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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나한의 이야기를 해 보는 건 어때요?”
“제 이야기요?”
“뭐…… 과거나 이런 거까진 아니더라도, 뱀파이어의 이러쿵저러쿵? 제가 아는 거랑 많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모나한이 여기서 좋은 냄새가 난다며 안내한 음식점의 식탁에 앉아 로나가 물었다.
“로나 님은 뱀파이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음…… 인간을 유혹해서 피를 빨아먹는 괴물? 자신의 고향에서 가져온 흙이 담긴 관 안에서 잠자고 은으로 만든 무기로 심장을 찔러야 죽는다? 박쥐로 변신할 수 있고, 햇빛을 받으면 약해지거나 죽고, 뱀파이어의 피를 주입하면 같이 뱀파이어가 된다! 이런 느낌?”
“……무슨 괴수를 하나 만드시네요. 음……. 기원부터 설명하자면, 딱히 마족이나 마수는 아닙니다. 가깝기는 합니다만…… 정확히는 이인종에 더 가깝죠. 이인종을 나누는 방법을 알고 계시죠?”
“어…… 아뇨.”
뭐, 평민들이 알 필요는 없는 정보이긴 하죠.
모나한은 그렇게 말하며 종업원이 가져다준 메뉴판을 그녀를 향해 밀어 주었다.
로나가 음식을 고르자, 모나한은 자연스럽게 주문하고 말을 이었다.
“간단하게 하자면…… 인간과 아이를 만들 수 있냐, 없느냐로 나눕니다. 엘프, 드워프, 수인족, 오크……. 인간과 전혀 닮지 않은 리자드맨들도 이인종에 들어요. 아이가 생기거든요.”
그건 무슨 옛날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라, 로나는 모나한의 이야기에 흠뻑 집중했다.
목소리도 좋고, 입술도 잘생겼고, 얼굴도 미남이니, 아주 집중이 잘됐다.
“뱀파이어와 인간 사이에도 아이가 생기니, 이인종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파고들면 이인종에 가까울 뿐이지 이인종은 아닙니다. 정확히 하면 저희는 키메라거든요.”
그 말에 로나가 그가 처음 자신의 빵을 먹었을 때 떴던 업적을 떠올렸다.
“멸망한 마도 시대 때, 커다란 전쟁이 있었고, 그때 마녀들이 전쟁 무기로 발명한 생물체 중 하나입니다. 마녀는 인간에서 좀 벗어난 존재이긴 하지만, 어쨌든 ‘인간’이고, 그들을 기본으로 여러 가지가 섞여 만들어진 게 저희죠. 그렇게 만들어진 키메라들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만, 이인종과 가장 큰 차이점은 키메라는 다들 혀가 맛이 갔어요.”
“네?”
“저 같은 경우에는 세상의 모든 피를 보통의 피 맛으로 느낄 수 없습니다. 피마다 다릅니다만 제가 먹어 본 음식 맛으로 느껴지죠.”
“아하. 그래서 맛있는 음식에 집착하는군요.”
로나의 집착이란 말에 모나한이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한 웃음을 살짝 흘리고는 말을 이었다.
“집착이라……. 맞아요. 이건 집착이죠. 지독한 점은 제가 먹어 본 것 중 가장 맛있었던 게 구운 고기라면, 아무리 건강하고 좋은 피를 마셔도 구운 고기 맛까지가 끝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키메라들은 전부 미식가들이에요.”
“그럼 모나한은 여러 가지 피 맛을 느끼겠네요.”
“뭐. 그렇죠. 하지만 로나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만 유혹해서 먹는 건 아니에요. 종족마다 맛이 다릅니다. 인간은 좀 단맛이죠.”
“단맛?”
“인간들도 건강 상태와 강함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보통 평민들은 싸구려 단맛이 납니다. 맛있다고 하기 좀 그렇죠. 그에 반해 귀족이나 기사 정도 되면 고급스러운 단맛이 나죠. 다만 상류층에 속하는 이들인 만큼 정체를 들키고 신전에 쫓기기 쉽습니다.”
어느새 시켰던 스테이크가 나오고, 로나가 스테이크를 썰기도 전에 모나한이 그녀의 접시를 가져갔다.
그는 자연스럽게 칼을 들고 스테이크를 딱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그에 반해 괴수들 종류는 뭐랄까…… 식사류에 가까운 맛이죠. 스테이크나 랍스타 같은? 어차피 맛을 느끼는 것은 피를 마시나 요리를 먹나 똑같으니, 식사는 괴수들의 피를 마시고, 디저트류는 그냥 인간들의 디저트를 사 먹는 게 편합니다.”
