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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95화 (95/132)

95화

“오, 오라버니들?”

레스티아는 허둥거렸다.

쌍둥이들에게 불시에 애정행각을 들킨 것 같아서 쑥스럽기만 했다.

“두 사람! 떨어지라니까!”

무어라 할 새도 없이 마티어스가 으르렁거리며 레스티아와 리시언의 사이를 갈라섰다.

조엘 역시 차가운 눈빛으로 리시언을 노려보며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리시언, 베르체스터 저택에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면 우리한테 먼저 알려주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나?”

“그래! 황궁 일은 네가 해결하고, 우리 집 일은 우리한테 맡겼어야지!”

그 주장이 틀리지 않았기에, 리시언은 얌전히 사과했다.

“미안, 연인이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하니 제정신일 수가 없었어.”

하지만 연인이라는 단어가 되려 쌍둥이들의 신경을 긁는 꼴이 되었다.

“뭐? 너, 이 자식! 누구 멋대로 누가 네 연인이야! 헛소리하지 마!”

마티어스가 금방이라도 리시언을 잡아먹을 것처럼 큰소리로 외쳤다.

곧바로 레스티아가 양팔을 뻗으며 마티어스 앞을 가로막았다.

“마티어스 오라버니! 그러지 마세요! 리시언 님은 제 연인이 맞아요! 그리고 저를 도와주셨는걸요!”

“리…… 리티!”

마티어스는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레스티아를 바라봤다.

레스티아가 성년이 되었다고 해도, 마티어스의 눈에는 아직도 열한 살짜리 어린 소녀였다.

그래서일까. 벌써 몇 번이나 리시언과 레스티아가 연인 사이임을 드러냈음에도 좀처럼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 이것 봐.”

리시언이 어깨를 한번 들먹이고는 마티어스의 눈앞으로 손을 뻗었다.

위풍당당하게 펼쳐진 왼손.

그 네 번째 손가락에는 레스티아가 손수 끼워준 백금 반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게 뭔데?”

“보면 몰라? 반지잖아. 이 반지는 레스티아가 내게 직접 끼워 준 거야. 우리가 연인이라는 증거지.”

“……!”

마티어스는 그 반지를 바라보고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얼마 전, 레스티아가 남자들이 착용하는 반지 디자인은 어떤 것이 좋은지 물었던 일이 떠올랐다.

액세서리를 자주 착용하는 마티어스의 의견이 궁금하다면서 말이다.

아무래도 그 질문은 리시언에게 저 반지를 선물하기 위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마티어스는 이 사실을 끝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너, 이 자식! 우리 순진한 리티를 꼬셔서 금붙이나 뜯어내고!”

조만간 제국의 황제가 될 남자를 여자에게 금붙이나 뜯어내는 한량으로 만들어 버렸다.

“마티어스 오라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레스티아가 기겁하며 조엘을 쳐다봤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조엘이 마티어스를 설득해 주리라 여겼다.

하지만 조엘은 마티어스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우아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 책과 공부밖에 모르는 우리 막냇동생은 남자란 존재가 얼마나 유해한지 몰랐기에 그대로 당했겠지.”

“조엘 오라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마티어스는 그렇다고 쳐도, 조엘까지 이렇게 막무가내일 줄이야.

평소 오라버니들의 과보호가 심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게 이렇게까지 심할 줄 몰랐다.

레스티아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조엘과 마티어스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연인의 가족들에게 계속해서 존재를 부정당하고 있는 리시언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그러자 리시언이 앞으로 나섰다.

“괜찮아. 레스티아.”

리시언은 일전에 결심했던 대로 쌍둥이들을 향해 말했다.

“그래, 레스티아는 내가 먼저 꼬셨어. 불쾌하다면 화가 풀릴 때까지 때려도 좋아.”

저들의 사랑스러운 막냇동생을 얻게 된 이상, 분풀이 대상 정도는 기꺼이 되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레스티아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때리다니요! 그건 절대 안 돼요!”

그리고는 필사적으로 리시언을 지키려는 듯이 양팔을 더 크게 벌리며 리시언과 쌍둥이 사이를 가로막았다.

미간에는 어느새 앙증맞은 주름이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리…… 리티…….”

“레스티아…….”

쌍둥이들은 레스티아의 그런 표정을 처음 보았기에 충격에 빠졌다.

저 표정은 마치 적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이 아닌가.

항상 방긋방긋 웃어주던 귀여운 여동생이 저런 표정을 짓다니.

그래서 두 사람은 재빨리 해명했다.

“리티. 우리가 왜 리시언을 때리겠어?”

“그래, 레스티아. 저 폭력적인 행위는 다 저 녀석이 멋대로 제안한 것뿐이지 않니?”

레스티아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아니요! 지금 오라버니들은 위험해 보여요! 리시언 님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그러고는 철저히 리시언을 지키겠다고 결심한 듯 미간에 힘을 더 주었다.

리시언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 이거, 어쩔 수가 없네.”

리시언은 자신의 허리를 살짝 굽혀 레스티아의 어깨 위에 턱을 슬며시 올렸다.

그러고는 꽤 미안하다는 듯이 쌍둥이들을 바라봤다.

“안 되겠다. 방금 한 말은 취소해야겠어. 레스티아가 너희 위험하대.”

“너……!”

언제부터 저렇게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었다고!

리시언은 베르체스터 저택에 머물 때도, 황족임을 드러냈을 때도, 항상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녀석이었다.

그 사실을 쌍둥이들은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그런 녀석이 저렇게 얌전히 레스티아의 말을 따르다니.

