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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101화 (101/132)

101화

안젤라는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확실해. 꿈속에서 키시어스 대공이 네게 황족만 쓸 수 있는 티아라를 선물했는걸.”

“응? 티아라?”

“그래. 그러니까, 나는 권력자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예정이라는 거지! 나를 무시하던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 너무 궁금해!”

그 사실이 기쁜 듯, 안젤라는 큰 소리로 까르륵 웃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었음에도 레스티아의 어깨는 아직도 축 처져 있었다.

“그렇지만, 리시언 님의 곁에 있기에 나는 너무 많이 부족한걸…….”

“무슨 소리야, 레스티아.”

안젤라는 손을 뻗어 레스티아의 양손을 꼭 잡아 주었다.

“쓸데없는 걱정은 흘려버려.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데, 왜 괜히 걱정하는 거야? 미래는 정해져 있고, 너는 과정만 신경 쓰면 돼.”

“과정?”

“그래. 레스티아. 우리가 지금 이렇게 계속 친구로 지내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과거, 안젤라는 자신과 레스티아 사이가 멀어질까 봐 두려워했다.

저 스스로 두 사람이 친구가 된다는 예언을 했음에도 그 사실을 못 미더워했다.

하지만 안젤라와 레스티아는 멀어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냈어도, 마음이 잘 맞았고, 계속해서 친구로 지내기 위해 노력했으니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레스티아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가 깨달은 것처럼.

“고마워, 안젤라.”

안젤라의 말 덕분에 용기가 생겼다.

“나, 네 예언이 맞을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대로 리시언과의 관계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리시언을 위한 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역시,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부족하다면 노력해서 증명해 보이면 된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응, 응! 레스티아. 이제야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왔네. 다행이야!”

레스티아의 표정이 밝아지자, 안젤라는 양팔을 벌려 레스티아의 어깨를 한번 꼭 껴안아 주었다.

레스티아는 새삼 안젤라의 솜사탕같이 달콤함 마력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앗, 안젤라. 오랜만에 만났는데, 너무 내 이야기만 한 것 같아.”

레스티아는 한결 밝아진 모습으로 안젤라의 안부를 물었다.

“최근에 몸 상태는 좀 어때? 미래에 대한 꿈은 꾸지 않는 거야? 마력 중화석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으니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기면 꼭 말 해줘야 해.”

“으으응? 신경 쓰이는 일?”

신경 쓰이는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응.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다시 살펴봐야 하니까.”

안젤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레스티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기. 이건 비밀인데. 이상한 꿈을 꾸긴 꿨어.”

“이상한 꿈?”

“응. 마티어스 오라버니랑 커다란 무도회장에서 또 춤을 추는 꿈이었어.”

“마티어스 오라버니와?”

안젤라의 얼굴이 순식간에 자신의 홍채 색만큼이나 눈에 띄도록 선명한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몰라, 몰라. 성년제 때 같이 춤춘 게 즐거워서 기억에 남은 거겠지? 예언 같은 건 아니겠지? 내, 내가 마티어스 오라버니랑 그렇게 즐겁게 춤출 리가 없잖아? 그치? 이상하게 계속 신경 쓰여서.”

당황한 나머지 다다다 쏟아내는 말에는 걱정보다는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음, 안젤라.”

레스티아는 지금 안젤라의 표정이 자신이 리시언을 생각할 때와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레스티아는 이 사실을 말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질문했다.

“혹시…… 마티어스 오라버니에게 호감이 있는 거야?”

“뭐, 뭐?”

안젤라는 곧바로 크게 당황한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 레스티아 너도 참! 마티어스 오라버니처럼 짓궂은 사람은 정말 별로야! 아니, 그게…… 네 오라버니를 나쁘게 평가해서 미안하긴 한데. 객관적으로 그, 그렇잖아?”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잔뜩 당황해서 허둥대는 목소리가 사실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레스티아는 안젤라가 자신의 옆에 놓아둔 장미목 지팡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안젤라 역시 무도회에 선다는 것을 예언했음에도, 그 무도회에 서기 위해서 걷기 연습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젤라. 아무래도, 그 꿈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 그렇지?”

레스티아는 모르는 척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래. 우리 같이 차 마실까? 얼마 전에 조엘 오라버니가 맛있는 간식을 사다 주셨거든.”

“응, 좋아! 조엘 오라버니의 간식 고르는 안목은 정말 대단하시니까 말이야.”

안젤라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안젤라가 돌아간 후, 레스티아는 다시 책상에 앉았다.

‘안젤라 덕에 미래를 확신하게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그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해.’

아침까지만 해도 사라졌던 의욕이 어느새 되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제라르를 설득하는 방법은 큰 숙제로 남아 있었다.

어쩌지.

제라르 오라버니를 단번에 설득하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작은 것부터 레스티아가 마냥 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다면…… 역시 그걸 만들어 선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우웅-.

레스티아의 회색 홍채 위로 선명한 황금색 마법진이 생겨났다.

