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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39화 (39/132)

39화

레스티아가 한참 동안 제자리에서 서성거리며 고민하자, 무구점의 주인이 다가왔다.

“아가씨, 마음에 드시는 것이 없으시면, 주문 제작도 가능합니다.”

“네? 정말요?”

“그럼요. 원하는 장식과 디자인을 선택해 주시면 따로 제작해서 성으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무구점의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작은 책자 하나를 내밀었다.

책자에는 소드 노트를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소재들과 디자인이 기록되어 있었다.

레스티아는 그 책자를 한참 꼼꼼히 읽어 보며 리시언에게 어울릴 만한 디자인을 골랐다.

“탁월한 안목이십니다, 아가씨.”

주문이 끝나자 레스티아가 물었다.

“저기, 완성되는 데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적어도 일주일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아……. 꽤 걸리는군요.”

레스티아의 작은 어깨가 살짝 처졌다.

본의 아니게 리시언에게만 선물을 하지 않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아서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녀의 뒤편에 있던 호위 기사들이 도끼눈을 하고 무구점의 주인을 바라봤다.

결국 무구점의 주인이 재차 말했다.

“하지만, 이틀로 단축시켜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요? 고마워요! 시간이 단축되는 만큼 돈을 추가로 지불할게요.”

레스티아는 다시 해맑게 웃으며 무구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것으로 오라버니들에게 줄 선물은 모두 장만했다.

하지만 레스티아의 쇼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엘과 약속한 과제를 끝내기에는 돈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헤일록 집사에게 선물할 안경 줄도 구매했고, 카트리나를 위해서 우아한 장미 넝쿨 장식이 가미된 돋보기도 장만했다.

도라와 호위 기사들에게도 선물을 하고 싶으니, 필요한 것을 하나씩 고르라고 말했다.

“네? 선물이요? 아가씨! 저희에게까지 선물하실 필요 없습니다!”

도라와 호위 기사들은 거절하며 손사래 쳤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포기하지 않고,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부탁의 말을 했다.

“꼭 받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과제를 빨리 끝마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애달픈 부탁에 결국 그들은 선물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도라는 얇은 스카프를 골랐고, 프랭커는 초콜릿 상자를, 엘리엇은 가죽 장갑을, 유이엘은 무구를 관리하는 데 사용하는 오일을 한 병 샀다.

“고맙습니다, 아가씨!”

다들 기쁜 표정이었으나, 레스티아는 초조하게 자신의 손가방을 내려다봤다.

“다들 더 비싼 걸 고르시지 그랬어요.”

쇼핑을 정말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전부 써야 하는 돈의 반도 쓰지 못했다.

결국 레스티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 큰일이에요. 이제 뭘 사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쩌지요?”

레스티아를 지켜보던 도라가 제안했다.

“아가씨, 선물 말고 아가씨 물건도 사는 게 어떨까요? 여태까지 하나도 구입하시지 않으셨잖아요.”

“그렇지만 딱히 필요한 것이 없는걸요.”

“그렇다면 필요한 물건보다는 좋아하는 물건을 사 보는 건 어떨까요?”

“좋아하는 물건이요?”

레스티아는 곰곰이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책이었다.

하지만 베르체스터 공작가의 서재에는 없는 책이 없었다.

게다가 매일같이 새로운 책이 들어왔다.

레스티아가 직접 사들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럼, 아가씨, 옷은 어떠세요? 봄은 금방 지날 거예요. 미리 여름옷을 사 두는 것도 좋겠네요.”

도라가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아직 옷장에 꺼내 보지도 못한 옷도 많잖아요.”

“아, 그랬지요.”

도라가 깨달았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

레스티아가 베르체스터 성에 오자마자 맞춘 옷들이 이미 계절별로 한가득했다.

“그럼, 장신구라든가.”

“그것도 마티어스 오라버니가 사 준 게 너무 많아요.”

“끄응, 정말 그렇네요.”

정말로 딱히 살 것이 없었다.

그러기를 한참. 도라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아가씨! 그렇다면 인형이나 장난감 같은 건 어떠세요?”

“장난감이요?”

“네! 가지고 싶은 걸로 잔뜩 사서 방을 장식하는 거예요. 여기 장난감 공방이 유명하답니다.”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장난감 공방을 가리켰다.

밝은 분홍색 간판에 통유리로 쇼윈도를 장식한 가게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쇼윈도에 레스티아보다 어린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전시된 장난감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딱히 장난감을 사고 싶지 않았다.

장난감은 조엘이 선물해 준 토끼 인형 하나면 충분했다.

그런데도 레스티아는 장난감 공방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장난감보다는 쇼윈도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었다.

“이것들아! 또 여기 와 있냐! 가게 물건 가리지 말고 썩 저리 가거라!”

장난감 공방의 주인이 나와 아이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아이들은 그제야 허겁지겁 쇼윈도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쇼윈도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저 애들은 장난감을 보는 게 아니야.’

아이들은 장난감보다도 부모님과 함께 상점에 들어가서 장난감을 사서 나오는 이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옛날의 내 모습 같아.’

레스티아가 꽃을 팔던 시절.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저렇게 가게 앞에서 물건들을 물끄러미 구경하곤 했다.

하지만 물건보다는, 그 물건을 함께 고르는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더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쫓겨났다.

가게 주인들은 남루한 행색의 어린아이가 가게 앞을 서성이는 것을 싫어했다.

