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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55화 (55/132)

55화

한편, 제라르는 격전지에서 작전 참모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이번에 전달받은 황명은 남부 국경 지대의 반란군을 토벌하는 것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따분하고 재미없고 보람도 없는 일이었다.

“공작님, 이대로라면 두 달 이내로 소탕이 모두 완료될 것 같습니다.”

작전 참모가 보고를 끝마쳤다.

생각보다 소탕 기한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제라르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이번 전투는 전적으로 수하들에게 맡기고 직접 나설 생각이 없었다.

그의 판단에 적군이 무척 약했기 때문이었다. 약자와는 정면 대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제라르 나름의 철칙이었다.

마법사와 일반인의 싸움은 지나치게 가혹하지 않은가.

그는 주로 전투를 지켜보다가 아군이 밀릴 때나, 적장과 싸울 때 선봉에 섰다.

자신이 직접 출정하면 적의 피해가 너무나 컸기에 그 나름대로 인명 피해를 배려하는 처사였다.

그 때문에 전장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곤 했으나 크게 개의치 않았다.

전쟁을 빨리 끝내나, 일찍 끝내나, 어차피 그 이득은 황가가 챙겨 갈 테니까. 적당히 황명을 따르며 지키고자 하는 신념을 지켜 냈다.

제라르는 가볍게 턱을 쓰다듬으며 보고에 수긍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의아하다고 여겼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최근 기사들이 품 안에 가지고 다니는 것이 무엇이지?”

“아, 보셨습니까?”

요 근래 제라르는 베르체스터의 기사들 사이에서 못 보던 것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기사들이 품 안에 종이꽃을 소중히 품고 있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종이꽃입니다. 레스티아 아가씨께서 직접 접어서 기사들에게 선물해 주셨지요.”

“그 애가?”

“예. 기사들 사이에, 자신이 모시는 가문의 레이디에게 꽃을 받으면 안전하다는 속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 직접 만들어 주셨다고 하더군요.”

“쓸데없는 짓을 했군.”

꽃을 주어야 한다면 돈으로 해결하면 될 것을. 굳이 힘들여 종이꽃을 접어 선물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비효율적이라고 평가해야 할지, 잔정이 많다고 평가해야 할지.

“하지만 기사들의 사기가 무척 올라갔답니다. 긍정적인 일이지요.”

참모의 말에 제라르는 물끄러미 레스티아를 떠올렸다.

마지막 저녁 식사에서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걱정스레 자신을 바라보던 모습이 신경 쓰였다.

그렇게 마음 쓸 일도 아닌데,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이라도 하고 올걸 그랬나.

당찬 듯하면서도 여린 마음을 가진 여동생이라니.

쉽게 다치고 깨질 것 같아서, 어디 내버려 두어도 알아서 잘 살 것 같은 남동생들과는 너무나 달랐다.

‘생각보다 어렵군.’

가문의 주인으로서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려고 생각했으나, 제라르는 아버지의 역할을 몰랐다.

그래도 책임감을 가지고 거두어들여 가장 안전한 곳에 두고 왔으니,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겠거니 싶었다.

레스티아에게 항상 최고의 것을 제공하라 지시했고, 곁에 리시언도 붙여 두고 왔다.

‘그것으로 된 것이겠지.’

제라르는 그렇게 레스티아에 대한 생각을 비웠다.

그런데 새로운 보고가 들어왔다.

“아! 공작님, 그러고 보니 리시언 도련님께 연락이 왔었습니다.”

레스티아가 몸살 때문에 몸져누웠다는 이야기였다.

왜 앓아누웠는지 내심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베르체스터로서 부족한 면을 채우라고 지시했다.

그랬더니 레스티아는 지나치도록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똑똑한 아이이니 조엘처럼 완급 조절을 잘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방법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차라리 마티어스의 반의반만 닮아서 적당히 요령이라도 부릴 줄 알았다면 좋겠건만.

‘하지만 약하군. 베르체스터라면 이 정도에 앓아누워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고작 이 정도에?’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떨쳐 냈다.

레스티아에게 아버지 노릇을 해 주겠다고 생각했으나, 칼란드 베르체스터, 그 남자와 똑같이 사고하는 것은 옳지 않게 느껴졌다.

제라르는 눈을 가늘게 좁히고는 참모를 바라봤다.

“연락이 언제 왔지?”

“아, 편지는 속달로 오전에 도착했습니다. 중요한 사항은 아니라고 판단하여 지금 보고했습니다.”

“……중요한 사항이 아니라. 그걸 왜 네가 판단하지?”

제라르의 살벌한 질문에 참모는 울음이라도 터뜨리고 싶었다.

평소 집안일에 대한 보고는 맨 나중으로 미루던 제라르가 아니었던가.

심지어 아버지의 사망 소식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제라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레스티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하명했다.

“황명은 오늘 안에 끝내도록 하지.”

“예?”

“출정하겠다.”

참모는 입을 떡 벌렸다.

제라르 베르체스터가 직접 전투에 나서다니. 정말 오랜만에 있는 일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집에 돌아가 봐야 할 일이 생겼으니까.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아프지 않나.”

이게 전장의 악마로 악명 높은 그 물 속성 마법사 제라르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인가?

하지만 출정을 하명받은 공작가의 기사들은 신이 났다.

“레스티아 아가씨 덕분에 집에 빨리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제라르와 그를 따르는 베르체스터 기사단은 거침없이 적군을 향해 돌격했고, 그날의 토벌전은 제라르의 명성을 더욱 높아지게 만들었다.

* * *

레스티아는 흠칫 놀랐다.

눈을 떠 보니, 자신의 침대 주변을 베르체스터 형제들이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오라버니들……?”

