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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는 주근깨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바라보다가, 생각조차 하기 싫다는 듯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바람둥이는 질색이야.”
“……바람둥이는 아니잖아.”
주근깨가 작게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작은 걸 보면, 자기도 자신의 말이 말 같지 않다는 것은 아는 모양이다.
주근깨는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한 번에 한 사람만 사귀잖아! 그럼 바람이 아니지!”
“처음 연애를 할 때 세 다리를 걸쳤다가 고자가 될 뻔했지?”
“그, 그건!”
“광장 한복판에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고, 뺨 맞고, 한 여자는 칼 들고 달려들고. 그 칼이 다리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찍히고, 마을에 신나게 소문이 돌고.”
“지금은 안 그러잖아…….”
“또 그러면 뇌가 없는 거지. 그리고 바람둥이가 아니라고 해도 전 여자친구가 도대체 몇 명이야? 걔 인생에 여자친구가 있던 날이 없던 날보다 길걸?”
“그, 그건 잘생겼으니까! 인기가 많으니까 여자친구도 많았던 거지!”
“어, 누가 못생겼대? 로날드 잘생겼어. 금발에 푸른 눈, 떡 벌어진 어깨에 큰 키. 마을에서 잘되는 잡화 상점의 둘째 아들. 좋은 신랑감이지.”
“맞아! 로날드면 최고의 신랑감이지!”
주근깨가 크게 맞장구쳤다. 로날드의 여자친구라도 되는지 아주 열성스럽다.
그놈은 너한테 관심 쪼가리도 없을 텐데?
참 열심이다 싶다.
“하지만 미래가 너무 뻔하지 않니? 또 괜찮은 여자가 생기면 헤벌레- 하고 헤어진 후에 걔한테 가겠지. 괜찮은 신붓감이 나오면 갈아타는 거로 유명하잖아? 내가 아는 전 여자친구만 해도 스무 명이 넘는데, 소문 안 난 사람까지 하면 얼마나 되겠어?”
“…….”
“자기가 얼굴이 잘나서 여자 만나기 쉽다, 그거지. 그런 놈을 남편으로 삼으라고? 일은 하나도 안 하고 여자 뒤꽁무니나 찾아 돌아다니는 놈을? 지금도 하는 일 없지 않나?”
“그, 그건…….”
“잡화 상점 첫째가 그렇게 일을 열심히 잘한다는데, 그럼 잡화점은 첫째가 물려받을 테고. 기사 된다고 난리 쳐서 몸은 좋지만, 재능이 없는지, 끈기가 없는지. 때려치웠다면서.”
주근깨가 결국 할 말을 잃고 침묵했다.
하지만 로나는 입을 다물 생각이 없었다.
이 잘생기면 좋다는 머리가 꽃밭인 소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아까 비꼬며 눈을 부릅뜨던 게 어이없어서라도 멈출 생각이 없다.
남자 때문에, 그것도 바람둥이를 왜 선택하지 않았냐고 비난하다니.
나를 뭐로 보고?
“걔하고 미래는 뻔하잖아. 내가 돈 벌고, 걔는 내가 번 돈 쓰고. 그 돈으로 뭘 할까? 마을 여자애들 꾀고 다니겠지. 아니면 어디서 술 처먹거나 도박장에서 뒹굴거리거나.”
로나는 주근깨와 눈을 맞추고 그동안 로날드를 보며 생각했던 것들을 숨도 쉬지 않고 줄줄이 내뱉었다.
“내가 애 낳으면 봐주긴 할까? 내가 알기로 걔 애들 더럽게 못 본다던데? 옆집 아줌마가 한번 맡겼는데, 결국 그 집 첫째가 봤잖아. 그럼 내가 일도 해, 얘도 내가 봐. 요리 잘해? 하는 거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데? 집안일은? 맨날 밖에서 돌아다니는데? 효도는? 집에 붙어 있는 꼴을 본 적이 없는데, 효도는 무슨? 그럼 우리 부모님한테도 못하겠네?”
그동안 자신만 보면 찝쩍거리던 로날드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이때다 하고 튀어나왔다.
이왕이면 이 이야기가 소문을 타고 그 녀석 귀에까지 들어가서 자신에게 알은척 좀 안 했으면 싶었다.
“어, 언니…….”
주근깨는 제발 이제 그만해 달라며 애원하듯이 로나를 불렀다.
로나는 그런 주근깨에게 한심하다는 표정을 했다.
“걔 얼굴만 뜯어먹고 산다면야, 별만 안 한다. 잘생긴 얼굴 보는 대신, 바람피우는 것도, 내가 번 돈 다 쓰는 것도, 애 내팽개치고 놀러 다니는 것도 괜찮다면야. 잘생겼으니까, 내가 그 정도는 희생해야지. 그렇지? 그렇게 잘생겼는데, 내 인생 정도야 별거겠어?”
