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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78화 (78/132)

78화

“여러분. 성년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신이 그대들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할 것입니다.”

짧은 축사를 끝으로, 마침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17살의 소년, 소녀들이 성년이 되었음이 공표되었다.

“축하드립니다! 장미꽃 코르사주를 받아주세요. 축복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신전의 어린 수도사들이 성년제를 맞이한 이들에게 새하얀 장미꽃 코르사주를 건넸다.

그것이 축복의 마지막 의식이었기에, 레스티아와 안젤라 역시 코르사주를 받아 왼쪽 가슴에 달았다.

이제 이들에게 남은 일정은 화려한 무도회였다.

성년이 되어 맞이하는 첫 무도회.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배워왔던 춤을 다른 이들에게 선보이는 사교의 장.

제국의 귀족들 사이에서는 성년제에서 춤을 춘 이와 첫사랑을 경험하거나, 결혼하기도 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 때문에 코르사주를 달고 있는 이들의 표정에는 기대감과 걱정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덤덤했다.

처음 베르체스터 제국으로 돌아왔을 때부터, 성년제에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오라버니들이 ‘우리 레스티아. 남들 하는 건 전부 다 해봐야지.’라고 챙겨 주지 않았다면 굳이 참가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유전인지, 정작 레스티아에게 성년제 참석을 강요한 베르체스터 형제들도 자신들의 성년제를 굳이 신경 써서 챙기지 않았었다.

그 탓인지.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헉! 베르체스터 공작가의 남자들이잖아? 자기들 성년제도 대충 치르고 갔으면서, 여기는 왜……?”

“아! 그러고 보니 유학을 갔다 돌아왔다는 막내 공녀님이 성년이 되는 날이었지.”

“그럼, 저들 사이에 있는 저 아름다운 숙녀분이 베르체스터의 막내?”

무도회에 참석한 모두가 힐끗거리며 베르체스터 공작가의 사람들을 훔쳐보기 바빴다.

하지만 베르체스터들은 그 소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금 그들에게 중요한 건 레스티아와 성년제의 첫 춤을 누가 출 것인가 정하는 것이었다.

보통, 여성의 첫 춤은 가족이나 보호자가 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리티랑 첫 춤을 추는 건 나야. 그렇지 리티?”

“레스티아, 첫 춤은 내가 함께할 수 있게 해주겠니?”

조엘과 마티어스는 익숙하게 신경전을 벌였다.

“…….”

제라르는 별말 없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레스티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말이다.

“어…….”

레스티아는 곤란해졌다.

평소대로라면 공정하게 ‘다 함께해요!’라고 대답했겠지만.

지금은 다 함께 춤을 출 수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시간이 온 것이다.

세 명의 베르체스터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면…….”

레스티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심했다는 듯 제라르가 내밀은 손을 잡았다.

“첫 춤은 제라르 오라버니와 함께 출게요!”

“리티! 어째서 형이랑!?”

“레스티아?”

조엘과 마티어스는 충격을 받은 듯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제라르의 입꼬리는 슬쩍 말아 올라갔고, 말이다.

“그게…… 제라르 오라버니와는 한 번도 춤을 춘 적이 없으니까요. 오늘은 함께하고 싶어요!”

그동안 마티어스와 조엘은 레스티아의 춤 연습 상대를 해주곤 했다.

하지만 제라르와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니 이번에는 제라르를 선택한 것이었다.

나름 합당한 이유였기에 조엘과 마티어스는 결국 순순히 비켜설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첫 춤을 알리는 웅장한 음악이 울려 퍼졌고, 제라르는 능숙하게 레스티아와 함께 무도회장으로 향했다.

조엘과 마티어스는 서글픈 표정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또다시 신경전이 시작됐다.

“첫 춤은 형한테 뺏겼지만, 두 번째는 나야.”

“무슨 소리. 그것도 레스티아가 선택하게 해야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조엘이 자신에게 몰려온 수많은 숙녀 사이에 파묻히고 말았기 때문이다.

“어머! 조엘 님! 동생분의 성년제에 참석하신 건가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좋네요. 저와 춤추시겠어요?”

성년제는 기본적으로 성인을 맞이한 이들을 위한 축제였으나, 가족들 단위로 오는 사교의 장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막 성인이 된 이들 말고도 많은 이들이 무도회에 참석한 것이다.

조엘은 대외적으로 사교적인 인사였기에 이런 장소에서 그들을 냉담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조엘 인기 많네.”

저 많은 숙녀를 상대하려면 바쁘겠지.

당연히 다음 차례는 내가 되겠군.

마티어스는 편하게 얻어낸 승리에 흥얼거리며, 제라르와 레스티아의 춤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첫 차례는 큰형에게 빼앗겼으나, 이대로라면 조엘보다는 먼저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마티어스의 눈에 홀로 멀뚱멀뚱 앉아있는 안젤라가 눈에 들어왔다.

아침까지만 해도 드레스가 예쁘다며 레스티아의 곁에서 시끄럽게 꺅꺅거리더니.

지금은 잔뜩 풀이 죽어있는 모양새였다.

마티어스는 안젤라의 곁으로 다가가 장난스런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꼬맹이. 오늘따라 예쁘게 차려입었으면서 여기서 뭐 해?”

안젤라는 마티어스가 말을 걸자 화들짝 놀랐다.

“마, 마티어스 오라버니?”

하지만 이내 새침하게 대꾸했다.

“뭐예요. 저한테 신경 쓰지 마세요!”

“신경? 아니, 그냥 눈에 띄어서 말을 걸어 본 건데.”

안젤라는 그 말에 재빨리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더니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그렇게 눈에 띄어요?”

“응? 그래. 장미 코르사주를 달고 있는 여자 중에 춤을 안 추고 있는 건 너뿐이잖아?”

