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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33화 (33/132)

33화

레스티아는 조엘과 마티어스와 함께 하는 자습 시간이 무척 즐거웠다.

홀로 책을 읽는 것보다, 역시 누군가가 곁에 함께 있는 것이 외롭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아무래도 리시언 님과 함께 공부했던 습관 때문인 것 같아.’

그런데 정작 리시언은 베르체스터 성에 온 이후부터 레스티아의 글공부를 봐주지 않았다.

“제라르가 더 훌륭한 스승들을 데려왔으니, 그들에게 물어봐”라며 레스티아와 좀처럼 만나려 하지도 않았다.

레스티아는 그것이 꽤 섭섭했다.

갑자기 생겨난 네 명의 오빠 중에서 리시언과 가장 친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순간에 멀어져 버린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하면 나랑 만나 주실까?’

고민하던 레스티아는 그간 배운 글로 리시언에게 안부 편지를 썼다.

그리고 도라의 편으로 전달했다.

하지만 편지를 전하러 갔던 도라는 곤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아가씨, 리시언 도련님께서 바쁘다고 전해 달라 하시네요. 그렇게 전하면 이해하실 거라고…….”

“아, 그렇군요. 바쁘시구나…….”

담담하게 대답했다고 생각했으나, 레스티아는 저도 모르게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고 말았다.

“아가씨!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리시언 도련님은 늘 혼자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셨답니다. 늘 바쁘신 분이었고 말이에요.”

도라가 호들갑을 떨며 리시언은 원래 무신경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리시언과 범선 안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신경 쓰였다.

분명, 그때 이후로 리시언이 자신과 거리를 두는 것이 분명했다.

‘대체 왜…….’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왜 자기를 피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예법 선생님이 가족이라고 해도, 동의 없이 함부로 찾아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했는걸.’

특히나 상대방이 거절 의사를 확실히 할 때는 더더욱 예의에 어긋난다고 했다.

하지만 배운 대로 예의범절을 지켰다가는 영원히 리시언과 멀어질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그럼 함부로 찾아가지 말고, 우연히 만나면 되는 거겠지?’

레스티아는 조금 생각을 비틀었다.

‘그래. 우연히 만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게 아닌걸.’

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렇게 잔꾀를 부려도 되나 싶기는 했다.

하지만 그만큼 리시언과 만나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절실했다.

‘그런데 어떻게 만나야 하지……?’

하지만 우연히 마주치기도 무척 어려웠다.

레스티아와 리시언의 활동 영역은 조금도 겹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레스티아는 평소에 리시언이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리시언이 수도에서 매일같이 검술 훈련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호위 기사인 유이엘을 붙잡고 질문했다.

“유이엘! 베르체스터의 기사들은 아침마다 검술 수련을 하지요?”

“네, 그렇습니다. 필수입니다.”

“저…… 그럼 리시언 님도 함께 하시나요? 수도에서는 함께 하셨던 것 같은데…….”

“아, 네. 리시언 님은 수련을 한 번도 거르신 적 없습니다. 요즘도 마찬가지고요.”

레스티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다만 요즘엔 새벽 수련만 하십니다. 잘은 모르지만 바쁜 일이 있으신 것 같아요.”

“네! 알려 줘서 고마워요!”

이 정도 정보면 충분했다.

‘새벽에 검술 훈련장에서 우연히 마주쳐야겠어.’

레스티아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잠자리에 들었다.

“아가씨, 오늘은 평소보다 더 일찍 주무시네요?”

“피곤해서요, 도라. 내일은 조금 늦게 깨워 줄래요?”

“아, 그러시겠어요? 오랜만에 푹 주무세요, 아가씨.”

도라는 레스티아가 피곤할 만도 하다며, 절대 깨우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다음 날.

레스티아가 눈을 떴을 때는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이었다.

어둡고 쌀쌀했기에 침대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리시언과 만나려면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분명 검술 수련장은 망루 뒤편에 있었지.’

레스티아는 얇은 겉옷을 몸에 두르고는 바지런히 방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리시언이 검술 수련을 하고 있을 수련장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고요한 성의 복도로 레스티아가 만들어 내는 자박거리는 발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그러기를 한참.

멈추지 않고 발을 움직이던 레스티아는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걸음을 멈추었다.

“앗, 맞아. 여기는…….”

수련장으로 향하는 복도는 일전에 마티어스가 말한, 유령이 나온다는 곳이었다.

이곳을 통하지 않으면, 수련장까지 굉장히 먼 거리를 돌아서 가야 했다.

‘돌아갈까? 아니야. 유령은 나오지 않을 거야. 마티어스 오라버니가 나를 놀린 것뿐인걸.’

레스티아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유령이 있진 않을까 꼼꼼하게 주변을 살폈다.

복도에는 잡음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래, 유령이 나오면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고 했으니까. 괜찮아.’

레스티아는 전시되어 있는 철갑옷들을 힐끗 쳐다봤다.

그리고는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철컥.

레스티아의 뒤편에서 마티어스가 말한 대로 쇠가 철컥 거리는 소리가 났다.

등골에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방금 무슨 소리지, 그건? 정말로 유령?’

하지만 뒤를 돌아보고 유령의 존재를 확인할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정말로 갑옷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레스티아는 바짝 긴장한 채, 그저 앞만 바라보며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마침, 해가 뜨기 시작했는지 복도 안에 희미한 불빛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낭패였다.

