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123화 (123/132)

외전 13화

베르체스터의 혼담–레스티아 (8)

결혼 서약식이 끝난 후.

황실 기사단의 호위하에 리시언과 레스티아의 수도 순회가 시작되었다.

제국민들은 수도 전역에서 흩날리는 꽃비의 환상에 넋이 나가 있었다.

나풀나풀 흩날리는 꽃비는 손으로 잡으려 하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세상에, 너무 아름다워.”

“경사스러운 날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이건 기적이야! 황제 폐하 만세! 황후 폐하 만세!”

모든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리시언과 레스티아가 탄 마차를 향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환호성은 수도 순회를 끝내고 황궁으로 돌아오는 내내 끊기지 않았다.

* * *

국혼 절차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피곤하지 않아?”

리시언이 피로연 드레스로 갈아입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레스티아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피로연 정도는 적당히 얼굴만 내비쳐도 돼.”

레스티아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제가 계획한 행사인걸요. 우리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기로 했잖아요. 끝까지 해내고 싶어요.”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래도 피곤하면 말해야 해.”

“네. 걱정 말아요.”

리시언은 레스티아의 손을 꼭 잡고 함께 피로연이 열리는 중앙홀로 향했다.

중앙홀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에서 축하의 말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손을 흔들며 그에 화답했다.

파티가 시작되고, 제일 먼저 안젤라가 해맑게 웃으며 레스티아를 향해 쪼르르 달려오더니 덥석 포옹했다.

“레스티아! 결혼 축하해!”

안젤라의 뒤편에 서 있던 글라리엔 부인이 이마를 짚었다.

이제 황후가 된 레스티아에게 친구처럼 막역하게 굴면 안 된다고 그리도 말했건만…….

하지만 레스티아는 개의치 않고 안젤라의 포옹을 받아들였다.

이 자리는 격식을 떠나서 편하게 축하받고 싶어서 만든 자리였으니까.

“고마워. 안젤라.”

막 포옹을 끝낸 두 사람 사이로 카트리나가 다가와 샴페인 잔을 건넸다.

“황후 폐하, 축하주를 받아요!”

“아, 카트리나. 고마워요.”

레스티아는 투명한 샴페인 잔에 담긴 연분홍색 샴페인을 받아 마셨다. 그러자 카트리나가 또다시 술을 권했다.

“자! 좋은 날이니까 한잔 더!”

곧바로 리시언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카트리나는 그 사실을 눈치채고는 깔깔 웃으며 레스티아의 팔을 잡아당겼다.

“황제 폐하. 잠시만 여자들끼리 놀게 해주세요. 피로연이잖아요? 오늘 이후로는 이렇게 편하게 놀 일이 없을지도 모른답니다.”

리시언은 물끄러미 레스티아를 바라봤고, 레스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리시언은 레스티아의 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중앙홀에 들어왔을 때부터 자신에게 용건이 있어 보이는 베르체스터 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리시언은 딱딱한 표정으로 서 있는 제라르, 조엘, 마티어스를 마주했다.

“할 말이 있나?”

질문과 동시에 상투적인 말들이 쏟아졌다.

“리시언. 앞으로 리티 눈에서 눈물이 나면 나는 네 눈을 으깨 버릴 거야.”

마티어스는 과격했고.

“황제 폐하. 레스티아의 뒤에는 베르체스터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조엘은 미소 뒤에 칼날을 감췄으며.

“지켜보겠다.”

제라르는 결론만 말했다.

리시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말, 너희는 변하는 게 없어.”

하긴, 소중한 막냇동생인데 얼마나 걱정되겠는가.

이해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니 몇 번이고 대답해 줄 수 있다.

“너희가 걱정하는 일 따위는 없어. 맹세하지.”

리시언은 고개를 슬쩍 돌려 레스티아를 바라봤다.

레스티아는 카트리나가 건네는 샴페인을 계속 받아먹고 있었다.

어느새 안젤라까지 합세해서는 ‘나도 레스티아한테 축하 샴페인 줄래!’라며 보채고 있었다.

역시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리시언은 베르체스터 형제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난 내 아내에게 가 볼게.”

