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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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 빵집을 그만둔다는 게 사실인가요!”

모나한이 평소보다 더 창백한 얼굴을 하며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그리 물었다.

로나는 그 물음에 매우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제 실력을 키우고 싶어졌어요. 큰 도시로 가려고 해요.”

“그럼, 도시에서 빵집을 열려는 건가요?”

“네. 모아 둔 돈이 있으니까, 작은 상점 하나 정도는 열 수 있겠죠. 그리고 제 실력이면 금방 자리 잡을 수 있을 거고요.”

“제가, 도와, 도와드릴까요?”

모나한이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물었다.

“뭘요?”

“도시에 가는 길은 험하잖아요. 저는 사냥꾼이니까 도와드릴게요.”

“다음 주에 가는 상단과 함께 갈 거예요. 이미 용병도 다 구했다던데요?”

“제가 도시에 간다면…….”

“사냥꾼이시잖아요. 도시 쪽엔 사냥꾼이 마땅히 할 일도 없을 텐데요? 도시는 기사단이 있어서 사냥꾼은 안 쓰잖아요.”

모나한이 황망한 얼굴을 하고 로나를 바라보았다.

로나는 그런 그의 표정을 보면서 단호히 말했다.

“갑자기 이러시는 거 매우 부담스러운데요. 저희가 그럴 정도의 사이였나요?”

“……제가, 제 마음이-”

모나한은 마치 자신의 마음을 알지 않느냐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우린 무언가 있는 사이가 아니었냐고, 당신도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지 않으냐고.

그 모습에 로나가 표정을 싸늘하게 굳히며 말했다.

“모나한. 아닌 거 알아요.”

“……네?”

“혹시 절 좋아한다든가, 사랑한다든가의 말을 하실 거면 그냥 조용히 하시는 게 좋겠어요.”

“……로나 씨.”

“당신은 절 좋아하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만드는 음식을 좋아하는 거지.”

모나한은 멍하니 로나를 바라보았다.

로나는 그 얼굴에서 어떻게 알고 있었냐는 물음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모나한. 당신이 제 디저트를 볼 때의 눈과 절 볼 때의 눈이 얼마나 차이 나는 줄 아나요? 차라리 처음부터 제 빵에 반해 따라오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편이 나았어요. 감정을 가지고 거짓말하다니. 실망이에요. 미안하지만, 관여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데요.”

모나한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한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며 로나는 속으로 작게 한숨 쉬었다.

사실 반쯤은 핑계였다.

모나한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기는 했다.

그 연기를 보면서 한두 번씩 마음이 두근거릴 때마다 짜증 나기도 했고.

하지만 그보다는 그가 자신이 만드는 음식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얼마나 잘 갈린 밀가루를 썼으면 이런 식감이 나죠?”

“여기 뿌려진 설탕은 정말 다네요! 깜짝 놀랐어요.”

“초콜릿이…… 정말 고급품이군요. 거의 원가에 가깝게 케이크를 파시네요.”

가끔씩 하는 말들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맛을 보는 혀가 얼마나 섬세하고, 미식에 관한 지식은 얼마나 넓은지.

로나는 그럴 때마다 속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곤 했다.

최대한 마을 시장에서도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하얀 설탕이나 초콜릿, 커피 같은 것들은 현대에서 기계로 개량되고 연구된 만큼, 손으로 일일이 만드는 이 시대에서는 보기 힘들었다.

최대한 시골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사용한 레시피를 사용하기도 몇 번, 모른 척하면서 웃고 넘기기도 몇 번.

시골 마을인 만큼 없는 재료들이 많아, 만들어 놓고 내놓지 못한 것도 몇 번.

디저트의 맛이 몇 그램의 설탕과 몇 그램의 밀가루로 차이 나는 만큼, 시장에서 구한 재료로 만들고 실패한 것도 몇 번.

