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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108화 (108/132)

108화

찬란한 황금빛 눈동자와 그 황금빛을 줄곧 쫓던 회색 눈동자가 서로를 또렷이 마주했다.

레스티아는 자신을 응시하는 짙은 눈썹 아래 자리 잡은 선명한 금안을 바라봤다.

감히 가질 수 없다고 여겼던, 고귀하고, 아름답고, 따뜻하면서도 위험한 그것이 제 바로 앞에 놓여 있었다.

불현듯, 자신은 이것을 처음 마주했던 순간부터 줄곧 탐내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삼촌과 살던 그 오두막 밖으로 벗어나, 지금 이곳에서 이렇게 리시언을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

레스티아가 대답이 없자 리시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왜 대답이 없어? 무섭게.”

그의 재촉에 레스티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리시언 님. 저는…… 무언가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오라버니들께서 값비싼 선물과 용돈을 주셔도 줄곧 부담스럽기만 했어요.”

옛 생각에 리시언의 입꼬리가 저절로 휘었다.

“그래, 넌 항상 그랬지.”

“네. 그런데 이제 보니까 제가 욕심을 낸 유일한 것이 리시언 님이었던 것 같아요.”

“뭐?”

“계속 곁에 있고 싶어서 맴돌았어요. 리시언 님이 떠날까 봐 줄곧 무서웠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리시언 님의 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형태가 결혼이라면, 하고 싶어요.”

수줍으면서도 단호한 결심이 담긴 답변이었다.

그것이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알고 있는 걸까.

“레스티아.”

레스티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시언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레스티아의 허리를 잡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레스티아는 꼼짝없이 리시언의 단단한 가슴팍에 얼굴을 묻어야 했다.

“리, 리시언 님!”

문득, 지금 리시언의 몸에 걸쳐진 새하얀 셔츠가 너무 얇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리시언의 뜨거운 체온과 쿵쿵 울리는 심장 소리를 여과 없이 레스티아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그 거친 격동에 레스티아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리시언은 레스티아를 놓아주지 않았다.

“저어……?”

레스티아가 가까스로 고개를 빼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리시언은 두 눈을 꼭 감고 레스티아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정말, 정말로 나랑 결혼해 주는 거야? 그 말, 사실이야?”

레스티아를 움켜잡듯 꼭 끌어안은 양 손아귀가 가볍게 떨렸다.

그게 마음 아파서, 레스티아는 다시 대답했다.

“네. 결혼해요. 우리.”

하지만 리시언은 그 사실이 계속해서 믿기지 않는 듯, 또다시 애처롭게 물었다.

“정말이지? 네 가족이 허락하지 않아도? 그럴 거지?”

“네?”

“……젠장. 이런 것 물어봐서 미안해. 너무 믿기지 않아서 무서워……. 너는 착하고, 가족들을 사랑하니까……. 이러다가도 베르체스터 형제들의 말을 따를까 봐 나는…….”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

여태까지 보아왔던 리시언의 모습 중에 가장 약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리시언 님…….”

레스티아는 양팔을 쭉 펴서, 리시언의 어깨를 꼭 안아주었다.

이렇게 갑작스레 베르체스터 형제들을 언급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지난날 제라르가 리시언에게 모진 말을 한 것이 분명했다.

레스티아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리시언의 귓가에 조곤조곤 제 생각을 말했다.

“오라버니들은 신경 쓰지 말아요. 제가 여기를 어떻게 왔다고 생각하세요?”

리시언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제라르가 리시언에게 레스티아를 만날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엄포하지 않았던가.

물론, 리시언은 언젠가 제라르가 레스티아를 인정하리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건 상당히 빨랐다.

리시언은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레스티아를 바라봤다.

“……어떻게 온 거야?”

레스티아는 곧바로 방긋 웃어 보였다.

“저는 이제 어른이고, 오라버니들의 반대는 제게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혹시라도 오라버니들이 리시언 님을 괴롭히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알았죠?”

“정말……?”

“그럼요. 오늘처럼 쓰러졌으면서도 말도 안 하고 그러면 안 돼요.”

레스티아는 그렇게 말하곤 고개를 들어 리시언의 반듯한 이마에 쪽 하고, 입술을 찍었다.

애정이 담뿍 담긴 말과 행동에 리시언은 그제야 안도한 듯, 떨리던 손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오랫동안 생각해왔고, 또 지금 당장 생각나는 말을 입 밖으로 망설임 없이 꺼냈다.

“사랑해, 레스티아. 나는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 정말로 사랑해.”

바라보는 시선이 달콤했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사랑 고백에 레스티아는 수줍게 볼을 붉혔다.

“저도. 마찬가지인걸요. 사랑해요. 리시언 님.”

그 대답과 동시에 리시언의 양손이 레스티아의 뺨에 닿았고, 두꺼운 엄지손가락이 레스티아의 도톰한 진홍빛 입술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아주 사소한 스킨쉽이었으나, 두 사람은 이 행위가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자극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스티아도 리시언도 그 감각에 두려움을 느끼지도, 물러나지도 않았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러운 것이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레스티아.”

“리시언 님.”

리시언의 입술이 레스티아의 입술 가까이 다가섰고, 레스티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리시언은 말없이 흘러내린 레스티아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원래는 이 새하얀 머리카락 위에 티아라를 얹어주고 키스를 하려고 했다.

최고의 자리에서 가장 완벽한 것만 주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 중요할까.

서로 마음이 통한 지금.

진심을 주고받은 이 순간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사랑해.”

또 한 번의 나직한 사랑 고백과 함께 마침내 입술이 겹쳐졌다.