아내라는 단어가 그 어떤 말보다 정확하게 귓가에 꽂혔다.

리시언의 그 오만한 태도에 베르체스터 형제들은 이제 인정해야만 했다.

리시언이 레스티아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자 빨리 한잔 더! 건배!”

레스티아가 취기를 느끼고 휘청였다.

“자, 잠깐. 나 그만 먹어야 할 것 같아요.”

“에이, 오늘이 아니면 먹을 기회가 없다니까요?”

리시언이 자연스럽게 카트리나가 건넨 샴페인 잔을 받더니, 레스티아 대신 그것을 목 뒤로 넘겼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레스티아의 어깨를 감싸 안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스티아. 잠시 테라스에 가서 바람을 쐬는 게 좋겠어.”

황금빛 눈이 카트리나와 안젤라를 조용히 바라봤다.

그저 시선을 고정한 것뿐이었으나,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눈빛.

“아, 그래요. 다녀오세요.”

“레스티아. 잘 다녀와!”

결국 카트리나와 안젤라는 꼬리를 내리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리시언은 레스티아와 함께 테라스로 향했다.

“하, 바깥 공기를 마시니까, 살 것 같아요.”

레스티아는 테라스의 난간을 붙잡은 채, 찬 바람을 폐부 가득 들이마시고는 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왜 거절하지 않았어.”

“헤헷. 좋은 날이니까요. 좋게좋게.”

레스티아가 취해서 헤실헤실 웃는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저렇게 웃는 모습을 지금, 이 순간부터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

그래서 리시언은 계획보다 조금 더 빠르게 레스티아에게 말을 건넸다.

“레스티아. 내가 결혼식 이후 일정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되냐고 물어봤던 거 기억해?”

레스티아는 곧바로 대답했다.

“아, 네. 기억나요. 리시언, 뭘 하고 싶어요? 지금은 샴페인 마시기만 아니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야.”

리시언은 빙그레 웃고는 곧바로 레스티아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었다.

“어어? 리시언?”

리시언의 돌발 행동에 화들짝 놀란 레스티아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리시언은 레스티아를 안은 채, 망설임 없이 테라스의 난간 위로 올라섰다.

“리시언! 뭘 하는 거예요?”

“걱정 마.”

리시언이 미소를 짓자, 곧바로 두 사람 앞에 마법으로 만들어진 돌계단이 펼쳐졌다.

돌계단은 끝없이 하늘로 향해 있었다.

“어? 이 계단은 뭐예요?”

“이제부터 이걸 밟고 아무도 우리를 방해할 수 없는 곳으로 갈 거야.”

“네? 어디로요?”

하지만 리시언은 미소 지을 뿐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어? 어?”

리시언이 계단을 오를수록, 지면이 점점 더 까마득하게 멀어졌다.

황궁이 장난감처럼 작게 보인다.

가뜩이나 취기가 올라 있던 레스티아는 아찔해져서, 눈을 감고 리시언의 목을 더 꼭 감싸 안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리시언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이제 눈 떠봐. 레스티아.”

시키는 대로 레스티아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레스티아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앞의 풍경을 바라봤다.

허공에 작은 섬이 떠 있었다.

“이건 섬…… 이잖아요? 어떻게?”

바다가 아닌, 공중에 떠 있는 작은 섬.

섬에는 한눈에 봐도 심혈을 기울여 지은 우아한 양식의 궁전과 온갖 귀한 식물이 자라고 있는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맞아. 섬이야.”

리시언은 레스티아가 두 발로 섬의 지면을 디딜 수 있도록 도왔다.

“여기는 대체 뭐예요?”

레스티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연신 두리번댔다.

“마법으로 만든 별궁이라고 해둘까?”

“마법으로 만들었다고요?”

“그래. 별궁을 짓게 하고 그대로 마법을 써서 공중에 띄웠지.”

“네에? 왜 그런 일을 하신 거예요?”

리시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레스티아. 황제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별궁을 짓는 일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아.”

하지만 이렇게 정원을 만들고 건물을 세운 후에 하늘 위에 띄운 황제는 리시언이 처음일 것이다.

“세상에…….”

대체 리시언은 어디까지 마력을 응용할 수 있는 거지?