“아, 아니……. 그건 아니고…….”
주근깨가 자기는 전혀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고, 주위에 자신을 보며 은근히 뾰족한 눈초리를 했던 애들도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너 부모님께 가서 ‘로날드랑 결혼하고 싶어요-!’ 해 봐. 뭐라 할지 뻔하니까.”
이미 해 봤는지 주근깨가 우물거리다가 끝내 울먹거렸다.
뭘 잘했다고 우냐는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다가 겨우 삼켜졌다.
어린애한테 심한 말을 하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이건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마을에 있는 미혼 상태의 여자들 모임에서 자신은 가장 좋은 신붓감이자 가장 큰언니였다.
가장 부자였고, 모임의 장소도 간식도 내가 제공했다.
이번엔 다른 간식이 올라왔지만, 평소에는 다 내가 만드는 음료수와 디저트를 즐겼던 이들이다.
근데 지금 와서 그런 식으로 내 권위에 도전해?
예민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작은 시골 마을에 혼자 상점을 운영하는 미혼의 아가씨가 얕보이면 어떻게 되는지, 나는 충분히 알고 있다.
모임의 장에게 가장 막내가 ‘당신은 이것도 못 해요?’라고 대들었다면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밟아 줘야 했다.
로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무시와 진상들을 떠올리다가, 한숨을 푹 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로날드한테 관심도 없고, 결혼해도 그런 사람이랑 할 생각 없어. 적어도 성실한 사람이랑 할 거야.”
로나는 반쯤 지친 얼굴로 손을 휙휙 젖고는 다시 차를 마셨다.
어색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여자애들이 우물쭈물하자, 자신과 친한 여자애가 다른 이야기로 주제를 넘기며 분위기를 띄웠다.
간간이 주근깨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모두 은근슬쩍 모른 척하는 걸 보면, 내 눈치를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로나는 이 작은 마을에서도 일어나는 권력 다툼과 인간관계에 신물이 올라올 것 같아서 찻잔 안에 있는 차를 전부 목 뒤로 넘겼다.
그러고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고 이야기에 참여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여자애들이 이만 모임을 파하자며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근깨는 끝까지 침울한 얼굴로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지만, 로나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몇몇 친한 아이들이 자기가 한 번 더 혼내겠다며 주근깨를 손짓하는 모습에 조용히 고개만 저었다.
저 정도 했는데, 모른다면 모임에서 빼 버리면 된다.
여자들의 모임에서 빠지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충분히 알고 있겠지.
로나는 그냥 조용히 손이나 흔들고는 가게 문을 잠갔다.
여러모로 피곤한 하루였다.
* * *
그리고 정말로 인생을 걸어도 될 만한 미남이 찾아왔다.
“와,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서 들어왔는데. 들어오니까 더 끝내주네요.”
목소리도 적당히 낮으면서 감미로운 음성을 가진 미남은 부스스한 회색 머리카락에 선홍색 눈동자를 가지고 창백한 피부를 뽐내고 있었다.
날카로워 보이는 눈을 가졌지만, 잘 보면 아래로 살짝 내려간 눈꼬리가 묘한 분위기를 풍기곤 했다.
마치 성직자라고 해도 믿을 만한 착하고 순수해 보이는 미모이면서도 어린 시절의 장난기를 간직한 소년처럼 보이기도 하는 미남이었다.
전도하면 열에 여덟은 따라갈 거 같은데?
아니, 진짜 잘생겼잖아.
저 정도면 인생 배팅 인정이다.
그는 전생에서 미디어에 나오는 외모의 프로들이 보여 준 미모에 단련되었던 로나의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미남이었다.
성직자 같은 외모에 묘하게 풍기는 야한 냄새가 퇴폐미를 플러스해서 여심을 자극하는 미남!
주근깨가 와서 인생 배팅을 외쳐도 이건 인정이다 싶다.
“저,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직원분이신가요?”
“여기 주인이에요.”
“아, 죄송합니다. 너무 어려 보이셔서……. 대단하시네요. 어린 나이에 이런 상점을 운영하시다니. 전 모나한이라고 합니다. 떠돌이 사냥꾼이에요.”
절대로 사냥으로 먹고살 얼굴이 아닌 미남이 사냥꾼이라고 말했다.
복장은 분명 사냥꾼인데, 그대 얼굴은 신관이요.
당장 신전으로 달려가 신관이 되겠다고 하면 두 팔 벌려 환영할 거요.