분명 수도에 있어야 할 조엘과 마티어스가 아카데미 제복을 입고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전쟁터에 나갔던 제라르가 검은색 사령관 제복을 입은 채, 정면에 서 있었다.

여전히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환상을 보여 주는 마법이라도 있는 걸까.

리시언이 자신을 생각해서 소중한 사람들의 환상을 보여 주는 마도구라도 사용한 것인가 싶었다.

그래서 레스티아는 저도 모르게 제일 먼저 리시언을 찾았다.

“리시언 님?”

그러자 조엘, 마티어스, 제라르가 동시에 와락 표정을 구겼다.

“리티, 왜 나를 눈앞에 두고 리시언을 찾는 거야?”

“조금 섭섭한걸. 이 조엘 오라버니는 보이지 않는 걸까? 우리,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레스티아는 양손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어떻게……?”

레스티아는 그제야 자신의 눈앞에 있는 오라버니들이 환상이나 꿈같은 것이 아닌 실제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정말 오라버니들이에요?”

“그렇단다, 레스티아. 몸은 좀 어떤 것 같아?”

조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뻗어 레스티아의 이마를 짚었다.

열은 느껴지지 않았다.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다들 어떻게 오신 거예요?”

마티어스가 외쳤다.

“소식을 듣자마자 이동 마법을 써서 재빨리 왔어!”

“네에?”

레스티아는 눈을 크게 떴다.

카트리나가 마석을 이용하는 이동 마법은 비싸고 위험하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하셨어요!”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그야, 리티, 네가 아프니까. 빨리 얼굴이 보고 싶었는걸.”

“그래, 레스티아. 걱정했어. 크게 아프지 않아 다행이야.”

조엘과 마티어스의 걱정 어린 말에 레스티아는 고개를 떨궜다.

“죄송해요…….”

지난번 납치 사건도 그렇고, 삼촌의 일도 그렇고, 이번에 몸살에 걸린 것도 그렇고.

어째 오라버니들에게 자신과 관련된 일로 매번 번거로운 일만 만드는 것 같았다.

“죄송할 일은 없다.”

줄곧 가만히 서서 레스티아를 지켜보던 제라르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작 이런 일로 베르체스터가 베르체스터에게 사과할 필요는 없으니까.”

마티어스가 그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맞아. 리티, 나는 더 심한 일을 저질렀어도 그 어떤 베르체스터에게 사과한 역사가 없어.”

그리고 아차 싶었다. 이것으로 두 번이나 큰형의 말에 동의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래, 레스티아. 너는 어리고 보호가 필요한 나이야. 아픈 것은 네 의지로 이겨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 그리고 우리가 동생을 걱정하며 찾아오는 건 당연한 일이란다.”

조엘이 그나마 형제들 중에 제일 상식적으로 말하며 레스티아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었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저 때문에 하던 일도 중단하시고 오신 거잖아요. 그건 너무 죄송한 일인걸요. 다들 바쁘신데…….”

폐를 끼치지 않고 잘 기다리고 있으려고 했는데, 속이 상했다.

그러자 제라르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걱정 마라. 이기고 돌아왔으니.”

“네? 정말요?”

레스티아가 고개를 들어 제라르를 바라봤다. 표정에는 불안감이 역력했다. 제라르는 문득 이 얼굴에 안도감을 되찾아 주고 싶었다.

언젠가 한 번 봤던 그 표정.

‘일전에 이런 표정을 지었을 때, 조엘이 칭찬을 해 주라고 했었지.’

그래서 말했다.

“그래, 네 도움이 컸다.”

“제가요?”

레스티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스티아가 한 일이라고는 풍등을 날리며 소원을 빈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제라르가 알 리 만무했다.

“기사들에게 종이꽃을 접어 줬다 들었다. 참모가 기사들의 사기가 많이 올랐다더군.”

“네? 그건 제 도움이 아닌걸요.”

하지만 제라르는 단언했다.

“네 도움이 맞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베르체스터의 레이디는 너뿐이니까.”

레스티아는 수줍게 볼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제야 제라르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에 질세라 조엘이 말했다.

“그래, 레스티아. 아카데미 일도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리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마티어스?”

“그, 그럼! 정 의심되면 카트리나한테 물어봐도 돼! 이번에도 특별 외출을 허락받고 온 거야.”

마티어스는 조금 찔려 하며 대답했다.

“그럼 다행이에요.”

세 형제의 노력 덕에 그제야 레스티아가 생기롭게 미소 지었다.

“다들 저를 걱정하고 만나러 와 주셔서 고마워요. 저, 이제 안 아파요.”

그 미소가 무척 사랑스러워서 세 형제는 당장 뛰어오기를 잘했다 생각하며 레스티아를 바라봤다.

그런데.

“저, 그런데 리시언 님은 어디에 가셨나요? 분명 계속 간호해 주고 계셨는데…….”

레스티아가 다시 한번 리시언을 찾았다.

“너는 항상 그 녀석부터 찾는군.”

세 형제는 또다시 미간을 좁혔지만, 이제야 겨우 쾌차한 레스티아를 위해 얌전히 리시언의 행방을 늘어놓았다.

“걱정 마, 레스티아. 리시언은 잠깐 볼일이 있다며 항구에 갔어. 그래도 저녁 식사 때까지는 돌아오기로 했으니까.”

그리고 준비해 둔 말을 꺼내 들었다.

“맞아! 리티, 저녁에는 기사들과 함께 승전 기념 파티를 하기로 했으니까 기대해도 좋아.”

“승전 기념 파티요?”

뜻밖의 말에 레스티아는 세 명의 오라버니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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