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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73화 (73/132)

73화

키시어스 대공으로서 살아가게 된 리시언은 황위 계승권자로서 끝없는 음모에 휘말렸고, 수시로 목숨을 위협당했다.

어떤 귀족들은 리시언이 기반도 없는 괴물의 자식이라 폄하하며 황족의 직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리시언은 그럴 때마다 살아남았고, 반격했으며, 자신에게 반하는 세력을 철저히 굴복시켰다.

그 모든 것을 행하는 데 한 번의 주저함도 없었기에 어떤 이들은 리시언을 철혈의 대공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렇게 4년.

리시언은 자신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황태자와 황후가 움켜쥐고 있던 권력의 대부분을 제 것으로 만들었다.

황후와 황태자는 저도 모르는 새에 수족이 잘려 나갔고, 정치적으로 철저히 고립됐다.

이제는 몸뚱어리만 남아 겨우 숨이 붙어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였다.

이제 대부분의 귀족들이 모르카티움 제국의 다음 황제는 키시어스 대공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한숨도 못 잤는데 벌써 해가 밝았군.”

어려서부터 리시언을 괴롭혀 왔던 지독한 악몽과 더불어 극심한 불면증이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명의를 불러와 진찰을 받고, 귀한 약재를 썼음에도 이 수면장애는 도통 고쳐지지 않았다.

리시언은 이것이 자신이 가진 마법의 패널티라고 생각했다.

모든 속성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낸 이후부터 이 증상이 더욱 심해졌으니 말이다.

막연하게 ‘아버지도 그랬었나.’ 하는 정도의 생각만 해볼 뿐, 이 증상이 심해지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리시언은 핏줄이 도드라진 커다란 손을 뻗어 얼굴을 한번 훑어 내리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온통 땀범벅이 되어 버린 새하얀 셔츠를 벗었다.

그러자 시종이 문밖에서 손님의 방문을 알려왔다.

“대공 전하. 기침하셨습니까? 베르체스터 공작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들어오라 그래.”

곧바로 제라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리시언은 새 셔츠로 갈아입으며 제라르를 맞이했다.

“어서 와. 제라르.”

제라르는 이제 완전히 소년의 티를 벗고 남자가 된 리시언을 마주하자 새삼 격세지감을 느꼈다.

항상 건방진 꼬맹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지배자 수컷 같은 모습이 완연하지 않은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 것인지.

원래 저런 사람이었는지.

‘둘 다인가.’

하는 정도의 짧은 감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인사를 건넸다.

“키시어스 대공. 오늘도 잠을 못 잔 것 같은데.”

“아, 괜찮아. 신경 쓸 것 없어.”

리시언은 늘 그랬던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리고 질문했다.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무슨 일이야?”

제라르는 품속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내 리시언에게 건넸다.

“레스티아가 네게 보낸 선물이다.”

“레스티아가?”

제라르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나오자, 피로함에 잔뜩 날카로워져 있던 리시언의 눈매가 순식간에 느슨하게 풀렸다.

“그래. 직접 네게 건네주라더군.”

지난 4년 동안 리시언은 레스티아와 제대로 연락해 본 적이 없었다.

레스티아가 모르카티움 제국을 떠나 향한 곳은 ‘진실의 계승자’들이 숨어 사는 ‘안개 섬’이었다.

안개 섬은 고대의 유적지로 바다 위에 떠서 정처 없이 세계를 표류하는 의문의 섬이었다.

접근하기도, 파악하기도 어려운 곳이라 뱃사람들 사이에서만 소문으로 떠돌던 미지의 유적지.

리시언이 베르체스터 성에서 매일 같이 항구로 나간 이유는 그들에 대한 정보를 뱃사람들로부터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진실의 계승자들과 접촉하는 데에는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핍박했던 모르카티움 제국의 황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진실의 계승자들도 200년 만에 나타난 해석하는 자, 레스티아의 존재를 알고는 호의를 내비쳤다.

그리고 안개 섬에 올 수 있도록 뱃길을 내어 주었다.

하지만 한번 안개섬에 들어가면 속세와 연락을 하거나 오가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기에 레스티아는 제라르와만 겨우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리시언은 외려 그것이 잘된 일이라 여겼다.

온갖 위협으로부터 레스티아를 꼭꼭 숨겨 둘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레 선물을 보내올 줄이야.

“…….”

리시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상자를 열었다.

곧바로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속성 마력 중화석 4개가 눈에 들어왔다.

꽃잎 모양으로 생긴 마력 중화석들은 마치 행운을 부르는 네 잎 클로버처럼 옹기종기 담겨 있었다.

리시언은 단박에 이것이 레스티아가 만들어 낸 것임을 알아차렸다.

“……결국 만들었네.”

줄곧 만들어 낼 거라고 하더니만, 결국 해낸 모양이었다.

제라르가 곧장 흡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그 애는 베르체스터니까.”

그리고는 자랑이라도 하듯이 자신의 목덜미를 슬쩍 매만졌다.

이제 보니 제라르의 목에 걸린 마력 중화석 목걸이가 평소에 사용하던 것과 달랐다.

꽃의 모양새를 갖출 것을 보니 저것 또한 레스티아가 만들어 낸 물건인 듯했다.

리시언은 속으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언제는 레스티아에게 베르체스터 공작가의 사람으로서 한참 부족하니, 노력하라고 말했으면서.

지금은 아주 ‘이 애가 내 동생이고, 베르체스터 공작가의 막내다!’라고 쩌렁쩌렁 자랑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이만 가 보겠다.”

