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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16화 (16/132)

16화

콰쾅-.

지축이 흔들리고 바람이 불었다.

마차의 짐칸을 뒤덮고 있던 두꺼운 가죽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우글거리며 불타올랐다.

끼에에엑!

애완조들이 들어 있던 철제 케이지가 마치 깃털이 날리듯 가볍게 마차 밖으로 날아오르더니 바닥에 쾅쾅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레스티아는 그 비현실적인 관경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자신의 은회색 눈동자에 담았다.

못에 긁혀 따끔거리는 볼과 잔뜩 쉬어 칼칼한 목구멍의 통증도 까마득히 잊게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마법의 향연이었다.

그리고 따뜻한 빛.

‘빛……?’

포르르.

레스티아의 흐려진 시야 앞으로 희미하게 일렁거리는 나비가 나타났다.

리시언이 처음 만난 날, 마법으로 만들어 주었던 나비였다. 이게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레스티아는 이 모든 일들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야! 괜찮아?”

리시언이 마차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레스티아에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을 온통 반짝이는 황금빛 나비로 물들이면서.

그가 어둠 속에 만들어 내는 빛은 언제나 두려움을 잊게 한다. 예전에도, 지금도.

“리시언 님…….”

레스티아는 미소 지었다.

너무 반가워서.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뻐서. 그 모든 것들이 참 다행이어서.

그래서 리시언을 시작으로 자신의 앞에 나타난 세 명의 남자들을 한 명, 한 명 천천히 바라보며 미소 지어 보였다.

“마티어스 오라버니, 조엘 오라버니…… 이렇게 구하러 와 주셔서서……기뻐요.”

하지만 레스티아를 바라보는 세 남자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들은 두꺼운 밧줄로 결박당한 채 얼굴에 피를 흘리며 쉰 목소리로 기쁨을 말하는 여동생을, 레스티아처럼 기쁘게 반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결정했다.

“끄아아아악!”

도망치던 마부와 짐꾼이 일제히 비명을 내질렀다.

차가운 칼바람이 그들의 몸을 할퀸 것이다. 조엘의 마법이었다.

조엘은 입을 일자로 굳게 닫고, 바람의 마법으로 도망치는 그들을 모두 한군데에 모았다.

그들은 엄청난 강풍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저마다 땅과 나무를 붙잡고 발버둥 쳤지만 헛수고였다.

마티어스 역시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그들은 필사적으로 붙잡은 바위, 나무와 함께 통째로 끌려와 짐짝처럼 한 장소에 쌓였다.

마부를 포함한 총 네 명의 괴한들은 그 비인간적인 힘에 의해 잔뜩 겁먹었는지, 살려 달라는 말도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벌벌 떨었다.

조엘이 그들에게로 다가가가 우아하게 입을 열었다.

“어디 보자. 내 동생의 얼굴에 난 상처가…… 총 다섯 군데니까, 만 배 정도로만 갚아 주면 되는 거겠지.”

푸른 녹음을 담은 초록 눈동자가 예쁜 반달 모양을 만들어 냈다. 동시에 바람이 채찍이 되어 괴한들의 몸을 맹렬하게 할퀴기 시작했다.

“크헉! 크아아아아악!”

괴한들이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바람이 온몸을 못처럼 긁고 지나가는 끔찍한 감각이 미친 듯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감히, 내 동생을! 이렇게!”

마티어스 역시 그에 가세하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아갔다.

어느새 마티어스의 주변에는 마법으로 만들어 낸 뾰족한 바위들이 떠 있었다.

당장이라도 괴한들을 바위로 내려찍어 숨을 끊어 놓을 기세였다.

“조엘, 마티어스. 그것들 살려 둬야 해.”

리시언이 지쳐 쓰러진 레스티아를 품에 안고, 그녀의 몸을 결박하고 있는 밧줄을 불태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배후를 밝혀야 하니까. 왜 납치했는지, 그 이유도.”

그 말에 조엘이 곧장 채찍처럼 휘두르던 바람의 마법을 거두어들였다.

“……이성을 잃을 뻔했어.”

“젠장할!”

마티어스가 욕설을 내뱉으며 마법으로 만들어 낸 바위들을 신경질적으로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그리고 씩씩대며 실랑이를 벌였던 마부에게 걸어가 멱살을 잡아 올린 후, 주먹으로 뺨을 후려치며 소리쳤다.

“말해! 이 개자식아! 내 동생이 여기에 왜 있어?”

“으……윽…… 그건……!”

“누구야! 어떤 목적으로 누가 사주했지? 설마 황실이야? 왜 내 동생이 황실 마차를 타고 있느냐 말이야!”

“그……그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마부가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커헉!”

무어라 한 마디 잇지 못하고 검은 피를 왈칵 토했다. 그와 동시에 마티어스의 손아귀에서 버둥거리던 그의 몸뚱어리가 통나무처럼 축 늘어졌다.

“뭐야?”

마티어스가 신경질적으로 마부의 몸을 가까이로 끌어당겼다.

맥없이 풀린 동공.

마부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이 자식…… 죽었어?”

마티어스의 말에 조엘이 미간을 좁히며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크아악!”

“커헉!”

마부뿐만 아니라 다른 괴한들도 검은 피를 토하고 쓰러지고 있었다.

“이건……?”

마티어스와 조엘이 그들의 상태를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다가갔다.

하지만 괴한들은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 순식간에 먼지가 되어 공기 중에 흩어져 버렸다.

“대체 뭐야!”