레스티아는 아이들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애들아? 뭘 구경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아이들은 레스티아를 마주하자마자 깜짝 놀라더니, 곧바로 뒤돌아 도망쳐 버렸다.

“어…… 나,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레스티아가 상처 받은 표정을 짓자, 프랭커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것 참. 아마 저희 때문일 겁니다. 저 아이들은 기사나 병사들을 무서워하거든요.”

“네? 프랭커, 저 아이들을 알고 있나요?”

“예.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지요? 고아원의 아이들입니다.”

“고아원이요?”

“공작님께서 전쟁으로 부모 잃은 아이들을 거두어들이셔서 고아원을 만드셨답니다. 그곳 아이들은 아무래도 상처가 있어서 그런지, 기사들을 보면 피하더군요.”

전쟁.

수도의 빈민가에 살던 레스티아도 종종 접하던 소식이었다.

위대한 모르카티움 제국이 어느 지역을 점령했다더라, 또 승리를 했다더라 하는 이야기.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레스티아에게 그 일은 크게 와 닿지 않는 이야기였다.

전쟁은 수도에서 떨어진 저 머나먼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아니었다.

레스티아의 가족이 그 전쟁에 깊게 개입되어 있었다.

“프랭커, 제라르 오라버니가 전쟁터에 나가시나요?”

“예. 공작님께서는 어린 나이에 출전하셔서 혁혁한 공을 세우셨지요. 전쟁 영웅이기도 하십니다.”

프랭커가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마냥 기쁠 수 없었다.

분명 제라르는 전쟁터에서 마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위험 속에서 마력 중화석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전쟁을 통해 큰 이득을 보는 이는 베르체스터 공작가가 아닌 제국의 주인인 황실이었다.

제국의 승리의 배후에 베르체스터 공작가의 공로가 있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럼, 자주 참전하시는 거예요?”

“예. 제국은 땅덩어리가 넓으니 각종 분쟁이 허다하답니다. 그리고 공작님께서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탁월하시니 말입니다.”

“그럼 보통 얼마나 가시나요?”

레스티아가 다시 질문했다.

그러자 프랭커가 아차 싶었는지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에둘러 말했다.

“흠흠. 보통은 반년 정도는 자리를 비우십니다.”

“반년이나요? 그렇게 길게요?”

순간, 카트리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황실이 베르체스터의 약점을 잡고 있다고 했다.

‘제라르 오라버니는 억지로 전쟁터에 나가는 것일 수도 있어.’

레스티아는 생각에 잠겼다.

‘역시, 내가 마력 중화석을 만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면 베르체스터에 선택지가 많아질 것이다.

적어도 황실이 일으키는 수많은 전쟁에 굳이 참여할 필요는 없어질지도 모른다.

“아가씨, 무슨 생각 하세요?”

레스티아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자, 도라가 걱정스레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방금 뭘 사고 싶은지 생각났을 뿐이에요.”

레스티아는 망설임 없이 장난감 공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공방 주인을 향해 손가방 안에 들어 있던 돈을 모두 펼쳐 보이며 말했다.

“여기 있는 장난감들, 이 돈에 맞춰서 전부 포장해 주세요.”

“예에?”

장난감 가게의 주인이 충격 받은 표정으로 레스티아를 쳐다봤다.

“아, 아가씨. 누구신지 모르겠으나, 이 돈이면 이 장난감 공방을 통째로 구매하셔도 될 정도입니다.”

“그게 가능한가요? 그렇다면 공방을 구매할게요. 제게 가게를 판매할 수 있을까요?”

“예에?”

가게의 주인이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레스티아의 뒤편에 서 있는 도라와 호위 기사를 바라봤다.

‘보호자 되십니까? 이래도 됩니까?’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레스티아를 만류하지 않았다.

“베르체스터의 아가씨께서 구매하고 싶다고 하셨잖는가. 조건을 말해 보게.”

도라가 나서 흥정을 시작했다.

“헉! 소문으로만 듣던 베르체스터의 막내 아가씨셨군요! 저희 공방의 가치를 알아봐 주신 겁니까? 그렇다면 저야 영광이지요.”

그렇게 레스티아는 번화가에 자리 잡은 유망한 장난감 공방의 소유자가 되었다.

“그럼, 아가씨, 성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가도록 몇 가지 포장할까요?”

“아니요. 장난감은 포장해서 고아원 아이들에게 가져다주세요.”

고아원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주라는 말에 모두의 시선이 레스티아에게 쏠렸다.

“그리고 앞으로 고아원 아이들이 오면 마음껏 구경하게 해 주세요. 내쫓지 말고요.”

레스티아는 생각했다.

이곳을 구매할 수 있다면, 과거의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아이들이 마음껏 서성일 수 있는 공간 하나 정도는 세상에 만들어 두고 싶다고.

그래서 장난감 공방을 구매한 것이다.

레스티아가 스스로의 의사로 소비한 첫 번째 사치였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걸 샀어. 거기에 1,000골드를 다 써 버렸어.’

레스티아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가 돈을 제대로 쓴 게 맞을까? 하지만 조엘 오라버니가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하셨는걸. 괜찮을 거야.’

그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 세 명의 베르체스터가 기다렸다는 듯이 레스티아를 맞이했다.

다들 레스티아의 첫 번째 쇼핑이 궁금했던 것이다.

“이제야 왔군.”

“레스티아, 잘 다녀왔니?”

“리티! 뭘 사 온 거야? 빨리 보여 줘!”

레스티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라버니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하나하나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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