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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98화 (98/132)

98화

똑똑똑.

방문 밖에서 익숙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일어나셨나요? 도라예요. 세숫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지금 들어갈게요!”

레스티아는 깜짝 놀라 재빨리 눈을 뜨고 상체를 일으켰다.

“앗! 도라, 잠깐만……!”

세상에, 깜박 잠들고 말았다.

리시언이 곁에서 잠들어 있는데, 도라가 들어와서 이 모습을 보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런데, 눈을 크게 뜨고 좌우를 살펴봐도 리시언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

그러고 보니까, 침대에는 언제 누운 거지?

분명 리시언과 같이 손을 잡고 소파에 앉아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 일은 기억하는데, 그 이후가 생각나지 않았다.

‘꿈이라도 꾼 거야, 나?’

리시언이 간밤에 다녀간 것이 맞는 걸까? 지난밤의 일들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환상이나 꿈 따위가 아니었다.

포르르.

레스티아의 침대맡에 남아 있던 불꽃 나비 한 마리가 그녀가 깨어난 모습을 인지하자마자 허공으로 날아올라 아침 햇살 속으로 사라졌으니 말이다.

“휴…….”

정말이지. 떠날 거였다면, 가기 전에 깨워서 말이라도 한마디 해주고 가지.

하마터면 너무 속상할 뻔했다.

그래도 이렇게 나비라도 한 마리 남겨둔 것을 보면, 리시언이 자신을 신경 써준 것이 분명했다.

그 사실이 입가에 저절로 기분 좋은 미소를 만들어 냈다.

“아가씨? 무슨 일이 있으신 거예요? 언제까지 기다릴까요?”

“아니, 이제 괜찮아요. 들어와요!”

레스티아는 방긋 웃으며 도라를 반겼다.

레스티아를 마주한 도라가 눈매를 가느다랗게 좁혔다.

“후음…… 우리 아가씨 즐거운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으응? 딱히 그런 건 없는데.”

“음……, 그렇군요.”

도라는 요즘 들어 레스티아가 수상쩍다고 생각했다.

목욕 시중이 필요 없다고 하지를 않나, 장신구에 관심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혼자 스카프를 꺼내서 착용하지를 않나, 이렇게 도라의 아침 방문에 기겁하지를 않나.

모두 생경한 풍경들이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성년이 된 사람이라면 비밀 한두 개쯤은 생기기 마련이니 말이다.

“아가씨, 그럼 빗질해드릴게요.”

“응! 부탁할게!”

무엇보다 레스티아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생기롭고, 제 또래같이 보여서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 * *

“좋은 아침이에요. 오라버니들!”

레스티아는 환하게 웃으며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왔다.

이제 베르체스터 형제들이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있었다.

과거, 형제들 사이에 흘렀던 미묘한 긴장감과 적막감은 이제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엘과 마티어스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레스티아를 맞이해 주었고, 제라르는 신문을 잠시 읽는 것을 멈추곤 고개를 까닥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리티,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그러게. 요새 통 기운이 없어 보여서 걱정했단다. 우리가 바빠서 계속 신경 써줄 수 없어서 미안하구나.”

베르체스터 형제들은 밝아 보이는 레스티아의 얼굴에 만족감을 표했다.

물론 레스티아의 기분이 좋아진 이유가 어젯밤 리시언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기에 그랬던 것이지만 말이다.

레스티아 역시 그 사실을 오라버니들에게 알려 괜한 다툼의 불씨를 만들어 낼 생각이 없었다.

“그랬나요? 제가 이것저것 연구한다고 피곤해서 괜한 걱정을 끼쳐 드렸나 봐요. 이제 괜찮아요.”

그래서 시치미를 뚝 떼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제라르가 줄곧 읽고 있던 신문을 곱게 접어 옆으로 치웠다.

“레스티아. 네게 전할 말이 있다.”

좀처럼 먼저 말을 꺼내는 법이 없던 제라르가 입을 열자, 레스티아는 깜짝 놀라 그를 바라봤다.

“네? 제라르 오라버니, 혹시 무슨 중요한 일이 생긴 건가요?”

“네게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 할 생각이다.”

“아버지요……?”

“그래. 이제 너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알아도 될 것 같아서. 성년제도 치렀고, 이런저런 복잡한 일도 모두 마무리되었으니, 거리낄 것이 없지.”

“…….”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레스티아는 저도 모르게 두 손을 꽉 맞잡았다.

성인이 될 때까지 잊고 살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렵기만 했다.

내심 줄곧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쩌다 돌아가셨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형제들이 어린 레스티아에게 그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겼기에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레스티아에게는 초상화로만 만나보았던 아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을 데리고 와서, 줄곧 곁에서 의지가 되어주고, 가족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준 형제들이 더 소중했다.

그래서 그들의 결정을 따라, 줄곧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지내왔다.

“하여간, 형. 꼭 이렇게 기분 좋게 아침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꺼내야 해?”

마티어스가 인상을 쓰고 툴툴거렸다. 그러나 조엘은 제라르의 뜻에 이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알아야겠지. 어른이 되면 말해준다고 했는데, 좀처럼 시간을 낼 수가 없었으니까. 마침 생각나서 말을 꺼냈을 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괜찮을까 레스티아?”

