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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40화 (40/132)

40화

“와! 리티! 가방이잖아? 이거 나 주려고 산 거야?”

마티어스가 가방을 어깨에 메고는 방방 뛰었다.

“나, 가방 처음 메 봐!”

“그러시겠지. 책이라고는 들고 다닌 적이 없으니.”

조엘이 피식 웃으며 커다란 유리병에 들은 사탕을 꺼내 입속에 쏙 넣었다.

“음, 정말 달콤한걸. 레스티아, 내 동생. 내가 받아 본 선물 중에 최고란다.”

“뭐야, 조엘, 그렇게 맛있어? 그럼 나도 하나 줘!”

“안 돼.”

조엘은 바람을 일으켜, 사탕을 빼앗아 가려는 마티어스를 저 멀리로 튕겨 냈다.

“……좋은 찻잎이군.”

제라르는 가만히 찻잎의 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정말 고마워, 레스티아.”

조엘이 선물에 정신 팔린 다른 형제들을 대표해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니에요. 이렇게 선물을 살 수 있는 용돈을 받게 돼서 기쁜걸요.”

레스티아는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리시언을 찾았다.

리시언에게 줄 선물은 나중에 올 거라 말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리시언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다행이기도 했으나,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레스티아, 설마 다른 사람들에게 줄 선물만 산 거니?”

조엘이 물었다.

사실 이 자리에 모인 베르체스터 형제들은 레스티아가 타고 간 마차 가득히 물건을 채워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물건들을 살펴보면, 레스티아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건넨 선물을 제외하고는 마차는 텅 비어 있었다.

“왜 네 것은 아무것도 사지 않았어?”

레스티아가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저…… 사실은 선물을 사고 남은 돈으로 장난감 공방을 샀어요.”

“뭐?”

가게 하나를 통째로 샀다는 말에 세 명의 베르체스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레스티아가 그렇게 대담한 일을 벌일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시, 그래서는 안 됐던 걸까요?”

레스티아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자, 제라르가 짧게 대답했다.

“상관없다. 네가 가지고 싶었다면.”

마티어스 역시 재빨리 그에 동의했다.

“그래, 그래, 상관없어! 리티!”

마티어스가 처음으로 제라르의 말에 동의한 순간이었다.

마티어스는 말을 내뱉은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아채고 ‘으엑’ 하고 잠시 숨을 골랐다.

조엘은 피식 웃으며 레스티아의 새하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맞아. 그건 전부 오늘 내로 쓰라고 준 돈이니까.”

그러자 마티어스도 질세라 레스티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우리 리티, 생각보다 통이 엄청 큰데? 상점 하나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인수해야 내 동생이지.”

“그래, 레스티아, 장난감이 잔뜩 가지고 싶었던 거니? 공방을 사 버릴 만큼?”

하지만 레스티아는 여전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리고 용기를 내듯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장난감을 가지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그 말에 마티어스가 와락 인상을 구겼다.

“뭐야, 공방 주인이 우리 리티한테 강매라도 한 거야? 호위 기사들은 무얼 하고 있었지?”

“아니, 아니, 그게 아니에요.”

레스티아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당장이라도 성 밖으로 튀어나갈 기세인 마티어스를 만류했다.

“우연히 장난감 공방을 구경하는 고아원 아이들을 만났어요. 그 아이들이 공방을 구경하다가 쫓겨나는 모습을 보니까 예전의 저 같아서…….”

“리티…….”

“그래서 그 애들이 마음껏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샀어요.”

레스티아의 속마음을 들은 세 명의 베르체스터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침음했다.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상처 받기 전의 레스티아를 만나 데려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마티어스는 안타까운 마음에 레스티아를 덥석 안아 등을 토닥였다.

“하, 우리 리티는 충동구매도 착하게 하네. 너무 좋아.”

조엘은 물끄러미 제라르를 바라봤다.

“형님, 이 정도면 굳이 돈을 쓰는 방법을 학습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닙니까. 적어도 마티어스처럼 애먼 데다 돈을 탕진할 것 같진 않군요.”

“…….”

“그러니까 칭찬해 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조엘의 말에 제라르는 가볍게 턱을 쓸었다.

그리고 짧게 칭찬했다.

“잘했다, 레스티아 베르체스터.”

아무래도 ‘돈을 쓰는 방법’을 익히는 과제는 이것으로 통과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새로운 과제를 받아야 했다.

“저기, 리티, 리티는 가지고 싶은 게 없어? 정말? 하나도?”

“우리는 레스티아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궁금한데 말이야.”

“필요한 것을 말해 보거라.”

이번에는 가지고 싶은 것을 말하라는 과제였다.

레스티아는 곤란해졌다.

“네? 가지고 싶은 것은 없어요. 오늘도 무엇을 사야 하는지 몰라서 정말 힘들었는걸요.”

“물건 말고, 뭔가 받고 싶다거나 필요한 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까 말해 주지 않겠니?”

조엘이 다정하게 속삭였다.

레스티아는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사실 얼마 전부터 받고 싶은 게 하나 있긴 있어요.”

레스티아의 말에 세 명의 베르체스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뭔데! 리티! 말해 봐!”

마티어스가 빨리 말해 보라며 채근했다.

레스티아는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말했다.

