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124화 (124/132)

외전 14화

베르체스터의 혼담–마티어스 (1)

늦은 밤.

긴 외출을 끝내고 베르체스터 저택으로 돌아온 마티어스가 품속에서 서류를 꺼내 조엘 앞에 내려놓았다.

“조엘, 여기. 네가 가지고 오라고 했던 거.”

서류를 확인한 조엘의 얼굴에 곧바로 미소가 내걸렸다.

마티어스가 모르카티움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포데라 왕국과의 군사 협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돌아온 것이다.

“마티어스. 생각보다 빨리 해결했는걸?”

“뭐, 이쯤이야, 별것 아니지.”

마티어스는 히쭉 웃었다.

자신감과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웃음에서 강한 신뢰가 느껴졌다.

조엘은 새삼 마티어스의 모습이 신기했다.

‘마티어스에게서 신뢰감을 느끼게 될 날이 올 줄이야.’

한때, 가출을 일삼으며 인생을 즐기기에만 몰두하던 쌍둥이 형제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지금 마티어스는 예전과 달랐다.

그는 이제 모르카티움 제국의 군사 전략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어 있었으니까.

마티어스의 지형 활용 능력과 과감한 행동력은 때로 조엘의 전략보다 훌륭했다.

‘이런 재능을 발견한 것도 레스티아 덕이겠지.’

마티어스의 ‘리티에게 가장 멋진 오라버니가 되겠어.’라는 목표는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임무가 주어져도 반드시 달성하고 돌아왔다.

“그래. 고생 많았어. 마티어스.”

조엘은 짧게 마티어스를 칭찬했다. 그러자 마티어스가 불쑥 제라르의 안부를 물었다.

“형은?”

이제 마티어스는 제라르의 안부를 묻는 법도 알게 되었다.

레스티아가 ‘제 결혼식 이후로도 형제들끼리 교류가 잦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귀찮아도 꼭 서로 안부를 묻기로 하는 거 어때요?’라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하하하!”

조엘은 저도 모르게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여간, 변해도 많이 변했다.

“뭐야? 조엘, 너 왜 웃어?”

“그냥 이런 풍경이 신기해서.”

“참나, 너야말로 소리 내서 웃는 일이 너무 늘었어.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모습이 네 녀석 특징이었는데 말이야.”

“그런가?”

바뀐 것은 마티어스뿐만이 아니다.

조엘 또한 이렇게 즐겁게 웃는 것에 익숙해졌다.

“형님은 혼사 문제를 마무리 지으러 록베스트 백작가에 가셨어.”

“아아, 그래.”

이것으로 안부 묻기 임무까지 모두 끝났다.

마티어스는 더는 볼일이 없다는 듯 곧바로 뒤돌아섰다.

그러자 조엘이 문밖으로 나서는 마티어스에게 첨언했다.

“마티어스. 중요한 임무도 완수했겠다. 당분간은 휴가를 즐기는 건 어때? 요즘 들어서 제대로 쉰 적이 없지 않아?”

“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 그럼 일단 황궁에 다녀오고.”

쉬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포데라 왕국에 다녀온 기념으로 레스티아에게 줄 선물을 잔뜩 사 왔다.

그것을 당장이라도 전해 줄 생각이었다.

“마티어스, 참아.”

마티어스의 속내를 알아차린 조엘이 만류했다.

“황궁은 지금 가기에는 늦은 시각이야. 이제 황후가 된 레스티아의 입장도 생각해줘야지. 내일 가도록 해.”

“으.”

마티어스의 얼굴에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최고로 멋진 오라버니’에서 ‘철없는 오라버니’가 될 수는 없으니 얌전히 수긍할 수밖에.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내일 갈게.”

마티어스는 포기한 듯 대답하고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다시 돌아섰다. 곧바로 조엘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글라리엔 저택은 방문해도 괜찮아.”

“야. 조엘. 너, 내가 뭘 할지 너무 잘 아는 거 아니야?”

“그야 우리는 쌍둥이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내가 잘 감추기도 하지만, 네가 너무 잘 읽히기도 하지. 지금도 ‘리티 꺼 사는 김에 꼬맹이 것도 사 왔으니 가져다 줘야지.’라는 생각이겠지. 그렇지?”

