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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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아침, 가벼운 몸과 함께 일어난 로나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샌드위치를 쌌다.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 어제 잔뜩 만들어 놓았던 식빵에 양상추와 햄, 치즈, 계란을 넣기도 하고, 블루베리 잼을 곁들이기도 하고, 생크림과 딸기를 넣기도 했다.

그녀는 정말로 소풍 가는 기분이 되어,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상점 창에서 파인애플 통조림을 찾았다.

통조림 파인애플도 생크림과 조합이 좋단 말이지.

“모나한도 샌드위치 먹을 거죠?”

“오. 환영이죠.”

모나한이 어제 미처 치우지 못한 것들을 치우며 대답했다.

꼼꼼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의 뒤 탁자에도 막 내린 따뜻한 커피가 김을 모락모락 피워 내고 있었다.

샌드위치가 예쁘게 완성되어 바구니에 차곡차곡 쌓였다.

모나한이 사냥할 동안 로나는 모닥불을 피우고 기다릴 예정이었다.

샌드위치뿐만 아니라 주전자에 커피 가루, 머그잔까지.

로나는 한껏 기분을 내며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골라 놓았다.

전생에 한 번쯤 로망으로 가졌을 법한, 피크닉 바구니를 챙긴 채였다.

은근히 양이 많아 짐이 많아졌지만, 몰라! 모나한이 들 건데, 뭐!

로나는 양손은 무겁게, 마음은 가볍게를 시전했다.

로나는 평소에 티 테이블로 쓰던 탁자에 가져갈 짐을 쌓아 올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정말 소풍 가는 건 아니라서 치마를 입을까 봐 순간 걱정했던 모나한의 생각과는 다르게, 로나는 귀엽지만 튼튼한 청 멜빵바지를 입고 나왔다.

양쪽에 큰 주머니가 달린 청 멜빵바지에 탄탄한 신발, 밀짚모자까지 챙긴 그 모습은 시골의 귀여운 아가씨 같았다.

특히 움직일 때마다 어깨 주변에서 통통 튀고 있는 갈색 땋은 머리가 귀엽기 그지없었다.

“뭐예요, 로나. 너무 귀엽다.”

“그렇죠! 숲으로 간다니까 이걸 꼭 입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청 멜빵바지에 밀짚모자는 법이에요, 법!”

평소의 단정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귀여운 모습이었다.

“가는 길에 손수건 하나 사 가요.”

“손수건요?”

“하얀 천에 붉은색 물방울무늬가 장식된 거요. 목에 두를 거예요. 제 로망 중 하나예요!”

“아, 진짜 귀엽겠다. 제가 사 줘도 될까요?”

“그럼요!”

로나가 밝게 대답하며 피크닉 바구니를 들려고 하자, 역시 로나의 예상대로 모나한이 빠르게 그 바구니를 뺏으며 말했다.

“제가 들게요. 로나 씨는 그냥 그 걸음걸이 그대로 걸어 주세요.”

“걸음걸이요?”

“네. 지금 통통 튀는 걸음걸이요. 왜 이렇게 귀엽죠? 정말 귀엽네.”

어…… 귀엽다는 거 나였어?

로나는 잠깐 굳었다. 한국인의 겸손 근성이 잠깐 튀어나왔다가 로나의 뻔뻔함에 수그러들었다.

그래! 내가 귀여울 수도 있지!

“제가 또 한 귀여움 하죠.”

“정말요. 평소에는 단정한 모습이었는데, 이렇게 귀여운 모습이라니. 안경 사 줄까요? 안경 쓸래요?”

“모나한. 안경이 취향이에요? 자꾸 안경 사 준대.”

“네. 취향이에요.”

“오.”

“로나 씨 탓이에요. 로나 씨가 너무 안경을 씌워 보고 싶게 생겼잖아요. 저에게 새로운 취향이 생기게 하다니. 책임져 주세요.”

“그럼 모나한은 제 눈을 높여 놨으니 책임져 줘야겠네요. 모나한이 너무 잘생겨서 남자 보는 눈이 높아졌거든요.”

“감사합니다.”

“……네?”

“책임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로나는 농담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단 얼굴로 모나한을 째려봤다.

이런 반응을 바란 게 아니었는데.

“취소.”

“네?”

“취소할래요. 서로 책임지지 않기로 하죠.”

“로나. 이 잔인한 여자.”

모나한이 슬픈 표정을 만들며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말했다.

로나는 그 얼굴을 보며 깔깔깔 소리 높여 웃었다.

