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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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는 베이지색 나무 밀대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진상 전용으로 특히 무겁고 크게 만든 거라서 이걸로 때리면 한 방에 사람을 작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저한테 뭔가를 하시려 한 것 같은데요. 새장 속의 새 같은 개소리를 하면서 말이죠.”

“어, 음…… 그, 그건 좀 내려놓고…….”

“예술가는 어쩌구, 자유로운 새는 저쩌구 하는 개소리를 한 거 같은데, 머리에 문제가 있어 보여요.”

“아뇨, 제 머리는 완전히 멀쩡합니다.”

“아뇨. 뇌에 문제가 있어 보여요, 모나한. 안경 염병할, 쾌락 지랄랄, 종복 씨발?”

방금과 반대로 이번엔 로나가 화창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손에 든 밀대가 햇빛을 받아 따듯한 색으로 빛나고 그 밀대의 그림자 아래서 그녀의 갈색 눈동자가 빡침으로 번뜩였다.

모나한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손톱을 빼서 그녀를 공격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녀를 상처입힐 시 자신이 다시는 그녀의 빵을 먹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미 그는 로나의 손맛에 중독된 지 오래였다.

모나한은 로나가 밀대를 들고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보며 진지하게 생각했다.

자신의 종복으로 만드는 저주가 걸리지 않았으니, 그녀를 자신에게 묶어 놓을 방법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부모님이나 가족들을 감금해 협박할 생각이나, 그녀를 납치해 협박할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 아래에서 그녀가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물론 공포 아래 이루어지는 일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아래서 사라지는 것들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새로움이나 번뜩이는 재치, 개성 같은 것들은 억압하고 부러뜨릴수록 없어지는 것들이다.

그래서 모나한은 몇백 년 전부터 절대로 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말을 입에 담았다.

“저를 종복으로 삼으실 생각 없으십니까!?”

“……네?”

회색 머리 사내가 선홍색 눈에 믿음 가득한 표정을 하고 가슴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방금 주문 때문에 눈치채셨겠지만, 전 인간이 아닙니다. 뱀파이어죠.”

와아아. 퇴폐미가 흐르는 성직자 같은 남자가 뱀파이어였구나아아. 와아아아.

로나가 가증스러운 작자를 본다는 싸늘한 눈으로 모나한을 바라보았다.

살짝 올라간 턱 끝이 그야말로 경멸의 눈초리였다.

모나한은 그 싸늘한 시선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하고 신실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제 진명을 알게 되면, 저를 마음껏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전 절대 당신을 배신하지 못하고, 당신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게 되죠.”

“헤에-”

“당신에게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절대 배신하지 않고, 당신의 명령이라면 뭐든지 도우며, 힘도 세고, 똑똑하고, 잘생긴 노예!”

“헤에에-”

“심지어 싸움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제 종족 특성상 남에게 호감도 잘 얻습니다! 오래 산 만큼 알고 있는 것도 많은 여기저기 쓰기 좋은 노예!”

뭔가 길거리 노점상에서 싸다 싸! 노래를 부르는 아저씨 같아진 모나한이 한 번만 믿어 보라는 표정을 했다.

로나는 왠지 그의 뒤로 bgm이 흐르는 듯하다고 생각했다.

한 번만 믿어 봐아- 오빠 한번 믿어 봐아-.

“심지어 저 밤일도 잘한답니다! 많은 로맨스 소설이나 공포 소설에서 증명된 사실이죠! 관능적이고 황홀한, 절대 지치지 않으며, 끝없는 쾌락을 선보이는-!”

이번엔 성인용 장난감을 파는 듯한 소리에 로나가 오히려 뭔 소리 하냐는 썩은 표정을 하자, 은근슬쩍 야살스러운 얼굴을 하던 모나한이 다시 믿음직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물론 원하지 않으시다면, 그 기능은 사용할 필요가 없으십니다!”

앗, 진짜 성인 용품 파는 노점 상인 같아졌다.

로나는 방긋방긋, 믿음직하면서도 순수한 표정을 하는 모나한의 잘생긴 얼굴을 보면서 지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에서 승낙할까 하는 고민을 읽은 모나한은 더욱 깔끔하고 믿음직하게 입꼬리를 올릴 뿐이었다.

