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한편, 리시언은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흔적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지금은 폐쇄된 북쪽 광산에 위치한 지하 감옥.
과거, 이곳에서는 황제의 지시하에 인체실험이 진행되었었다.
누구나 마법을 쓸 수 있던 시대를 재현해보겠다는 그 실험은 ‘마법은 피로 계승된다.’라는 논리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피를 뽑힌 채 목숨을 잃었다.
리시언의 어머니는 이런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황제의 뜻에 반해 이곳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적황녀 록산느.
그녀는 황족이라기에는 돌연변이다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정의롭고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비인간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황권 강화에 힘써왔던 선대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래서 항상 황제의 뜻에 반했다.
황가의 적통 후계자였으니, 알아도 모르는 척 황제의 뜻을 그대로 따라도 그 누가 무어라 할 리 없을 텐데.
그녀는 본인의 신념에 반하는 일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아버지인 황제의 눈 밖에 나는 일 정도는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말이다.
“아직도 그날의 일이 생생합니다. 황녀님께서는 수하들과 함께 이곳을 급습해 닥치는 대로 몽땅 파괴해 버리셨지요. 더는 실험을 할 수 없도록 말입니다.”
검은 로브로 전신을 가린 남자가 리시언의 곁에 서서 추억을 회상하듯 과거를 더듬고 있었다.
과거에는 록산느가 부렸고, 지금은 리시언이 부리고 있는 수하였다.
이 남자 또한 이곳에서 록산느 덕에 목숨을 구한 실험체였다.
“저는 그날, 황녀님께 이 목숨을 바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곳에 있던 모두가 다들 그랬지요.”
록산느 덕분에 이 실험실에서 살아난 이들은 황녀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들은 실험의 후유증으로 다들 외모가 흉측해져 양지에서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갈 수 없게 된 상태였다.
록산느는 그들을 거두어들여 지하세계를 주무르는 세력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모두가 황녀님께 감사했던 것은 아니지요. 리시언 님의 아버지 말입니다.”
“…….”
이 실험실이 만들어낸 유일한 성공작.
이름도 없이 괴물이라 불린 그 남자는 록산느가 제 몸을 구속하고 있는 구속구를 풀어주자마자 그녀의 목을 노렸다.
“정말이지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이성이 나가서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녀석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했지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합니다.”
하지만 록산느는 그 괴물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대신 용서를 구했다.
“황녀님께서는 자신을 죽여서라도 분이 풀리면 목숨 정도는 가져가도 좋다고 말하며 함께 눈물을 흘려주셨습니다.”
뜨거운 눈물과 따스한 손길.
다정한 진심.
그런 것들을 처음 경험해본 괴물은 당혹감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록산느를 그대로 놓아주고 도망쳐 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멀리 달아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록산느의 곁을 맴돌았다.
그러자 록산느는 그 괴물에게 기꺼이 자신의 곁을 내주었다.
가지고 있는 그 대단한 힘을 자신과 함께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쓰자며 괴물을 설득했다.
고아로 자라 실험체로 쓰였던 미천한 괴물은 황금빛 눈을 반짝이며 인간으로서 황녀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충성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은 어느새 질척하게 녹아서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변해버렸다.
괴물은 황송하게도 고귀한 황녀에게 이름을 받았고, 사랑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리시언이 태어났다.
허락받지 못했기에 숨겨야 했던 아이가 말이다.
“두 분 모두 정말 당차고, 멋진 분들이셨습니다. 살아 계셨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정쟁에서 패배했다.
번번이 자신에 뜻에 반했던 황녀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황제가 대놓고 황후의 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남겨진 것은 이렇게라도 부모님의 흔적을 기억에 담아두고자 하는 리시언뿐이었다.
“…….”
리시언은 천천히 아버지가 감금되어 있었다는 지하 감옥을 둘러보았다.
감옥은 어머니가 파괴했다는 그때 그대로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리시언은 자신이 그 두 사람을 지독하게 닮았다고 생각했다.
자유분방한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일까.
리시언 역시 자유로움이 좋았다.
지난 1년간 종종 베르체스터 저택을 벗어나 자유롭게 밖을 돌아다닐 때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경쟁해서 우위를 차지하고 제 능력을 발휘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다.
어머니가 부리던 수하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자신이 있어야 하는 위치가 이런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술 수련장에 처박혀서 혼자 검을 휘두르고 탁상공론에 가까운 독서를 반복하는 일은 해가 갈수록 성에 차지 않았다.
조금 더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솟아났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끓어오르는 분노에 치를 떨어야 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녀석들은 모두 죽이겠다고 했다, 라…….’
리시언은 아버지가 감옥에서 풀려나자마자 말했다는 그 말에 깊게 공감했다.
리시언 역시 자신을 이렇게 도망자로 살게 한 녀석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싶은 충동에 나날이 휩싸였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고 나서 그 분노를 통제하는 데 성공했으나, 리시언은 그러지 못했다.
스스로 사력을 다해 억누르고 억눌러야 할 뿐.
그래도 참을 수 있었던 건…….
문득 레스티아가 떠올랐다.
