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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46화 (46/132)

46화

“어, 여기는……?

리시언이 멈추어 선 곳은 바닷가를 향해 날릴 수 있는 풍등을 판매하는 노점이었다.

상인이 호쾌한 목소리로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고, 제법 많은 사람이 풍등에 불을 붙여 바닷가를 향해 날려 보내고 있었다.

“풍등이야. 여기까지 나온 김에 해 봐.”

리시언이 눈짓으로 노점을 가리켰다. 그러자 넉살 좋아 보이는 상인이 레스티아의 가까이 다가왔다.

“손님! 바다의 신에게 불씨를 선물하고, 소원을 빌어 보십시오!”

“소원이요?”

“예! 바다의 신은 불씨를 탐낸다는 전설이 있죠. 그래서 이렇게 풍등으로 바다에 불씨를 날려 선물하면 소원을 들어준다 합니다.”

“네? 하지만 불씨는 바다에 닿으면 꺼지잖아요?”

“하하! 그렇지요. 하지만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장 가지고 싶어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바다의 신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하는 신이라. 선물 받은 것이 제 몸에 닿자마자 사라져 버린다면 어떤 기분일까.

어쩐지 슬픈 이야기 같아서 레스티아는 풍등을 날리는 일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상인의 다음 말에 풍등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보다 중요한 건 여기 모인 사람들의 소원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가족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고 있답니다. 그래서 요새는 풍등을 헐값에 팔고 있지요. 손님도 하나 골라 보세요!”

다시 보니 사람들은 풍등을 날린 후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기도를 끝낸 후에 눈물을 훔쳤다. 그 행동에서 간절함과 애타는 마음이 묻어 나왔다.

레스티아는 그들이 제라르와 함께 전쟁터에 나간 이들의 가족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럼, 저도 하나 주세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손님의 소원도 바다의 신에게 닿기를!”

상인은 풍등 하나에 불을 붙여 레스티아에게 넘겨주었다.

새하얀 종이로 만들어진 풍등이 순식간에 빛을 발하며 가열된 공기가 종이 안에 팽팽하게 들어찼다.

“소원은 생각했어?”

리시언의 질문에 레스티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리시언과 함께 해변으로 걸어가 풍등을 바다를 향해 날려 보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손을 모아 소원을 비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라르 오라버니와 기사님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해 주세요.’

제일 먼저 제라르의 무운을 빌고, 다음으로 조엘과 마티어스를 위한 소원을 빌었다.

‘조엘 오라버니와 마티어스 오라버니가 건강하게 하고자 하는 일들을 모두 성취하고 즐겁게 돌아오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마지막 소원을 빌기 전에 리시언을 힐끗 바라봤다가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리시언 님이 어디론가 떠나지 않고 곁에 오래오래 있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곁에 없는 지금 리시언마저 어디론가 떠나 버리면 너무나도 외로울 것 같았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 놓고도 그 소원이 너무 이기적이라 한마디 첨언했다.

‘그러니까 리시언 님이 제 곁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막상 말해 놓고 나니 이상한 소원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이건 마치 리시언이 제 곁에 없으면 행복하지 않을 거라 저주하는 소원 같지 않은가.

레스티아는 결국에는 소원을 통째로 정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리시언 님이 행복하셨으면 좋겠다고 바꿀게요.’

그리고 기도를 끝내고 슬며시 눈을 떴다.

리시언은 옆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레스티아가 날린 풍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밤바람이 리시언이 입고 있는 로브를 슬며시 흔들었고, 그럴 때마다 리시언의 황금색 눈동자에 빛이 담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레스티아는 고개를 돌려 리시언을 따라 풍등의 행방을 주시했다.

그런데.

“어?”

레스티아가 날린 풍등이 바다를 향해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풍등을 밝히고 있는 불이 꺼질 듯 말 듯 희미했다.

도화선이 불량이었던 모양이었다.

레스티아는 초조했다.

‘이대로 풍등이 바다로 못 가면, 소원들은 모두 어떻게 되는 거지?’

하지만 나직한 목소리가 레스티아를 위로했다.

“괜찮아.”

리시언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뻗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희미하게 꺼져 가던 풍등에 불길이 다시 화르륵 타올랐다.

풍등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바다를 향해 살랑살랑 순조롭게 나아갔다.

“……고마워요, 리시언 님.”

리시언의 마법 덕분에 레스티아가 날린 풍등이 가장 높이, 멀리 바다를 향해 날아갔다.

레스티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걱정 없이 풍등들이 수놓아진 밤하늘을 구경할 수 있었다.

“정말 예쁜 풍경이에요. 이런 건 처음 봐요.”

“……그럼 여기서 조금 더 구경하다 가자.”

두 사람은 해변에 나란히 앉아 검은 하늘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풍등을 바라봤다.

정말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그런데 레스티아는 문득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리시언에게 이 이상한 기분을 털어놓았다.

“기분이 이상해요.”

“왜?”

“제라르 오라버니와 기사단은 전쟁터로 떠났는데…… 이곳은 너무 평화롭고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아요.”

“……괜찮아. 제라르는 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간 거니까. 네가 안전한 곳에서 이 풍경을 즐기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거야.”

다정한 위로를 받았는데도 레스티아는 여전히 석연치 않았다.