옷가지 하나, 머리카락 한 올조차 증거로 남기지 않고 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곤란했다.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애완조를 태우고 있던 짐마차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누구의 사주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젠장 이 자식들 분명 황실의 신분패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명패조차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니 황실의 사주라고 확신하기에도 증거가 부족했다.

레스티아를 제외한 세 명의 베르체스터는 분노로 이를 으득 갈았다.

* * *

“세상에! 아가씨! 이게 무슨!”

도라는 저택에 돌아온 레스티아를 바라보며 참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못에 긁힌 생채기가 자신의 생채기처럼 쓰라렸다.

최근 레스티아의 몸에 남아 있던 멍 자국이 서서히 지워져 가는 걸 보며 안도하고 있었는데, 또 새로운 상처라니. 심지어 얼굴에.

“대체 어쩌다 이러셨어요……!”

도라는 저도 모르게 원망스러운 눈빛을 담아, 레스티아의 오빠들을 바라봤다.

오빠가 셋이나 됐는데 동생 하나 못 보고 뭐 했냐는 눈빛이었다.

리시언, 조엘, 마티어스는 그 눈빛에 저도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움찔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아니, 도라. 나는 괜찮아요.”

하지만 레스티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해맑게 미소 지었다.

때 묻지 않은 맑은 미소가 상처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세상에, 아가씨. 전혀 괜찮지 않으세요.”

도라는 소란을 떨며 구급상자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레스티아를 소파 위에 앉히고는 상처에 약을 톡톡 발라 주었다.

“아얏…….”

약이 쓰라린 탓에 레스티아가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자 형제들이 동시에 움찔거렸다.

레스티아가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이 너무나도 큰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베르체스터 저택으로 돌아올 때까지 어른스럽게 아픈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던 아이라 더욱 그랬다.

“리티, 리티……!”

마티어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레스티아가 앉아 있는 소파 앞으로 냉큼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울상이 된 표정으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리티, 정말 미안해. 이 오빠가 잘못했어. 너를 거기에 두고 가서는 안 됐는데…….”

그러고는 레스티아가 앉아 있는 소파의 팔걸이에 이마를 퍽퍽 박았다.

“나는 좀 맞아야 해! 나 때문에 네가 이렇게 됐는데, 왜 난 다친 데도 없는 거야!”

“마티어스 오라버니! 그만두세요!”

레스티아가 당황해 하며 만류했다.

“저는 괜찮아요! 그냥 조금 까진 것뿐인걸요.”

레스티아의 말에 조엘이 곱게 눈을 접으며 서늘하게 말했다.

“말리지 마, 레스티아. 마티어스는 정말로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릴지도 몰라.”

리시언 역시 조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마티어스 역시 동의하듯이 머리를 계속해서 쾅쾅 박아 댔다.

“그래! 나는 맞아도 싸!”

“제발 멈추세요, 마티어스 오라버니! 안 그럼 화낼 거예요!”

결국 레스티아는 목소리를 높였다. 마티어스는 이마가 빨개져서는 울상이 된 표정으로 레스티아를 바라봤다.

“리티…… 착해. 내가 아플까 봐 말리는 것 봐.”

저보다 훨씬 큰 남자가 울먹이는 그 모양새가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레스티아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리곤 농담을 건넸다.

“아니에요. 마티어스 오라버니보다 소파 팔걸이가 아파할 거 같아서 말리는 거예요.”

그 농담에 주변의 공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레스티아는 눈동자를 굴렸다. 괜히 농담을 했나. 긴장을 풀려고 그런 거였는데. 무언가 실수를 한 걸까?

“하하, 하여간 너.”

리시언이 못 말리겠다는 듯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과 동시에 조엘과 마티어스도 연달아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 하하. 소파 팔걸이가 더 아플 거야.”

“그걸 생각 못했네. 미안해, 리티.”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동시에 입을 다물더니, 또 갑자기 동시에 웃음을 터뜨린다.

레스티아는 오빠들이 왜 이러는지 영문을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에 볼을 붉게 물들이고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그리고 작은 두 손을 뻗어 마티어스의 손을 잡고 말했다.

“참! 마티어스 오라버니. 오늘 덕분에 무척 즐거웠어요. 산책도 너무 좋았고, 쇼핑도 즐거웠어요. 솜사탕 에이드도 정말 맛있고요! 다 먹지 못해서 아쉬울 정도예요.”

“리티…….”

레스티아의 갑작스러운 말에 마티어스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것처럼 변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레스티아는 조엘과 리시언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다들 저를 구하러 와 주셔서 고마워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말을 전할 수 있어서 기뻐요.”

조엘과 리시언은 이 작고 착한 여동생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곤혹스럽기까지 했다.

“레스티아…….”

“야, 너는 참…….”

하지만 마티어스는 주저 없이 레스티아를 껴안기 위해 달려들었다.

“리티, 리티, 리티! 내 동생 너무 좋아!”

그러나 이번에는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도라가 제지했다.

“도련님들은 이만 나가세요! 아가씨께서 혹시 다른 곳은 다치지 않았는지 확인해야겠어요!”

결국 세 명의 베르체스터들은 레스티아의 방문 밖으로 나란히 쫓겨나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방 밖으로 나감과 동시에 표정에서 미소를 지워 버렸다.

제일 먼저 조엘이 나직한 목소리로 마티어스를 훈계했다.

“하…… 마티어스, 함부로 바깥으로 레스티아를 데리고 가서는 안 됐어. 심지어 저 어린애를 데리고 카지노에 갔다니, 위험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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