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모나한이 공터에 도착했을 때, 그는 조금 당황했다.
당연히 거기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코는 옅은 불 냄새와 레몬차의 향을 맡을 수 있었다.
옆의 수풀에서 나는 샌드위치 등의 음식 냄새도.
모나한은 순간 로나가 도망쳤거나, 아니면 그녀가 위험한 일에 휘말렸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처리한 이들이 다가 아니라, 일행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들이 이쪽으로 향해서 로나를-.
모나한은 떠오르는 불길한 상상에 제 목덜미를 쥐어 계약의 목줄을 활성화해 로나를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 목에서 음산한 붉은빛이 막 피어오르려 할 때.
“모나한.”
머리 위에서 여자치곤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 * *
바스락.
로나는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숨을 죽였다.
시선만을 조용하고 빠르게 움직여, 제 몸이 완전히 나뭇잎 사이에 파묻힌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소리가 들렸던 곳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혹시 비명이 튀어나올지 몰라서 입을 한 손으로 꼭 막은 채였다.
무엇이 튀어나오든 로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입을 틀어막은 손이 조금 떨렸을 즈음에 수풀 사이로 키 큰 사내가 나타났다.
무성한 나뭇잎에 잘 보이지 않아 로나는 그대로 숨을 죽이고 침묵했다.
그 누군지 모르는 그림자는 공터를 빤히 바라보는 듯하더니, 피크닉 바구니를 숨겨 두었던 수풀을 한번 바라보았다.
로나가 들켰다는 생각에 더더욱 몸을 움츠리려 할 때, 바람이 살짝 불었고, 눈앞을 가리던 나뭇잎이 흩어지고 익숙한 회색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모나한.”
로나는 안심하면서도 아직 남아 있는 긴장에 평소보다 훨씬 낮은 목소리로 모나한의 이름을 불렀다.
로나를 찾으려 계약의 문신을 활성화하려던 모나한이 머리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는 위에서 로나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우거진 나뭇잎에 모습은 보이지 않아 고개를 돌리다가, 나뭇잎 사이로 얼굴을 내민 로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윽고 그의 예민한 시선에 나무 위 굵은 가지를 꼭 끌어안은 채 엎드려 있는 로나가 들어왔다.
“거기서 뭐 해요?”
모나한이 로나가 올라가 있는 나무 아래에서 로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상한 소리가 나서 숨었어요.”
“이상한 소리요?”
“비명이랑 검이 부딪히는 소리 같은 게 울려서요.”
“아…… 로나 귀가 좋네요.”
로나의 말에 모나한이 곤란하다는 듯이 웃었다.
보아하니 그 소리의 주인공은 모나한인 듯했다.
로나는 짐승보다는 사람의 비명 소리에 가까웠던 소리와 검 같은 철이 부딪히는 소리를 떠올렸다.
그리고 공터에서 떠날 때와 같이 조금의 핏자국이나 흐트러짐도 없이 서 있는 모나한을 바라보았다.
방금 살육을 했다기에는 너무 깔끔한 옷차림과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이었다.
“모나한이 낸 거예요?”
“음…… 나쁜 사람들이 쫓아와서요. 도적 같은 거요.”
“지금은 안전한 거죠?”
“네. 완전히요.”
모나한이 왠지 평소보다 더욱 순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나는 잠깐 죽었을 확률이 높은 이들이나, 모나한의 사냥 장면을 떠올렸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어차피 자신이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모나한은 자신에게는 애교 부리고 호감을 얻으려고 낑낑대는 토끼 같은 얼굴을 가진 여우였다.
그가 정말로 나쁜 사람을 죽였을 확률이 높았고, 아니라고 해도 모나한이 모두에게 착한 이일 순 없는 거였다.
나한테만 착하게 굴면 되는거지.
남까지 신경 쓰기엔 로나는 이미 자신의 삶을 지탱 중인 어른이었다.
오지랖 넓은 성격보다는 오히려 남하고 엮이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기도 했고.
로나는 모나한이 묘하게 눈치를 살피는 것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낑낑대며 나무에서 내려오려고 하였다.
“……도와줄까요?”
“네.”
