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115화 (115/132)

외전 5화

칼란드의 유언장 (5)

“그게 내 아이라고?”

칼란드는 아이를 안고 자신을 찾아온 뜻밖의 불청객에게 살기를 내비쳤다.

코르티잔 살롱의 주인은 그 기세에 눌려 몸을 잔뜩 움츠렸다.

“……예, 그렇습니다.”

레스티아를 품에 안고 당당하게 칼란드를 찾아왔을 때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는 그동안 투자했던 만큼의 돈을 회수해야 하는 자리.

살롱의 주인은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혀를 놀렸다.

“베르체스터 공작님, 일전에 함께 밤을 보내신 하얀 머리의 코르티잔을 기억하십니까? 이 아이는 그 코르티잔이 낳은 아이입니다.”

하얀 머리카락이라.

칼란드는 안나를 기억에서 떠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래, 피곤했던 그 어느 날, 코르티잔 살롱에서 만났던…… 이상하게도 마력이 느껴졌다고 생각했던 그 여자인가. 충동적으로 품에 안았던 그 여자.

“그 여자군.”

칼란드가 안나의 존재를 자각하자, 살롱의 주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예, 죄송합니다. 그 코르티잔은 그날 일한 것이 첫날이어서 저희의 관리가 미흡했습니다.”

“그래. 하지만 왜 아이를 낳기 전에 내게 알리지 않았지?”

충분히 수습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무거운 질책이 쏟아지자, 살롱의 주인은 눈알을 굴렸다.

칼란드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은 안나의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코르티잔 살롱의 주인 입장에서는 칼란드가 강제로 아이를 지우면 아이를 빌미로 돈을 요구할 수가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상품이란 모름지기 온전한 것으로 만들어져야 가치를 지니지 않는가.

그래서 장사꾼답게 진실을 숨기며 말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하하, 여의치 않았다, 고.”

우두둑.

칼란드는 자신이 앉아 있는 의자의 팔걸이를 가볍게 부러뜨렸다.

살롱의 주인은 그 엄청난 힘에 바짝 긴장했다.

“피곤하군.”

칼란드는 지금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근 몇 년 동안 영지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황제가 시키는 일을 하느라 개처럼 돌아다녀야 했다.

스트레스를 풀 곳이 필요했기에 선택했던 유흥이 이런 결과를 불러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문득 병상에 누워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온 부인 아르멜다가 신경 쓰였다.

―정략결혼한 이상, 부부의 의무는 최소한으로 지키겠소. 하지만 그 이상은 서로 요구하지 않기로 하지.

―좋아요. 저도 당신처럼 냉정한 사람은 그냥 파트너 관계가 편해요. 그래야 내가 다치지 않을 것 같아요.

서로 그렇게 말했지만.

아르멜다는 제라르, 조엘, 마티어스를 낳는 동안, 결국에는 칼란드를 사랑하게 되어 버렸다.

칼란드도 그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칼란드는 아르멜다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난 남자였다.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애정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건 그의 피를 이은 세 명의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르멜다는 그런 칼란드의 태도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칼란드의 부족한 부분을 모두 감수했다.

대신, 자신의 부탁을 들어 달라고 하며 황녀의 아들인 리시언을 자식으로 숨겨 키우게 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황가를 생각했을 때 그건 위험한 거래였으나, 칼란드는 아르멜다를 위해 그를 수락했다.

무조건적인 애정은 무조건적인 충성과 동일하다.

칼란드는 베르체스터의 주인으로서 자신에게 충심을 바치는 이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사생아를 낳았다면, 아르멜다가 어떻게 반응할지.

이건 충성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지 않나. 그것도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 말이다.

칼란드는 입맛이 썼다.

하지만 우선 살롱의 주인이 말한 것이 진실인지부터 알아야 했다.

“그래. 그 여자는 어디에 있지?”

“아이를 낳고 사망했습니다.”

칼란드의 얼굴에 짜증이 섞였다.

“여자가 죽었다고? 그렇다면 그게 내 아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려고 찾아온 건가.”

코르티잔 살롱의 주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리 준비해 온 말을 떠들어 댔다.

“베르체스터 공작가의 핏줄이라면 마법을 쓴다고 들었습니다! 문외한인 저는 모르지만, 공작님께서 보시면 분명 한눈에 알아보실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

칼란드는 입매를 비틀었다. 그리고 느긋하게 손을 깍지 끼며 물었다.

“좋다. 하지만 아니라면, 나를, 베르체스터를 기만한 죄를 물을 것이다.”

살롱의 주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안나가 낳은 아이는 칼란드 베르체스터의 자식이 맞다.

조사해 온바, 안나가 만난 남자는 그가 유일했으니까.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래서 조금 전보다 더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이 아이는 분명 공작가의 핏줄을 이은 아이가 맞습니다!”

“아이를 내게 보여라.”

