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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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처음부터 꼭 맞지는 않았다.

아무리 모나한이 눈치 빠르고, 행동도 빠른 뱀파이어라고 해도, 그 역시 빵집 종업원은 처음이었다.

뱀파이어의 욕구에 따라 그의 고아한 미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지금까지 했던 모든 직업들은 보통 저 위쪽에 있는 것들이었다.

귀족이나 화가, 아니면 음악가 같은 귀족 사회에 뛰어들 수 있는 것들.

종업원같이 남의 심부름을 하는 직업은 뱀파이어가 되기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일을 기억해 내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고.

모나한은 로나의 동선을 방해할 뻔했다가, 재빠르게 피한 후 애교 있게 웃었다.

로나는 그런 모나한의 웃음을 빤히 한번 보고는 부엌 안으로 사라졌다.

모나한은 그런 로나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깨를 한 번 으쓱하였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일에 자신이 방해가 되는 것은 분명했다.

‘처음이니까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린다’라는 배려는 갑자기 굴러온 돌이 바랄 게 아니라는 눈치도 있었고.

모나한은 가게 안쪽으로 사라져 버린 로나를 떠올리다가, 그녀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일주일 안에 이 모든 것에 익숙해질 자신이 있었다.

로나는 순식간에 자신에게 익숙해져서, 조금의 불편함도 없이 살아가리라.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그녀의 시간을 잠식해, 자신이 없으면 오히려 불편하게 만들 예정이었다.

“자요.”

“……이건?”

“빵집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써 왔어요. 1년, 한 달, 일주일, 하루 단위 일정이에요. 보통 이런 식으로 돌아가요.”

그리고 모나한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부엌으로 들어갔던 로나가 종이를 들고 돌아왔다.

“제 배려가 조금 부족했어요. 저도 종업원을 들이는 건 처음이라. 전 보통 계산대 주위에 있을 거고, 상점이 열려 있는 동안에는 모나한이 부엌에 들어올 일은 거의 없을 거예요.”

그 순간 모나한은 아직 로나에게 많은 경계심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경계심과 함께 느껴지는 배려도.

“반죽하는 건 힘을 많이 쓰는 일이라고 들었는데요. 제가 도와드리지 않아도 될까요.”

“괜찮아요. 그건 제 일이니까. 한평생 해 와서 익숙하기도 하고. 모나한이 할 일은 이 앞에 진열대와 티 테이블을 관리하는 거예요. 청결이 중요하니까.”

로나는 단호히 말하고는 아직 나오지 않은 빵이 있다며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모나한은 손에 남은 종이를 팔락거리며, 생각보다 쉽게 넘어오지 않겠다고 중얼거렸다.

그가 보기에 로나는 제 삶을 제 손으로 하나하나 일구어 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아주 익숙해져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려 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뭐, 천천히 하면 되지.

시간은 많았고, 그는 자신이 있었다.

그의 손에서 종이가 팔락팔락거리며 천천히 흔들렸고, 그 바람에 의해 모나한의 회색 앞머리가 살랑거렸다.

그 아래 있는 것은 음모가 가득한 뱀파이어의 얼굴이었다.

* * *

그러나 시간은 아주 온화하게 흘러갔다.

로나의 빵집은 고급스럽고 맛있는 디저트와 미남이 있는 가게로 조용히 소문이 뻗어 나갔다.

초반에는 하루 다섯 명도 차지 않았던 가게는 이제 사람들이 간식을 먹을 시간대에는 북적북적해지곤 했다.

로나의 시스템창의 업적이 <도시의 인기 많은 빵집>으로 바뀔 정도의 시간이었다.

시골에서 각 상경했을 때는 알림 소리와 함께, <인기 많은 빵집>이라는 업적이 사라지더니, 어느새 ‘도시의’라는 수식어와 함께 다시 생겼었다.

그만큼 로나와 모나한은 새로운 곳에 잘 적응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돈 많고 재주 많은 미혼녀>라는 업적도 어느새인가 사라진 후였다.

로나는 무엇보다 이게 사라진 게 아주 마음에 든다고 킬킬거렸다.