애처롭고, 뜨거워서 온몸이 녹아 버릴 것만 같은 격정적인 입맞춤이었다.

부드럽게 맞닿은 여린 속살은 다디달아서, 탐하고 탐해도 갈증이 났다.

그래서 리시언은 만족을 모르고 레스티아를 몰아붙였다.

“하아……. 리시언 님.”

레스티아는 그 탓에 몇 번이고 벅찬 숨을 내쉬어야 했다.

늘 따뜻하다고 생각했던 리시언의 체온은 지금 타오르듯 뜨거웠다.

조금 전까지 애처롭게 애정을 갈구하던 그의 본심이 키스를 통해 끝도 없이 절절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리시언이 품고 있는 정염은 그가 수도 없이 만들어 보였던 불꽃과도 같았다.

“사랑해. 레스티아.”

쉴새 없이 쏟아내는 고백의 말은 너무 감미로워서, 레스티아로 하여금 눈앞의 남자를 거절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어느새 리시언은 레스티아를 침대 위로 눕힌 채, 입술은 물론이고 목덜미, 손가락 끝 하나하나에 전부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이 여자의 모든 것을 제 것으로 만들겠다는 듯 말이다.

그리고 레스티아는 저항하지 않고 그것을 수락했다.

하지만.

검술로 단련된 리시언의 큼지막한 손이 스커트를 들어 올리고 허벅지에 닿자, 레스티아는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얕게 저항하고 말았다.

“읏! 자, 잠깐만요.”

“아……, 미안해.”

레스티아의 첫 저항에, 리시언은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는 아쉬운 듯 물러섰다.

순진한 아가씨를 상대로 무슨 짓을 한 건지.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려는 듯, 얼굴을 훑어 내리곤 레스티아의 곁을 벗어나 침대 밖으로 몸을 일으켰다.

“내가 너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하필 장소가 침실이라서.”

그리고 양쪽 입꼬리를 애써 말아 올리며 농담을 건넸다.

“그러니까, 왜 겁도 없이 남자 방에 멋대로 들어왔어. 내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네? 그건…….”

레스티아는 무어라 말하기 위해 입을 뻐끔거리며 리시언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인제 보니 지나치게 얇다고 생각했던 리시언의 셔츠는 잠옷이었고, 단추는 반쯤 풀어헤쳐져서 탄탄한 가슴 근육이 훤히 보였다.

왜 여태까지 리시언이 저런 상태였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까?

이제 보니 레스티아는 리시언이 헐벗고 있는 침실에 멋대로 침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레스티아가 얼굴을 붉히자, 리시언은 셔츠의 단추를 잠그며 뒤돌아섰다.

“이제, 괜찮으니까 돌아가 봐. 내일 내가 다시 베르체스터 저택으로 찾아갈 테니까.”

하지만 레스티아는 침대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 말했다.

“저, 안 갈 거예요.”

“뭐?”

리시언은 자신이 들은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레스티아를 돌아봤다.

“오늘 밤에는 리시언 님 곁에서 반지가 효과가 있는지 지켜보기로 결심했는걸요. 아직 미완성이란 말이에요. 그거.”

“……밤새 내 곁에 있겠다고?”

“네.”

“너 정말…….”

리시언은 깊게 숨을 내쉬며 한 손으로 거칠게 얼굴을 한번 쓸어내렸다.

커다란 손아귀에 가려져 있다가 드러난 금안이 맹수처럼 빛났다.

리시언은 경고하듯 말했다.

“밤새 키스할 거야.”

그러고는 위협적으로 레스티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레스티아는 여전히 침대에 얌전히 앉아서 제게로 다시 다가오는 리시언을 맞이했다.

“괜찮아요.”

“……키스보다 더한 것도 할 거야.”

“상관없어요. 저는 리시언 님의 연인이고, 이제는 약혼자잖아요. 그리고 성인이고요. 두렵지 않아요.”

“조금 전에는 하지 말라더니.”

“그건, 처음이라서 어색해서 그런 거였…… 앗.”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시언이 다시 침대 위로 올라와 레스티아 입술을 덮쳤다.

폭신한 침대 시트가 다시금 두 사람의 무게만큼 파였고, 레스티아는 속절없이 그 웅덩이에 파묻혀 뜨거운 입맞춤을 나눠야 했다.

“리, 리시언 님. 그렇다고 이렇게 갑자기, 읏!”

단단한 두 팔 한가운데 자리 잡은 레스티아가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리시언은 더 이상 레스티아의 거부에 개의치 않아 하며 귓불에 여유롭게 입술을 맞추며 속삭였다.

“개인적으로 오늘 밤 이후로 바꿨으면 하는 게 있어.”

“뭐, 뭔데요?”

“네 말대로 이제 연인이고, 약혼자고, 성인이니까…… 오늘 밤부터는 그 호칭부터 바꾸자.”

“호칭이요?”

“나를 언제까지 리시언 님이라고 부를 생각이야? 어렸을 때는 편한 대로 부르라고 했지만, 이제는 아니잖아. 앞으로는 이름으로만 불러.”

“하, 하지만 리시언 님.”

“틀렸어.”

단호한 지적과 함께 리시언의 손이 또다시 스커트 안으로 들어왔다.

“읏…… 리시언 님, 잠깐만요.”

“또.”

허벅지에 닿은 손이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을 훑기 시작했다.

“리시언 님. 앗.”

“더 해봐. 제대로 부를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보자.”

그날 밤, 레스티아는 침대 위에서 몇 번이고 리시언의 이름을 불러야 했다.

종국에는 그가 원하는 호칭으로 완벽하게 불렀음에도, 리시언은 만족을 모르는 굶주린 맹수처럼 레스티아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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