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황후가 개최한 살롱의 분위기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살롱은 원래 사교의 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 미술, 학업 등에 대한 주제로 교양 있는 대화가 쉴 새 없이 오가야 했다.
게다가 지금 이 살롱에 모인 이들은 모두 17세의 영애들이었다.
어린 나이의 손님들이 잔뜩 참석한 만큼 장내에 생기로운 목소리가 가득해야 하건만, 지금 이 장소는 지나치도록 고요했다.
그저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 소리만 잔잔하게 흐르고 있을 뿐.
게다가 살롱의 개최자인 황후는 상석에 앉아 말없이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교 활동을 위한 그 어떤 진행도 없었기에 살롱에 참석한 영애들은 테이블에 앉아 서로 눈치를 살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모두 처음으로 경험하는 황실 사교계 행사에 설레고 있었다.
제국의 황궁은 눈이 부시도록 호화로웠고 아름다웠으므로 모두가 구경하고 싶어 했다.
게다가 황후 궁이라니.
모두가 그 멋진 장소에 모여서 교양 있는 교류를 한다는 것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황후는 살롱이 개최되는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안젤라 글라리엔을 콕 집어 다가갔다.
그러더니 그녀의 가슴에 달린 브로치가 문제가 있다며 감옥에 가두라 명했다.
그 브로치가 황족을 해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서 말이다.
“네? 황족 암살이라니요? 이 브로치는 선물 받은 것일 뿐, 누군가를 해할 수 있는 기능 같은 것은 없는 걸요!”
안젤라가 우왕좌왕하며 당황한 목소리로 해명했다.
하지만 황후는 날카로운 어조로 더욱 집요하게 따져 물었다.
“그럼, 글라리엔 영애. 이 물건을 누구에게 선물 받은 것인지 말하겠나. 황실은 이런 물건의 유통 경로를 모른다.”
“그건…….”
안젤라는 두려워서 덜덜 떨었다.
하지만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괜히 레스티아에게 피해가 갈까 봐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대답이 없군. 혐의를 부정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여봐라, 글라리엔 영애가 이 사실을 이실직고할 때까지 감옥에 가두거라.”
황후의 명령과 함께 안젤라가 경비병들에게 붙들려 살롱 밖으로 끌려나갔다.
아무도 황후의 명령을 만류할 수 없었다.
안젤라를 위해 변호를 해주는 이도 한 명도 없었다.
자리에 모인 이들은 모두 갓 성년이 된 영애들뿐이었고 자신의 가문에 불똥이 튈까 두려워했다.
그 탓에 순식간에 살롱 안이 소란스러워졌고, 분위기는 살벌해졌다.
분명 행사는 그때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황후는 그럼에도 살롱을 파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 모인 그대들은 이 일의 중요한 증인이니 자리를 지켜주게.”
라고 말하고는 그 누구도 황후궁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막고 있었다.
영애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황후의 말을 따랐다.
브로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것으로 정말로 황족 암살이 가능한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저 황후가 무서울 뿐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지.”
“어떡해. 집에 가고 싶어.”
“무서워. 분위기가 너무 살벌해.”
이미 황실에서 개최되는 사교 행사 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벌써 해가 지고 있는데 집에 언제 갈 수 있나 초조한 마음만 들었다.
한편, 황후는 술잔을 기울이며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처음 레스티아 베르체스터가 초대장을 거절했을 때는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감히 내 초대를 거절하다니.
일개 공작가의 영애 주제에 황후의 사교 모임을 거절해?
하지만 이내 냉정해질 수 있었다.
때마침 레스티아에게는 안젤라 글라리엔이라고 하는 동성의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으니 말이다.
레스티아 베르체스터는 황립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않고 돌연 유학을 하고 돌아왔다.
그 말은 이 수도에 남아 있는 친구가 안젤라 글라리엔이 유일하다는 뜻이었다.
처음에는 그래서 안젤라를 이용해서 레스티아에게 접근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안젤라의 가슴에 달린 브로치를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저 브로치는…….’
브로치에 달린 것은 보석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분명 처음으로 보는 마석이었다.
마석이 내뿜는 고유의 느낌이 가득했으니까.
순간적으로 일전에 레스티아에 대해 알아보았던 정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아이. 분명, 어려서부터 마도서를 공부하고 있었지. 이거, 그사이에 어떤 성과를 냈나 본데.’
그 성과를 자랑하고 싶었는지, 기념하고 싶었는지, 제 친구에게 마석을 만들어 선물한 모양이었다.
마석이 구체적으로 어떤 용도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면 이야기가 쉬워지지. 마석과 마법은 모르카티움 제국 황실의 것이니까. 관리 밖을 벗어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중죄야.’
계획을 세우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생각의 퍼즐이 맞추어지자 다음 계획도 순조롭게 이어졌다.
안젤라를 미끼로 써서 레스티아를 잡고, 그다음으로 리시언을 잡는 것이었다.