“정말 미안.”

뻔뻔하기 짝이 없는 황금색 눈동자가 가느다랗게 접히며 곱디고운 반달을 만들어냈다.

조엘과 마티어스는 그 얄미운 표정이 못마땅했다.

‘레스티아. 정말 위험한 건 우리가 아니라 저놈이야!’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잔뜩 화가 나 보이는 레스티아의 눈치를 살피느라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 * *

리시언은 황궁으로 복귀했다.

조금도 쉴 새가 없었다.

황후가 저지른 일들을 서둘러 마무리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몸도 정신도 피로했다.

그런데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왼손에 자리 잡은 반지가 기운을 북돋워 주는 것 같았다.

이상하기도 하지.

어떤 특별한 마석도 박혀 있지 않은, 미완성의 반지일 뿐인데.

심지어 리시언에게 반지란 답답함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베르체스터 공작가에 몸을 의탁하던 시절, 항상 억지로 마력 중화석 반지를 착용하고 생활했었던 기억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리시언은 키시어스 대공이 된 이후로부터, 단 한 번도 반지를 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반지가 이렇게 손가락 끝으로 살짝 만지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으로 느껴지다니 놀랍기만 했다.

리시언은 저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 지었다.

하지만 제라르는 싸늘한 목소리로 리시언을 맞이했다.

“리시언. 지금 웃을 때가 아닐 텐데.”

리시언이 멋대로 황궁에서 사라진 이후, 제라르가 그를 대신 황궁에 남아 일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남아 있는 구울들과 사방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정리하고, 황후와 황태자를 생포해 감옥에 투옥시켰다.

“서둘러 저것들의 처분을 결정하도록. 계속 보기 역겹지 않은가.”

황후는 감옥에 앉아 실성한 듯 히쭉히쭉 웃고 있었고, 황태자는 제라르가 물의 마법으로 만들어낸 특수한 감옥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건방져, 제라르. 내게 명령을 하고 말이야. 그래도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해결됐으니, 이번 한 번은 용서하지.”

리시언의 수하들이 곧바로 황태자가 불사의 몸을 얻게 된 경위를 조사해왔다.

얼마 안 가 황후가 무슨 짓을 했는지 속속들이 밝혀졌다.

황후가 부리던 마법 연구자들이 이번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두 자백한 것이다.

4년 전 실종되었던 라난테 가문의 아이를 재료로 써서, 황태자에게 금지된 소생 마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라난테.

자신의 생명력을 대가로 치유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 가문.

그들은 모르카티움 제국의 황가와 맹약을 맺고 황제의 비호하에 대대손손 아무도 그들을 찾을 수 없는 오지에서 정체를 숨기고 지냈다.

무엇이든 치유할 수 있는 마법이라는 대단한 능력을 지닌 만큼, 그들의 목숨은 항상 위협받았기 때문이다.

맹약의 내용은 제국의 황제에게 약으로 치유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렸을 때 도움을 준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도움을 받은 황제가 많았고, 황가는 그들을 은인이라 여겼다.

죽은 황제 역시 그들의 도움을 받아 연로하도록 건강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제국의 황후가 라난테 가문의 어린아이를 납치해서 금지된 소생 마법의 재료로 사용한 것이다.

리시언은 인상을 찌푸리곤 수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라난테에 서신을 보내.”

그리고 곧바로 장례식을 준비했다.

황제의 죽음을 알리고, 그의 적법한 후계자인 리시언이 황위를 계승할 것임을 알리기 위한 절차였다.

황제의 죽음을 기리는 수백 개의 검은 깃발이 황궁에 나부꼈다.

신전에서 사제들을 파견했고, 엄중한 장례 절차가 이루어졌다.

황제의 시신은 고급스러운 관에 담겼다.

“…….”

리시언은 말없이 여전히 눈을 감지 못한 상태로 굳어 있는 황제의 눈을 쓸어내렸다.

어머니의 죽음을 방치하고, 아버지를 실험체로 사용했던 남자.

그가 리시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죽을 때까지 황태자와 리시언을 겨루게 둘 것처럼 굴었으니까.

어떤 애정도 나누지 않고, 피만 물려받은 관계였다.

그래서일까, 조부의 죽음에 리시언은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편히 잠드시길.”

리시언이 조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마지막 인사가 전부였다.

아, 그리고.

“제가 이끌어갈 모르카티움 제국은 황제 폐하의 것과는 다를 것입니다.”

하는 선언 정도였다.

리시언은 황제의 관을 덮으며 결심을 다졌다.

국장은 5일 동안 이루어졌다.

원래 절차대로라면 황제의 장례식은 보름에 걸쳐 진행되어야 했다.

하지만 구울 사태로 수도의 피해가 생각보다 컸기에, 장례식은 단축되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리시언이 다음 황좌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제국 전체에 각인시키는 데 충분했다.

그는 민심을 위로하고 달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검은 상복을 입고, 모든 사태를 진두지휘해 마무리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수도의 상황이 이러한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황태자의 존재는 손쉽게 잊혔다.

신전은 수도 정비가 끝나는 대로 리시언의 대관식을 준비하겠노라 발 벗고 나섰다.

제국의 귀족들 역시 리시언을 추켜세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장례식이 끝났다.

리시언은 황후를 가두어둔 감옥으로 향했다.

“세상에, 이게 누구신가. 키시어스 대공, 드디어 나를 죽이러 온 것이냐? 후후.”

오랜만에 리시언을 마주한 황후는 히쭉 웃었다.

그 미소에는 과거의 우아함이 조금도 보이지 않고, 악다구니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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