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0화
베르체스터의 혼담–레스티아 (5)
곤란한 기색이 역력한 레스티아의 표정에 세 남자는 고통스럽게 침음을 삼켰다.
우려했던 것처럼 레스티아는 그들이 자신을 걱정할까 봐 마법 부작용을 숨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
레스티아는 세 남자의 반응이 멋쩍은지 일부러 명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거, 별것 아니에요! 다들 괜히 걱정할까 봐 말하지 않은 거였어요. 그러니까 염려하실 필요 전혀 없어요.”
별것 아니라니, 염려할 필요가 없다니.
그 말이 세 남자의 심장을 찢어발기는 것 같았다.
결국 마티어스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리티! 우리는 네게 마법 부작용이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아무것도 모르고 네가 만들어 준 마석을 마음대로 써 왔단 말이야. 이건, 이건……! 말도 안 돼!”
조엘 역시 평소와 다르게 미소 없는 표정으로 레스티아를 바라봤다.
“그래, 레스티아. 이건 간과할 수 없는 문제란다. 다른 형제들은 몰라도 내게는 의논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 오라버니를 믿지 못했던 거니?”
“네? 그런 게 아니에요!”
레스티아는 고개를 강하게 저으며 부정했다.
“정말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인걸요. 다른 혈통 마법사들처럼 큰 부작용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 부작용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애매해서…….”
큰 부작용이 아니라는 말에 마티어스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리티! 정말? 그러면 혹시 해석하는 자의 마법 부작용도 네가 만든 마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거야? 그런 거지?”
하지만 기대했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 그건 불가능해요. 제 문제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라…….”
“불가능한 거야……?”
화색이 돌았던 마티어스의 얼굴에 다시 절망감이 깃들었다.
“레스티아.”
조엘이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 말은, 네가 만든 마석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불치병이라는 거니?”
레스티아는 고개를 저었다.
“고칠 수 없기는 하지만, 불치병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대체 이건 어떻게 아신 거예요?”
레스티아의 질문에 리시언이 대답했다.
“……안개섬의 장로가 나를 찾아왔어.”
“네?”
“그가 네가 부작용을 숨기고 있다는 걸 알려 주었지.”
레스티아는 당혹스러웠다.
안개섬의 장로가 리시언을 찾아갔다니.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초대장을 보낸 것인데.
초대장에 대한 답변도 없이 왜 갑자기 불쑥 리시언을 찾아가서 해석하는 자의 마법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한 걸까?
레스티아는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하지만…… 역시, 자신의 마법 부작용을 리시언과 가족들이 모르길 바랐다.
정말로 쓸데없이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
그 마음을 그 누구보다 먼저 눈치챈 것은 리시언이었다.
그래서 지금 리시언의 머릿속은 엉망이었다.
마법사가 마법을 쓰는 것은 숨을 쉬는 것과 같은 본능적인 일이다.
리시언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베르체스터 공작가에서 생활하는 동안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없었기에 느꼈던, 목이 타는 듯한 그 갈증을 잊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레스티아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억지로라도 마법을 쓰지 못하게 만들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어떻게 하면 네가 그 능력을 쓰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읽지 못하게 입을 막고, 눈을 가리고, 가둬 두고, 손발을 묶고.
마도서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못하게 몽땅 불태워 버리면…… 너는 안전할까?
그렇게 하면 나는 너를 영원히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미쳤군.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거지?
리시언은 깊어져 가는 생각에서 억지로 벗어나기 위해서 거칠게 얼굴을 훑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은 행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스티아가 불행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리시언은 레스티아를 처음 만난 날, 약속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도 좋다고.
그러니까, 차마,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 오랜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
“……레스티아.”
결국 리시언은 무거운 입술을 애써 움직였다.
“그래, 알았어. 네가 이 문제를 말하고 싶지 않다면, 말하지 않아도 돼.”
모두의 시선이 리시언에게 집중되었고, 동시에 마티어스가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리시언! 너 제정신이야? 리티는 너랑 결혼할 사람인데, 어떻게 그딴 말을 할 수가 있어? 걱정되지도 않아?”
조엘 역시 미간을 와락 구기고는 리시언을 노려봤다.
“맞습니다. 저는 황제 폐하의 결정을 이해할 수가 없군요.”
하지만 리시언은 쌍둥이들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오로지 레스티아만을 응시했다.
그리고 레스티아가 안심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네게 마법 부작용이 있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어.”
“……리시언?”
리시언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담담했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리시언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시언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네가 온리드라스처럼 광인이 된다고 해도 나는 상관없어. 네가 록베스트처럼 실명한다면, 나는 네 눈이 될 거야. 글라리엔처럼 시시때때로 잠에 빠진다면, 언제나 네가 깨어나길 기다릴 거고.”
그리고.
베르체스터나, 라난테처럼 어느 순간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면…….
네 생명이 다하는 날, 내 삶도 끝나겠지.