다들 모나한과 자신을 연인 사이라고 착각하는 게 어이없긴 했지만, 그건 다 모나한 때문이었다.

모나한이 ‘사장님과 연인 사이인가요?’라는 질문에 방긋 웃기만 했으니까.

그런 모나한의 은근슬쩍 다가가자는 계획은 생각보다 천천히 진행되었다.

그가 아주 오래 살아서 시간관념이 느리다기보다는, 모나한이 생각한 것과 다르게 평화로운 시간이 느릿하게 흘렀기 때문이었다.

모나한은 손님이 없어 잠깐 생긴 쉬는 시간에 테이블을 닦던 것을 멈추고 로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창에서 비쳐 오는 오후 햇살 아래서, 쇼케이스에 남은 케이크의 수를 세며, 케이크를 더 구워야 할 건지 고민하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 아래 달아오른 갈색 머리카락과 뺨에서 흐르는 피의 냄새가 모나한의 코끝을 훑고 지나갔다.

마수나 짐승, 이종족이나 사람들의 피부 아래 흐르는 피의 냄새는 때로 그에게 지독한 배고픔을 자아내곤 했다.

그러나, 그의 주인이자 작은 빵집의 주인인 여자에게선, 때론 햇빛과 같은 냄새가 나곤 했다.

태양 빛에 달아오른 나무나 막 구워진 밀 빵에서 나는 냄새가 섞여 피어오르는데, 가끔은 그게 로나의 향인지, 이 빵집의 향인지 구별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야말로 평화를 향으로 표현하면 이런 냄새인가 고민될 정도였다.

그녀의 옆에 있자면, 모든 욕구가 잔잔하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의 들끓었던 감정들과 한창 살육하고 다니던 시절에 들끓던 욕망들이 잔잔하고 느릿한 시간에 밀려 누워 버리곤 했다.

그는 오로지 욕망을 위해 태어난 괴물 중 하나였고, 아무리 오랜 시간을 살았다고 해도 그 욕망 앞에선 급하기 그지없는 성격을 드러내곤 했다.

그 성격대로라면 지금엔 이미, 그녀와 침대에서 뒹굴고, 사랑에 빠지게 하고, 욕망에 허덕이게 하여, 주인이란 이름을 가진 노예로 삼고도 남았을 것이다.

“모나한, 다 닦았나요?”

“네, 로나.”

“치즈케이크를 좀 더 만드는 게 좋을까요? 조금 부족할 것 같기도 하고…….”

“신경 쓰이시면 제가 카운터를 보고 있을게요. 남는 건 제 입으로 들어가면 되죠.”

“흠…… 집에 많이 먹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건 편하군요. 그럼 조금 바꿔서 만들어 볼까요? 크림의 양을 조금 조절해서…….”

로나는 중얼거리면서 가게 안의 부엌으로 사라졌다.

모나한은 들고 있던 행주를 정리하고 카운터에 있는 의자에 편하게 앉았다.

뒤에서 달그락거리며 무언가를 만드는 소리가 울리고, 이내 설탕과 치즈, 크림 같은 것들의 냄새가 모나한의 예민한 코에 흘러들었다.

모나한은 곧 그 개별적인 냄새가 그녀의 손안에서 섞여 황홀한 냄새로 탈바꿈할 거란 걸 예상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평범하고 익숙하게 만들 수도 있을 텐데, 그녀는 자신이 먹을 걸 배려해서 평소보다 조금 더 수고를 들일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의 생애 별로 받아 보지 못한 작은 배려였다.

그가 아주 어릴 적을 뺀다면, 그는 언제나 가장 위에서 군림하는 자였다.

욕구와 욕망을 목줄로 쥐고,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굴복시키고, 유혹하고, 망가트리면서.

결국엔 그 모든 걸 스러잡아 먹어 치워 버리면서.

로나가 말했던 마족이나 마수와 그리 다르지 않을 존재일지도 모르지.

그런 삶에서 저런 작은 배려가 존재했던 적은 언제였던가.

