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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36화 (36/132)

36화

카트리나는 관찰하듯 레스티아를 살펴봤다.

그러고는 이런저런 질문을 건네기 시작했다.

“꼬마 아가씨, 속성 마법은 못 쓴다고 했나요?”

“네…….”

‘흐음. 해석하는 자로 태어난 대신, 속성 마법은 계승하지 못한 걸까. 그렇다면 마도서를 해석하는 능력은 핏줄로 전승되는 마법일 가능성도 있겠어.’

아주 오래전에는 마법사 가문끼리 혼례를 치르기도 했다.

그 경우, 그들의 자식은 두 가문이 가진 마법 중 하나의 마법만을 계승했다.

하지만 3대째에 이르러서는 마법사가 전혀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황가에서는 마법사 가문 간의 혼례를 금지시켰다.

“그럼, 마력의 흐름은 읽을 수 있나요?”

“네, 약간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해석하는 자는 혈통 마법사들과 별로 다를 게 없는 것 같네. 마력의 흐름을 읽는 건, 혈통 마법사에게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거니까요.”

카트리나의 혼잣말에 레스티아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답했다.

“저, 그런데…… 마력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된 건 얼마 전부터예요.”

“응? 그게 무슨 말이지요?”

레스티아는 베르체스터 저택에 불이 났을 때 있었던 사건을 카트리나에게 말했다.

카트리나가 제라르와도 친분이 있어 보였고, 마티어스의 담당 교수님이었기에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음, 마도서를 읽게 된 후부터 마력을 느끼게 되었단 말이지요.”

차분하게 레스티아의 말을 경청하던 카트리나는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마도서를 읽지 않으면 발현되지 않는 능력이라니. 혹시…… 해석하는 자가 200년간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의도적으로 마도서를 피해 다녔기 때문일까. 그럼 꼬마 아가씨의 어머니는 평범한 코르티잔이 아닐 수도 있겠는걸.’

하지만 이건 카트리나가 세운 하나의 가설일 뿐이었다.

괜한 이야기를 꺼내서 눈앞에 있는 어린 소녀를 고민에 빠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제라르의 미움을 받게 될지도 모르니까.

“뭐,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꼬마 아가씨. 중요한 건 지금은 마력을 읽을 수 있다는 거잖아? 그리고 그건 마도서를 연구할 때 무척 유리하답니다.”

“그런가요? 다행이에요.”

어둡던 레스티아의 표정이 밝게 풀렸다.

“그래요. 걱정 마. 내가 다 알려 줄 테니까.”

“네……! 고맙습니다.”

“어머, 예의 바르기도 해라. 마티어스와는 정말 딴판인 학생인걸.”

레스티아는 여러모로 마법사이자 학자인 카트리나의 흥미를 자극하는 매력 있는 아가씨였다.

“자, 그럼 우선 이것부터 해석해 볼까?”

쿵!

카트리나가 자신이 챙겨 온 커다란 여행 가방을 책상 위로 올렸다.

가방을 열자 그 안에는 두툼한 마도서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와! 이건 전부 마도서들이네요!”

레스티아가 달뜬 목소리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카트리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꼬마 아가씨, 이렇게 두꺼운 책을 보고 기뻐하는 열한 살짜리라니. 굉장히 이상하다는 거 알고 있나요?”

“아, 마도서를 이렇게 마주하면 저도 모르게 즐거워져서 그만…….”

레스티아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떨궜다.

“후훗, 정말 신기한 꼬마 아가씨네.”

카트리나는 그제야 자신이 레스티아를 마주한 내내 웃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웃음이 헤픈 사람이 아닌데 말이지.’

머쓱한 마음에 헛기침을 몇 번 내뱉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하지만 이 마도서들을 읽게 되면 그런 생각은 싹 사라질걸요? 베르체스터 공작저에 있는 마도서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까다로운 것들이니까!”

그리고 얼마 후,

카트리나는 레스티아가 마도서 해석본을 줄줄 종이에 써 내려가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배울 필요가 없겠네요, 꼬마 아가씨. 대단해. 이걸 이렇게 한번에 해석할 수 있단 말이야?”

“그게, 제가 아무래도 ‘해석하는 자’라서…….”

레스티아가 수줍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카트리라는 책상에 머리를 콩콩 박으며 절규했다.

“이건 사기네, 사기야! 내가 이거 한 권 읽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깜짝 놀란 레스티아가 양팔을 허둥거리며 만류했다.

“카트리나 님! 지, 진정하세요.”

“흑흑, 안 보이는 눈으로 문자를 조각해서 손끝으로라도 읽었다고! 아카데미에서 보낸 세월이 정말 보람 없다, 정말!”

하지만 카트리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들떠 있었다.

열등감보다는 해석하는 자를 실제로 곁에서 본다는 희열감이 더 강렬했다.

그래서 책상에 대고 있던 머리를 다시 맹렬하게 추켜세웠다.

“뭐, 상관없어. 나는 재능이 많은 제자를 좋아한답니다.”

그리고 눈을 반짝이며 마도서 한 권을 펼쳐 레스티아의 눈앞으로 내밀었다.

“그럼 이번에는 눈으로만 읽지 말고 말로 내뱉어 봐요.”

“네? 말로요? 하지만 그랬다가는 마법이 발동될 텐데요?”

리시언 님이 조심하라고 했는데.

그래도 되는 걸까.

레스티아는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카트리나는 확고했다.

“그 책은 괜찮아요. 나를 믿어 봐, 꼬마 아가씨.”

‘어쩌지.’

레스티아는 조금 망설였다.

하지만 카트리나는 황실 아카데미의 교수였다.

그런 사람이 허락했으니 괜찮을지도.

“그럼, 읽어 볼게요.”

