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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23화 (23/132)

23화

레스티아는 주먹을 꼭 움켜쥐고 제라르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주저 없이 베르체스터 저택에 올 때부터 품어 왔던 질문을 던졌다.

“공작님, 제가 정말로 베르체스터 공작가의 아이가 맞나요?”

제라르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레스티아를 내려다봤다.

“그건 왜 묻지?”

“제가 진짜 베르체스터가 아니라면 공작님의 질문에 답할 자격이 없으니까요.”

제라르는 잠시 레스티아를 바라보다가 덤덤하게 답했다.

“네가 내 아버지의 딸이라는 것은 내가 보증하마.”

“그렇다면…….”

레스티아는 무언가가 목을 콱 막는 것을 겨우겨우 이겨 내며 말했다.

“그렇다면……! 삼촌을 잡아 와 주세요!”

담겨진 감정이 너무나도 많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삼촌은…… 삼촌은 벌을 받아야 해요. 이대로 용서할 수 없어요.”

삼촌이 저지른 죄는 너무나도 컸다.

어머니의 유품이라며 속인 수상한 상자 때문에 리시언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아니, 리시언이 아니었다면 저택에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를 일이었다.

레스티아에게 상냥하게 대해 줬던 사용인들과 기사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이토록 화를 내는 레스티아는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레스티아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리시언 역시 조금 놀란 듯, 레스티아가 분노하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제라르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다시 레스티아의 호위 기사들을 바라봤다.

굳이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기사들은 그 눈빛을 해석할 수 있었다. 실수를 만회하라는 지시였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세 명의 호위 기사들은 순식간에 제라르의 눈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 * *

한편, 가까스로 베르체스터 저택을 탈출한 레스티아의 삼촌은 비틀거리며 도망치고 있었다. 온몸에는 검에 찔린 상처가 나 있었다.

“허억…… 으익……!”

움직일 때마다 피가 흘렀고, 그럴 때마다 상처가 덧날까 봐 두려워서 벌벌 떨었다.

호위 기사들은 그가 레스티아의 삼촌인 것을 고려해서 급소도 피했고, 깊게 베이지 않도록 조절한 상태였다.

하지만 레스티아의 삼촌은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상처 입어 본 적이 처음이었기에 속으로 욕지거리를 연신 내뱉었다.

‘이게 다 그 계집 때문이야. 기껏 10년 동안 먹여 살렸더니. 건방지게…… 어디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건방진 계집. 혼자만 잘 먹고 잘살겠다고 베르체스터 공작가로 가 버린 계집이었다. 자기 분수도 모르면서.

하지만 이제 됐다.

“크…… 크핫……!”

그는 승자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레스티아는 참으로 돈벌이가 잘되는 계집이었다.

레스티아의 어미가 죽기 전에 레스티아를 맡기며 주었던 돈도 꽤 짭짤했다. 뭐, 금방 탕진해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말하고 걸을 수 있을 때까지 키워 놓고 보니, 구걸을 하다시피 꽃을 팔아 돈을 벌어 오는 것도 꽤 쓸 만했다.

그래서 공작가로 사라져 버렸을 때는 조금 아쉽기까지 했다.

양육권을 포기하는 대신 돈을 더 받기는 했지만, 그 돈도 유흥을 즐기는데 금새 탕진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더 귀한 손님을 모셔 왔다. 무려 황가의 사람이 레스티아에 대한 정보를 팔면 돈을 주겠다고 했다.

팔아서는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삼촌은 신나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넘겼다.

-네 조카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랬었나.

-예! 정말입니다요. 절대로 그런 것을 쓸 수 있는 아이가 아닙니다.

-이번에는 아주 간단한 임무를 주지. 이 상자를 네 조카에게 선물해. 받지 않는다고 하면 근처에서 열기만 하면 된다.

황가의 심부름꾼은 그렇게 말하며 두툼한 돈주머니와 작은 상자를 삼촌에게 던졌다.

-이것이 무엇입니까요?

-마력을 증폭시키는 물건이다. 네깟 놈이 신경 쓸 것이 아니지. 해내기만 하면 그 돈주머니에 있는 돈의 두 배를 주도록 하겠다.

돈주머니 안에는 감히 만져 볼 수도 없는 보석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두…… 두 배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삼촌은 그것을 주섬주섬 챙겨 레스티아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그리고 임무를 해냈다.

폭발이 일어난 것은 놀랐으나, 그 난리가 난 덕에 무사히 도망칠 수도 있었다.

이제 받은 돈의 두 배를 챙기기만 하면 될 것이다.

“크크큭!”

돈을 생각하니 아픔도 잊혀지고 저절로 콧노래가 흥얼거려졌다.

퍽!

하지만 곧 누군가가 자신의 허벅지를 가격하는 힘에 의해 바닥에 나동그라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구구!”

삼촌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알 수 없어 팔로 머리를 감싸며 자신을 때린 자를 올려다봤다.

“다…… 당신들은!”

눈앞에 있는 이들은 자신의 몸에 칼자국을 만들어 냈던 베르체스터 저택의 그 기사들이었다.

퍽퍽!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가 무섭게 기사들은 다시 삼촌에게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잘 단련된 근육질의 기사들의 힘은 평범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뼈와 근육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아구구구!! 살려 주십시오, 나리들!”

연신 두들겨 맞던 삼촌이 가장 선해 보이는 인상의 유이엘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유이엘은 주저하지 않고 팔꿈치로 그의 얼굴을 내리찍었다.

“크아아악!”