모나한은 등 뒤의 소리를 음악처럼 즐기며 조용히 턱을 괴고 감상했다.

그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도 아닌.

그저 같이 사는 동거인을 위한, 보답을 바라지 않아 더욱 따뜻한 작은 배려.

평화와 평온이 거기에 흐르고 있었다.

그가 모든 삶에 지쳐 동굴 속에서 기나긴 잠을 자던 때에도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이 작고 아늑한 공간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흘러넘쳐서 그까지 적셔 버리곤 했다.

모나한은 지금까지 자신을 지배했거나, 자신에게 지배받았던 이들에게 했던 모든 계획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소리치는 걸 들었다.

그녀를 욕망에 빠트려. 그녀를 유혹해. 그녀를 사랑에 빠지게 해. 그래서 너를 갈구하게 해. 전부 먹어 치울 수 있도록.

그리고 등 뒤에서 열기가 느껴지고, 따뜻한 공기와 함께, 달아오른 밀가루, 설탕, 버터와 치즈가 구워지는 냄새가 풍겼을 때.

모나한은 그 소리가 조용히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이거 구워지면 서로 한 조각씩 먹읍시다.”

“팔아야 하는 것 아니었나요?”

“막 만든 따뜻한 치즈케이크라고요. 먹지 않으면 인생의 손해야.”

잠깐의 작고 당찬 발소리가 들리고 로나가 카운터에 옆으로 기댄 채 밝게 말했다.

땋은 머리카락이 어깨에서 흘러 흔들거렸다.

휘어진 눈가가 안온하게 반짝였다.

“두 조각쯤 먹었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내가 사장인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웃다가 다시 부엌으로 사라졌다.

모나한은 빵집 안을 채운 구워지는 치즈케이크 냄새 사이로 햇살의 향을 찾으려다가 말았다.

“뒷정리 좀 도와줄래요?”

“물론이죠.”

그는 카운터에 남아 있는 온기를 손끝으로 잠시 훑다가 가게 안쪽으로 걸어갔다.

너무나 평화롭고 평온해서 도저히 망가트릴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 * *

그 안온한 시간은 로나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시골 마을에서 나온 보람이 있게, 경험치와 빵 코인은 차곡차곡 쌓였다.

한식과 관련된 새로운 재료들은 나오지 않았지만, 색다른 재료와 색다른 레시피들이 하나하나 나와서 보람차고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빵집은 잘되고 있었고, 생전 처음으로 생긴 그녀의 파트너 모나한은 생각한 것보다 괜찮은 ―사실은 아주 좋은― 파트너였다.

그가 자신에게 위험한 흑심이 있었던 것처럼 행동했던 것과 달리, 막상 가게 일이 시작되고 시간이 지났지만 그런 모습을 더 보이진 않고 있었다.

가끔 장난식으로 유혹할 때가 있었지만, 그건 정말 장난인 점이 보일 정도였다.

그는 체력 좋고 힘세며 미각도 예민한 훌륭한 직원이었고, 얼굴의 잘생김으로 눈을 정화해 주고, 손님을 끌어모은다는 점은 훌륭한 가산점이었다.

거기다가 커다란 위장으로 남은 빵들을 먹어 치워서, 괜한 음식물 쓰레기를 안 생기도록 만드는 훌륭한 처리업자였고.

더 훌륭한 점은 손님들이 모나한의 잘생김에 가게에 들어왔다가, 왠지 잘 느껴지지 않는 그의 기척에 고개를 갸웃하고, 훌륭한 빵에 눈이 돌아가 쇼핑만 하고 나간다는 점이었다.

그는 손님이 있으면 기척을 훅 죽여서, 능숙하게 자신보다 빵에 관심이 가도록 유도했다.

로나는 순식간에 그와 생활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하루하루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생활은 생각한 것보다 평화롭게 흘렀다.

그러니까, 일요일의 따뜻한 초여름 햇살과 함께 파스텔 색조의 분홍색 머리카락과 하늘색 눈동자를 가진, 몽실몽실하고 동글동글한 여학생이 발랄하게 가게 안에 들어오기 전까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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