옥구슬이 굴러가는 소리까진 아니더라도, 밝은 햇빛 아래 터지는 그런 웃음이었다.

결국, 모나한도 입꼬리를 크게 늘이며 웃어 버렸다.

손수건과 안경을 사기 위해 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기 그지없었다.

* * *

“정말로 안경을 사 주다니.”

로나가 검은색의 동그란 안경의 중앙을 올리며 말했다.

순간 어디서 많이 본 반장의 안경이 반짝 떠올랐다.

원치 않게 중2병의 한 장면을 재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바로 앞에서 감격한 얼굴로 눈을 반짝이고 있는 모나한을 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와. 생각한 것보다 더 잘 어울려요.”

“그래요? 귀엽나요?”

“귀엽고 섹시해요. 부디 침대 위에서도 써 줄래요?”

“제 침대 위에 올라온 적도 없잖아요.”

“언젠가 올라갈 예정이죠.”

“오. 그 예정 방금 처음 들었어요.”

“제 마음속에 언제나 있었던 예정이에요.”

“주인님과 침대에서 뒹굴기가요?”

“주인님의 빵을 먹었을 때부터 생각한 거죠. 어떻게든 이 여자를 잡아야 한다. 앞으로 내 인생을 책임질 여자다!”

“혀를 책임질 여자겠죠.”

“그 말이 그 말이죠. 뱀파이어는 식욕의 노예거든요.”

모나한이 코끝을 찡그리며 뻔뻔하게 말했고, 로나는 안경을 벗으려고 했지만, 제발이라며 비는 모나한의 애원에 그만두었다.

“아, 저기 손수건을 파는군요. 이거죠? 흰 바탕에 붉은 물방울무늬.”

모나한은 냉큼 손수건을 파는 상인에게 다가가 로나가 말했던 디자인의 손수건을 집어 들었다.

로나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값을 지불한 그는 로나의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목에 손수건을 둘러 주었다.

로나는 제 쇄골 부근에서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긴 손가락을 쳐다보았다.

조금 창백해 보이는 하얀 피부가 햇빛 아래 옅게 빛나고, 가지런한 손톱에 쇄골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로나는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모나한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뻔뻔하거나, 장난기가 가득하거나, 유혹하는 듯이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나긋하게 깜박거리는 눈이 그저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마침내 예쁘게 매듭을 마무리 지은 모나한이 고개를 들어 로나의 눈을 마주쳤을 때, 그는 부드럽게 눈을 휘었다.

그냥 그대로, 어떠한 목적이나 욕망도 없이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로나는 그 얼굴을 멍하니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따라 웃어 버렸다.

누군가 보면, 똑 닮았다고 할 정도로 비슷한 얼굴 위로 햇빛이 반짝거렸다.

* * *

둘은 나란히 걸어 성문 밖으로 나갔다.

로나의 땋은 머리가 목에 맨 손수건과 함께 통통 튀었다.

모나한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계속 흐뭇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동안 사냥은 즐거운 식사보다는 그저 해야 할 일과를 끝내는 느낌에 가까웠다.

물론 맛있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얼른 배를 채우고 빵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예전에는 더 맛있는 음식, 더 맛있는 피, 아니면 어떠한 욕망이라도 채우기 위해 허덕였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요즘은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허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언제나 명치 부근이 든든한 기분.

모나한은 언제나처럼 로나와 작게 티키타카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갔다.

작은 웃음과 농담들이 둘의 주위에서 와글거리며 뒹굴었다.

“여기서부턴 제가 앞장설게요.”

“내가 갈 길을 잘 닦아 놓도록 하여라.”

“예, 주인님-!”

모나한이 길을 벗어나 깊은 숲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로나가 농담으로 하는 말에 장난으로 길을 걸레로 닦는 시늉을 하던 모나한은 이내 튀어나온 수풀을 치우며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로 로나가 움직이기 쉽도록 기다란 풀을 꾹꾹 밟아 넘어트리고, 나뭇가지를 베어 버리고, 큰 돌은 차 버렸다.

“그렇게까진 안 해도 돼요. 저 시골에서 자랐다고요. 산딸기나 버섯 따러 산을 얼마나 올랐는데.”

“안 돼요! 흠집이라도 나면 어떡해요!”

“제가 유리잔도 아니고 무슨.”

“안경에 흠집 나면 안 되죠! 그건 죄악이라고요.”

“나 안경이었냐. 안경이 내 본체냐.”

“이런. 안경이 제 주인님이셨다니. 주인님, 앞으로는 반짝반짝 닦아 드리겠습니다.”