지금이라면 오랫동안 고민했던 그것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레스티아가 방 밖으로 나오지 않은 지 며칠이 지났다.

제라르는 집무실에서 헤일록의 보고를 받았다.

“레스티아는?”

“예. 아가씨께서는 많이 괜찮아지셨습니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셔서 많이 걱정했지만, 며칠 전부터 식사도 하시고 가볍게 산책도 하고 계십니다.”

“다행이군.”

역시, 사랑이 없어도 사람은 살아가기 마련이다.

제라르는 다시 한번 레스티아를 똑똑한 아이라고 평가했다.

처음에는 감정에 휩싸여서 위험한 길을 선택할 뻔했겠지만, 이제는 냉정을 되찾았다고 여겼다.

리시언과의 관계가 완벽하게 정리되면 그때쯤 기분을 풀어주면 되겠지. 레스티아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악역 정도는 몇 번이고 도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레스티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라르 오라버니, 저예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마음을 정리하고 대화를 나누러 온 것일까?

꽤 오랫동안 원망의 말을 들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생각보다 일렀다.

하지만 내심 레스티아를 걱정하고 있었기에, 제라르는 서류를 옆으로 치우며 그녀를 집무실 안으로 들였다.

“들어오거라.”

곧장 헤일록이 허리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섰고, 이어서 레스티아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이 상했군.”

오랜만에 마주한 레스티아의 얼굴은 수척해져 있었고, 은회색 눈동자는 차분하기만 했다.

하지만 조엘과 마티어스가 ‘형님. 레스티아를 죽일 생각입니까? 이대로는 정말 큰일 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항의했을 때 묘사했던 모습보다는 나아 보였다.

“그래, 그동안 머리는 좀 식혔나.”

그 질문에 레스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라버니. 저한테 하셨던 말씀…… 잘 생각해봤어요. 오라버니께서 저를 걱정하고 계신다는 것도 무척 잘 알았어요.”

그 말에 굳게 일자로 닫혀 있던 제라르의 입매가 느른하게 풀렸다.

“그래. 다행이구나.”

“하지만 저는 리시언 님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어요.”

“뭐?”

원치 않았던 대답이 나오자, 느른하게 풀려 있던 제라르의 입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단단하게 일자로 굳었다.

푸른 호수 같은 눈동자가 순식간에 짙게 가라앉았다.

“현명한 선택을 할 줄 알았더니만, 고작 생각해낸 것이 그것인가? 분명 말했을 텐데. 그 자리는 힘들고 괴로운 자리라고. 나는 그 힘든 일들을 네가 겪기를 바라지 않는다.”

레스티아는 순식간에 집무실 안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물 속성 마법사인 제라르가 화를 낼 때면, 항상 이렇게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일렁거렸다.

그 기운은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이전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멈추어 서 있지 않았다.

“네. 알아요. 물론 힘들 거예요. 상처받을지도 몰라요.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죠.”

그리고 줄곧 고민하고, 생각했던 바를 분명히 전달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야 겨우 곁에 있을 수 있게 됐는데,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아무것도 안 해보고 놓치고 싶지 않아요.”

“……레스티아 베르체스터.”

제라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레스티아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커다랗고 어두운 그림자가 순식간에 레스티아의 몸 위로 드리워졌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너는 너무 약해. 그리고 약한 것은 쉽게 죽기 마련이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되려 양 주먹을 꼭 움켜쥐고 당당히 말했다.

“약하지만, 무능하지 않아요. 제힘으로 저를 지키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며 살 거예요. 저는 이제 어른인걸요.”

제라르의 미간이 순식간에 좁혀졌다.

“고집불통이구나.”

그에 질세라 레스티아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당장 허락해 달라고 떼쓰지는 않겠어요. 하지만 하나씩 증명해 보일게요. 적어도, 제가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지켜보다가 판단해주세요.”

“……증명이라.”

문득 리시언이 제라르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기 하자고 했던가.

-레스티아가 네 생각을 바꾸게 할 경우, 그때는 군말 없이 레스티아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으로. 어때?

레스티아가 지금 꺼낸 말은 리시언의 말과 비슷했다.

무슨 꿍꿍이속인지.

제라르는 리시언과 레스티아가 함께 무슨 계략을 세웠나 싶어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래, 좋다. 하지만 네가 그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셈이지?”

레스티아는 재빨리 제라르를 향해 작은 상자와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제라르의 눈이 커졌다.

편지에 새겨져 있는 문양이 익숙했다.

양 끝 접시에 각각 하나의 구슬이 놓여 있는 천칭.

록베스트 백작가의 인장이었다.

레스티아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제일 먼저, 록베스트 백작가의 카트리나 님을 저의 최측근으로 만들어 보이겠어요.”

“……카트리나를?”

“네. 카트리나 님은 진실의 유무를 파악할 수 있는 분이니까, 제 곁에서 큰 도움을 주실 수 있겠지요. 그분이 도와주신다면 사람의 악의와 속임수는 언제든지 피해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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