“너무 걱정스러워요……. 배웅이라도 하게 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그냥 가 버리실 줄 몰랐어요.”

그러자 리시언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제라르는 늘 그렇게 출정해.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지.”

레스티아는 그 말이 당혹스러웠다.

“네? 늘 이런 식으로요? 아무도 출정을 배웅하지 않아요?”

“그래. 성인이 된 베르체스터의 마법사에게 전투는 당연한 거니까.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겨. 아주 오랫동안 그래 왔어.”

“……그랬군요.”

그래서 다들 그렇게 의연할 수 있었던 걸까.

하지만 레스티아는 여전히 이 모든 상황이 석연치 않았다.

그래서 다음에 제라르가 또 출정하게 되면 성 앞에서 대기하고 있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잘 다녀오라는 말 한마디 정도는 건넬 수 있는 거니까.

레스티아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자, 리시언이 말했다.

“걱정 마. 제라르는 무사히 돌아올 거야. 네가 풍등을 날리면서 건강하게 돌아오라고 소원도 빌었잖아?”

그 말에 레스티아의 눈이 커졌다.

“제, 제가 그런 소원을 빈 건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그럴 것 같았어.”

리시언의 심드렁한 반응에 레스티아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항상 속마음을 들키는 것은 자기뿐인 것 같았다.

그러자 리시언이 레스티아를 빤히 쳐다보며 놀리듯 말했다.

“너, 요새 그런 표정 자주 짓네.”

“네? 그, 그러게요.”

레스티아는 재빨리 입술을 집어넣었다. 저도 모르게 이런 표정이 자꾸만 나오고 있었다니 민망했다.

“괜찮아. 표정이 다양해졌다는 건 좋은 거니까. 예전보다 훨씬 보기 좋아.”

리시언이 미소 지었다.

풍등이 잔뜩 수놓인 밤하늘을 배경으로 하는 그 미소는 무척이나 근사했다.

“…….”

레스티아는 리시언도 요새 이렇게 자주 웃는 것 같다는 말을 꺼낼까 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대신 몸을 웅크리고 양 무릎을 꼭 끌어안은 채 질문했다.

“그런데 리시언 님은 풍등…… 안 날리세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자기만 소원을 빈 것이 미안했다.

“나는 신경 쓰지 마. 어렸을 때 질릴 정도로 했으니까.”

“네? 정말요? 리시언 님은 그때 무슨 소원을 비셨어요?”

레스티아의 질문에 리시언은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욕심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했지.”

“욕심이 없는 사람이요?”

“그래. 너무 욕심이 많았거든.”

레스티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베르체스터 기사들 사이에서도 수도사처럼 지내기로 유명한 리시언이 욕심이 많다니.

리시언은 마티어스처럼 노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고, 조엘처럼 학문과 사교 활동을 중시하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열의를 보이는 것은 검술 수련이었는데, 그것을 갈고닦아 제라르처럼 무공을 세우려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레스티아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질문했다.

“……무슨 욕심이셨는지 물어봐도 돼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어렸을 때라 기억 안 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억이 안 날 리가 없을 텐데.

레스티아는 또다시 아랫입술이 삐죽 나갈 뻔했으나, 애써 입술을 꾹 밀어 넣고 질문을 바꾸었다.

“……그럼 그 소원은 이루셨나요?”

“그래.”

기억이 안 난다더니,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말은 확고했다.

“그러니까 너도 걱정하지 마. 소원은 이루어질 테니까.”

그것을 끝으로 리시언은 해변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레스티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가자. 너무 늦으면 다들 걱정할 테니까.”

“……네.”

레스티아는 이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 리시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야시장을 지나가 말을 타고 성으로 돌아갔다.

제법 긴 시간의 외출이었지만, 어쩐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리시언과 속내를 털어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게 끝난 기분이었다.

계속 말하다 보면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레스티아.”

“네?”

리시언의 부름에 레스티아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어때, 궁금했던 건 좀 풀렸어? 내 말대로 바람 쐬기 괜찮은 곳이지?”

리시언은 레스티아를 방 앞까지 데려다주고는 멋쩍게 물었다.

“아, 네! 밤이 되면 그렇게 멋진 곳이 되는 줄 몰랐어요.”

레스티아가 서둘러 대답했다.

그러자 리시언은 예의 근사한 미소를 한 번 더 지어 보였다.

“그래. 또 나가고 싶으면 말해.”

그 말에 레스티아는 눈을 크게 떴다.

“네? 정말요?”

“그래. 아무도 없다고 서재에 틀어박혀서 의기소침하게 있지 말고. 바람이라도 쐬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하란 말이야.”

레스티아는 그제야 리시언이 자신의 기분을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제게 하고 싶은 것이 없는지 물어본 듯했다.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래서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밝은 미소를 리시언을 향해 지어 보였다.

“네! 그럴게요. 귀찮다고 하시기 없기예요!”

“그래. 그럼 이만 들어가 봐.”

“네! 안녕히 주무세요!”

레스티아가 꾸벅 인사를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리시언은 방문이 닫힌 후에야 걸음을 옮겼다.

“…….”

제라르가 부탁한 대로 오빠 노릇을 해 보겠다고 움직인 하루였다.

잘해낸 것인지, 이게 오빠 노릇이 맞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레스티아의 표정이 외출을 하기 전보다 밝아졌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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