“하아하아도 해 줄 거야?”

“입김 말하는 거예요? 꺄악, 로나 씨 야해!”

“뭐래. 얼굴이 야설인 주제에.”

“저 성직자형인데요. 보이지 않습니까? 이 신성함이 가득 담긴 얼굴.”

“퇴폐미를 한 방울 떨어트렸잖아요. 야해졌잖아.”

“아, 그게 또 제 매력이죠. 퇴폐미 한 방울로 완성된다구요.”

“아, 인정.”

그걸로 완성된 얼굴이지.

로나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모나한이 뿌듯하다고 답했다.

적당히 하라고 말했음에도, 모나한은 정말로 길을 닦듯이 방해물들을 치웠다.

솔직히 숲에 들어간다고 하여 고생을 각오한 로나는 정말 가벼운 등산을 하는 기분이 되어 버려 떨떠름하게 말했다.

“사냥하러 가는 거 아니었어요? 이렇게 흔적을 남겨도 되는 건가요?”

“적당한 공터를 찾으면 거기에 로나 씨를 두고 움직일 거예요. 그때부턴 흔적 없이 가야죠.”

“오래 걸리겠네요.”

“아뇨. 최대한 빨리 끝낼 건데요.”

“일주일 만에 먹는 식사인데, 많이 먹는 게 낫지 않아요? 이왕이면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고…….”

“어떻게 그런 잔인한 말을 할 수 있어요?”

“네?”

모나한이 상처받았다는 표정과 절망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자, 로나는 자신이 뭔가 잘못 말했나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맛있어 보이는 샌드위치를 싸 주고선! 전 지금 그거 먹을 기대밖에 안 들어요.”

“그럼 먼저 샌드위치 먹고 사냥하러 가요. 어차피 곧 점심 먹을 시간인데.”

그리고 모나한의 말에 피식 웃고는 미리 먹고 가라고 이야기했다.

“그럴까요? 근데 그럼 좀 오래 기다려야 할 텐데…….”

“기다리면서 볼 책도 가져왔는걸요. 안전한 곳이라면 주위에서 뭐라도 채집할 텐데…….”

“좋은 방법이 있어요. 제 체취를 묻혀 놓으면 웬만한 짐승들은 가까이 오지 않을 거예요. 로나 씨에게 위험할 짐승들은 제가 미리 사냥할 거고요.”

“어…….”

“제가 웬만한 짐승이나 괴수보다 상위종이라, 위협이 되거든요. 샌드위치 먹은 후에 해 드릴게요.”

로나는 순간 체취를 묻힌다는 말에 여러 가지 이미지가 지나갔지만 입을 다물었다.

설마 그런 사이도 아닌데 그렇고 그런 일로 체취를 묻히지는 않을 거고, 손목을 문지르나?

전생에 향수 뿌리는 방법이 생각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체취를 묻히는 건데요?”

“……잘?”

“뭐지. 불안해졌어.”

“에이- 저희가 무슨 사이인데.”

“주인님과 노예. 19금이면 발로 차 버린다.”

“아하하. 로나 변태. 그냥 목 좀 비빌 거예요.”

“……어디다가요?”

“주인님 목덜미에요. ……그렇게 질색한 얼굴 하지 말아 줄래요? 미남의 체취입니다, 미남의!”

로나가 질색하며 목덜미를 가리자 모나한이 상처받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손수건을 산 건가. 닦아야…….”

“귀여우라고 선물한 건데요.”

“전 이미 귀여워요.”

“아. 땋은 머리 통통거리면서 걸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산에선 무리입니다. 그건 평지에서만 펼쳐지는 거예요.”

모나한이 곤란하다는 듯 볼을 긁적거렸다.

“그게 제일 간단한 방법이에요. 로나 씨 말대로 19금 방법도 있지만…… 그쪽이 체취가 더 잘 남긴 하죠. 아예 제 냄새로 가득하게 만들어 드릴 수도 있어요. 원하신다면 여기서…….”

“야외플 취미는 없는 바람에. 목덜미 부비부비로 해 주세요.”

“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야하게 느껴진다.”

“네? 부비부비가요?”

“네. 부비부비가요.”

“변태.”

“원래 애인이 변태면 감사하면서 절해야 한다고 했어요.”

“애인 아닌데요.”

“그럴 예정이죠.”

“또 제가 모르는 예정이 나왔네요. 뻔뻔하게 웃을 건가요.”

모나한이 뻔뻔하게 웃었다.

그 얼굴에 로나가 뭐라고 하기 전에 둘은 공터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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