“사실은 리시언 님께 편지를 썼는데 답장이 없어서요.”

“뭐?”

리시언의 이름이 나오자 세 명의 베르체스터들의 얼굴에 돌던 화색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편지라니.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답장이 받고 싶어요. 왜 안 써 주시는 걸까요?”

레스티아는 심지어 한숨까지 내쉬었다.

“휴, 분명 주시기로 약속해서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받을 수 있을까요?”

레스티아의 말을 들은 오라버니들의 눈빛이 형형히 빛났다.

마티어스는 놀랍도록 침착해졌고, 제라르는 무표정하다 못해 얼음장 같았다.

오직 조엘만이 이성의 끈을 붙잡고 차분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질문했다.

“그래, 우리 레스티아, 리시언에게 무슨 편지를 썼길래?”

“그건…….”

세 명의 오라버니들이 일제히 레스티아를 주시했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그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툭 떨궜다.

“그건 비밀이에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오라버니들에게 속내를 털어놓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 * *

한편, 리시언은 레스티아에게 쓴 답장을 언제 전해 줄지 고민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날 마안의 록베스트와 마주친 바람에.’

답장을 주겠다고 약속했던 날.

예상치 못하게 카트리나 록베스트와 마주한 탓에 타이밍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카트리나가 제라르의 최측근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당황한 나머지 자리를 떠야 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레스티아가 바빠 보여서 찾아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베르체스터의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방해할 수는 없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답장을 다른 사람을 통해 전달하고 싶지는 않았다.

리시언은 미리 써 둔 답장을 품 안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때였다.

“리시어어어어어어어언!”

마티어스가 베르체스터 성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내지르며 리시언을 향해 달려왔다.

“뭐야, 이 멍청이가.”

리시언은 마티어스가 몸통 박치기라도 할 기세로 달려오자, 몸을 비틀어 슬쩍 피했다.

그러자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서 콰드드득 하고 돌바닥이 쪼개지는 소리가 났다.

얼마나 거세게 달려왔는지, 마티어스가 멈추자마자 검술 수련장 바닥이 깊게 팬 것이다.

“이 자식, 피했겠다!”

마티어스는 뽀얗게 일어난 먼지 속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색 눈동자가 형형히 빛났다.

화가 잔뜩 난 것처럼 보였다.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공격적이야?”

리시언이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마티어스는 다짜고짜 리시언의 멱살을 거머쥐었다.

“리시언! 너 리티랑 편지 주고받았다며? 치사하게 혼자서만!”

리시언은 미간을 좁히고는 곧바로 그 손을 쳐 냈다.

“무슨 헛소리지.”

레스티아에게 편지를 받았고, 답장을 주기로 약속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지금은 받기만 한 상태다.

그러나 리시언은 그것을 일일이 마티어스에게 설명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편지 주고받는 게 뭐가 대수라고.

“상대할 가치도 없군.”

그래서 그대로 등을 돌려 검술 수련장 밖으로 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수련장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었다.

리시언 앞에 바람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장벽이 세워진 것이다.

조엘의 마법이었다.

“조엘? 너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리시언은 황당했다.

마티어스는 그렇다고 쳐도, 항상 차분함을 유지하는 조엘이 이런 비상식적인 일을 저지르다니.

그러나 조엘은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바람의 장벽 앞에 서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리시언, 레스티아가 네 답장을 받고 싶어 해.”

“그래서?”

“내가 전달해 줄 테니 건네주겠어? 아까 보니까 써 둔 것 같던데 말이야.”

“뭐?”

리시언은 황당한 나머지 헛웃음을 쳤다.

“네가 왜 내 답장을 가지고 가겠다는 거야?”

“나는 좋은 오빠답게, 레스티아가 원하는 것을 선물해 주고 싶거든.”

리시언의 답장이 받고 싶다는 레스티아에게 조엘이 제안했다.

-레스티아, 리시언의 답장 말고 나나 마티어스, 큰형님의 편지는 어때?

그러자 레스티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네? 오라버니들과는 이렇게 말로 이야기하면 될 텐데, 편지를 써야 할까요?

라고 말이다.

그러니 지금 레스티아가 가지고 싶은 것 1위는 리시언의 답장뿐이었다.

“그러니까, 주면 고맙겠어, 리시언.”

조엘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에서 평소와는 다른 광기가 느껴졌다.

편지를 빼앗을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모양이었다.

“어이없군. 마티어스, 설마 너도 내게 답장을 달라고 찾아온 거야?”

“그래! 나는 답장을 받아서 찢어 버릴 거야! 리티랑 편지를 주고받다니! 부러우니까!”

“다들 미친 건가?”

그동안 레스티아에게 길들여지다 못해 충직해지더니 머릿속까지 이상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못 줘. 돌아가.”

리시언은 자신이 쓴 답장을 타인에게 건네줄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불의 마법을 써서 조엘이 만들어 낸 바람의 장벽에 불을 질렀다.

그것을 시작으로 세 사람의 답장 쟁탈전이 벌어졌다.

땅의 마법에.

바람의 마법에.

불의 마법까지.

검술 수련장이 엉망이 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마법을 사용하는 만큼, 레스티아도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성 전체에 웅웅거리며 퍼지는 마력의 흐름에 레스티아는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단걸음에 검술 수련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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