마티어스는 ‘윽’ 하고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래. 꼬맹이는 리티 친구니까 꼬맹이 줄 선물도 사 왔어. 좋은 오라버니는 단짝 친구도 챙길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니겠어?”

“흠, 그래? 그런 이유인가?”

“그래. 그런 거야. 하여간 재수 없는 자식. 그럼, 간다.”

마티어스는 귀찮다는 듯 밖으로 나섰다.

조엘은 멀어져가는 마티어스에게서 시선을 떼어내곤, 서류를 갈무리하는 것에 집중했다.

막냇동생이 아닌 형제의 사생활에 깊게 간섭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 * *

안젤라는 평소처럼 잠옷을 입은 채로 글라리엔 저택의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바람이 안젤라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고 지나가자, 안젤라는 자신도 모르게 꺄르륵 웃으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밤바람 너무 좋다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검은 배경 위로 촘촘히 수 놓인 별과 달이 아름답다.

안젤라는 지금 이 순간을 믿을 수 없었다.

혼자서 자유롭게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상쾌한 공기를 만끽할 수 있다니.

휠체어를 타고 다니던 시절에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이었다.

항상 언제 잠에 빠져들지 몰라 두려움에 떨어야 했는데,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된다.

“흐흥~.”

안젤라는 달빛을 조명 삼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정원 한가운데서 홀로 스텝을 밟았다.

과거 성년식에서 마티어스에게 의지해서 겨우 춤췄던 때와는 다르게, 지금 안젤라의 춤솜씨는 상당히 유려했다.

그게 또 즐거워서, 안젤라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폈다.

뜻밖의 불청객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야? 꼬맹아. 왜 혼자 달밤에 춤을 추고 있어? 설마 미친 거야?”

“꺅! 마, 마티어스 오라버니?”

마티어스를 발견한 안젤라의 스텝이 엉망으로 꼬였다.

바닥으로 그대로 쓰러지려는 순간, 바닥에서 솟아난 부드러운 흙이 안젤라의 몸을 폭신한 소파처럼 받아 냈다.

마티어스의 마법이었다.

“야. 꼬맹아. 미치면 안 돼. 네가 미치면 리티가 얼마나 속상해하겠어?”

마티어스는 키득키득 웃으며 흙으로 만들어진 소파에 쓰러진 안젤라의 양팔을 잡아 부드럽게 일으켜 세웠다.

안젤라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뭐, 뭐예요! 마티어스 오라버니! 이렇게 늦은 시간에 함부로 찾아오다니, 너무 무례해요!”

“그래, 그래. 내가 무례하다는 얘기를 한두 번 들어 본 게 아니야.”

“뭐, 뭐라고요? 마티어스 오라버니는 잃어버릴 명예도 없나요?”

“응. 없어.”

안젤라는 마티어스의 뻔뻔함에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안하무인에 뻔뻔한 남자가 우아하고 지적인 레스티아의 친오빠라니!

하지만, 더 황당한 건, 자신이 마티어스를 가끔, 종종, 자주 멋지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도.

달빛을 등지고 서 있는 마티어스의 모습은 정말이지, 쳐다보기만 해도 심장이 떨릴 정도로 강렬한 수컷다운 매력을 풍겼다.

곧게 뻗은 눈썹과 달빛을 담아내고 있는 자안.

균형 잡힌 몸매는 조각가가 잘 깎아 만든 완벽한 조각상 같다.

입만 안 열면 말이다.

“뭘 그렇게 봐? 내가 오늘따라 잘생겨 보이나?”

안젤라는 ‘하!’ 하고 숨을 뱉어내고는 냉큼 자신을 부축해 주고 있는 마티어스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졌다.

“당장 나가세요!”

“그래, 그래. 안 그래도 이것만 주고 갈 거야.”

“뭘요?”

질문과 동시에 마티어스가 품속에서 선물을 꺼내 들었다.

기념품으로 사 온 실크로 만들어진 숄이었다.

안젤라가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마티어스는 숄을 넓게 펼쳐서 안젤라의 어깨 위로 올렸다.

