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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66화 (66/132)

66화

리시언이 황태자궁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했었을 것이 분명한 건축물과 그를 장식하고 있던 조각상들이 마티어스가 일으킨 지진에 의해 엉망으로 무너져 있었고, 조엘이 만들어낸 바람이 매섭고 날카롭게 휘몰아치며 사람들이 궁 안으로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고 있었다.

황태자 궁에 기거하는 궁인들도, 황태자를 지켜야 하는 기사들도 갑자기 일어난 이 기이한 현상에 질겁해서 우왕좌왕했다.

리시언은 그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조엘이 만들어낸 바람의 장벽을 불꽃으로 태우며 궁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인상을 썼다.

마법사의 통제를 벗어나 엉망진창으로 날뛰는 마력의 흐름.

이것은 리시언이 1년 전에 베르체스터 저택에서 경험했던 것과 동일했다.

조엘과 마티어스에게도 같은 사고가 생긴 것일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욱 커져서 발걸음이 빨라졌다.

하지만 일순간에 성난 황소처럼 날뛰던 마력들이 순한 양처럼 잠잠해진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갑자기? 어째서?’

리시언이 레스티아를 발견한 것은 의아함을 품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레스티아?”

조엘과 마티어스의 마력이 허공에 물방울 모양으로 뭉치기 시작하며 마석으로 변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마석들은 달빛을 반사하며 은은하게 빛났고, 레스티아는 그 가운데서 노래하듯 주문을 읊고 있었다.

흩날리는 새하얀 머리카락과 작지만 청아한 목소리.

지금 레스티아의 모습은 마치 꽃이 가득 핀 들판 위에서 노래를 하는 요정처럼 보였다.

리시언은 일순간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잃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마도서 없이도 마법을 사용하다니, 불과 1년 전만 해도 글자를 읽는 법도 몰랐던 아이였는데.

레스티아의 성장과 변화가 놀라웠다.

깡마르고 불쌍한 소녀에서 작고 용감한 토끼로, 베르체스터의 사랑받는 막내 공녀로, 이제는 요정, 그다음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감 같은 것이 생겨났다.

곁에서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욕심이 스멀스멀 생겨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내 마석들이 비처럼 땅바닥으로 쏟아져 내렸고, 레스티아가 맥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조엘과 마티어스가 정신을 잃고 쓰려져 있는 레스티아에게로 향하자, 리시언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레스티아에게로 달려갔다.

“레스티아……! 이런…….”

“리티! 리티! 이게 무슨 일이야!”

조엘과 마티어스는 레스티아를 품 안에 안은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폭주했던 탓에 곧바로 냉철한 이성을 되찾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이리 보여 봐.”

리시언이 쌍둥이들로부터 레스티아를 빼앗듯이 안아 들고 침착하게 상태를 살폈다.

쌍둥이들은 여동생을 리시언에게 빼앗긴 후에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레스티아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마침내 리시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아.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서둘러 저택으로 데려가는 것이 좋겠어.”

레스티아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호흡도 안정적이고, 열도 느껴지지 않았다. 외상도 없었고 말이다.

쌍둥이들은 그제야 리시언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아, 리시언……? 네가 여기를 어떻게……?”

“뭐야? 우리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리시언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는 조엘과 마티어스를 질타했다.

“그렇게 마법을 써댔는데 모를 수가 있나? 이미 모두가 베르체스터가 황궁에 왔다고 생각할걸. 마티어스는 그렇다고 쳐도 조엘 너는 말렸어야 해.”

그 말에 조엘이 반듯한 이마를 거칠게 쓸어내리며 눈을 감았다.

“그래, 그랬어야 했어. 하지만 참을 수가 없었어. 황태자가 레스티아를 가두어두고 그 애에게 청혼서를 쓰라 강요하는 모습을 봤으니까.”

“……뭐?”

리시언의 표정이 순식간에 살벌하게 바뀌었다.

청혼이라니.

레스티아가 결혼?

그런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더러워졌고, 저절로 손아귀에 힘이 거세게 들어갔다.

리시언은 그 사실을 인지하고는 레스티아가 다칠세라 조심스럽게 쌍둥이들에게 다시 여동생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황태자는 어디에 있지?”

마티어스가 고갯짓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우그러진 채 멀리 나동그라져 있는 새장 옆을 가리켰다.

리시언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는 마석들을 가로질러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여전히 꽉 붙잡은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금방이라도 방금 전의 조엘과 마티어스처럼 이성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에리히엔은 이미 쌍둥이에게 얻어맞아 엉망이 된 몰골로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리시언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같은 혈통을 가진 원수의 아들.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낸 원흉.

이 한심한 자를 황태자로 만들기 위해 부모님이 죽었다.

문득, 복수라는 잊고 살았던 욕심이…… 그 달콤한 유혹이 솟아났다.

“…….”

리시언은 몸을 숙여 에리히엔의 목을 향해 빳빳하게 힘이 들어간 손을 옮겼다.

그런데 에리히엔에게서 살아있는 사람의 호흡이 느껴지지 않았다.

“……복수는 못 하게 됐나.”

어쩐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생겨났다.

리시언은 물끄러미 베르체스터 형제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두가 무사했지만, 이제부터 피곤한 일이 생길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마티어스와 조엘이 황궁으로 쳐들어와서 황태자를 공격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

이것은 명백한 황족 시해 죄였다.

