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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113화 (113/132)

외전 3화

칼란드의 유언장 (3)

안나의 몸속에서 불안전하게 요동치던 마력들이 마법사인 칼란드를 만나 안정감을 느낀 것이다.

“무슨 짓이지?”

칼란드의 붉은 홍채가 자신의 품에 매달린 안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러자 안나가 작은 입술을 움직여 애원하듯 속삭였다.

“윽…… 조금만, 더 이대로 있어 주세요……. 부탁드려요.”

안나의 이성은 이미 침대에 쓰러졌을 때 날아가 버렸다.

지금은 생존에 대한 본능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눈앞에 있는 남자를 껴안고 있을수록 몸 안에서 정신없이 소용돌이치는 기운들이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애원하듯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후 상황을 모르는 칼란드의 입장에서는 코르티잔이 자신을 유혹하는 것이라 여겼다.

평소와 같았으면 귀찮고 성가시다며 상종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칼란드는 자신이 원할 때만 여자를 취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자신의 품에 매달린 이 여자가 지나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여자가 자신을 유혹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면, 무척이나 성공적이었다.

그렇다면, 딱히 거절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코르티잔 살롱은 애초에 이런 욕망을 위해 존재하는 곳인데.

그래서 별 의심 없이 안나를 품에 안았다.

* * *

다음 날, 안나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든 것이 잘못된 후였다.

‘맙소사!’

대체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인 건지!

머릿속도 몸 상태도 온통 엉망이었다.

그 마도서.

아무리 마도서가 한번 보고 싶었다고 해도 그렇지, 고작 그깟 책 한 권 때문에 이렇게 엄청난 일을 벌일 줄이야. 수치스럽고, 또 민망하기만 했다.

그래서 눈을 뜨자마자 침대를 벗어나 저택 밖으로 도망쳤다.

자신과 충동적으로 밤을 보낸 남자가 누구인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사라졌군.”

칼란드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안나가 도망치듯 자리를 떠난 이후였다.

안나가 사라진 자리에는 미약한 마력이 잔향처럼 남아 있었다.

‘이상하군. 왜 그 여자한테서 마력이 느껴지는 것 같았지?’

이름도 모를 코르티잔에게서 마력을 느끼다니 기이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마력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칼란드가 만났던 마법사 가문 중에 그런 종류의 마력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아침이 밝으면 안나에게 그 마력의 정체에 관하여 묻고자 했다. 하지만 눈을 떠 보니 그 여자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공작님, 간밤에는 푹 주무셨습니까.”

코르티잔 살롱의 주인이 허리를 굽히며 아침 문안을 건넸다.

“어젯밤 공작님께서 방문해 주신다고 하여서 최고의 파티를 준비했는데, 그냥 쉬다 가신다고 해서 아쉽기만 합니다. 다음번에 또 방문해 주시면 더 성의껏 모시겠습니다.”

“……어젯밤 내 방에 들어온 코르티잔은 돌아갔나?”

칼란드의 말에 코르티잔 살롱의 주인은 깜짝 놀라 눈알을 굴렸다.

“예? 코르티잔이요? 고, 공작님 방에 코르티잔이 들어왔습니까?”

칼란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그의 명령에 따라 코르티잔을 들여보낸 기억이 없는데, 이게 무슨 말인지.

혹여 코르티잔 중 하나가 칼란드 베르체스터의 마음을 사려고 허튼수작이라도 부린 건가?

살롱의 주인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자의 생김새를 말씀해 주시면 크게 벌하도록 하겠습니다.”

칼란드는 고개를 저었다.

“벌할 필요 없다.”

“……예?”

코르티잔 살롱의 주인은 칼란드의 이런 반응을 신기하게 여겼다.

칼란드 베르체스터에게 있어 여자는 하룻밤의 소모품이자 이용 도구에 불과했다. 항상 그 도구가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을 거슬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 코르티잔은 마음에 들었던 걸까. 그러고 보니까 코르티잔의 안부를 묻는 것도 처음이었다.

대체 누구길래?

코르티잔 살롱의 주인은 그 대단한 코르티잔을 빨리 찾아봐야겠다고 여겼다. 칼란드 베르체스터의 마음에 들다니, 얼마나 대단한 인재인가.

칼란드는 생각에 잠긴 듯 가볍게 턱을 쓰다듬고는 물었다.

“……혹시, 어젯밤 이곳에 마법사가 방문했나?”

“마법사 말입니까? 아니요. 공작님 외에는 아무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마도구를 사용한 자가 있나?”

“예? 아닙니다. 마도구 같은 것은 쓰지 않았습니다.”

살롱의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어제 손님 중 한 분께서 마도서를 한 권 가지고 오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그렇군.”

“……왜 그러십니까?”

“흠.”

칼란드는 잠시 고민했다.

확실치도 않은 마력의 잔향 때문에 그 코르티잔에 대해 더 알아볼 필요가 있을까.

지난밤, 자신이 피곤해서 착각했을 수도 있다. 코르티잔 살롱을 찾기 전, 갑작스러운 황제의 명령에 따라 한바탕 마법을 쓰고 돌아온 직후였으니까.

“아니, 되었다.”

그냥 조금 거슬렸을 뿐이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굳이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칼란드에게 그날 밤은 그저 그런 밤 중 하나였을 뿐.

그랬기에 그날의 일은 까맣게 잊혔다.

* * *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온 안나는 심한 몸살에 걸린 것처럼 앓았다. 가만히 있어도 식은땀이 나고,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마도서를 읽은 탓에 마력이 불안정하게 꿈틀거리며 몸속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칼란드와의 하룻밤은 그냥 잠깐의 응급처치에 불과했을 뿐.