모나한이 조금 망설이며 묻자, 로나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모나한은 그런 로나의 얼굴을 잠시 관찰하듯이 훑어보다가 나무 기둥을 몇 번 가볍게 밟는 것만으로 로나가 있는 가지에 도착했다.
나는 완전 낑낑대면서 올라왔는데, 진짜 쉽게 올라오네.
치사하다는 얼굴로 모나한을 바라본 로나는 모나한이 안기라는 듯 팔을 벌리자 냉큼 그의 목에 팔을 휘감았다.
“……경계심이 없네요.”
모나한의 평소보다 묘하게 낮은 목시에 로나는 의아해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평소와 같이 순해 보이는 표정으로 조금 웃을 뿐이었다.
로나는 모나한이 이때구나 하며 냉큼 허리에 팔을 두를 줄 알았다.
그는 지금까지 로나가 싫어하지만 않으면 스킨쉽을 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내였다.
그러나 모나한은 평소와는 달리 아주 조심스럽게 로나의 허리를 안았다.
마치 힘주면 부서질 유리나, 순식간에 흩어져 버릴 안개 같은 것들을 만지는 듯한 행동이었다.
그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로나를 안고,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나무에서 내려와 로나를 땅에 내려 주었다.
로나가 신었던 갈색 가죽신이 연두색 잔디 위에 천천히 닿았다.
“안 무서워요?”
로나가 모나한의 목에서 손을 거두기 전에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뭐가요?”
“저요.”
모나한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 급하게 대답했다.
스스로도 그것을 깨달았는지 그는 입을 한번 다물었다가 평소보다 훨씬 부드럽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었다.
“제가 무섭지 않냐는 말이에요. 무서워하거나, 아니면 조금이라도 떨떠름해 할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서요.”
그는 평소보다 훨씬 순하고 착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마치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고 하는 아이같기도 했다.
“갑자기 왜 혼자 무덤 파고 있어요?”
“……로나 씨 귀가 생각보다 좋아서요. 비명을 들어 버렸잖아요.”
“나쁜 사람들이라면서요.”
“……절 믿는군요?”
“네.”
로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목을 감싸고 있던 팔을 풀었다.
그리고 그대로 그의 어깨를 잡은 채 몇 번 가볍게 토닥거렸다.
“모나한을 믿어요.”
“로나…….”
로나의 그 아무렇지도 않은 평소와 같은 얼굴에 모나한의 눈빛이 조금 흔들릴 때 즈음, 로나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근데 보여 주진 마세요.”
“네?”
“사냥하는 거나, 사람 죽이는 거? 같은 거요. 그냥 듣는 거랑 직접 보는 거랑은 완전히 다른 거잖아요.”
“그렇죠.”
“전 그런 거 본 적 한 번도 없거든요. 보더라도 모나한을 믿으려고 하겠지만, 어쨌든 겁먹을걸요?”
“……그렇겠죠.”
“그럼 저한테 안 보여 주면 되죠. 막,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이더라도 날 받아 줘’ 같은 짓은 하지 말라고요. 난 안 받아 줄 거야.”
“제가 그런 머저리는 아닌데요.”
모나한은 로나의 그 단호한 얼굴에 조금 웃으며 대답했다.
그의 잘생긴 이목구비는 그가 불안해하는 동안에도 할 일을 다했다.
로나의 눈에 모나한은 여느 때와 같이 잘생기고, 순해 보이고, 조금은 가라앉은 미남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모나한의 잘생긴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요. 그 예쁜 얼굴을 써요.”
“네?”
그는 제 코끝을 살짝 건드리는 로나의 손가락을 느끼며 물었다.
“호감을 얻고 싶으면 예쁘고 멋지고 좋은 것만 보여 주란 말이에요. 만약에 나쁜 짓 하고 와도 그냥 그 예쁜 얼굴로 방긋방긋 웃어요.”
“나쁜 짓…….”
“내가 모르고 나한테 피해 안 오면 되죠, 뭐. 이 세계가 마냥 인권 어쩌구 폭력 어쩌구 하는 세계도 아니고. 제가 그걸 고칠 힘이나 야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시민답게 눈 가리면 모른 척 할 거예요. 알겠죠? 내숭을 떨란 말이야, 내숭을.”