모나한은 로나에게 스테이크 접시를 다시 넘겨주고는, 자신의 접시의 스테이크를 썰며 말을 이었다.
“은으로 만든 무기는…… 실제로 효용이 있습니다. 약점은 인간과 똑같지만, 일반 무기론 별 데미지가 없고, 은이나 신성력이 담긴 무기는 데미지 크죠. 그 때문에 마족이나 마수들로 오해받기도 합니다만…… 아마 만들어질 때 기본적으로 마녀의 피가 들어가서 그럴 겁니다.”
“마녀?”
“그들은 신성력에 상극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반대편에 가까운 힘이라…… 뭐, 그들의 피가 섞인 키메라들도 피해를 입죠. 또 뭐가 있었죠? 박쥐? 실제로 패밀리어로 만들 때 박쥐가 가장 쉽습니다. 뱀파이어를 만들 때 주로 들어간 종류가 박쥐에서 파생된 마수들이거든요. 다만 변신은 못 합니다. 햇빛은…….”
모나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증명하듯이 손을 햇빛에 슬쩍 비추었다.
“보다시피 괜찮습니다. 약해지긴 합니다만, 죽진 않습니다. 약해지기보다는 좀 나른한 느낌에 가깝죠. 그냥 야행성이라서 그래요. 그리고 제 피로는 같은 뱀파이어로 만드는 건…… 제 몸 안의 뱀파이어의 피를 나눠 주는 느낌이라 제가 약해집니다. 사실 남을 뱀파이어로 만드는 것은 상당히 손해 보는 일이에요. 순식간에 힘이 반쯤 줄어듭니다. 그래서 다들 안 해요.”
“뭔가 많이 다르네요.”
전생에서 들었던 뱀파이어 이야기와도 다르고, 마법사가 아니라 마녀도 있었다니.
로나는 새삼 여기가 판타지 세계라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뭐. 마도 시대 때 많았던 종족이고 지금은 몇 명 남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키메라 중에는 무리를 만드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뱀파이어들은 무리 짓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서로 연락하는 일도 적고, 만나도 인사만 하고 그냥 모른 척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같은 종족끼리 안 친해요?”
“글쎄요…… 딱히? 애초에 같은 종족이란 느낌이 별로 없습니다. 개별적으로 만들어진 키메라들이고,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도 아니니 가족이란 느낌도 적고…… 음…….”
“친구의 친구 느낌?”
“네, 그 정도. 얼굴만 아는 이웃?”
식사 내내 모나한은 자연스럽게 로나의 시중을 들었다.
눈치 빠르게 로나가 목이 막히면 물을 가져다주고, 싱겁다고 생각하면 조미료를, 입술을 닦아야겠다고 생각하면 닦을 것을 내미는 섬세함.
로나는 이런 것에 익숙해지면 살기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 잠시 생각했다가, 어차피 죽을 때까지 모나한이 옆에 있을 거란 걸 깨달으며 그냥 그의 시중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새삼 그의 말을 들으니, 자신의 제빵 실력 때문이라도 그가 꼭 옆에 붙어 있을 것이 뻔했다.
“이제 제가 로나 님을 절대 배신하지 않을 이유를 아시겠지요? 저를 전적으로 믿어도 되는 이유도요. 전 로나 님이 그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동안 절대적으로 당신의 편이자, 당신의 충실한 종복이랍니다.”
모나한이 로나의 생각을 눈치채곤 눈을 야살스럽게 휘며 말했다.
새빨간 입가가 스테이크의 기름인지, 혀가 지나간 자리인지 번들거리며 빛났다.
“그러니 이제 저를 친근하게 대하시는 게 어떠신가요?”
자신이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라는 듯 방긋방긋 웃는 얼굴을 보며, 로나는 자신이 저 표정에 약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애초에! 너무 잘생겼다고!
“뭐…… 그래요. 그러지 뭐. 앞으로 마구마구 부려 먹어 주마.”
“제가 원하는 바입니다, 주인님.”
로나는 한숨 쉬었고, 모나한은 고개를 살짝 틀며 예쁘게 웃었다.
* * *
로나와 모나한은 가게를 청소하고, 새로운 가구를 사 넣으며 상점을 어떻게 꾸려 나갈지 이야기했다.
학원 도시인만큼 인구가 가장 많이 몰리는 요일은 주말이었고, 그에 따라서 로나와 모나한은 예전과 같이 월요일과 화요일을 휴일로 하기로 했다.