‘안타깝구나. 소중한 것은 약점이 되는 법이지. 친구라든가, 가족이라든가, 애인이라든가 그런 것들 말이다.’
그래서 황후는 자기 자신 외에는 소중한 것을 만들지 않았다.
그러니, 결국 승자는 자신이 되리라 믿는 마음은 여전히 굳건했다.
‘그럼, 어디 어떻게 반응하나 지켜볼까.’
황후는 느긋한 마음으로 레스티아가 이곳으로 오기를 기다리며 술잔을 기울였다.
안젤라가 레스티아에게 소중한 친구가 아니라면 오지 않을 것이다.
뭐, 오지 않는다면 안젤라 글라리엔을 고문해서 자백을 받아내면 되는 일이었으므로 마음은 여유롭기만 했다.
한미한 귀족가의 어린 영애 하나쯤 구워삶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이, 레스티아는 곧바로 황궁으로 찾아왔다.
레스티아는 살롱이 개최되는 장소 안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올렸다.
“레스티아 베르체스터가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황후는 그제야 들고 있던 술잔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고 레스티아를 바라봤다.
레스티아는 어린 시절에 봤던 모습보다 당당해지고 아름다워져 있었다.
분명 서둘러 온 것임이 분명함에도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모습이었다.
이곳에 있는 동갑내기의 영애들과 다르게 황후의 기세에 조금도 휘둘리지 않는 모양새였다.
‘그래 봤자 애송이지.’
“오랜만이군. 베르체스터 영애.”
황후는 빙그레 웃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이상하군. 그대는 분명 초대를 거절했을 텐데. 어째서 이 장소에 온 것인가? 너무 늦었군.”
날이 선 질문이었으나, 레스티아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본론을 따져 물었다.
“무례를 용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제 친우인 글라리엔 영애의 소식을 듣고 급히 왔습니다.”
“으흠, 글라리엔 영애의 일을 어째서 베르체스터 영애가 신경 쓰는 거지?”
레스티아는 황후를 또렷이 응시하며 말했다.
“글라리엔 영애가 착용하고 있던 브로치가 문제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선물한 것입니다. 그에 대해 해명하고 싶습니다.”
황후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살롱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 레스티아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베르체스터 영애. 그 말이 확실한가?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말할 수 있겠느냐 말이야. 그 마석이 자네가 선물한 것이라고.”
질문을 하는 목소리는 나긋나긋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말은 취조에 가까웠다.
허락되지 않은 마석을 통용한 것이 네가 맞느냐는 함정을 판 것이었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조금의 주눅도 들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예. 제가 선물한 것이 맞습니다.”
그 대답에 황후의 얼굴에 만족감이 퍼졌다.
“그렇다면, 글라리엔 영애가 아닌 베르체스터 영애가 황족 암살을 시행한 것이 되는 거군.”
더없이 부드럽고 아름다운 미소였지만, 악의가 가득하기만 했다.
레스티아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브로치는 사람을 해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황후는 미간을 좁혔다.
어떻게 아직도 저렇게 당당한 건지.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걸까.
“사람을 해할 수 없는 물건이라.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그 마석은 황가의 유통 경로를 벗어난 물건이다.”
“그 마석은 제가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증명해 보일 수 있습니다.”
레스티아가 마석을 만들었다는 말에 주변이 웅성거렸다.
“베르체스터 영애가 마석을 만들 수 있다고?”
“마석은 모르카티움 제국 소속의 마법 연구자들만 만들 수 있는 거잖아.”
레스티아는 품 안에서 자신이 챙겨온 마석을 꺼내 들었다.
일전에 디자이너에게도 선물한 적이 있는 피로회복용 마석이었다.
“저는 주로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마석을 만들었습니다. 글라리엔 영애에게 선물한 것도 비슷한 것입니다. 베르체스터 공작가의 이름을 걸고 감정을 요청드립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도 공증을 부탁드리겠어요.”
황후는 인상을 찌푸렸다.
경험도 없는 어린 나이에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이 짧은 순간에 자신의 가문과 주변의 증인들을 이용하려 들다니.
하지만 그건 정의롭고 경험 없는 이의 호기에 불과했다.
황후는 곧바로 입매를 비틀었다.
“베르체스터 영애. 더 충격적인 말을 하는군. 직접 만들었다고 하였나? 황가에 속하지 않은 자가 사적으로 마법을 연구하는 것은 중죄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어. 여봐라, 베르체스터 영애도 글라리엔 영애와 함께 가두어 두거라. 이 모든 일을 황제 폐하께 전해야겠구나.”
그런데 그 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후 폐하. 베르체스터 영애는 제게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녀가 만든 마석은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모두의 시선이 살롱에 거칠게 들어선 그 의문의 목소리에게 향했다.
“키시어스 대공?”
리시언이 팔짱을 낀 채, 인상을 쓰며 문 앞에 조각상처럼 서 있었다.
레스티아를 붙잡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이들이 일제히 멈추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