안나의 곁에는 잘못된 것을 되잡아 줄 수 있는 정보도, 마법사도,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일을 쉴 수 없었고, 며칠 내내 오빠에게 추궁을 당해야 했다.

“안나, 너 그날 밤에 어디서 뭘 하다가 왔어?”

“……신경 쓰지 마.”

“말해 봐. 그날 네가 입고 왔던 드레스는 뭐였어? 네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없을 만큼 고급스러워 보이던데.”

안나는 인상을 썼다.

왜 이렇게 집요한 걸까. 언제부터 그렇게 동생의 일에 관심이 많았다고.

“신경 쓰지 말라니까. 나, 몸이 안 좋아. 그러니까 그만 괴롭혀.”

그러자 되려 오빠가 화를 냈다.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네가 그날 벌어 온 돈이 얼마나 많은데!”

“뭐? 돈?”

오빠가 뜻밖에도 돈 이야기를 꺼내자, 안나의 목소리가 커졌다.

“돈이라니? 오빠, 그게 무슨 말이야?”

안나의 외침에 오빠는 돈이 든 주머니를 안나의 앞에 내보였다.

“며칠 전에 웬 여자가 찾아와서 주던걸. 살롱의 주인이라나?”

코르티잔 살롱의 주인이 안나를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 그 여자가 뭐라고 그랬어?”

“재능이 보이는 것 같으니까 일을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전해 주라던데. 너라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뭐? 오빠는 그걸 왜 받았어?”

“안나,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우리 형편에 팔 수 있는 건 다 팔아서 돈을 벌어야지. 네가 무슨 일을 하든 나는 이해할 수 있어.”

안나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오빠, 미쳤어? 나는 아무것도 팔지 않았어!”

안나는 오빠로부터 돈주머니를 빼앗기 위해 아픈 몸을 던졌다.

“그것 내놔! 그 돈 돌려주고 와야겠어!”

하지만 안나는 돈주머니를 빼앗지 못한 채, 오빠의 강한 완력에 의해 바닥에 내쳐졌다.

“뭐라는 거야? 멍청한 계집애가. 화대를 돌려주겠다고? 세상 물정 모르기는.”

“말했잖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

하지만 오빠는 안나의 말을 잘 들어 보지도 않은 채, 앞으로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오라는 말을 하고는 집 밖으로 나가 버렸다.

“으…….”

안나는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푹 쉬고 싶었지만, 외출 준비를 해야 했다.

식당 일을 쉴 수 없었으니까.

안나가 창백한 안색으로 밖으로 나서자, 정신이 온전치 못한 어머니가 다가왔다.

“언니, 아파?”

“아, 엄마. 괜찮아, 나는.”

“아픈 거 같은데…… 내가 간호해 줄게. 누워서 쉬어.”

“아니야, 엄마. 나 밖에 나갔다 올 테니까, 평소처럼 집에 잘 있어야 해. 알았지?”

안나는 몇 번이나 당부하고 집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안나의 어머니는 물끄러미 주방을 바라봤다.

“우리 안나, 아플 때마다 호박 수프를 먹이면 나았는데. 호박 수프…… 어떻게 만들더라……?”

* * *

안나는 제일 먼저 코르티잔 살롱을 찾아갔다.

“어머, 아가씨. 어서 와. 일할 마음이 든 거야?”

코르티잔 살롱의 주인은 안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하지만 안나는 그 환대에 정색하며 차갑게 대꾸했다.

“저희 오빠한테 돈을 줬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지금 당장은 갚지 못하지만, 노력해서 갚을게요.”

“어머, 왜? 일한 대가는 가져가야지.”

“그날 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대가는 필요 없어요.”

“아니, 제대로 일한 게 맞아. 그날 밤, 공작님과 있었잖아?”

순식간에 안나의 표정이 굳었다.

살롱의 주인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가씨, 어떻게 한 거야?”

“뭘요?”

“공작님은 이곳에서 만난 코르티잔에게 개인적인 관심을 표한 적이 없어. 그런데 아가씨는 집에 돌아갔는지까지 묻던데?”

안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실수였을 뿐이에요.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하아~ 아가씨, 단호하네. 심지가 굳어. 그럼 나도 더는 설득하기 어렵지. 그래도 혹시 마음이 변하면 언제든지 환영이야.”

코르티잔 살롱의 주인은 완고한 태도와는 다르게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안나를 의문스럽게 바라봤다.

“그런데 몸이 안 좋아?”

“……그냥 몸살 기운이 있어서요.”

“으흠~ 그래. 참, 그런데 내가 아가씨한테 피임약을 줬던가? 별일 없으면 다행이고.”

임신?

생각지도 못한 단어를 듣자 안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아닐 거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냥 하룻밤이었을 뿐인걸.

안나는 몇 번이고 스스로 최면을 걸듯 되새기며 코르티잔 살롱 밖으로 나와 일터로 향했다.

하지만 몸이 안 좋았으므로 실수를 연발했다.

쨍그랑.

안나가 서빙을 하다가 접시를 세 개째 깼을 때, 식당 주인이 안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안나, 아무래도 집에 가서 푹 쉬는 게 좋겠다.”

“네? 하지만…….”

“성실한 것도 좋지만, 아플 때 일하는 것은 민폐란다. 실수가 많잖니.”

결국 안나는 집으로 걸음을 돌려야 했다.

식당 주인의 말대로 차라리 지금은 푹 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집 주변이 어수선했다.

집의 방향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설마……!”

안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아픈 것도 잊고 집으로 향해 달려갔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안나의 작은 집이 화마에 휩싸여 있었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엄마!”

안나는 곧바로 비명을 지르며 엄마를 찾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엄마!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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