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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49화 (49/132)

49화

‘어? 리시언 님의 홍채 색은 왜 황금색인 거지?’

혼란과 의구심이 레스티아의 작은 몸을 잠식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레스티아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되물었다.

“헤일록, 그럼 리시언 님은요? 리시언 님의 홍채 색은 무슨 색이지요?”

헤일록은 레스티아의 질문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예? 리시언 님도 선대 공작님과 같은 붉은색 홍채를 가지고 계시지요.”

그 대답에 레스티아는 더 이상 질문을 건넬 수 없었다.

그 후, 헤일록은 자신이 알고 있는 베르체스터 공작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레스티아의 귓가에는 그 무엇 하나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동안 줄곧 예쁘다고 생각했던 리시언의 황금색 홍채가 자신의 눈에만 보이던 것이었다니.

레스티아는 결국 헤일록에게 뒷정리를 부탁하고 도망치듯 지하 금고 밖으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 * *

‘……너무너무 이상해.’

방으로 돌아온 레스티아는 침대 위로 풀썩 몸을 뉘었다.

그러자 문득 베르체스터 가문의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4대 속성을 나타내는 사자의 눈.

레스티아는 가문의 문장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침대 밖으로 몸을 빼냈다.

멀리 갈 필요는 없었다.

도라가 마티어스가 선물해 준 액세서리들을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보석함에 정리해 두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레스티아는 침대 옆 서랍에 보관해 둔 보석함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기억했던 대로 새하얀 상아를 깎아 만든 보석함의 상단에 금색 사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풍성한 갈기를 가진 사자는 강직해 보이는 콧대를 중심으로 사파이어, 에메랄드, 루비, 자수정이 박힌 네 개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보니, 리시언이 가진 황금색 홍채는 그 어디에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확실히 불을 상징하는 것은 붉은색 루비였다.

‘루비는 그냥 상징적인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황금색 사자에 황금색 눈은 잘 보이지 않으니까. 막연하게 황금 대신 루비를 사용해 장식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불 속성 마법사의 눈이 붉은색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실제로 불 속성 마법을 쓰는 사람은 리시언 외에는 만날 일도 없었고 말이다.

“아가씨? 무슨 생각 하세요? 액세서리 구경을 하고 계신 건가요?”

도라가 일과를 마무리하고 돌아온 레스티아의 옷을 갈아 입혀 주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섰다.

“도라! 마침 잘 왔어요.”

레스티아는 도라를 마주하자마자 대뜸 질문을 던졌다.

“리시언 님의 눈 색깔 말이에요. 무슨 색이지요?”

헤일록이 잘못 봤을 수도 있으니 싶어 던진 질문이었다.

하지만 도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왜 질문하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네? 아가씨,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히 붉은색이잖아요. 아가씨께서 보고 계신 보석함에 있는 사자처럼요.”

“……정말이요?”

“네. 누구한테 물어봐도 그렇게 대답할 거예요.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건가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빗질을 할게요. 아가씨, 여기 앉으세요.”

도라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브러시를 들고 와서 레스티아의 머리카락을 빗겨 주었다.

‘내 눈이 이상한 걸까?’

레스티아는 그날 밤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누구보다 먼저 검술 수련장으로 달려갔다.

리시언을 직접 보고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너무 일찍 온 탓에 사방이 어두웠다.

하지만 이전처럼 유령이 나올까 봐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가장 무서운 것은 리시언과 마주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걸 확인한 후에 대체 뭘 어쩌려고 하는 걸까?’

리시언의 얼굴을 마주한 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 하나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기다림 끝에, 어둑한 새벽 풍경을 가르며 리시언이 검술 수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오늘따라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 그렇게까지 나를 이기고 싶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나직한 목소리.

해돋이를 등지고 선 채 미소 짓고 있는 리시언의 모습은 굉장히 근사했다.

그리고 레스티아가 줄곧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홍채는 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

리시언과 마주한 레스티아의 머릿속에 많은 말과 생각들이 떠돌았다.

‘이상해요, 리시언 님. 왜 제 눈에는 리시언 님의 홍채가 금색으로 보이는 걸까요. 모두가 붉은색이라고 하는데.’

‘어렸을 때부터 아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인가요? 왜 그 얘기는 저한테 해 주지 않으셨어요?’

‘혹시 리시언 님도 저처럼, 다른 오라버니들과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건가요?’

‘이상해요. 리시언 님이 무언가를 숨기고 계신 것 같아요. 굉장히 중요한 것들을요.’

하지만 한 마디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혹시라도 이것들이 리시언이 일부러 숨기고 있던 것들이라면…….

그걸 레스티아가 눈치챘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문득, 카트리나가 리시언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말해 봐, 소년. 당신은 누구지? 스스로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

레스티아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질문.

카트리나가 그 질문과 함께 마안을 사용하자마자, 크게 당황하며 사라지던 리시언의 모습이 기억에 선명했다.

그 후, 리시언은 카트리나와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듯 보였다.

레스티아가 이 질문들을 꺼냈다가는 리시언이 자신을 카트리나처럼 피해 버릴까 봐 두려웠다.

‘안 돼. 그렇게 되는 건 싫어.’

이제야 겨우 다시 가까워졌는데.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잔뜩 만들어 뒀는데.

이제야 겨우 처음 만났을 때처럼 곁을 내주게 된 리시언이 다시 거리를 둘까 봐 두려웠다.

아니, 더 상황이 악화되서 리시언이 당장이라도 멀리 떠나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 왜 그래?”