“그렇죠. 저뿐이죠…….”

안젤라가 고개를 푹 숙였다.

무릎에 올려져 있는 작은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으흠?”

마티어스는 답지 않은 안젤라의 태도가 계속 신경 쓰였다.

레스티아가 아끼는 친구라서 그런 건가.

그러고 보니 외동딸이라고 했지.

글라리엔 백작가는 남자 친척도 없다고 알고 있었고.

그렇다면 혼자 이렇게 있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꼬맹아. 나랑 춤출래?”

마티어스가 충동적으로 불쑥 제안했다.

“네?”

그 말에 안젤라의 표정이 잠시 밝아졌다.

하지만 안젤라는 이내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흥! 놀리지 말아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춤을 어떻게 춰요?”

마티어스는 안젤라가 앉아있는 휠체어를 힐끗 바라봤다.

“아. 그런 거였어? 그런데 그건 문제가 안 되는데. 나 힘세거든.”

그리고는 안젤라를 휠체어 밖으로 일으켜 세우고는, 곧장 안젤라의 한쪽 팔을 자신의 목에 걸고는 양쪽 발을 자신의 구두 위에 올렸다.

“어어?”

안젤라는 자신에게 일어난 이 일이 무슨 일인지 몰라 버벅댔다.

하지만 마티어스는 그대로 발을 옮겨 안젤라를 무도회장으로 이끌고 갔다.

제대로 걷지는 못했지만 아주 못 걷는 것은 아니었기에, 마티어스가 힘의 중심을 잡아주자 안젤라는 제법 춤을 추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다.

안젤라가 입고 있는 풍성한 드레스가 두 사람의 발을 완벽하게 감춰 주었고 말이다.

“어때? 괜찮지? 레스티아한테 춤을 가르쳐 줄 때도, 이렇게 했었어. 몸에 힘 빼고 나한테 맡겨.”

마티어스는 그렇게 말하며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장난꾸러기처럼 웃었다.

“……노, 놓치나 말아요!”

“그래, 그래. 걱정마. 내가 이래 봬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야.”

항상 장난만 치고, 성격이 고약한 친구의 오빠였는데.

오늘 마티어스는 이상하게도 근사하게 느껴졌다.

무도회에 오기 위해 제대로 차려입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렇게 고마운 일을 해서 그런 것인지…….

안젤라는 볼을 조금 붉게 물들이고는 마티어스의 말대로 그에게 몸을 맡겼다.

“어? 안젤라가 마티어스 오라버니와 춤을 추네요.”

제라르와 춤을 추다가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 레스티아가 빙그레 웃었다.

제라르는 그런 레스티아에게 짧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잘하는구나. 춤을 추면서도 주변을 살필 줄 알고. 능숙하군.”

제라르는 어느새 칭찬을 아끼지 않는 오라버니가 되어 있었다.

“전부 오라버니께서 좋은 선생님을 붙여준 덕인걸요.”

레스티아는 익숙하게 모든 공로를 제라르에게 넘겼고 말이다.

“…정말 어른이 됐군.”

제라르는 감탄사를 내뱉듯 짧게 말했다.

“이제 성년제도 치렀으니까요.”

레스티아는 쑥스럽다는 듯 배시시 웃었다.

그 모습도 사랑스러워서, 제라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레스티아. 베르체스터 말고 다른 녀석들과도 춤을 출 생각인가?”

“네? 아. 거절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들었는걸요. 왜요?”

“사내자식들은 친절하게 상대해줄 필요 없다. 조심하도록.”

그 말에 레스티아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제라르가 진지한 표정으로 남자를 조심하라는 말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여간 감정 표현이 없어서 그렇지 나쁜 남자는 아닌데.

카트리나는 왜 제라르를 나쁜 남자라고 생각한 걸까.

레스티아는 음악에 맞춰 제라르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당기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제라르 오라버니는 성년제에서 누구와 춤을 추셨나요?”

제라르의 푸른 눈이 짙게 가라앉았다.

그는 잠시 과거를 떠올려 보다가 대답했다.

“…카트리나였던 것 같군.”

“정말요?”

성년제 무도회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로맨틱한 이야기가 레스티아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카트리나와 제라르가 이루어진다면 그 말이 사실이 되는 것 아닐까?

레스티아는 상기된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카트리나 님은 요새 어떻게 지내시나요? 최근에는 거의 연락을 못 했어요. 바쁘신 것 같아요.”

“그래. 바쁘겠지. 카트리나는 혼례를 준비 중이니까.”

“네?”

그 말에 레스티아는 하마터면 다음 스텝을 잊을 뻔했다.

하지만 재빨리 다음 발을 내디디며 물었다.

“혼례요? 누구랑요?”

“록베스트 가문이 선택하는 남자겠지. 마법사가 아닌.”

제라르는 그렇게 말하고는 입술을 굳게 닫았다.

“네? 하지만. 카트리나 님은…….”

제라르와 연인 사이가 아니었던 건가?

무뚝뚝한 큰 오라버니가 접근을 허락하는 여자는 레스티아 외에 카트리나가 유일했다.

카트리나는 제라르를 좋아하는 것을 줄곧 숨기지 않았고 말이다.

그런데 왜?

레스티아는 카트리나에 대하여 더 질문하고 싶었다.

하지만 음악이 멈췄고, 제라르가 레스티아의 손을 놓아주며 뒤로 물러섰다.

첫 춤이 끝난 것이다.

제라르는 푸른 눈동자를 레스티아에게 고정한 채, 다시 당부했다.

“그럼, 내가 한 말 명심해라.”

리시언이 무도회장에 도착한 건 레스티아가 제라르와 첫 춤을 추고 있던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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