월요일에는 같이 쉬며 특별한 디저트를 먹고, 화요일은 완전히 휴일인 걸로.
“화요일은 잠깐 도시 밖에서 사냥하고 와도 될까요?”
“사람 먹는 거 아니죠?”
“괴수나 짐승 먹을 거예요. 디저트는 주인님이 만드는 게 제일 맛있는걸요?”
로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작은 잡동사니들을 규칙적으로 진열했다.
마지막으로 가게가 잘 정리됐는지 주위를 둘러본 로나는 만족스럽게 웃었었다.
“전 가게보다 좁긴 하지만…… 아늑한 분위기가 좋네요.”
“전 가게도 상당히 아늑했지만 좀 더 귀여운 장식이 많았었죠.”
“어떻게든 디저트를 팔아 보려는 몸부림이었죠. 귀엽고 달콤한 걸 좋아하는 아가씨들을 모아 보자! 이런 느낌? 거긴 모든 마을 사람들을 손님으로 맞아야 했으니까, 디저트도 있다고 광고해야 했거든요.”
그래도 디저트류는 잘 안 팔렸지만…….
빵집은 갈색과 흰색을 베이스로 진한 노란색을 포인트로 둔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옷도 맞출 거예요. 당신은 새까만 셔츠, 조끼, 바지, 구두를 신고 포인트로 넥타이랑 허리 앞치마만 진한 노랑. 난 하얀 셔츠, 까만 바지, 구두. 진한 노란색 리본이랑 앞치마 입을 거구요.”
“……그냥 평범한 옷이 아니라요?”
“네. 여기 보면, 티 테이블도 뒀잖아요?”
로나가 갈색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물론 빵을 그냥 사 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여기서 분위기를 즐기면서 디저트와 차를 마시게 할 거란 말이죠.”
“아. 그래서.”
“저는 빵이랑 차 만들고, 모나한은 서빙. 그 잘생긴 얼굴은 완벽하게 활용하는 방법이죠.”
잘생긴 얼굴을 써라, 미남!
“저는 서빙만 하는 겁니까?”
“문을 연 동안에는? 아침하고 저녁에 빵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모나한도 도와야죠. 빵을 만드는 건 제가 할 거지만, 잡다한 일 정도는. 그대, 힘도 체력도 강하시겠죠?”
“여기서 약하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언젠가 누군가가 힘도 세서 절대 지치지 않는다고 했던 거 같은데?”
“침대에서 말하는 거였는데요?”
“침대에서만 강한가 보죠?”
“물론 다른 곳에서도 강하죠.”
모나한이 싱긋 웃었다.
“침대에서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힘세고 지치지 않습니다.”
그리 말하면서 은근슬쩍 거리를 좁히는 게 저거 분명 음담패설이다.
선홍색 눈동자를 야살스럽게 반짝이며 말하는 게, 상당히 야하고 퇴폐적이다.
역시 잘생기면 음담패설도 달콤해진다니까.
“네에. 그걸 다른 곳에 보여 주도록 하십시오.”
유혹적인 모나한을 로나가 뚱한 얼굴로 보며 말했다.
저런거에 넘어가면 내가 아니지.
애초에 꿍꿍히가 빤히 보여서 넘어가 주고 싶지도 않다.
“……주인님 나이면 성욕이 활발할 때 아닙니까?”
그런 로나의 뚱한 얼굴을 보며 모나한이 실망했다는 얼굴로 말했다.
“모나한, 저랑 하고 싶어요?”
“예쁨받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밤일이죠.”
“그걸 그렇게 대놓고 말하냐?”
“물론 주인님께서 이런 점에 부끄러워하거나, 두근거리는 분이시면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겠습니다만…… 오히려 솔직한 것에 더 점수를 주시는 성격인 듯해서요. 맞나요?”
“……맞아요. 솔직한 게 오히려 나아.”
“그렇죠?”
모나한이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로나는 그 모습을 빤히 보다가 눈을 돌렸다.
“그래도 필요 없어요.”
“흠.”
“모나한이랑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고 싶지 않아요. 우리 건조한 관계를 유지하자구요.”
모나한은 아직도 로나의 경계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챘고, “원하신다면.”이라고 중얼거린 후 로나와 거리를 벌렸다.
경계심이 높은 여성에겐 어필하면서 들이대 봤자 더욱 경계심만 살 뿐이다.
그리고 모나한은 그 거리를 조정할 자신이 있었다.
그는 가랑비처럼 천천히 다가가 결국엔 전부 집어삼킬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