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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24화 (24/132)

24화

“어? 뭐가 미안하냐고?”

본인의 잘못을 스스로 읊어 보라는 그 질문에 삼촌은 조개처럼 입을 딱 다물어 버렸다.

역시, 스스로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레스티아가 고개를 저으며 짧게 한숨을 내쉬자, 다시 프랭커가 나서 삼촌의 멱살을 잡아 쥐었다.

“히익!! 말하마! 다 말할게! 더는 그만…….”

삼촌은 두 손을 싹싹 빌며 말했다. 레스티아는 프랭커에게 이제 그만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프랭커는 아쉬운 듯 삼촌을 마지막으로 힘껏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삼촌은 고통에 한참을 신음하고 나서야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전부…… 전부, 미안하다. 내가 잘못한 게 많아. 너를 때린 것도…… 추운 겨울에 꽃을 팔게 한 것도…… 미안, 전부 다 미안해!”

연이어 터져 나오는 사과에 레스티아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것은 지금 받고 싶은 사과가 아니었다.

레스티아는 그 사과를 묵살했다.

“필요 없어요. 그 상자에 대한 이야기만 해요.”

삼촌에게 자백을 받아 내고, 그에 맞는 합당한 벌을 받게 해 달라고 제라르에게 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상자는…… 크헉.”

“삼촌?”

삼촌이 입을 열더니, 갑자기 검은색 피를 울컥울컥 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리에 푹 쓰러졌다.

레스티아는 화들짝 놀라 쓰러진 삼촌을 내려다봤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레스티아!”

리시언이 한걸음에 레스티아의 곁으로 달려가 얼어붙은 레스티아의 눈을 가렸다.

그래서 레스티아는 삼촌의 최후를 목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레스티아를 제외한 모두가 그 자리에 쓰러진 채, 검은 안개가 되어 공중에 흩어지는 레스티아의 삼촌을 목격했다.

리시언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것은 지난번에 레스티아를 납치했던 납치범들의 최후와 똑같았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레스티아의 삼촌에게도 입막음을 할 수 있는 마법을 걸어 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이 일을 사주한 유력한 용의자는 역시나 황가라는 말이었다.

“놔주세요! 리시언 님! 삼촌이 어떻게 되었나요?”

레스티아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리시언은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은 장소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손을 내렸다.

레스티아는 서둘러 삼촌의 흔적을 찾았다.

하지만 레스티아가 보게 된 것은 자신의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제라를 베르체스터였다.

여태까지 모든 상황을 관망하던 제라르가 커다란 손을 레스티아의 작은 어깨에 툭 올리고는 말했다.

“베르체스터에 온 것을 환영한다.”

* * *

조엘과 마티어스가 베르체스터 저택으로 돌아온 것은 늦은 밤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외출한 사이 화재가 발생한 저택을 보며 동시에 소리쳤다.

“리티는!”

“레스티아는?”

한 사람 정도는 리시언을 걱정해 볼 만도 하건만, 쌍둥이는 똑같이 레스티아의 안위만을 걱정했다.

리시언이야 무슨 일이 생겨도 알아서 잘 피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헤일록에게 베르체스터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는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걱정 마십시오. 아가씨께서는 공작님과 리시언 도련님과 함께 수도 외곽의 별장에 가 계십니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미련 없이 저택 밖으로 뛰쳐나갔다.

* * *

“리티! 리티! 리티!”

마티어스가 조엘보다 먼저 별장 안으로 쳐들어와 중앙 홀에 서서 큰 소리로 레스티아를 찾았다.

“시끄러. 레스티아는 지금 쉬고 있어.”

2층에서 레스티아 대신 리시언이 걸어 나와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을 아래층에 서 있는 마티어스를 향해 내던졌다.

마티어스는 날렵한 동작으로 그 책을 받아 들고는 리시언을 노려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네가 집에 있었는데, 저택이 왜 그 꼬라지가 된 거냐고.”