얇은 입술이 씨익 찢어져 아주 잘생긴 호선을 지었다.

로나는 이젠 완벽히 재수 없게 느껴지는 웃음을 보다가 대놓고 한숨을 푹 쉬고는 밀대를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앗! 저를 종복으로 삼아 주시는 겁니까?”

“아, 네, 뭐.”

“감사합니다, 주인님!”

“예, 뭐. 유용할 것 같고, 뭐. 손님도 많이 꼬일 것 같고……. 뭐.”

안 그래도 슬슬 빵집을 혼자 운영하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비밀을 숨기는 일도 버거워지고 있었고, 도시로 가게 된다면 더 힘들게 분명했다.

시골에서 사는 지금도 제빵 레시피를 은근슬쩍 물어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커다란 도시로 가게 되면 더욱 심하겠지.

지식 재산이 지켜지지 않는 이 시대에서 로나의 상태창에 들어 있는 레시피는 얻기 아주 쉬운 보물이었다.

하지만 딱 보니 사냥꾼이라고 할 만큼 강해 보이기도 하고, 이상한 주문까지 할 수 있는 데다가, 배신도 절대 못 하는 노예라.

이것저것 떨떠름하지만 쓸 만하겠지라는 표정을 한 로나가 손을 휙휙 흔들었다.

눈치 빠르게 그 손짓을 해석한 모나한이 활짝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 진명은 ‘모티나하 파티만’입니다. 제 진명과 함께, 저를 종복으로 삼겠다고 말씀해 주시면 계약이 완료됩니다.”

“뭐, 계약서나 그런 거 안 써도 돼요? 알고 보면 말이 안 되는 계약이나 그런 거 많던데.”

“그건 악마 놈들이 하는 짓이고요. 저는 뱀파이어입니다.”

“……다른 점이 도대체……?”

“그들은 인간의 감정을 먹고 사는 이들이고 저는 피를 먹지요. 그리고 그들은 마족에 가깝지만, 뱀파이어는 인간에 가깝고요.”

로나는 더 알 수 없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전생에서 알던 마족이나 이종족들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쪽 세계에서 그들에 관해 알고 있는 점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긴 시골에서 빵집이나 하면서 사는 사람이 뭐 하러 마족이나 뱀파이어를 조사한단 말인가?

빵만 잘 만들면 됐지.

“……아무튼, 제가 당신을 종복으로 삼으면 저한테는 손해가 없다는 말이겠죠?”

“물론입니다.”

“너무 이득이라 오히려 수상한데…….”

“저는 뱀파이어인 만큼 오래 삽니다. 당신이 죽을 때까지의 시간은 당신에겐 길지만, 저에겐 짧은 시간이죠. 그 시간 동안 제 미식관을 넓혀 줄 수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저에게도 이득입니다.”

로나는 모나한이 이젠 마치 보험 사기단 같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에도 떨떠름함이 그대로 묻어났지만, 어쨌든 로나는 계약을 하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모티나하 파티만. 내 종복이 되어라.”

그녀는 끝맺음을 물음표로 만들지 않기 위해 매우 노력해야 했다.

도저히 자신이 말하는 게 올바른 계약 형식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나한의 목을 중심으로 붉은빛을 띠는 마법 진의 음산하면서도 광기 어린 빛을 뿌리며 피어올랐다.

그러고는 마치 목줄처럼, 모나한의 새하얗고 창백한 목에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오히려 모나한이 로나를 종복으로 삼기 위해 내뱉었던 문장들보다 그 붉은색이 더 음산해 보일 정도였다.

붉은색의 저주에 가까운 마법이 천천히 모나한의 목에 달라붙고 나자, 모나한이 그대로 무릎을 꿇고 로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대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저는 그대의 충실한 종복이옵니다. ‘빵집의 주인 – 로나’.”

“그거참. 뱀파이어를 종복으로 삼은 것치곤 정말 안 어울리는 명칭이네요.”