삼촌은 코를 잡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세 명의 기사들은 딱딱한 표정으로 삼촌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우리는 당장이라도 너를 여기서 끝내 버리고 싶은데……. 우리 착한 공녀님께서 너를 굳이 잡아 오라고 하셔서.”

그 말을 들은 삼촌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버렸다.

* * *

레스티아의 삼촌은 제 발로 다시 베르체스터 저택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걸음 속도가 조금이라도 뒤처지거나 다른 길로 도망치려고 하면, 세 명의 기사들이 번갈아 가며 발길질을 해 댔다.

그 덕에 베르체스터 저택에 도착했을 때는 탈출했을 때보다도 더 엉망인 꼴이 되어 있었다.

“히익! 말씀하신 대로 제대로 걸어오지 않았습니까. 그만…… 그만, 때리시오……!”

레스티아는 퉁퉁 부은 얼굴로 끌려와 두려움에 떨며 힘없이 주저앉은 삼촌을 바라보았다.

“……삼촌.”

새하얗게 질린 삼촌의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복잡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 노력했다.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 이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 때문에 리시언이 죽을 뻔했다.

정말이지, 리시언을 다시 못 볼 거라고 생각했을 때의 그 절망감이란. 다시 그때의 심정을 떠올려도 숨이 콱 막히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레스티아에게 리시언은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절대로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됐다.

레스티아는 두 주먹을 둥글게 말아 쥐고 삼촌을 향해 소리쳤다.

“삼촌 때문에 사람이 죽을 뻔했어요. 저한테 던졌던 그 상자는 뭐였죠?”

하지만 삼촌은 레스티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제라르 베르체스터였다.

레스티아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의 얼굴에 가득 담긴 두려움은 레스티아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삼촌은 레스티아의 뒤편에서 권태로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베르체스터 공작이 두려운 것이었다.

“나리……! 제게 해명할 기회를 주십시오. 저는 그냥 조카에게 제 어미의 유품을 전해 주러 왔을 뿐입니다.”

삼촌은 레스티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네발로 걸어가 제라르의 발아래 넙죽 엎드렸다. 그리고 혓바닥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 상자가 왜 폭발했는지는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리께서는 속고 계십니다. 저 계집이 어떻게 나리처럼 귀한 분의 동생이란 말입니까.”

기가 막혔다.

레스티아의 작은 어깨가 저절로 덜덜 떨렸다. 이토록 누군가에게 분노한 적은 처음이었다.

이 사람이 원래 이렇게 초라해 보일 만큼 비열한 사람이었던가.

레스티아에게 있어 삼촌은 언제나 공포스럽고 두려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너무나도 하찮은 자였다.

자신은 왜 이런 거짓말쟁이를 평생 동안 두려워하고 살았던 걸까.

“나리, 저는 정말로 어찌 된 일인지 모릅니다. 억울합니다!”

삼촌은 제라르를 향해 연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비겁한 사람.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것보다 강자의 권력을 제 것으로 만들어 상황을 모면하려는 하는 사람.

용서할 수 없었다.

“더는 못 봐주겠어.”

제라르 옆에 앉아 있던 리시언이 곧바로 손아귀에 불꽃을 만들어 보였다.

그러자 제라르가 조용히 손을 올려 리시언을 저지했다. 그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레스티아를 응시했다.

제라르는 삼촌의 말과 행동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그저 지금부터 레스티아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궁금해 하는 듯했다.

마치 시험이라도 하는 듯이.

“……하여간.”

리시언은 제라르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못마땅한 듯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제라르는 베르체스터의 주인이고, 그를 만류할 수 있는 권한은 리시언에게 없었다.

이제 레스티아는 제게 던져진 제라르의 그 시선을 해석해야 했다.

분명 제라르는 레스티아에게 자신은 베르체스터를 해하는 이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레스티아가 베르체스터의 일원임을 보증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도 그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했다.

“프랭커.”

레스티아는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호위 기사인 프랭커를 불렀다.

“예! 아가씨!”

프랭커가 커다란 덩치를 이끌고 레스티아의 앞으로 척척 걸어와 허리를 숙였다.

“베르체스터의 기사들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처벌하지요?”

레스티아의 질문에 프랭커가 히쭉 웃으며 으득으득 소리가 날 정도로 두 주먹을 꾹꾹 눌렀다.

“바른말을 내뱉을 때까지 귀여워해 줍니다.”

“그럼, 제 삼촌에게 베르체스터의 방식을 알려 주세요.”

“예!”

프랭커는 싱글벙글 웃으며 삼촌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의 멱살을 잡아 올려 땅바닥에 그대로 내리꽂았다.

“으아아아악!”

삼촌은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나서야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는 듯 레스티아를 향해 기어갔다.

지금에서야 제라르가 자신의 권력을 레스티아에게 빌려 주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레스티아……! 내 조카야! 이 삼촌한테 왜 그러느냐!”

다급하게 애원하는 삼촌에게 레스티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아파요? 땅에 내던져진 것뿐이잖아요. 깨진 술병으로 맞는 게 더 아파요. 알고 계실 줄 알았는데.”

레스티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프랭커는 다시 삼촌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레스티……! 크헉!”

그리고 아까보다 더 거세게 딱딱한 땅바닥에 내리꽂아 버렸다.

삼촌은 그제야 이 자리에 자신의 편이 되어 줄 이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레스티아야! 미안하다. 목숨, 목숨만 살려 다오. 미안하다!”

폭력을 저질러야만 사과를 받아 낼 수 있다니.

상황이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웃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삼촌에게 질문을 건넸다.

“뭐가 미안한지는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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