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25화 (25/132)

25화

“어어……?! 야! 리시언! 이게 무슨! 짓이야!”

얼떨결에 레스티아의 방 안으로 침투하게 된 마티어스는 당황한 표정의 레스티아와 마주하게 됐다.

“마티어스 오라버니?”

레스티아는 조엘이 선물했던 커다란 토끼 인형을 꼭 껴안은 채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분홍색으로 물든 눈가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추측할 수 있게끔 했다.

마티어스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최대한 활짝 웃어 보였다.

“리티, 안녕?”

“네…….”

하지만 레스티아는 겨우 짜낸 작은 목소리로 대답할 뿐이었다.

“이거 참…….”

마티어스는 뒤통수를 두어 번 긁적이고는 이내 결심한 듯, 레스티아의 곁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옆자리에 풀썩 앉았다.

그리고 양팔을 크게 뻗어 레스티아를 꼭 껴안았다.

자그마한 체구의 레스티아는 토끼 인형과 함께 그대로 마티어스의 품 안으로 쏙 들어갔다.

“리티, 리티. 오늘 힘들었지? 다 듣고 왔어.”

마티어스의 손이 레스티아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위로하듯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레스티아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괜히 저 때문에 저택이 불타게 돼서…….”

“무슨 소리야, 리티! 그건 네 탓이 아니야.”

“삼촌이…….”

삼촌을 떠올리자 레스티아의 눈에서 저도 모르게 다시 말간 물방울이 맺혔다.

오늘 하루 동안 일어났던 어마어마한 일들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삼촌이 미웠다.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릴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벌을 받고, 잘못을 뉘우치고, 그는 그대로, 자신은 자신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던 걸까.

-삼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레스티아는 용기를 내서 제라르에게 질문했다. 하지만 제라르는 명확한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신경 쓸 필요 없다. 그자가 살아 있었더라도 오늘 이후로 너는 더 이상 그자와 만날 일이 없었을 거다.

그리고 더 이상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는 듯 등을 돌려 버렸다.

-아, 이건 말이야…….

제라르를 대신해 리시언이 설명했다. 삼촌이 이미 어떤 마법에 걸린 상태로 레스티아를 찾아온 것 같다고 말이다.

하지만 삼촌이 왜 그런 무서운 마법에 걸린 상태로 레스티아를 찾아온 것인지는 리시언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지난번 납치 사건부터 오늘 저택에 난 화재까지,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였다.

무섭기도 하고 복잡한 심정이라, 제라르가 자신을 베르체스터로 인정했는데도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그토록 베르체스터로서 인정받고 싶어 했는데 말이다.

‘게다가 나 때문에 오라버니들이 곤란한 일에 계속 처하는 것 같아. 어쩌면 좋지? 나는…….’

레스티아가 이 복잡한 기분을 진정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침대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일뿐이었다.

다행히 도라가 별장으로 서재 안에 있던 토끼 인형을 챙겨 와 준 덕분에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레스티아는 품 안의 토끼 인형을 더욱 꼬옥 껴안았다.

“리티, 리티. 울지 마.”

마티어스는 레스티아를 품에서 놓아주고 손바닥으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뺨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레스티아의 뺨 위에는 아직도 납치됐을 때 생겼던 상처가 남아 있었다.

마티어스는 다시 레스티아를 꼭 껴안고 사과의 말을 건넸다.

“미안해, 리티. 나는 너를 처음 만난 날 결심한 게 있었어. 내 여동생한테만큼은 누구보다도 잘해 줄 거라고.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네.”

레스티아는 마티어스의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네? 그렇지 않아요. 마티어스 오라버니는 정말 재미있고 좋은 분인걸요. 지금도 이렇게 찾아와 주시고…….”

“아니야, 아니야. 얼떨결에 들어왔는걸.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리티가 슬퍼할 때는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하는 걸까.”

마티어스는 그렇게 말하며 레스티아를 더 꼭 껴안았다.

“미안해, 리티. 나는 정말로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야. 옛날에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요즘 들어 정말 그런 것 같아.”

위로의 말을 건네는 마티어스의 목소리가 조금 흔들렸다.

레스티아는 그것이 신경 쓰였다. 항상 밝던 마티어스에게서 어떤 슬픔과 그림자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팔을 뻗어 마티어스의 등을 도닥거렸다.

“그렇지 않아요, 마티어스 오라버니.”

레스티아의 작은 손이 자신을 다독이자, 마티어스는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누군가가 저를 위로해 준 건 처음인걸요. 슬플 때 위로를 받을 수 있어서 기뻐요.”

레스티아는 그렇게 말하며 배시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리티…….”

누군가에게 위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라.

그건 마티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레스티아가 자신을 위로하고 있지 않은가.

가족의 품에 안겨 도닥거림을 받은 것은 마티어스 역시 처음이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른 형제들도, 이런 것을 해 준 적이 없었다.

이것으로 레스티아는 마티어스를 처음으로 걱정한 사람이자, 처음으로 위로해 준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마티어스는 어떤 고양감을 느끼며 레스티아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았다. 이 작은 동생이 제게 해 주는 모든 것이 감동적이었다.

“리티, 너무 좋아, 내 동생!”

“오…… 오라버니! 그만요!”

“리티도 나를 좋다고 해 줘야 그만할래!”

마티어스의 억지스러운 주장에 레스티아는 저도 모르게 피시식 미소 지으며 말했다.