“알겠어요. 절대 모르게 할게요.”
“안 한다는 말은 안 하네요.”
“때로는 폭력이 필요할 때도 있잖아요.”
모나한이 언제나처럼 예쁘게 눈꼬리를 내리며 말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회색 머리카락이 나긋하게 흘러내리게, 입꼬리는 부드럽게 올리고, 유혹적인 시선을 던지며.
“포옹해도 돼요?”
로나는 그 얼굴을 보며 언제나처럼 안 된다고 말하려다가 그만, 모나한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말았다.
그래서 그녀는 조금 한숨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넓은 어깨와 단단한 몸이 조심스레 다가오고, 생각보다 훨씬 차가운 피부가 느껴졌다.
로나는 그대로 팔을 그의 등 뒤로 둘러 느릿하게 토닥였다.
모나한이 그 토닥거림을 받다가, 조심스럽고 느리게 고개를 숙여 로나의 목덜미에 기대었다.
목쯤에서 회색 머리가 부드럽게 뭉개지고, 눈 앞에서 하늘거리는 것을 보다가, 로나는 눈을 감았다.
피나 쇠의 비릿함 같은 살육의 냄새는 어디에도 맡아지지 않고, 오히려 저와 비슷한 구운 밀가루의 냄새가 나서 로나는 그만 조금 입꼬리를 올리고 말았다.
* * *
“사고가 일어날까 봐 부리나케 짐들을 전부 숨겼거든요.”
모닥불 흔적도 지우고요.
로나가 던져둔 짐을 찾기 위해 다시 모닥불을 피웠던 공터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녀는 ‘자신은 소시민이라 도망칠 생각만 가득했다, 모나한이 올때까지 나무 위에서 꼼짝도 안하고 있을 생각이었다’ 같은 것들을 말해 주며, 산을 올라올 때와 같은 걸음으로 걸었다.
종종거리는 걸음에 맞춰서 갈색 땋은 머리카락과 모나한이 사 준 손수건이 통통 튀었다.
모나한은 그런 로나의 모습에서 어떠한 것들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두려움이나 혼란, 불안 같은 것들.
방금 살육을 하고 온, 인간이 아닌 저를 무서워하는 어떠한 징후들.
그러나 로나는 두려움을 숨기고 있다기에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평상시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냥 수풀에 던져 놓아 엉망진창인 짐들을 빼내려고 낑낑거릴 뿐이었다.
생각보다 깊숙이 들어갔는지, 한쪽 다리를 엉거주춤 든 채로 낑낑대는 무방비하고 서스럼 없는 모습.
제 주인이니 명령을 내리면 충분한 일들을 자신이 도와주려 다가가기 전까지는 스스로 해 버리는 모습.
산에 올라오기 전과 달라진 것 없는 모습.
모나한은 수풀에 걸린 천을 낑낑대며 푸는 로나의 옆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로나는 가까이 다가가도 자신을 조금도 경계하지 않았다.
그냥 자기가 천을 잡으니 맡기겠다는 듯이 손에 힘을 풀어 버릴 뿐이었다.
그녀는 무서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방금 있었던 포옹으로 친밀감이 올랐는지, 자신의 숙인 어깨에 볼을 붙이고는 천을 수풀과 분리하는 걸 빤히 관찰하고 있었다.
“손가락도 잘생겼네.”
로나가 투덜거리는 것과 가까운 목소리로 칭찬하는 것이 귓가에 울렸다.
가까이에 있어 더욱 선명히 들리는 목소리.
모나한은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더욱 우아하고 섬세하게 움직였다.
그는 그런 것에 자신이 있었다.
남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 호감을 사는 것.
반대도 그리 두렵지 않았다.
어쨌든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니.
그러나 지금만큼은, 이상하게도.
온갖 산해진미의 냄새가 아니라, 욕망으로 질척해진 땀을 지우려는 지독한 향수 냄새가 아니라, 제 어깨에 기대어 있는 여자는.
막 구운 빵의 냄새와 레몬티와 커피의 향이 났으므로.
모나한은 문득 어린 시절처럼 모든 게 무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