구름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리시언 님. 함께 산책 가주세요. 오늘은 날씨가 무척 좋은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그 아이의 맑은 미소.
함께 이것저것 해보자는 약속들.
비록 짧은 시간이었으나, 그것이 리시언이 베르체스터 저택을 견뎌 낼 수 있게끔 했다.
하지만 곧 레스티아를 만날 수 없게 된다.
리시언은 애써 레스티아의 미소를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그리고 감옥의 어둑한 공간을 응시하며 부모님들을 향해 속으로 말을 건넸다.
‘난 최선을 다해왔어. 당신들의 유언대로 숨고, 숨어서 이렇게 살아남았어.’
그리고 앞으로도 숨어서 살아야겠지.
‘하지만 제국을 떠나면, 이렇게까지 숨어 있지는 않을 거야.’
모르카티움 제국을 떠나 아무도 자신을 찾지 못하는 곳으로 흘러가거든, 그때부터는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살 것이다.
‘그러니까, 꿈에 그만 나타나.’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수록 악몽이 심해졌다.
자유의 즐거움을 느끼고 돌아온 날이면 피로 물든 지하수로를 계속해서 헤매는 꿈을 꿨다.
도망치라는 어머니의 비명이 날카롭고, 잘려 나간 아버지의 팔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무력해서 혐오스러운 자신.
그 꿈을 꿀 때면 밤새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설쳐야 했다.
‘내가 죽을 때까지 이런 악몽을 꾸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제는 괜찮다고, 제국을 떠나면 네 마음대로 하라고 말해줘.’
하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이 대답을 해줄 리 없었다.
부모님들은 무덤조차 남기지 못하지 않았던가.
‘이걸로 됐어.’
오늘 이날 이후로 더 이상 모르카티움 제국에서 부모님의 흔적을 되돌아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제국을 떠날 날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조엘과 마티어스의 아카데미 졸업식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까.
리시언은 신경질적으로 미간을 좁히고는 지하 감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검은 로브를 입은 이들이 리시언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록산느 황녀가 구해냈던 실험체들은 이미 자신들의 주인을 리시언으로 결정한 지 오래였다.
지하 세계는 강자가 지배한다.
신분도, 돈의 논리도 필요치 않다.
리시언이 록산느 황녀와 괴물의 아들이라고 해도 그 규칙에서 어긋나거든 이들을 거느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간 지켜봐 온 봐.
리시언은 강자로서 조금의 손색도 없는 훌륭한 자질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국적 또한 필요 없었기에 리시언이 제국 밖으로 떠나도 어디든 함께할 생각이었다.
* * *
밤늦게야 베르체스터 저택으로 돌아온 리시언은 우뚝 걸음을 멈추고 레스티아의 방이 위치한 창문을 한번 확인했다.
외출 후에 레스티아의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리시언이 베르체스터 성에 있을 때도 습관처럼 하곤 했던 일이었다.
레스티아가 오늘도 안전하게 하루를 보냈다는 것을 확인할 때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져서 악몽에 조금 덜 시달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상했다.
항상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곤 하는 레스티아의 방이 어두컴컴했다.
게다가 너무나도 조용했다.
평소라면 레스티아와 조엘, 마티어스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가 희미하게라도 들려와야 할 텐데 말이다.
오늘은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들기라도 한 건지.
“…….”
리시언은 물끄러미 레스티아의 방이 위치한 창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캄캄한 유리창이 달빛을 투명하게 반사하고 있었다.
‘그래, 잠든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궁금했으나, 굳이 찾아가서 확인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반년 전만 해도 계속 신경 썼을 일이지만, 지금은 그래서는 안 됐다.
리시언은 속으로 ‘하여간 이상한 습관이 들었어.’라고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너무 정을 준 걸까.’ 하는 후회도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떠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하는 합리화로 마음을 다스렸다.
그런데, 리시언이 저택으로 돌아온 것을 알게 된 프랭커가 헐레벌떡 달려와 소란을 떨어댔다.
“리시언 도련님! 큰일 났습니다. 레스티아 아가씨께서……! 조엘, 마티어스 도련님이……!”
“무슨 일이야?”
프랭커는 겨우 숨을 고르고는 황후가 광검사 온리드라스를 대동해 레스티아를 황궁으로 강제로 초대했다는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리고 늦은 밤까지 되돌아오지 않았기에 조엘과 마티어스가 황궁으로 향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소식을 들은 리시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제라르도 없는 이 상황에 조엘, 마티어스가 황궁으로 갔다는 것이 염려되었다.
이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 생각인지.
레스티아의 일에는 기이하리만큼 이성을 잃는 조엘과 마티어스이지 않은가.
리시언은 다시 자리에 우두커니 멈추어 섰다.
결심했던 대로라면 이제 베르체스터 공작가의 일에는 신경 쓰지 말고 저택 안으로 들어가 쉬어야 했다.
“……젠장!”
하지만 리시언은 결국 다시 왔던 걸음을 되돌려 저택 밖으로 나섰다.
이 모든 행동이 이성보다 본능이 시키는 일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이상한 습관이 들어 버린 것이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