“휴, 네. 저도 마티어스 오라버니가 좋아요.”

“기뻐, 리티. 역시 내 동생은 웃는 게 예쁘다니까!”

마티어스는 그제야 레스티아를 다시 침대 위로 내려놓아 주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작게 키득거렸다.

똑똑.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마티어스와 레스티아가 동시에 그곳을 바라봤다. 문가에 리시언이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하여간 마티어스, 위로하라고 보냈더니만, 위로 받고 있는 모양새라니.”

리시언의 말에 마티어스는 히쭉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리시언 덕에 레스티아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 놓고,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새삼 베르체스터에 저보다 어른스러운 동생이 두 명이나 있는 것이 어쩐지 쑥스럽게 느껴졌다.

“기분이 좀 풀린 것 같은데, 같이 뭐라도 먹자.”

리시언이 고갯짓을 하자, 문밖에 있던 도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트롤리를 밀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트롤리 안에는 저녁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마티어스를 레스티아의 방에 들여놓은 이후, 리시언이 따로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아가씨, 내키지 않으시더라도 스프라도 한 숟갈 뜨고 주무세요.”

“도라, 고마워요. 하지만…….”

레스티아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리시언은 거절은 거절하겠다는 듯, 단호한 걸음걸이로 뚜벅뚜벅 걸어가 방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4인용 탁자에 풀썩 앉았다.

“리, 리시언 님!”

만류할 새가 없었다.

마티어스가 빙그레 웃어 보이고는 레스티아를 번쩍 안아 들고 그 탁자로 향했기 때문이다.

“어…… 어! 마티어스 오라버니!”

어느새 레스티아는 식사를 할 준비가 끝난 것처럼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마티어스는 손수 냅킨을 레스티아의 무릎 위로 펼쳐 주며 새하얀 치아가 드러나도록 활짝 웃으며 애원했다.

“리티, 같이 저녁 먹자. 우리 이렇게 식사하는 거 처음이잖아. 부탁할게.”

“아…….”

레스티아는 이 상황을 거절할 수 없었다.

베르체스터 공작가에 온 이후로부터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으니 말이다.

“헉. 설마 리티, 혹시 나랑 리시언이랑 같이 밥 먹는 게 싫어?”

“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정말 좋아요.”

마티어스의 호들갑에 레스티아는 결국 큰 목소리를 내며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잘 생각하셨어요, 아가씨!”

도라가 혹여 레스티아가 거절할세라 빠르게 식탁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새에 탁자 위에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수프와 빵, 달콤한 과일들이 가득 들어찼다.

“뭐 해? 먹자.”

리시언의 말에 레스티아가 조심스레 포크를 들었다. 그런데 뒤쪽에서 조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냄새가 좋은데. 나도 껴도 될까, 레스티아?”

“조엘 오라버니……?”

조엘은 사르르 웃으며, 귀족보다 더 귀족답게 예의를 갖춰 합석을 청했다.

“아가씨, 이렇게 늦은 시간에 갑작스레 찾아와 죄송합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요청하건대 부디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네…… 네……!”

“고마워, 레스티아.”

레스티아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고 조엘도 자리에 앉았다.

레스티아는 볼을 붉게 물들이고 자신과 합석한 베르체스터의 남자들을 슬쩍슬쩍 바라봤다.

‘정말로 가족끼리 식사를 하게 됐어.’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리시언만이라도 함께 저녁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모든 일들이 어쩐지 꿈만 같았다.

그래서 자신을 괴롭게 만들었던 슬픈 생각들은 어느새 까마득히 잊혀져 가고 있었다.

“아……!”

문득 레스티아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오빠들을 향해 말했다.

“저…… 공작님도 저녁 식사를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레스티아의 질문에 식탁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공작님?”

“아아, 제라르?”

리시언과 조엘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미티어스가 방긋 웃으며 딱 잘라 말했다.

“리티, 리티. 봐. 이건 4인용 식탁이야. 자리가 없어. 형은 알아서 잘 챙겨 먹을 거야. 걱정 마.”

그리고는 더 이상 레스티아가 제라르에 대해 생각할 기회도 주지 않겠다는 듯 시끄럽게 수다를 떨어 대기 시작했다.

“리티, 그나저나 저택도 물건도 전부 타 버렸으니까, 또 쇼핑하러 가자! 이번에는 내가 꼭 옆에 붙어 있을게. 약속!”

“멍청아, 또 얘 데리고 카지노 갈 생각이면 꿈 깨.”

리시언이 고개를 저었고, 조엘은 우아하게 웃어 보였다.

“외출은 꼭 다 함께 가는 거로 하지. 절대로 마티어스와 단둘이 나가면 안 된다. 알았니? 레스티아.”

“네…… 네!”

레스티아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세 명의 오빠들이 차례대로 접시 위에 올려 주는 음식을 받아먹어야 했다.

“리티, 내가 준 것 먼저 먹어. 이 고기가 정말 맛있어.”

“레스티아, 편식을 하면 안 돼. 이 야채샐러드를 좀 먹어 보렴.”

“야, 물부터 마셔. 바보같이 주는 대로 다 받아먹지 말고.”

혼란스러웠던 밤은 어쩌다 보니 시끌벅적 깊어 갔다.

모두 리시언의 계획대로였으나, 레스티아는 그 사실을 알아챌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