로나는 모나한과 같이 섬세한 미각을 가진 이들이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너무나 섬세한 미각이기에 이 세계에 있기 힘든 것들을 눈치채 버리고, 점점 의문으로 가득해진 얼굴이 날카로운 질문을 내뱉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그런 모나한을 데리고 도시로 갈 수 없었다.

특히 도시의 환경에 맞춰 시골 마을에서처럼 식빵이나 통밀 빵, 모닝빵 같은 식사류 빵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고급 디저트류를 팔아 볼 생각이었기에, 모나한의 미각은 더더욱 위험했다.

로나는 어떻게든 그를 떼어 놓고 가거나, 아니면 사이가 조금 멀어져 그와 일주일에 한 번씩 시행했던, ‘특별한 디저트’를 먹는 시간을 없애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사랑한다는 듯이 연기한 것은 아주 훌륭한 핑계가 되었다.

“우리 조금, 멀어질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아예 떨어지자는 뜻은 아니에요. 적어도, 조금 사이를 벌리자는-”

단호하게 말하려던 로나는 모나한의 표정을 보곤 변명처럼 말을 늘이다가 끝내 말끝을 흐렸다.

그의 이상할 정도로 선명한 선홍색 눈동자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로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어쩔 수 없죠, 로나.”

모나한은 물러나는 로나를 보며 슬픈 듯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한 채로 조용히 속삭였다.

“전 당신의 재능이 정말 좋아요. 쿠키, 케이크, 여러 가지 달콤하고 아름다운 빵들과 디저트. 생각지도 못한 방법들과 디자인들로 구성된 아름다움.”

그리 말하는 모나한의 선홍색 눈동자는 어느새 물기를 가득 담은 채였다.

마치 곧 눈물 한 방울이라도 아름답게 떨어트릴 것 같은 그 얼굴은 여전히 성직자처럼 순수해 보였고, 미소는 깨끗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로나는 묘하게 그의 표정이 달라진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평소보다 이상할 정도로 눈에 선명히 들어오는 얼굴.

아래 속눈썹에 달린 눈물이 햇살에 반짝여 다이아몬드처럼 빛났고, 얇은 회색 머리카락이 천천히 흔들렸으며, 살짝 붉은 눈가, 올라간 입꼬리, 창백해 보이는 하얀 피부색이 이상할 정도로 선연했다.

그는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양면 중 어두운 곳을 보이는 것처럼, 빛이 그의 얼굴에 넘실대며 흔들렸다.

신이 미를 부여하고, 천사가 축복하고, 요정이 마법을 건 것 같은 외모였고, 풍경이었다.

“혀끝에서 맛보여지는 새로운 맛들…… 초콜릿의 달콤씁쓸함, 설탕의 황홀한 단맛과 치즈의 향기, 버터의 향긋한 내음과 우유, 아몬드, 커피…… 제가 가장 높이 치는 것은 미식이고 당신은 그걸 훌륭히 충족시켰어요.”

그러나 로나는 그 아름다운 풍경에 조금도 매료될 수 없었다.

귀 옆에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건 아름다운 사내를 보고 사랑에 빠진 여자의 마음보다는 맹수를 앞둔 새끼 짐승이나, 침대 밑 괴물을 만난 어린아이의 심정에 가까웠다.

“예술가를 가두면 새장 속의 새가 되죠. 언제나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지만, 새로운 노래는 들을 수 없어져요. 하지만, 그래요. 로나.”

언제나 달콤한 냄새가 가득 찼던 빵집은 여전히 그 모양 그대로였다.

창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갈색 나무 벽을 따스히 데우고, 진열대에 올라와 있는 베이지색 빵들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가게 안의 오븐에서 따뜻한 기운이 넘실거리며 방 안을 데웠다.

로나가 세세히 장식한 장식물들과 마을 사람들께 받았던 부적들도 그대로, 문에 달린 귀여운 모양의 종도 그대로였다.

다만 그 한가운데에, 얼굴의 반을 햇빛 아래, 반은 그림자 안에 둔 사내는.