레스티아가 할 말을 잃고 주춤거리자 리시언이 레스티아의 손목을 조심스레 잡아당겼다.

“자, 들어가자.”

그러고는 아차 싶었는지 레스티아의 앞에 우뚝 섰다.

“참. 어두울 때는 이 반지를 쓰면 돼.”

리시언이 레스티아의 오른손을 끌어다 왼쪽 손에 자리 잡은 반지를 살짝 만지도록 했다.

그러자 반지에서 마법으로 만든 금색 나비가 반딧불이처럼 날아올라 정원의 불을 밝혔다.

밤하늘 아래. 근사한 황금빛 조명을 갖추게 된 공중 정원은 그 분위기가 한층 더 운치 있었다.

“와! 너무, 너무 예뻐요.”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올 만큼.

“네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야.”

리시언은 빙그레 웃으며 천천히 레스티아를 궁전 안으로 안내했다.

작은 섬에 있는 궁전은 아름다웠고, 두 사람이 지내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레스티아는 특히 정원에 설치된 그네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러고 보니까, 그네는 정말 오랜만에 타봐요.”

레스티아가 그네에 앉자, 리시언이 살며시 등을 밀어줬다. 곧바로 레스티아가 볼을 붉혔다.

“다 커서 이런 거 조금 부끄럽네요. 어렸을 때 별로 타보지 못해서 괜히 타보고 싶었나 봐요.”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여기는 우리밖에 없으니까.”

리시언의 말에 레스티아는 배시시 웃었다.

“그럼 조금만 더 탈게요.”

레스티아는 잠깐 그네의 흔들거림을 즐기다가 내려왔다.

취기 때문일까. 아주 잠시 그네를 탔을 뿐인데, 현기증이 느껴졌다.

“아. 아무래도. 너무 마셨나 봐요. 드레스도 답답하고.”

레스티아가 답답한 듯 드레스 자락을 쥐어 잡자, 리시언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드레스 벗을래?”

“네?”

“말했잖아. 어차피 이곳엔 우리 둘밖에 없다고.”

“하, 하지만. 이 드레스는 후크가 엄청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어서 혼자 못 벗는걸요.”

“내가 해줄게.”

리시언은 레스티아의 등 뒤로 향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등이 깊게 파여있는 디자인 때문에 레스티아는 리시언의 숨결을, 맞닿아오는 손의 체온을 그대로 느껴야 했다.

사라락.

얼마 안 가 드레스 자락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모든 상황이 어쩐지 너무 부끄러워서.

레스티아는 볼을 붉히고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레스티아. 걱정 마. 여기에는 나밖에 없어.”

리시언이 애원하듯 말했다.

레스티아는 손을 치우고 자신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리시언을 바라봤다.

그의 목소리가, 태도가, 눈빛이 안정감을 준다.

“……맞아요. 리시언밖에 없어요.”

그 날 밤의 별궁.

리시언의 말처럼 두 사람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레스티아와 리시언은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 * *

베르체스터 공작가의 아침 식사 시간.

마티어스가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리시언 그 자식! 피로연에서 레스티아를 데리고 사라지더니 일주일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다니!”

“형님. 아무리 신혼이라고 해도 그렇지. 황제 폐하께서 본인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조엘 역시 리시언이 근무 태만이라며 항의했다.

하지만 제라르는.

“그래, 신혼이다.”

라는 짧은 말만 한 채, 눈앞에 있는 신문을 읽어 내려갔다.

국혼 이후, 제국의 모든 신문이 레스티아를 극찬하는 내용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황후 폐하, 마법의 새로운 불씨를 밝히다.]

안개섬과 마법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 첫 번째 페이지를 장식했으며,

[리사의 의상실! 문전성시!]

황제와 황후가 입었던 예복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는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천재 디자이너가 재능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황후 폐하 덕분!]

리사의 짤막한 인터뷰와 함께, 레스티아의 도움을 받았던 이들의 짤막한 인터뷰도 함께 실려 있었다.

레스티아가 없는 베르체스터 저택이 허전하기는 했지만…….

막냇동생이 바라던 대로 행복한 신부가 되었으니, 아쉬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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