리시언은 마지막 생각은 내뱉지 않고 속으로 삼켰다.
목숨을 담보로 레스티아를 협박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리시언!”
하지만 레스티아는 리시언이 삼킨 그 뒷말을 알아차리고는 사색이 되었다.
그래서 다급하게 리시언의 양손을 꽉 붙잡고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방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예요? 혹시라도 저한테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로 그러면 안 돼요! 약속해요!”
“…….”
리시언은 대답도,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레스티아가 조금 더 순진했다면 좋았을 텐데, 완벽하게 제 속내를 숨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리시언, 약속 안 할 거예요?”
“말했잖아. 변하는 건 없다고.”
“정말이지……!”
레스티아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리시언의 반응도 그렇고, 조엘과 마티어스의 반응도 그렇고.
아무래도 걱정을 안 시키려면 차라리 사실대로 털어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알았어요. 말할게요. 정말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건데…….”
레스티아는 결심한 듯,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해석하는 자의 마법 부작용을 털어놓았다.
“해석하는 자의 마법 부작용은 ‘끝없는 고난과 불행’이라고 해요.”
“뭐? 고난과 불행?”
이해할 수 없는 뜻밖의 말에 마티어스와 조엘이 동시에 의문을 표했다.
“네. 저도 처음에 듣고 무척 황당했어요. 너무 애매한 부작용이잖아요?”
그 말 그대로 정말로 모호한 부작용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레스티아의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그녀의 짧은 인생은 고난스러웠던 일이 참 많았으니까.
하지만 레스티아는 그 모든 일이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해석하는 자는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아는 것’ 자체가 큰 불행이고 부작용이라고 해요. 그로 인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눈앞의 남자들을 한 번씩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큰 고난을 겪은 것 같지도 않고, 행복해요. 이렇게 동생을 걱정해서 달려와 주는 오라버니들도 있고,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는 리시언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정말로 굳이 말할 필요 없는 부작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레스티아는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하지만 설명이 끝나도, 리시언과 조엘, 마티어스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역시나 걱정하는 눈치.
그래서 레스티아는 조금 심통이 난 목소리로 장난을 쳤다.
“휴, 그런데 어쩌죠? 저, 지금 불행해진 것 같아요.”
세 남자가 깜짝 놀라 레스티아를 바라봤다.
“오라버니들과 리시언을 안심시키는 일이 엄청 큰 고난처럼 느껴져요. 분명, 이 고난이 끝나지 않으면 불행해질 거예요. 아무래도 이게 부작용인가 봐요.”
그러자 마티어스와 조엘이 발 빠르게 대답했다.
“아, 아니야. 리티! 나는 안심했어! 리티 말대로 정말 아무것도 아닌 문제 같아. 그렇지 조엘? 리시언?”
“……그래, 레스티아. 네가 이 오라버니들 때문에 그런 일을 겪어서는 안 될 일이지.”
쌍둥이의 반응에 레스티아는 즐겁다는 듯이 쿡쿡 웃었다.
그리고 리시언은.
한걸음에 다가서 레스티아를 품 안에 꼭 안았다.
뼈가 으스러질 것만 같은 과격한 포옹에 레스티아는 눈을 크게 떴다.
“리시언?”
“……그래. 다행이야. 그런 거라서, 정말, 다행이야.”
리시언은 레스티아가 말한 부작용 따위는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고 여겼다.
고난과 불행?
앞으로 레스티아에게 그따위 것을 겪게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강력한 권력도, 찬란한 금은보화도, 모든 것이 리시언의 발밑에 있었으니까.
설령 작은 돌멩이 하나가 레스티아를 아프게 한다면, 비단 융단으로 제국 전체를 덮을 것이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다행이라고 말하는 리시언의 속뜻을 말 그대로 리시언이 안심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리시언의 단단한 등을 부드러운 손으로 토닥이며 쓸어내렸다.
“그렇죠? 다행이죠?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기면 리시언이랑 의논해서 헤쳐 나가도록 할게요. 우리는 이제 부부가 될 거니까요.”
“그래. 꼭 말해 줘.”
전부 없애 버릴 테니까.
이제 예전처럼 도망치거나, 숨을 필요는 조금도 없으니까.
하지만 리시언은 이 생각 또한 속으로 삼켰다.
자신의 반려가 될 품 안의 여자는 지나치게 올곧고 착해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말할 게 분명하니까.
여태까지처럼 말이다.
그렇게 모든 소란이 정리되었을 때쯤.
레스티아의 방 안에 마법진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마법진에서 안개섬의 장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껄껄 웃으며 레스티아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형제들과 리시언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하! 레스티아! 잘 지냈니? 행복해 보이는구나!”
“장로님!”
레스티아는 눈썹을 좁히며, 친할아버지의 장난에 화가 난 손녀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말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셔서 리시언한테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예요? 장로님 때문에 다들 저를 걱정하게 됐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