조엘의 에메랄드빛 홍채에서 따스한 신뢰가 느껴졌다.

레스티아는 새삼 자신이 정말로 성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줄곧 레스티아를 어린애 취급하던 오라버니들이 조금씩 자신이 어른이 되었음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당당히 요구했다.

“네, 들려주세요. 궁금해요.”

“그래.”

제라르가 설명을 시작했다.

레스티아는 그제야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황태자가 어떤 방식으로 아버지를 살해했는지, 왜 베르체스터 형제들이 그 사실을 레스티아에게 숨겼는지, 또 제라르가 어떻게 황태자에게 복수를 마무리했는지까지 말이다.

레스티아는 묵묵히 제라르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화가 끝났을 때.

“……고생하셨어요. 오라버니들.”

레스티아는 제일 먼저 형제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작고 큰 위협 속에서 어린 레스티아의 몸과 마음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해준 오라버니들의 배려가 고마웠다.

한때는 그들이 숨기는 모든 사건이 너무나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돌아보니, 그 모든 과정이 형제들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레스티아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좋은 것만 알려주고 싶어 했다.

부모들이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막냇동생에게만은 해주기 위해 매일 같이 노력한 것이다.

“알려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레스티아는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밝은 미소를 형제들에게 지어 보였다.

지금도 레스티아의 안위를 걱정하며 표정을 굳히고 있는 형제들을 안심시켜주고 싶었다.

“혹시, 더 궁금한 게 있어?”

“무엇이든 말해보렴.”

“그래. 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한가? 원한다면 내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도 있다.”

레스티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제 저는 부모님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나이가 아닌걸요.”

레스티아에게 부모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다.

이렇게 좋은 오라버니들을 세 명이나 만날 기회를 준 것만이 고마울 뿐이었다.

부모와 형제들로 구성되지 않은 일반적이지 않은 가족이라고 한들 어떠한가.

그들은 누구보다도 끈끈하고,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세상에. 우리 리티 너무 어른스러운 거 아니야? 역시, 너무 일찍 철들었어! 마음 아파! 조금 더 투정 부려야 하는 건데!”

“그러게. 마티어스 너를 조금 닮아서 한참 더 투정 부려도 되는데 말이지.”

“뭐? 말 다 했어?”

레스티아는 투닥거리는 쌍둥이들을 보며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성년제 이후로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날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은 맞았다.

레스티아에게는 이제 어른으로서 시작해야 할 많은 일이 주어졌으니 말이다.

분명,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을 시작으로 더 알아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일단은 식후경이다.

“그럼, 식사할까요? 음식이 식기 전에 먹어야지요! 저 배고파요!”

그 말을 끝으로, 베르체스터 형제들은 즐거운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화목하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화목한 분위기는 얼마 안 가 깨지고 말았다.

“공작님! 아가씨! 도련님들! ”

집사 헤일록이 혼비백산이 되어 식당으로 달려온 것이다.

“무슨 일이지?”

“소, 소,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누구?”

“그, 그게…… 리, 리시언 님이 저택에 찾아오셨습니다!”

헤일록의 완고한 얼굴은 평소와 다르게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리시언이 베르체스터 저택을 떠나고 얼마 후, 제 손으로 리시언의 장례식을 치렀기 때문이다.

‘칼란드 베르체스터의 넷째 아들, 리시언 베르체스터. 병약하게 태어난 불의 마법사. 그는 불의의 사고로 공작가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죽었다. 성년이 되지도 못한 자의 명예롭지 못한 죽음이니만큼 장례식은 간소화한다.’

라는 것이 베르체스터 공작가의 공식적인 발표였고, 베르체스터의 기사들과 사용인들은 모두 그 사실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선대 공작, 칼란드 베르체스터처럼 마력 중화석이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고 여겼다.

게다가 사용인들은 대공의 자리에 오른 리시언을 만날 일도 없었다.

때문에, 지금 그들의 눈에는 죽었던 리시언이 살아 돌아온 것과 같았다.

그것도 훌쩍 커서 말이다.

“그, 그런데 이상합니다. 리시언 님은 분명 붉은 홍채를 가지고 계셨는데 말이지요! 지금 저택을 찾아오신 리시언 님은 황금색 홍채를 가지고 계시지 뭡니까! 이게 무슨 조화란 말입니까. 신이시여!”

헤일록은 마치 무서운 것을 보았다는 것처럼 덜덜 떨고 있었다.

“하하하! 이거, 설명하려면 복잡하겠는데?”

마티어스가 재미있다는 듯이 낄낄댔다.

“으흠. 장례식 말고, 차라리 실종으로 처리할 걸 그랬군. 결국 이렇게 될 거 말이야.”

조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말이다.

“…….”

제라르는 딱히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다, 다들 왜 놀라지 않으시는 겁니까? 이 늙은이는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헤일록은 베르체스터 형제들이 지나치게 침착한 모습을 보이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레스티아가 모두를 대신해 헤일록에게 설명을 해주어야 했다.

“헤일록. 걱정하지 마세요. 그분은 유령 같은 게 아니라, 리시언 님이니까요. 반짝이는 황금색 홍채를 가진 사람이 진짜 리시언 님이에요.”

탁.

그제야 제라르가 찻잔을 식탁 위로 거칠게 내려놓으며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베르체스터 저택에는 왜 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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