힐난하는 말에 리시언이 미간을 좁혔다. 집에 있었으면서 동생 하나 제대로 못 보냐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레스티아는 실제로 자신 때문에 위험에 처할 뻔했다.

설마 마도서 한 권에 의지한 채 리시언을 찾아 그 불길로 뛰어 들어올 줄 몰랐다.

그 작은 손을 꼬물거리며 끼워 준 반지가 아직도 리시언의 손가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리시언은 마티어스의 말에 반박하는 대신 물끄러미 새파란 중화석이 박힌 반지를 내려다봤다.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른다고 해도 그렇지.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워 줄 건 또 뭐람.

이건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남겨 두어야 하는 손가락이었다. 새삼 레스티아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리시언을 탓하며 할 말이 아닌 것 같구나, 마티어스.”

무겁고 서늘한 목소리가 공간을 장악했다.

“……형.”

리시언의 반대편에서 제라르가 등장하자 마티어스는 흠칫 놀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제라르는 개의치 않고 뚜벅뚜벅 계단 아래로 내려가 마티어스를 마주했다.

“레스티아를 데리고 카지노에 갔다고 들었다.”

“……그건.”

“망나니는 너 하나로 충분하다고 했을 텐데. 동생까지 물들일 생각이었나.”

제라르의 말에 울컥한 마티어스는 자기가 언제 뒷걸음질 쳤냐는 듯 곧장 이를 으득 갈고 소리쳤다.

“누가 누구를 물들였다고 하는 거야. 리티도 한 번쯤은 자유롭게 놀 권리가 있어! 한 번 정도로 그렇게 말하지 마.”

“자유라. 방종이겠지.”

“으윽……! 형은 아버지랑 똑같아. 고지식하고 꽉 막혔다고!”

차갑고 짙푸른 눈동자와 뜨거운 보랏빛 눈동자가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형, 오늘 저택에서 있었던 일 들었어. 리티가 자기 삼촌이 그렇게 되는 걸 바로 눈앞에서 보게 했다며?”

제라르가 눈을 가느다랗게 좁히자 마티어스가 큰소리로 외쳤다.

“게다가 이제 열한 살밖에 안 된 애한테 베르체스터의 권력을 쥐어 주고 자기 삼촌에게 휘둘러보라고 시켰다던데. 형이야말로 내 동생을 형처럼 잔인한 인간으로 물들이지 마.”

“이해할 수 없군. 뭐가 문제지? 이 자리에서 베르체스터의 권력을 쓰지 못하는 자는 너뿐이다, 마티어스.”

제라르가 차갑게 대답했다.

“하하! 형은 정말 최악이야. 옛날부터 항상 그런 식이었지. 베르체스터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아주 그냥 잘나셨어!”

마티어스는 더는 이 자리에 못 있겠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뒤늦게 도착한 조엘이 문 밖으로 나가 버리는 마티어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레스티아에게 권력을 쓰는 방법을 익히게 하는 건 천천히 해도 좋았을 텐데요. 그 삼촌이라는 작자를 처리하는 일은 제게 지시하셔도 충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라르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베르체스터로 살아야 한다면 아랫것들을 다루는 것에는 빨리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너도 알텐데.”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등을 돌려 응접실로 향했다. 조엘이 짧게 한숨을 내쉬고 그 뒤를 뒤따랐다.

상황을 관망하던 리시언 역시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두 사람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응접실에 들어선 그들은 레스티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전에 레스티아를 납치한 괴한들부터, 오늘 삼촌이 가지고 온 검은 상자에 대한 일까지. 모든 사건에 대한 분석이 면밀히 오고갔다.

“사람의 입을 막기 위해 산 채로 소멸시키는 마법은 황가에서 연구한 마법이 맞습니다. 아카데미에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조엘이 자신이 알아 온 정보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마티어스가 알아 온 정보에 의하면 마차에 있던 애완조는 황태자가 주문했다고 하더군요. 뒷골목을 전부 뒤졌더니 털어놓더랍니다.”