레스티아가 평소처럼 리시언을 반기지도 않고 멍하니 서 있자, 리시언이 인상을 쓰며 성큼 가까이 다가왔다.

“혹시 무슨 일 있어?”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잠깐 졸았어요.”

레스티아는 리시언이 다가온 만큼 뒤로 물러서며 손사래 쳤다.

리시언이 평소처럼 또 제 생각을 읽어 버릴까 봐 두려웠다.

“뭐? 졸았다고?”

“네, 네!

리시언이 곧장 눈매를 가느다랗게 좁혔다.

“……수상한데?”

“저, 전혀! 수상하지 않아요!”

레스티아가 다급하게 소리 질렀다. 그러자 리시언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러섰다.

“그래. 알았어. 무리하지 마.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피곤하면 쉬어.”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저, 이렇게 건강한걸요!”

레스티아는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목검으로 허공을 휙휙 그었다.

곧바로 호위 기사들도 검술 수련장에 도착했고 훈련이 시작됐다.

머릿속에 떠돌던 질문은 결국 한 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 * *

그날 밤.

레스티아는 황립 아카데미로 마티어스와 조엘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를 썼다.

쌍둥이들은 레스티아에게 편지를 보내 줄 것을 신신당부하고 떠났었다.

-리티! 나한테 보내는 편지는 조엘보다 무조건 한 장 더 많이 써 줘야 해!

-레스티아, 마티어스를 위해 그렇게까지 수고할 필요는 없단다. 나에게 보내는 편지의 절반 정도면 충분할 거야.

라며 끝까지 신경전을 벌였다.

그래서 레스티아는 두 사람 모두에게 공평한 분량의 편지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편지는 베르체스터 성의 근황과 함께, 두 사람의 어린 시절 초상화를 봤는데 무척 귀엽고 사랑스러웠다는 이야기로 채워졌다.

그리고 보라색 종이와 녹색 종이로 각각 종이꽃을 접어 편지에 동봉해 넣었다.

조엘과 마티어스가 일전에 리시언에게 접어 준 종이꽃을 가지고 싶어 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카트리나에게도 편지를 쓰기로 결심했다.

안부 인사와 함께 복습을 잘하고 있다는 말들을 적어 내렸다.

하지만 편지를 마무리하기 전에 한참을 더 고민해야 했다.

‘어쩌지……. 이런 걸 물어봐도 괜찮을까……?’

레스티아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심하듯, 맨 끝자락에 추신을 적어 넣었다.

-추신. 카트리나 님, 혹시 홍채의 색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마법이 있나요?

얼마 후, 수도에서 답장이 도착했다.

레스티아는 조엘과 마티어스가 보내 준 편지보다, 제일 먼저 카트리나의 답장을 뜯어 보았다.

봉투를 여는 일이 이렇게 심장이 쿵쿵 울리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답장은 무척 간결했다.

-꼬마 아가씨 안녕!

추신으로 질문한 것 말인데. 리시언이라는 소년 때문에 질문하는 거지요?

그 애의 마력, 마안으로만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해석하는 자에게도 보이나 봐?

저기, 미안하지만 그 질문에 대답해 주지는 못할 것 같아. 제라르가 원치 않을 것 같거든.

꼬마 아가씨도 가급적이면 모르는 척하는 게 좋을 거예요!

당사자도 꼬마 아가씨가 아는 걸 싫어할지도. 그럼 방학 때 봐요!

늘 솔직하게 진실을 말해 줬던 카트리나마저 리시언의 비밀을 알려 주지 않았다.

‘……어쩌지? 나는.’

레스티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리시언이 다른 오라버니들과 무언가 다른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그래서 카트리나가 마안을 써서 레스티아가 공작가의 아이라는 걸 증명한 이후에도, 리시언에게만큼은 오라버니라는 호칭을 쉬이 가져다 붙일 수 없었다.

그랬던 것이, 초상화의 일로 더 큰 의심을 불러온 것이었다.

‘정말로 모르는 척해야 할까.’

카트리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도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은 진실에는 눈을 꼬옥 감곤 한답니다.

지금이 눈을 꼬옥 감아야 할 때일지도.

그래. 리시언 님이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면, 숨겨야 할 이유가 있는 걸 거야.

‘무엇보다 리시언 님이 나를 싫어하게 되는 게 싫어.’

레스티아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더 밝은 분위기로 평소보다 바쁜 일상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리시언 님께 꺼낸 말들을 지켜 내는 게 먼저야.’

그래서 매일같이 새벽 일찍 검술 수련장에 나가고, 밤늦게까지 마도서를 읽다 잠들었다.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피곤해.’

레스티아는 평소처럼 새벽 일찍 눈을 떴다.

평소와 똑같은 일상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마치 물을 잔뜩 머금은 솜처럼 걸음을 한 번 내디딜 때마다 온몸이 축축 처졌다.

‘아니야. 게으름 피우지 말자.’

레스티아는 마른세수를 했다.

이 정도 피곤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삼촌과 단둘이 살던 시기에는 아무리 몸이 안 좋아도 꽃을 팔러 거리로 나갔어야 했다.

안 그러면 하루 종일 굶어야 했으니까.

그때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닌걸.

그래서 평소처럼 목검을 들고 검술 수련장으로 향했다.

처음 샀을 때, 생채기 하나 없이 반질반질하던 목검은 이제 표면이 많이 벗겨져서 나무의 속살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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