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 선홍색 눈동자는 이제 자신이 가진 의문을 풀어 달라는 요구가 들어 있었다.
“그 걱정은 할 필요 없어요. 방법이 있으니까.”
“주인님께서 시골에서 구하기 힘든 재료를 쉽게 구하시던 이유가 바로 그 방법이신가 보죠?”
로나는 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로나는 틸레아까지 오는 마차에서 모나한과 계약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대화를 통해 모나한은 로나가 죽을 때까지 그녀를 배신할 수도, 피해를 입힐 수도 없는 계약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로나는 그에게 너무 불리한 조약이 아니냐 물었을 때, 모나한은 ‘평범한 시골 소녀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과 제가 생각하는 최악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아십니까? 걱정 마세요, 로나.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나쁜 짓을 저에게 해도, 당신의 디저트만 먹을 수 있다면 저에게는 이득이니까’라고 했고, 로나는 그때부터 그냥 그를 걱정하는 것을 관두기로 했다.
괜히 집요한 미식가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 약 50년에 가까운 세월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굴었다.
로나는 전생에 영화나 소설에서 보아 왔던 최악의 일들을 잠시 생각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딱히 모나한과 나쁜 감정을 쌓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와 적당히 친하게 지내며, 한평생 서로 적당히 이용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녀는 그냥 쓰기 좋고 믿을 수 있는 노예 하나 들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로나는 자신이 평생 감추려 했던 자신의 시스템을 공유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계속 옆에 있을 그에게까지 시스템을 비밀로 하는 것은 너무 귀찮고 힘든 일이었다.
“여기로 할게요. 다만, 값은 좀 조정해야겠죠?”
“이 금액도 충분히 싼 금액입니다!”
“아니죠. 사람이 그만큼 죽었다면, 당연히 장사에 타격이 있을 테니 더 싸야죠. 거기다가 절 속인 대가가 있어야 할 테고요.”
“그…… 그건…… 하아. 알겠습니다. 금액을 좀 더 조정해 보도록 하죠.”
중개인을 결국, 금액을 더욱 깎아 건물을 넘겼다.
그는 더 버텨 볼까 고민도 했었지만, 로나를 소개받은 상인과 사이가 좋기도 했고, 그 상인에게 로나가 얼마나 실력 좋은 제빵사인지 귀가 닳도록 듣기도 해서 실랑이를 멈추기로 했다.
게다가 건물들을 돌아보며 로나가 간식이라고 건네준 쿠키를 맛보며 그 실력을 직접 알게 되기도 했고 말이다.
“다른 손님들 같으면 이 가격에 안 드립니다만, 솔직히 로나 씨 실력이면 그 쿠키만 팔아도 먹고 살겠더군요.”
“당연하죠. 절대 실패할 실력은 아니랍니다.”
“예. 앞으로 단골 빵집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가격을 깎아드려야 할 정도이니…… 계약하신다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여기서 저희 집이 가깝기도 하거든요.”
“가게 열면 서비스라도 드려야겠네요. 제가 듣기론 식사류 빵보다는 디저트 종류의 빵을 아주 좋아하신다고.”
“주말마다 고급 디저트를 맛보러 다니는 것은 제 인생의 낙이죠.”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제가 잘 만드는 건 사실 식사류보단 디저트 종류거든요.”
“오, 정말입니까?”
“빵집을 열 때도 식사류는 최소한으로 하고 디저트 종류를 여러 가지 만들 거예요. 소량씩 다양한 고품질 디저트가 목표거든요.”
“이런…… 정말 단골 빵집이 하나 생기게 되겠네요.”
“맛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사냥꾼을 관두고 빵집 점원으로 취직하는 이유도 그녀의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거든요.”
로나와 중개인이 떠드는 말에 슬쩍 끼어든 모나한이 그리 말하자, 중개인이 얼굴을 더더욱 밝혔다.
“사냥꾼이셨습니까? 그럼 더더욱 걱정할 필요 없겠군요! 사실 시골에서 젊은 두 분이 올라와 장사한다니 걱정되었는데, 사냥꾼이셨다니……. 건달들은 상대도 안 되겠군요.”
“그분들이 괴수들보다 강하다면, 문제가 생기겠습니다만…….”
“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기껏해야 힘없는 거지들이나 협박해 가며 사는 놈들입니다. 괴수를 보면 오줌 싸며 줄행랑치겠죠.”
중개인은 안심된다는 듯이 몇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로나에게 매매 계약서를 내밀었다.
로나가 대금을 건네자 마법 도장으로 계약을 마친 중개인이 기대하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떠나갔다.
“며칠 동안은 여관과 여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청소하고 가구 좀 사야겠네요.”
“절약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좀 더 좋은 가구로 살 수 있겠어요.”
“……재료는 필요 없으신 거고요?”
모나한은 다시 한번 재료를 언급하며, 비밀을 말해 달라고 돌려 물었다.