레스티아는 아주 오랜만에 마도서에 담긴 내용을 육성으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핑그르르-.

운을 떼자마자 회색 눈에 금색 마법진이 소용돌이치듯 나타났다.

마도서 역시 레스티아의 말에 반응하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마도서에 담긴 내용대로 레스티아의 발아래로 금색 마법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어? 이건…… 무언가를 만드는 마법 같은데.’

레스티아는 당황했다.

무언가를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는 마도서를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베르체스터 공작가에 있는 마도서들은 주로 마력의 흐름과 응용에 대한 이론서였다.

그래서 베르체스터 저택에 불이 났을 때, 속성 마력의 흐름을 곡해해 불길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걸 전부 읽으면, 대체 뭐가 만들어지는 걸까?’

레스티아는 자신이 만들게 될 미지의 것을 알 수 없어 두려웠다.

하지만 마도서를 읽는 것을 중단할 수도 없었다.

마도서로부터 전달받아 입으로 내뱉어지는 마력이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을 만들어 냈다.

레스티아는 본능적으로 이 마력의 흐름을 자신이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견고한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이것을 중도에 그만둔다는 것은 이 퍼즐이 엉망이 된다는 뜻이었다.

‘엉망이 되는 건 싫어. 망치고 싶지 않아. 제대로 만들고 싶어.’

본능이 말했다.

그러자 마도서가 레스티아를 향해 되물었다.

[모든 게 준비됐어. 이제 선택해야 할 때야.]

정확히는 선택하라는 문장을 읽어 낸 것이었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마치 자신이 마도서와 대화를 나누는 것만 같았다.

‘선택하라니, 무슨 말이야?’

[여기에 무슨 힘을 담고 싶지?]

‘무슨 힘?’

[너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어.]

발끝에 펼쳐진 마법진이 웅웅거리며 울렸다.

마법진 위로 온갖 마력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레스티아를 향해 자신을 선택해 달라는 듯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선택해야 할 힘에 대한 내용이 마도서에 적혀 있지 않았다.

그래서 대답했다.

‘무슨 힘을 담아야 할지 모르겠어.’

마도서가 답했다.

[그렇다면 여기까지야.]

레스티아가 낭독을 멈추었다.

더 이상 읽을 페이지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발끝에 나타났던 마법진 역시 사라졌다.

하지만 그 자리에 손톱만 한 크기의 새까만 조약돌이 떨어져 있었다.

짝짝짝!

카트리나가 눈을 크게 뜨고 박수를 쳤다.

“세상에! 정말로 이게 가능하네! 지금 아가씨가 무슨 짓을 한지 알아? 마도서를 읽어 내는 것만으로 이런 걸 만들다니!”

카트리나가 흥분한 듯 소리치며 그 조약돌을 들어 올렸다.

조약돌은 빛조차 삼켜 버릴 정도로 검기만 했다.

레스티아가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로 카트리나를 향해 물었다.

“카트리나 님, 제가 무얼 만든 건가요?”

“아, 꼬마 아가씨가 만든 건 마석이야.”

“마석이요?”

“마력이 담긴 원석. 원래대로라면 마도서를 해석한 공식을 풀어 내서 이것저것 재료도 넣어야 하는데. 아가씨는 그냥 허공에서 추출해 낸 거야! 정말 대단해!”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레스티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작은 조약돌로만 보일 뿐이었다.

“엄청 대단하지! 이 마석에다가 약간의 조작을 가하면 마력 중화석을 만들 수 있다니까!”

마력 중화석이라는 말에 레스티아의 목소리가 커졌다.

“앗, 그렇다면 제가 마력 중화석을 만들 수도 있나요?”

“그럼! 해당 내용이 담긴 마도서만 있으면 가능하겠어.”

순간, 마도서가 레스티아에게 건넸던 질문이 이해될 것 같았다.

[여기에 무슨 힘을 담고 싶지?]

‘혹시, 마법진에 모여든 마력들 사이에서 속성 마력만 뽑아내면 중화석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니었을까.’

하지만 레스티아는 그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마도서에 적혀 있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만들 수만 있다면.

만들어서 오라버니들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다.

‘종이꽃보다는 쓸모 있으니까, 리시언 님도 기쁘게 받아 주실 거야.’

제대로 만들어서 조엘에게도, 마티어스에게도, 제라르에게도 선물해 주고 싶었다.

짧게 상상했을 뿐인데도 즐거웠다.

그래서 카트리나에게 부탁했다.

“카트리나 님, 마력 중화석을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는 마도서를 보고 싶어요!”

하지만 카트리나는 곤란한 기색을 드러냈다.

“으음, 미안해, 꼬마 아가씨. 마법 중화석을 만드는 방법이 기록된 마도서는 황가가 꼭꼭 숨기고 있어서 나라고 해도 보여 줄 수 없어.”

“네? 황가가 왜 그걸 숨기고 있죠?”

“으흠, 어쩌지…….”

카트리나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뭐, 아가씨도 베르체스터니까 알아야겠지. 마력 중화석은 베르체스터 공작가에 꼭 필요한 해독제란 걸 알고 있나요?”

“아, 네. 조엘 오라버니께서 꼭 필요하다고 설명해 주셨어요.”

“그렇다면, 꼭 필요한 만큼 베르체스터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겠네요.”

레스티아는 단박에 베르체스터 공작가와 황가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

긴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레스티아는 약점을 이용하는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삼촌이 어린 레스티아를 대하던 모습이었으니까.

그는 오갈 곳 없는 레스티아를 수도 없이 집 밖으로 내쫓았다.

그럴 때마다 레스티아가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꽃을 팔아서 삼촌이 원하는 만큼의 돈을 벌어오는 것.

“카트리나 님, 혹시 황가가 마력 중화석을 대가로 베르체스터 공작가에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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