“결국, 자유로운 새가 나에게서 떠나 버려 다시는 그 노래를 들을 수 없어진다면, 저는. 차라리 새장 속에 가둬 두겠어요.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나요, 로나?”

맞아요. 전 당신의 ‘재능’이 미치도록 사랑스러워-.

새하얗고 기다란 손이 그림자 아래 창백한 색을 띠며 다가오고, 천사의 미소를 띠는 사내가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아름답게 웃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눈동자에서 한 방울의 눈물이 떨어져, 창백한 볼을 타고 흘러내렸을 때, 로나는 자신이 정말로 소설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것은 지독한 비극이거나, 공포 소설의 한 장면일 거라고, 그리고 마침내 망가져 버린 희생자가 되어 차가운 마룻바닥에 널브러지게 될 것이라고.

“로나, 로나 로나 로나- 작은 시골 마을의 갈색 머리 소녀. 땋은 머리와 야무진 손끝에서 풍겨 오는 달콤한 빵의 향기. 내가 언젠가 안경을 씌워 주지. 넌 그게 참 잘 어울릴 것 같거든.”

모나한이 노래를 읊듯이 속삭였을 때, 그것은 어떠한 특이한 음으로 흘러 로나의 뇌 속으로 진득이 흐르기 시작했다.

“내게 호감을 느끼렴, 나를 사랑하렴. 결국엔 나를 믿고, 존경하고, 숭배하게 될 거야. 내 말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게 들리고, 내 명령에 영혼의 끝자락까지 바치고, 내 쾌락을 위해 웃음 한 조각까지 내 아래 깔아 놓으렴.”

로나는 뇌를 초콜릿에 절여 놓은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누군가 초콜릿을 악마의 조미료라고 했던 것처럼, 지독한 달콤함과 손에서 떼지 못하게 하는 한 가닥의 씁쓸함이 귀를 타고 두개골 속으로 들어와 뇌를 반죽하고, 으스러뜨리고, 뭉개고, 절여 놓는다.

“그리하여 너는 나를 위해 생을 전부 바치게 될 거란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충실한 종복이다, 나의 사랑스러운 로나-”

그리고 그의 주문이 완성되었을 때, 오래되고 집요한 미식가가 그녀의 앞에서 처음으로 악마처럼 입꼬리를 올렸다.

* * *

-당신의 명칭은 ‘빵집의 주인’이므로, ‘뱀파이어의 하수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상태창의 안내를 들은 로나가 모나한 앞에서 눈을 깜박거렸다.

“음, 저…….”

모나한이 무언가 한 것은 확실했다.

뇌가 초콜릿 범벅이 된 듯한 기분이 든 건 사실이었으니.

그의 입술은 야하게 움직였고, 혀는 음란했으며, 목소리는 달콤했고, 음은 지독하고 손길은 다정했다.

그야말로 악마의 저주 같았다.

“음…… 뭔가…… 안 통한 거 같아요.”

근데, 막상 끝나니까 멀쩡했다.

아니, 진짜로 멀쩡했다.

그의 말대로 영혼의 한 조각을 바치거나, 웃음을 그의 발밑에 깔아 놓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다.

“그, 제가 신처럼 보이진 않으신지…….”

“네, 그렇게 안 보여요.”

“어, 막 후광이 보이고, 막 고귀해 보이고-”

“밀대로 머리를 빠개 주고 싶은 기분인데요.”

“…….”

모나한이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이며 손을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했다.

그가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 자신의 눈앞에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 모나한의 아름다운 손을 로나는 파리라도 보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까의 악마 같은 사내는 어디 가고 다시 순진한 토끼인 척하는 사내만 남아 있었다.

“빠개도 될까요?”

“네?”

“밀대로. 머리를. 빠개서. 골통을. 뿌셔 버리고. 싶은데요.”

로나가 천천히 진상 전용으로 카운터 아래 숨겨 놓았던 밀대를 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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