“무얼요. 저에겐 무엇보다 황홀한 명칭인걸요. 그럼 주인님, 이제 다시 당신의 아름다운 빵을 맛볼 수 있는 거겠죠?”

“아, 네. 물론이죠. 그 정도는 상으로 주죠, 뭐.”

“감사합니다, 주인님!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와, 말하는 것 좀 봐. 얘 간신 짓도 잘하겠네.

……잘생기니까 묘하게 용서되는 게 짜증 나는군.

“음, 뭐……. 앞으로 열심히 부려 먹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로나는 띠롱- 거리며 새로운 알림창이 뜨는 소리를 들으며 모나한을 향해 영혼 없이 웃자, 그 웃음을 따라 모나한이 정말 어여쁘게 웃었다.

-업적이 달성되었습니다.

-업적 <키메라 모티나하 파티만의 주인>을 얻었습니다.

-<키메라 모티나하 파티만의 주인 : 모티나하 파티만에게서 얻는 경험치와 빵 코인이 크게 증가합니다.>

* * *

“로나…… 조심히 가렴. 꼭 마차 안에서 행동하고, 위험한 짓 하지 말고.”

“여보, 로나가 얼마나 야무진 아이인데. 괜찮을 거요.”

“맞아요, 엄마. 로나, 도시에 도착하면 꼭 편지 보내야 해. 알았지?”

“알겠어요, 조심할게요. 감사해요. 꼭 편지 보낼게.”

로나는 자신이 빵집을 정리하고 도시로 간다는 것에 걱정과 기대를 가득 담은 표정이 된 가족들을 한 번씩 꼭 안았다.

이 시대에 평민 소녀가 도시로 상경하는 것은 흔한 일이면서도 걱정되는 일이었다.

도시에서 행복을 꿈꾸며 상경하는 소녀들이 보통 암울한 일을 당하고 시골로 돌아오는 일도 흔한 일이었으므로.

하지만 가족들은 로나가 얼마나 야무진 성격인지 알고 있었다.

귀족과 결혼한다든가, 오페라의 프리마돈나가 되겠다든가, 발레단에 들어가겠다는 꿈이 아니라, 커다란 빵집을 차릴 것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응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주머니. 제가 옆에서 잘 지키겠습니다.”

“어머. 하긴, 이렇게 멋있는 애인이 있다는 말도 안 한 얘가 알아서 잘하겠지.”

“내 동생 좀 잘 부탁할게요, 모나한!”

“……훌륭한 실력의 사냥꾼이라고 들었네. 잘 부탁하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로나 씨는 어떻게든 안전하게 지키겠습니다. 도시에 가서 편지도 보내는지 옆에서 꼭 감시하도록 할게요.”

착하게 생긴 미남이 방긋방긋 웃으며 하는 말에 엄마와 언니가 볼을 붉히며 웃었고, 아버지는 조금 못마땅한 얼굴을 하다가 그의 등에 걸린 석궁과 허리춤의 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로나는 모나한의 그 가증스러운 미소를 보며, 역시 밀대로 머리를 깨 버려야 했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어느새 자신은 엄청나게 잘생기고 성격도 좋고 몸매도 좋은 사냥꾼을 물어서 도시로 상경하는 돈 많은 여자가 되어 있었다.

모나한은 빵집에 들를 때 이른 아침이거나 사람이 없는 시간대를 골라서 오곤 했다.

그래서인지, 아주 잘생긴 사냥꾼이 마을에 왔다는 소문은 돌았었지만 자신과 모나한의 관계에 관한 소문이 도는 일은 없었다.

그때도 생각했던 건데, 모나한은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 시간대를 노려서 왔다.

심지어 빵집이 바빠 손님이 끊이지 않을 때는 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가증스레 ‘당신을 좋아합니다♡’라는 분위기는 풍기고 앉아 있는 놈이었다.

우와. 예전을 돌아보니까 더 연기투성이잖아! 더 빡치는데?

아무튼, 그런 영악한 놈은 자신이 모나한의 진명을 알게 되고, 그 종복으로 삼자 ‘이젠 다른 사람의 눈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분이 제 주인님이시다!’라는 느낌으로 아무 때나 빵집에 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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