모든 정보들이 황태자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었다.

제라르는 눈을 한 번 지그시 감았다 뜨고는 말했다.

“추론만 있을 뿐,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

사실이었다. 정확한 증거가 없다면 황가에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다.

리시언이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그리고 오랫동안 고민해 왔던 문제를 제라르에게 알렸다.

“제라르, 조엘에게 보고 받았다시피 레스티아는 ‘해석하는 자’야. 이 능력은 황가가 노릴 가치가 높아. 어떻게 할 셈이야?”

하지만 제라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간단하게 결론을 내려 버렸다.

“알고 있다. 아침이 밝는 대로 레스티아를 영지로 보낸다. 황가에 대한 조사는 그 후에 하겠다.”

“…….”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더 레스티아가 안전할 수 있는 계획을 논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시언이 제라르의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베르체스터의 주인은 제라르니까.

조엘 역시 그에 동의하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군. 알겠어.”

리시언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레스티아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문 앞에는 마티어스가 먼저 와 있었다.

다시 가출이라도 할 듯이 밖으로 뛰쳐나가더니만, 결국 도착한 곳이 여기인 모양이었다.

“보러 온 거 아냐? 안 들어가고 뭐 해?”

리시언이 마티어스를 향해 물었다.

“그냥…… 볼 면목이 없어서.”

마티어스는 고개를 떨궜다. 항상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두는 머리카락이 그 모습을 더 처연하게 보이게 했다.

“멍청하기는. 너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레스티아를 볼 면목이 없다는 거야.”

“형한테 대들었지만…… 베르체스터가 형 말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으니까. 내가 전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젠장, 모르겠다. 내가 악영향만 끼치는 나쁜 오빠인 것 같아.”

리시언은 짧게 한숨을 뱉었다.

“……마티어스, 나는 너의 그 멍청한 모습이 나쁘지 않아. 덕분에 매번 새롭게 생각하게 되는 부분도 있고.”

실제로 리시언은 제라르가 레스티아를 시험하는 모습에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 역시 그렇게 키워졌으니까.

잔인함을 보고 배우고 행하는 것은 권력자에게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야 했다.

상냥하고 사교적인 조엘 조차 그것이 익숙했다.

하지만 마티어스는 어린 시절부터 그런 시험에 거부감을 느꼈다.

그 행동들은 천성이 유쾌하고 자유롭고, 솔직한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래서 거부하고 또 반항하더니 이내 삐뚤어져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리시언은 지금의 마티어스가 제라르나 조엘보다 레스티아에게 필요한 오빠처럼 보였다.

제라르는 지나치게 베르체스터였고, 조엘은 진심 없이 그저 오빠의 역할에만 몰두할 생각인 듯 보였으니 말이다.

리시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마티어스의 앞을 지나쳤다. 그리고 레스티아의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세요.”

잔뜩 풀이 죽은 레스티아의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나야.”

“리시언……님?”

“들어가도 될까?”

“네? 아…… 아니, 그…… 왜요?”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잔뜩 물 먹은 목소리가 신경 쓰였다.

리시언은 짧게 한숨을 내뱉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미리 생각했던 말을 꺼내 들었다.

“별거 아니야. 같이 저녁 먹기로 했잖아. 배고프지?”

한참 동안 대답이 없던 레스티아가 그 말에 겨우겨우 호흡을 진정시켰는지 말했다.

“저…… 죄송해요. 못 먹겠어요…….”

리시언은 곧바로 마티어스의 뒷덜미를 잡아당겨 문을 열고 안으로 내던졌다.

‘네가 뭐라도 해 봐’라는 눈빛을 보내면서 말이다.

리시언은 레스티아가 나쁜 기억만 가진 채 울면서 잠들도록 놔둘 생각이 없었다.

지금, 레스티아에게는 마티어스가 가진 유쾌함과 솔직함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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