그리고 그 황족은 모르카티움 제국의 유일한 적자가 아니던가.

아무리 베르체스터 공작가라고 하더라도 황가가 이 일을 가볍게 여기고 넘어갈 리 없었다.

적어도 누군가는 죗값으로 목숨을 내놓아야 하리라.

오라버니들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는 레스티아는 여전히 편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불행이 다가온다면 너는 어떻게 반응할까.

기껏 만나게 된 가족들이 사라진다면, 너는 얼마나 아파할까.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조엘과 마티어스의 졸업식에 참석해야 한다며 즐거워했는데, 그것이 불가능해져 버릴지도 몰랐다.

이상했다.

소중하니까 지키기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슬퍼하는 모습 또한 조금도 보고 싶지 않았다.

리시언은 자신의 발치에 있는 에리히엔을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고작 이렇게 덜떨어진 자식 때문에.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같잖은 황태자 때문에 레스티아가 불행해지고, 자신이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리시언은 쌍둥이들을 향해 다가갔다.

“……마티어스, 조엘.”

그리고 결심하듯 말했다.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레스티아와 함께 저택으로 돌아가.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

그 말에 조엘과 마티어스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리시언을 바라봤다.

“뭐? 리시언, 뭘 어쩔 셈이야?”

“여기에 너 혼자 남아 있겠다고? 그건 허락할 수 없어.”

쌍둥이들은 미간을 좁힐 뿐 도통 움직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표정에는 사고는 우리가 쳤는데, 왜 네가 나서냐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해결할 수 있어.”

리시언은 이 모든 일을 자신이 덮어쓸 생각이었다.

타인이 황족을 해하면 황족 시해 죄가 되지만, 황족이 황족을 해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현 황제 또한 수많은 황족을 제거하고 황좌의 자리에 앉아있었다.

하지만 리시언이 황족이라는 것을 모르는 쌍둥이들은 미간을 험악하게 좁힐 뿐이었다.

“뭐? 네가 무슨 수로.”

쌍둥이들의 반응에 리시언은 짧게 숨을 내뱉었다.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래서 처음으로 베르체스터 형제들을 향해 부탁했다.

“부탁해. 이번만큼은 나를 믿어도 좋아.”

조엘과 마티어스는 그 말을 꺼내는 리시언의 모습이 낯설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리시언은 건방진 녀석이었다.

붙임성도 없었고, 조금도 지지 않으려고 하고, 끝까지 형이란 말도 입에 담은 적이 없었다.

그런 녀석이 이렇게 먼저 숙이고 부탁을 해올 줄이야.

하지만 낯설게 느껴졌던 모습도 잠시, 리시언이 곧바로 날카롭게 명령을 내리듯 말했다.

“시간이 없어. 서둘러.”

“……알았어.”

마티어스가 먼저 레스티아를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시언, 네 말대로 해서 나빴던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조엘은 리시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리시언. 이대로 돌아가서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있으라고? 그건 의미 없는 짓이야. 우리는 속성 마법을 사용했고, 그걸 쓸 수 있는 건 베르체스터밖에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어.”

“그러니까, 괜찮아.”

리시언은 조엘에게 설명의 말을 늘어놓는 대신 손에 끼고 있는 반지를 빼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레스티아가 만들어낸 마석들의 힘을 흡수했다.

이 마석들은 완벽한 마력 중화석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 근접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리시언은 어렵지 않게 속성 마력을 뽑아내 제힘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마법과 바람의 마법을 써서 조엘과 마티어스가 마법을 사용한 흔적을 지웠다.

“이제부터 이건 다 내가 한 일이 될 거니까.”

믿기지 못할 광경에 조엘과 마티어스의 눈이 저절로 커졌다.

리시언이 불의 마법 외에도 다른 속성 마법을 사용하다니.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리시언? 방금 뭘 한 거야?”

리시언은 계속되는 질문에 결국 짧게라도 설명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너희도 내가 동생이라는 말을 그대로 믿었던 건 아니잖아.”

“…….”

세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침묵했던 진실을 마주하고는 잠깐 말없이 서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바람이 멈췄다!”

“황태자 전하의 안전을 확보하라!”

멀리서 황실 기사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조엘이 만들었던 바람의 장벽이 사라졌으니, 황태자 궁으로 들어올 수 있는 틈이 생긴 것이었다.

“설명은 제라르에게 듣도록 해. 지금은 들키지 말고 황태자궁을 빠져나가는 데 집중해. 왔던 길로 나가면 마차가 준비되어 있을 거야.”

하지만 쌍둥이들은 여전히 걸음을 망설였다.

리시언이 재촉했다.

“어서 움직여. 여동생을 지켜야지.”

조엘과 마티어스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 안에 레스티아를 안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리시언은 마티어스의 품 안에 안겨서 점점 작아져 가는 레스티아의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봤다.

‘레스티아 베르체스터. 이건 지난번에 내 목숨을 구해준 빚을 갚는 것뿐이야.’

마티어스가 조엘과 레스티아를 데리고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황실 기사단이 들이닥쳤다.

“황태자 전하! 무사하십니까!”

그리고 겹겹이 리시언을 에워쌌다.

그곳에는 세이튼 온리드라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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