가벼운 실크 숄은 밤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며 안젤라의 어깨 위로 살포시 드리워졌다.

밤바람에 쌀쌀함을 느끼고 있던 몸에 순식간에 온기가 감돌았다.

“이, 이건…… 뭐예요?”

안젤라는 말을 더듬었다.

거부하려고 해도, 이런 식으로 굴면 다시 한번 마티어스에게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티어스는 평소처럼 안젤라를 대했다.

“방금 포데라 왕국에서 일을 끝내고 돌아왔어. 거기 특산품이 실크잖아. 리티 꺼 사는 김에 네 것도 샀어. 너 가져.”

“아…….”

안젤라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상체를 덮은 숄을 찬찬히 바라봤다.

반투명한 실크로 만들어진 연분홍색의 숄은 안젤라의 눈 색과 참 닮았다.

‘예쁜 걸 골랐네.’라고 생각했는데.

“예쁘다.”

라고 마티어스가 말해버리는 바람에, 안젤라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예쁘다는 그 말이 왜 이렇게 마음을 울렁이게 만드는지.

“예쁘다고요? 저 놀리는 거죠? 마티어스 오라버니가 그런 말을 제게 할 리가 없잖아요?”

“뭐? 놀리는 거 아닌데? 정말 잘 어울려. 역시 내 안목은 끝내주는 편이지. 안 그래?”

마티어스는 보람찬 듯 팔짱을 끼고 득의양양한 태도를 보였다.

“내가 선물을 허투루 고르는 편이 아니지. 리티 덕분에 단련된 솜씨라고 해야 하나?”

“…….”

안젤라는 양손으로 숄을 꾹 움켜쥐었다.

마티어스는 이런 식으로 안젤라에게 자주 선물을 주곤 했다.

레스티아의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티어스가 안젤라의 마음에 들어오면서부터 더 그랬다.

선물이 늘어날수록, 마티어스에게 안젤라는 여동생의 친한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선이 그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마티어스는 늘 그랬듯이 짓궂게 안젤라를 놀릴 뿐이었다.

“뭐야? 꼬맹아. 고맙다는 말도 못하냐 너는?”

안젤라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흥, 이네요! 누가 이런 거 사다 달라고 했어요?”

“요 꼬맹이가. 사다 달라고 안 했어도 선물을 받으면 고맙다고 해야지!”

마티어스는 안젤라가 ‘꼬맹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잖아요!’ 하고 소리칠 것이라 여겼다.

그러면 평소처럼 ‘꼬맹이가 꼬맹이지.’ 하고 맞받아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젤라의 반응은 달랐다.

말을 삼키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분홍색 눈동자를 마티어스에게 고정했다.

그러고는 조금 쓸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티어스 오라버니. 이제 이런 거 사 오지 마세요.”

“응?”

항상 어린아이 같던 안젤라가 이런 진지한 반응이라니.

마티어스는 당황해서 허둥거렸다.

“어? 왜? 이거 마음에 안 들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선물은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제가 레스티아의 친구라는 이유로 계속 챙겨 주실 필요 없다고요.”

“어?”

평소와는 너무 다른 반응에 마티어스는 당황했다.

하지만 자기가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괜히 더 평소처럼 살갑게 대했다.

“그래. 알았어. 그런데, 나 내일 나 레스티아 만나러 황궁에 가는데 너도 같이 갈래?”

마티어스는 안젤라가 ‘네! 그래요. 저도 레스티아 만나러 가려고 했어요!’라고 평소처럼 밝게 대답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예상은 틀어졌다.

“아뇨. 안 갈래요.”

라는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어? 어?”

“그럼, 저는 들어가 볼게요.”

그 대화를 끝으로 안젤라는 마티어스에게서 돌아섰다.

“어?”

마티어스는 정원에 홀로 남겨졌다.

그리고 처음 느껴보는 미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대체 뭐지 이 기분은?

처음으로 무언가 큰 실수를 한 것 같은 찝찝한 기분.

어째 버려진 것 같은…….

처음으로 두 발을 딛고 있는 땅이 흔들리며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것 같았다.

그 날, 마티어스는 난생처음으로 밤잠을 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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