곧바로 칼란드가 앉아 있는 책상 위로 손바닥 크기의 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칼란드는 아이가 너무 작다고 생각했다. 제라르, 조엘, 마티어스의 갓난아기 시절의 반쪽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살아 있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작게 들숨 날숨을 내쉬고 있는 아이는…….

“베르체스터의 형질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군.”

하얀 머리카락과 회색 눈이라니.

어미를 닮았다고 치더라도, 회색 눈을 가진 이는 베르체스터 공작가의 피를 이었다면 태어날 수 없는 존재였다.

“예?”

코르티잔 살롱의 주인은 당황한 목소리로 허둥지둥거렸다.

“그, 그게 무슨. 아닙니다! 공작님! 그 아이는 공작님의 아이가 맞습니다!”

“베르체스터가 가진 속성 마력은 눈에 드러난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군.”

칼란드는 책상 위로 마력 중화석을 하나씩 꺼내 들었다.

붉은색, 푸른색, 녹색, 자색의 마력 중화석이 레스티아의 곁에 일렬로 배치되었다.

그리고 마력 중화석 중 하나가 회색으로 변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력 중화석에 반응하지도 않는군. 이건 이 아이가 마법도 쓸 수 없다는 뜻이다.”

마법사에게 마법은 본능이다.

베르체스터의 핏줄은 태어난 순간부터 마력 중화석의 마력을 받아들일 줄 알았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그저 그 곁에서 곤히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나를 기만했군.”

칼란드는 버러지를 쳐다보듯 코르티잔 살롱의 주인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그와 동시에 칼란드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살롱의 주인을 포박했다.

“고, 공작님!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년이 공작님을 속인 겁니다! 저는, 저는 죄가 없습니다!! 아아아악!”

살롱의 주인은 비명을 지르며 끌려 나갔다.

칼란드는 물끄러미 레스티아를 내려다봤다.

아이는 그 와중에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정말 죽은 건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작은 아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갓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베르체스터에게 흥정을 할 생각을 하다니.

칼란드는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이의 입매가 자신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분명,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다.

생각에 잠겨 있는 칼란드에게 충실하게 임무 수행을 하고 돌아온 기사가 보고했다.

“공작님, 살롱의 주인은 처리했습니다. 그 아이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이의 어미는 죽었다고 했나.

그답지 않게 조금 신경 쓰였다.

칼란드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솜털 같은 아이의 하얀 머리카락을 살며시 쓸었다. 그러자 아이가 간지러운지 버둥거렸다.

칼란드는 곧바로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로부터 시선을 떼어 냈다.

그리고 수하에게 안나에 대하여 면밀하게 조사해 오라고 지시했다.

후에 칼란드가 알게 된 것은, 안나가 안개섬과 연관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안개섬. 모르카티움 황가를 피해 도망친 마법사 집단.

살롱에 있었다는 마도서.

안나에게서 느껴졌던 이상한 마력.

칼란드는 죽은 안나가 해석하는 자였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만일 해석하는 자가 마법사라면, 이 아이는 베르체스터의 형질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정말로 내 아이일 수도 있겠군.”

당장이라도 록베스트를 찾아가 진실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칼란드는 사생아에게 그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괜히 몸이 아픈 아르멜다가 사생아의 존재를 알고 충격에 빠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어차피 자식은 이미 셋이나 있고, 괜히 해석하는 자 같은 것을 집안에 두어서 황가와 척을 질 위험성을 떠안고 싶지 않았다.

그건 리시언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니까.

“이 아이의 친척에게 돈을 보내 양육하게 하도록.”

짧은 명령을 끝으로 레스티아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유언장에 기록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

* * *

……아이의 이름은 레스티아.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니 베르체스터라고 인정할 수 없다.

하지만 만일 어미의 피를 이어 해석하는 자로 태어났다면 황가와 연루되어 피곤한 일이 생길 것이다.

하여 나는 이 아이의 존재를 숨기고자 한다.

허나,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여 다음 대 베르체스터 공작을 위해 기록을 남긴다.

“아버지다운 결정이었군.”

제라르는 칼란드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 일을 처리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베르체스터 형제 중에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자신이었으니까.

하지만 제라르는 칼란드보다 책임감이 강했고, 베르체스터와 자신의 위치에 대해 높은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카트리나, 이 유언장의 진실 여부를 알고 싶다.”

록베스트의 마안이 어렵지 않게 레스티아가 제라르의 이복동생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제라르는 레스티아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조사했다.

술주정뱅이 삼촌 밑에서 꽃을 팔며 겨우 살고 있었다.

베르체스터의 피를 이은 자가 빈민가에서 살고 있다니.

제라르는 레스티아를 공작가로 데려와 자신의 동생으로 보살피기로 정했다.

레스티아 베르체스터가 해석하는 자라면 그 재능을 꽃피우게 할 것이다. 황가와 맞서 싸울 힘을 키워서라도 말이다.

높은 자긍심이 시킨, 조금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제라르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아니, 인생에서 했던 수많은 선택 중 가장 잘한 일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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