈앞의 고추튀김을 해치웠다.

조금 떨떠름하게 보였던 튀김이 이젠 아주 맛있게만 보였다.

“맛있네요.”

“매워요!”

“로나 씨는 빵 말고 다른 것도 잘 만드는군요!”

“왜 먹지를 못 하나! 내 혀야!”

로나는 엉엉 울며 억울하다는 듯이 탁자를 쳤다.

심지어 맛있게 먹고 있는 모나한의 입을 원망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기까지 했다.

왕성한 식욕과 많은 양을 먹는 뱀파이어는 눈앞에 쌓인 고추튀김을 빠르게 클리어 해 나갔다.

그 부러운 모습에 로나가 다시 용기를 내며 고추튀김을 물었다가, 매운맛을 견디지 못하고 우유를 벌컥벌컥 마셨다.

벌써 우유만 몇 잔째인지, 눈물이 줄줄 났다.

전생 한국인인 로나는 애석하게도, 한식을 즐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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