로나는 그런 모나한의 물음을 눈치채고는 고민하다가 창틀에 걸터앉으며 창문을 열었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창틀의 먼지가 비상했다.
밖에서 흘러드는 햇빛에 비상한 먼지들이 반짝이다가 가라앉았다.
그 아래에서 로나가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입을 열었다.
“딱히 세상을 바꾼다거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그런 대단한 힘은 아니에요.”
그녀는 이렇게 거창하게 말할 것은 아니라는 듯이, 볼을 긁적였다.
“그냥 빵을 만드는 데 쓸모 있는? 그런 힘이에요.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모나한은 기다리겠다는 듯 햇빛이 비치지 않는 쪽 기둥에 등을 기댔다.
날았던 먼지가 가라앉은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로나가 나무 바닥에 찍힌 자신의 먼지 묻은 신발 자국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전생을 기억해요. 전생에 내가 살던 곳은 이곳보다 상당히 발전된 곳이었죠.”
모나한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황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거나, 아니면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인구수부터 엄청난 차이가 났죠? 80억이었던가? 그만큼 많은 것이 달랐어요. 문화, 주거 환경, 교통, 무기, 음악…… 뭐 많은 것들이 발전한 곳이었죠.”
로나는 왠지 멍한 기분으로 발을 동당거렸다.
그녀의 발장난에 맞추어 먼지들이 일어났다가 가라앉았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풍경들이다.
별조차 잘 보이지 않았던 밝은 밤은 없다.
온 거리에서 흘렀던 음악은 들리지도 않고, 버튼 하나로 밝아졌던 방들은 거짓말 같아졌다.
겨울에 일어나 벽난로에 불을 지피는 것과 빗자루로 먼지를 쓰는 것, 세탁물을 발로 밟는 것들은 익숙해진 지 오래였고, 볏짚 냄새가 가득한 거친 침대와 몇 년이고 계속해서 입어야 하는 옷들은 이미 포기해 버린 것들이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나, 아빠의 농담, 엄마의 잔소리 같은 것들은 이미 다른 것들로 뒤덮여 버렸고, 시간의 잔인함과 망각의 축복에 감사했던 것들은 지난 모든 밤들이었다.
그러나 때때로, 숟가락으로 떠먹는 수프나, 접시에 올라와 있던 빵을 씹을 때에 문득, 이질감이 지독히도 올라오곤 했다.
이 맛이 아니고, 이 향이 아니라고.
이 식감이 아니고, 결국엔 이 음식이 아니라고.
몸은 새로운 삶에 익숙해진 지 오래인데도, 혀는 익숙해지지 않았다고 소리치곤 했다.
가끔은 미친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놈의 식욕이라고 중얼거리기도 했고, 전생을 기억한다는 것에 성질도 부려 보았다.
맛이란 건 정말로 이상한 것이라, 순간순간 사무치게 그립게 하곤 했던 것이다.
능력이 없었다면, 결국엔 그 맛을 찾아서 미친 듯이 돌아다녔을지도 모른다.
전생에 보았던 판타지나 로판 속에서 주인공들이 그렇게 전생의 음식을 찾아 헤맨 것들이 이해되었다.
“무엇보다도 음식이 완전히 달랐어요. 땅의 반대편에 있는 음식 재료도 며칠 만에 얻을 수 있는 세상이었고, 음식 보존에 관한 것은 점점 더 기술이 발전하곤 했죠. 더 맛있는 음식에 관한 인간의 욕심은 얼마나 위대한지.”
로나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전생의 보들보들했던 손은 사라졌다.
하루 종일 반죽을 해서 거친 손.
근육으로 탄탄한 팔과 청결을 위해 언제나 짧은 손톱.
“태어날 때부터 능력이 있었어요. 전생의 그 음식 중 제과 제빵에 관련된 능력. 빵을 만들 수 있는 레시피와 전생에 있었던 재료들을 구할 수 있는 상점 창.”
로나가 드디어 고개를 들어 모나한을 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그의 생각을 추측하려는 표정도, 무언가를 가늠하려는 표정도 아니었다.
“한때는 이 세계에서 귀한 재료들을 사서 장사를 해 볼 생각도 했지만…… 그건 안 된다고 쓰여 있더라고요. 그저 빵을 만들거나 요리를 하는 데에만 사용할 수 있었죠. 아주 평화롭죠?”
그녀는 어깨를 한번 으쓱 흔들었다.
“누군가에게 만든 빵을 먹이면, 경험치와 코인을 얻어요. 그걸로 새로운 레시피를 열고, 코인으로 새로운 재료를 사는 거죠. 많은 사람에게 먹일수록, 혀가 예민한 사람에게 먹일수록 더 많은 경험치와 코인을 얻죠. 네, 맞아요. 모나한에게 고급 디저트를 먹였던 것도, 인구수가 많은 이 학원 도시로 온 것도 모두 더 많은 레시피와 더 많은 코인을 얻기 위해서예요.”