일출의 희미한 빛 때문에 빛의 유무로 동작하는 마법 등이 켜지지 않았다.

복도는 지나치게 어두웠다.

‘어떡해. 너무 어둡고 무서워.’

하지만 그것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레스티아의 자박거리는 발소리 가까이로 저벅거리는 구둣발 소리가 따라붙었다는 것이었다.

‘유령이 갑옷이 아니라 구두를 신고 있는 걸까?’

레스티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고 있는 외투를 꼬옥 잡아 여몄다.

그런데.

툭.

뒤편에서 따라오던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잡았다.

“꺅!”

레스티아는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진정해.”

하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스티아는 꼬옥 감았던 눈을 떴다.

“어……? 리시언 님?”

레스티아의 어깨를 붙잡은 이는 유령이 아닌 리시언이었다.

리시언의 주변으로 불꽃으로 만들어 낸 나비가 포르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덕에 리시언은 마치 스스로 빛나는 것만 같았다.

어두운 곳에서도 빛을 반사시키는 찬란한 금안은 유령보다도 더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뭘 그렇게 봐?”

리시언이 다시 입을 열자, 레스티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어, 어? 분명, 철컥 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유령이…… 아니었네요.”

“……무슨 소리야? 아. 아마, 이걸 거야. 오는 길에 이걸 잠깐 고쳐 잡았거든.”

리시언이 제 손에 들고 있는 장검을 레스티아의 앞에 내보였다.

“휴, 다행이네요. 유령이 아니라서.”

레스티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곧바로 리시언의 질문이 내리꽂혔다.

“그나저나, 너 왜 여기 있어? 그것도 이렇게 이른 시각에.”

“앗, 그게요.”

레스티아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리시언과 수련장에서 만나거든 호위 기사들을 만나러 왔다가 우연히 마주친 것이라 변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긴 수련장이 아니었다.

“너, 설마 나를 만나러 왔어?”

애석하게도 리시언은 단박에 레스티아의 의도를 꿰뚫어 봤다.

레스티아는 저도 모르게 “앗!” 하고 소리쳤다가, 재빨리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말을 이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산책 나왔다가 길을 잃었을 뿐이에요.”

“이 새벽에?”

“……네에.”

“그럼 돌아가. 이 나비를 따라가면 네 방이 나올 거야.”

리시언은 레스티아의 눈앞에 마법으로 만든 나비 한 마리를 남겨 두었다.

그리고 볼일이 끝났다는 듯 레스티아의 곁을 지나쳤다.

“어? 어? 리시언 님!”

겨우 만났는데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었다.

레스티아는 다급하게 리시언의 곁으로 따라붙었다.

“이렇게 우연히 리시언 님을 만나게 돼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게 정말 우연인지.

리시언은 미간을 좁혔다.

“요즘 많이 바쁘신가요? 리시언 님도 아카데미의 다음 학기를 준비하시나요?”

“…….”

리시언은 대답하지 않았다.

레스티아는 굴하지 않고 그 뒤를 쫓아가며 끊임없이 말을 건넸다.

“마티어스 오라버니께서 다시 아카데미에 복학한다고 하셨거든요. 들으셨어요?”

“…….”

“방학이 끝나면 다들 수도로 돌아가시는 거죠? 그럼 저는 조금 외로울 것 같아요.”

“…….”

“저기, 그런데요, 리시언 님. 검술 수련이 끝나면 외출하시려나 봐요.”

결국 리시언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건 어떻게 알았어?”

“네, 그야, 리시언 님은 외출하실 때마다 긴 로브를 두르고 계시잖아요. 지금도 입고 계셔서……. 그런데 왜 항상 그렇게 로브를 입으시는 거예요?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넌 신경 쓸 필요 없어. 돌아가.”

리시언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리시언의 뒤를 계속 쫓아가며 조잘거렸다.

“저, 리시언 님. 저 약간 마력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것도 마도서와 관련된 걸까요?”

“그건 나 말고 제라르에게 말하도록 해.”

“하지만 저는 리시언 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걸요. 저, 글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아, 편지 어땠어요? 이상한 단어를 쓰지는 않았나요? 편지를 보내도 답장도 안 주시고…….”

결국 리시언은 다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편지에 대한 답은 도라에게 전했을 텐데.”

“아, 네, 들었어요. 바쁘시다면서요? 하지만 저는 리시언 님이 안 바빠지실 때까지 계속 기다릴 생각이에요.”

“뭐?”

“저도 해야 할 게 많으니까, 그거 하면서 리시언 님이 바쁜 일 끝날 때까지 기다릴게요.”

“왜 그렇게까지 해?”

“네? 그야, 제가 리시언 님과 대화하고 싶으니까요. 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레스티아는 아랫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싫으시면, 제가 보낸 편지에 답장만이라도 보내 주세요. 분명 편지에도 적었는데…….”

결국 리시언은 한숨을 내뱉었다.

“알았어. 오늘은 저녁 늦게나 돌아올 거야. 그때 네 방으로 답장 들고 찾아갈게.”

“네? 정말이세요?”

레스티아는 활짝 웃어 보였다.

“그래. 그러니까 빨리 네 방으로 돌아가. 옷도 얇은 거 입고 춥지도 않아?”

“네, 네! 알겠어요! 꼭 오셔야 해요!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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