제라르는 레스티아가 내린 임무를 완수했으니, 이제 볼일이 없다는 듯 등을 돌렸다.

“잠깐.”

리시언은 자기도 모르게 방 밖으로 나가려는 제라르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4년 동안 줄곧 궁금해했던 것을 물었다.

“……레스티아는 어떻게 지내고 있지?”

그동안 그것이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모르기 위해 노력했다.

-나빴어요.

레스티아가 그 말을 꺼내게 만든 상황을 만회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많은 것이 변했고, 승리가 확정된 상황이었다.

게다가 레스티아가 먼저 자신에게 이렇게 선물을 보냈다.

마치 먼저 화해를 요청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이제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제라르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흠……. 지금은 범선 위에 있겠군. 그 선물, 수도로 출발했다는 편지와 함께 도착했으니.”

“뭐?”

레스티아가 수도로 돌아온다니.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왜?”

“성년제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 애도 이제 17살이니 말이야. 모르카티움 제국의 국민인 이상 그 애도 축복받을 권리가 있지.”

성년제.

막 성년을 맞이한 모르카티움 제국의 소년 소녀들이 성인임을 인정받고 신전에서 축복을 받는 자리였다.

이 행사를 치러야만 진정한 성년을 맞이했다는 의미였기에 꽤나 중요한 행사였다.

“그래. 당연히 축복받아야지.”

리시언은 제라르를 만류하지 않았다.

레스티아가 제국으로 돌아와도 괜찮을 수 있도록 준비했던 4년이었다.

지금까지도 안전할 수 없었다면 면목이 없는 일이었다.

이제 베르체스터 공작가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레스티아가 마력 중화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지금은 더더욱.

하지만.

‘성년제 라.’

성인이 된 것을 축복을 받는 자리라지만, 남녀 모두가 아름답게 꾸미고 축제를 즐기는 자리이기도 했다.

특히나 귀족 사회에서는 그 자리를 혼맥의 장소로도 보았다.

‘하필이면.’

자신도 보지 못한 17살이 된 레스티아를 모두의 앞에 내어놓는 것이 왜 이렇게 상상만 해도 불쾌하고 걱정스러운지.

리시언은 거칠게 셔츠의 상단의 단추를 풀어헤쳤다.

* * *

황후는 열세에 몰려 황후궁에 유폐되다시피 갇혀 지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성을 뒤덮고 있는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대리석들이 자신을 가두고 있는 두꺼운 얼음벽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난방을 해도, 온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시리게 느껴졌다.

분명 4년 전만 해도 자신이 이런 처지가 될 줄 몰랐다.

승리를 자만했다.

록산느를 이겼으니, 그녀의 어린 자식은 제 적수가 아닐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리시언은 록산느 황녀와는 달랐다.

록산느가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정의로웠다면, 리시언은 합리적이고 냉철하게 움직였다.

그래서 함정을 파도 걸려들지 않았다.

되레 황후는 그 함정에 역으로 당해, 수족처럼 부리던 이들에게 자신의 죄를 씌워 스스로 제 손발을 잘라내야 했다.

그동안 황제는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으나, 황후의 눈에는 황제가 리시언을 퍽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무슨 수를 부렸는지, 황가가 줄곧 다루기 까다롭다고 여겨왔던 베르체스터 공작가를 제 편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대로는 질 수 없어. 무슨 수를 써야 해.”

황후는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붉은 피가 배어 나와서 혀끝에서 비릿한 쇠 맛이 났다.

하지만 좀처럼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황태자를 살리기 위해 라난테 가문의 어린아이를 납치해 희생시켰음에도, 황태자는 간신히 몇 마디 할 줄 아는 게 전부인 상태였다.

그것도 머저리처럼 키득거리며 웃거나 ‘배고파.’ 따위의 말을 뱉어냈다.

저것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짜로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무리였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일단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황제도 황태자를 굳이 찾는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얼마 전에 황태자비가 이혼을 요구했다.

황후와 황태자의 정치적 입지가 날이 갈수록 좁아지니, 황태자비의 가문에서는 발을 빼기로 한 것이었다.

어차피 정략결혼이었고, 둘 사이에 오랫동안 아이도 없었으니 결혼을 유지하지 않아도 될 명분이 충분했다.

그러나 황후는 이혼을 막아섰다.

이렇게 정치적 입지 하나를 또다시 잃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태자비의 가문은 집요했다.

그들은 이혼을 허하지 않으면 황태자의 이상한 상태를 황제에게 고할 것이라 협박하며 황후의 숨통을 죄어오기 시작했다.

“제까짓 것들이 감히 나를……!”

황후는 신경질적으로 병 안에 담긴 독주를 크리스탈 잔 안에 부었다.

하지만 이미 취기가 만연했던 탓에 독주는 잔 밖으로 빗겨나가 쏟아져 내렸다.

“아하핫! 이것 또한 제대로 되지 않는구나.”

이미 패색이 짙어진 싸움이었다.

하지만 황후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키시어스 대공의 약점을…… 약점을 찾아야 한다.”

단, 하나라도.

황후는 그 말을 되새기며 크리스탈 잔에 담긴 독주를 들이켰다.

4년 전부터 입에 대기 시작했던 독주는 점점 더 독한 술로 변해 갔으나, 갈수록 취하기가 어려웠다.

그것이 또 화가 나서 황후는 잔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크리스탈 잔은 대리석 바닥과 만나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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