근데 사냥꾼이라기에는 얼굴이 하나도 안 탔는데, 그럴 수 있나?
“음, 로나예요.”
“그럼 로나 씨. 여기서 가장 맛있는 빵이 어떤 걸까요? 추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다 맛있을 거 같아서 도저히 못 고르겠네요.”
예의 합격!
사냥꾼들은 거칠다는데, 직원으로 오해했을 때도 한결같이 존댓말을 하는 그 심성 합격!
골라 달라고 하면서도 칭찬하는 화술 합격!
“식사에 곁들인다면 역시 기본적인 빵 종류겠죠. 모닝빵이나 식빵 같은 거? 든든한 걸 원한다면 여기 통밀 빵도 괜찮아요.”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듣는 리액션 합격!
아, 정말 눈이 정화되는 미남이다.
얼굴뿐만 아니라, 성격도 좋은 듯하니, 괜히 양심에 찔리지 않고 덕질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건 저런 사람일 테지.
로나는 오랜만에 살짝 불타오르는 덕심을 느꼈다.
“아예 식사로 먹고 싶다면, 여기 있는 샌드위치 종류도 좋아요. 고기를 듬뿍 넣었죠. 간식 종류라면 케이크를 추천하죠.”
“케이크를 팝니까!?”
“비싼 아이라 실물을 보여 드리는 건 어렵지만……. 뭐, 보여 드리죠.”
저 정도의 얼굴과 예의를 갖췄으니, 가게 안쪽으로 데려갈 만하다.
원래는 신뢰할 수 있거나, 돈이 있는 사람만 데려갔지만. 사냥꾼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니 괜찮겠지.
그가 입고 있는 옷도 평범한 평민들이 입을 만한 옷은 아니니.
보관하기 힘들고 만들기 힘든 케이크는 특별한 음식으로 분류되었다.
커다란 도시에서나 맛볼 수 있는 고급 디저트였고, 이런 시골 빵집에서 만들 만한 종류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 세계의 요리 레시피 같은 경우는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넘어가는 비법 같은 거였으니 더더욱 특별한 음식이었다.
그러나 전생에서는 수많은 레시피들이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녔고, 그건 고스란히 로나의 상태창 스킬로 제공되어 있었다.
덕분에 로나는 이 세계 사람들이 모르거나 비밀로 하는 수많은 빵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마법은 그걸 좀 더 길게 보관할 수 있게 했지.
전생에서라면 차가운 온도에 보관했겠지만, 여기는 마법으로 상태를 고정해서 어쩌구로 보관하더라.
자신은 제빵사라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느 기간을 넘기면 확 썩을 뿐이지 그전까지는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로나가 만들어 놓고 야금야금 먹거나, 특별한 날의 손님들이 사 가곤 했다.
“상태 고정 마법이 걸린 상자죠. 너무 비싸서 큰 건 무리지만, 작은 걸 겨우 샀어요.”
“와. 정말 대단하네요.”
로나가 비밀 거래라도 하는 것처럼 모나한을 가게 안쪽으로 안내했고, 그가 마주한 건 평범한 갈색 나무 상자였다.
하지만 로나가 자물쇠를 열고 뚜껑을 들어 올렸을 때, 뚜껑 안쪽엔 한가득 마법 진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불투명하고 네모난 유리관이 딱 맞게 쌓여 있었다.
“유리…….”
“그것도 비쌌죠. 투명한 걸 구하고 싶었지만, 그건 가격이 정말 엄청나더군요.”
로나는 유리를 보고 놀라는 모나한을 보며 후후후, 웃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걸 보니 그 모습은 또 회색 털이 몽실몽실하게 부푼 토끼 같았다.
반응이 크니 무언가를 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니다.
저 얼굴이 살아 움직이는데, 뭐든지 재미있을 만하지.
진짜 미남은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온다는데, 진실인 듯.
로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유리 상자를 하나 빼서는 탁자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그리고 그 안에 주목하라는 듯이 두세 번 똑똑 쳤다.
모나한이 웃으며 불투명한 유리 상자를 쳐다보았다.
유리 상자는 불투명해서 안이 완전히 보이진 않았지만 뿌옇게나마 안의 색을 보여 주었다.
안에는 진한 보라색과 진한 노란색으로 보이는 것이 이리저리 유리에 어그러짐과 같이 일렁였다.
그가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보라색을 띠는 음식이 별로 생각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블루베리를 올린 타르트?
하지만 케이크라고 했는데…….
모나한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로나가 유리 뚜껑을 살짝 들어 올리는 움직임에 몸을 굳혔다.
그의 아주 예민한 코는 유리 뚜껑을 살짝 들어 생긴 틈으로 퍼지는 냄새를 충분히 맡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