혀가 예민한 사람이 자신임을 눈치챈 듯 모나한이 자신을 가리키자 로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원래는 대충 먹고 살 정도만 만들 생각이었지만…… 맛이란 건 지독해서 전생에 먹었던 요리 재료들이 나오니까 눈이 뒤집히더라고요. 그때 먹었던 음식들이 먹고 싶어졌어요. 사실 전생의 주식은 빵이 아니었거든요.”
로나는 그렇게 말하고선 창가에서 내려와 섰다.
“앞으로는 계속해서 새로운 빵들을 많이 만들어 볼 거고, 제가 아는 가장 예민한 미각을 가진 모나한은 그걸 전부 맛보게 될 예정이에요.”
그녀는 그게 너에게 중요한 게 아니냐는 눈으로 쳐다보았고, 모나한이 대답하기도 전에 문가에 다다랐다.
그녀가 천천히 문을 열자, 아직 밝은 오후의 햇살이 창문뿐만 아니라 열린 문 틈 사이로도 쏟아져 내렸다.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가 볼까요? 제 이야기는 다 끝난 것 같은데.”
로나는 나머지는 알아서 생각하라며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모나한은 로나의 생각지도 못한 능력에 질문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멍하니 그녀의 뒤를 따랐다.
한 번에 몰려온 정보를 뇌가 채 정리하지도 못했는데, 그녀는 그의 생각은 전혀 관심 없이 배고프단 말만 중얼거렸다.
로나의 그림자 옆으로 햇빛은 따듯한 노란색으로 반짝였고, 나무로 만들어진 벽은 햇빛에 달아오른 향기를 물씬 내뿜었다.
모나한은 문득 평화와 평온을 표현한다면 저런 색이고, 저런 향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로나와 그녀의 힘이 그것들과 닮았다는 것도.
“그것참…… 평화로운 힘이네요.”
모나한이 그렇게 말했을 때, 로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든다는 듯 그를 돌아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말했잖아요. 딱히 대단한 힘은 아니라고.”
“저에겐 충분히 대단합니다만.”
그런가? 로나가 중얼거리던 순간 모나한이 어느새 그녀를 따라잡아 옆에 나란히 서서 웃었다.
“배고프시다 하셨죠? 제 혀만큼 코도 예민하답니다. 맛있는 음식점을 잘 찾는다는 말이죠.”
“오. 그럼 기대해 봐도 된다는 거겠죠?”
“당신의 요리 실력을 따라갈 수 있을진 고민됩니다만…….”
“제 빵을 맛본 거죠, 다른 음식은 아니지 않나요?”
“그것 말인데, 로나 님이 다른 음식도 만드신다면, 그것도 먹게 해 주시는 거겠죠?”
모나한은 그녀의 특이한 능력이나 전생이 있다는 사실보다는 그녀가 만드는 음식에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굴었다.
네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은 그저 너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일 뿐인 것처럼.
“빵만큼 잘 만들 자신은 없는데……?”
“어쨌든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새로운 맛이겠죠?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매운 거 잘 먹나요?”
“흠, 어느 정도는?”
“좋아요. 만들게 되면, 같이 먹죠. 식사는 같이하는 게 즐거우니까.”
로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졌다는 듯이 웃었다.
모나한은 그 웃음과 함께 그녀의 살짝 굳어 있던 어깨가 풀리는 것을 눈치챘다.
그의 눈치대로 로나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다.
가족에게도 알릴 수 없었던 비밀을 털어놓는 순간.
평화로운 능력이라고 했지만, 능력을 벗어나 전생이라는 정보는 이용해 먹기 좋다는 것과 아예 믿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로나는 조금 긴장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녀는 통보식으로 뱉어 버렸다.
그러나 모나한은 그녀의 전생에 관해서는 조금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음식뿐이라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녀가 바랐던 대로.
앞장서서 식당 거리를 안내하는 모나한을 따라가며 로나는 스쳐 지나가듯이 생각했다.
그가 만약 자신의 전생까지 이용한다고 해도, 자신이 죽은 후였으면 좋겠다고.
그 모든 것을 믿지 않았다고 해도,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믿는 것처럼 굴기만 해도 좋다고.
전생을 기억하는 ‘로나’로도, 오로지 이 세계에 속한 ‘로나’로도 살 수 없었던 그녀는, 아무도 없는 텅 빈 가게에 혼자 남았을 때, 멍하니 방황하고는 했다.
따듯한 색감으로 가득한 풍경임에도, 그녀의 영혼은 이질감을 가지고 부유하여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는 느낌.
그러나 지금 그녀는, 자신을 안내하는 모나한의 뒷모습과 장난치듯이 섞여 오는 말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생애 처음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온전히 땅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