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레스티아를 만난 이후, 마티어스는 어느새 네 명의 베르체스터 중 최고로 좋은 오빠가 되고 싶다는 욕심을 품게 됐다.
그러니까, 이 돈을 가지고 번화가로 돌아가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액세서리 상점에서 물건을 찾고, 내친김에 오늘 산 장신구들에 어울리는 옷도 사서 입혀 볼 작정이었다.
그러면 마티어스 오라버니랑 노는 게 최고로 재미있다고 할 테지.
이런 즐거움을 알려 줄 수 있는 베르체스터는 자신뿐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우쭐해져서는 저도 모르게 양쪽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갔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자리에 없었다. 제대로 비우지 못한 솜사탕 에이드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어라? 리티? 레스티아!”
목청껏 불러도 대답이 없다.
“……리티!”
자신이 자리를 비운 그 짧은 시간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확실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어린 시절 키우던 애완 강아지가 죽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티어스는 현금 자루를 내팽개치고 레스티아를 찾아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그 시각.
레스티아는 손발이 굵은 밧줄로 꽁꽁 묶인 채, 마차의 짐칸 위로 짐짝처럼 내던져졌다.
“이 계집이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베르체스터 공작가의 셋째를 오라버니라 칭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레스티아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납치한 괴한들을 바라봤다. 복면을 쓰고 있었기에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왜 나를……?’
대체 누구이기에 이런 식으로 자신을 데려가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저들이 레스티아의 입속으로 두꺼운 천을 욱여넣고 묶어 두었기 때문이다. 그 탓에 목소리를 내기도,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얌전히 있어라.”
괴한들은 레스티아를 짐마차 끝 쪽에 몰아넣고는, 그 앞으로 쇠로 만들어진 케이지를 겹겹이 실어 넣기 시작했다.
케이지 안에 레스티아의 키만 한 커다란 크기의 알록달록한 털을 가진 애완조들이 담겨 있었다.
애완조는 귀족들이 정원을 장식하기 위해 키우는 커다란 새였다. 그 지저귐이 기개가 높고 청아하다고 묘사되곤 했으나, 여러 마리가 모여 있으니 소음이 따로 없었다.
끼에에엑!
애완조들은 흥분한 듯 연신 빽빽 소리를 질러 댔다. 그 탓에 귀가 얼얼했다.
하지만 괴한들은 레스티아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마차의 문을 닫아 버렸다.
새카만 어둠이 레스티아를 삼켰고, 마차가 움직이며 쉴 틈 없이 덜컹거렸다.
레스티아의 작은 몸이 무력하게 마차의 반동에 따라 흔들렸다. 그럴 때마다 새들이 기이한 소리로 비명을 질러 댔다.
이제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두려웠다. 하지만 그것보다…… 마티어스가 자신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을까 봐 걱정스러웠다.
금방 다녀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는데. 조금도 기다리지 못했다.
‘어떡하지…….’
자기도 모르게 리시언과 조엘, 마티어스의 얼굴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그사이에 정말 가족이라고 생각하게 된 걸까. 그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이런 식으로는.
언젠가 자신이 베르체스터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어 이별을 하게 되더라도,
꼭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덕분에 정말 많은 걸 배우게 됐고, 즐거웠고, 행복했다고.
그래. 그들과 이런 식으로 헤어지고 싶지 않다.
레스티아는 다시 한 번 사력을 다해 팔과 다리에 힘을 주어 보았다.
하지만 성인 남자가 단단히 묶어 놓은 밧줄은 조금도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독하리만큼 무력해서 저절로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울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네가 선택해.
어째서인지 불현듯 리시언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그때, 그의 조언에 따라 레스티아는 베르체스터 공작가로 향했다. 그 덕에 평생 몰랐을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래. 포기할지도 말지도, 내가 선택하는 거야.’
역시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설령 아무것도 못하고 잡혀가서 다시는 그들을 볼 수 없게 되더라도 끝까지 노력하고 싶었다.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읏……!”
레스티아는 마차의 반동을 이용해서 가까스로 누워 있던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등 뒤로 따끔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게 뭐지?’
허리 뒤로 묶여 있는 손을 움직여 겨우겨우 더듬어 보니 작게 솟아 있는 못의 동그란 머리가 느껴졌다.
짐마차의 천막을 고정하는 용도의 못이었는데 녹이 슬었는지 표면이 까슬까슬했다.
레스티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을 포박하고 있는 밧줄을 이 못으로 갈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시도해 봤다.
하지만 두꺼운 밧줄은 못에 닿자마자 미끄러져 내릴 뿐이었다.
여러 번 재차 시도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아무래도 여기까지일까.
더 이상 탈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끼에-! 끼에에엑-!
애완조들의 지저귐이 점점 더 두렵게 다가왔다.
그때였다.
히이이이잉!
마차를 몰던 말이 비명을 내질렀고, 마차가 급하게 정지했다.
애완조들이 놀랐는지 더 심하게 푸드덕거리며 짖어 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짓이오!”
큰 고함 소리.
레스티아는 마차를 몰고 있던 괴한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기민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천막에 귀를 가까이 가져가 댔다.
“우리가 마차 안을 봤으면 하는데.”
차분하지만 귀에 박히는 세련된 저음. 마차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분명 조엘의 것이었다.
‘조엘 오라버니!’
포기했던 희망이 다시 생겨나는 것 같았다.
“리티! 리티! 젠장! 그 안에 있는 거야?”
마티어스 역시 다급한 목소리로 레스티아를 찾고 있었다. 그가 레스티아의 이름을 외칠 때마다 땅이 진동하며 마차가 흔들렸다.
‘마티어스 오라버니, 저 여기 있어요!’
레스티아는 자신이 이 마차 안에 있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천이 욱여넣어져 있는 입에서는 목울대를 울리며 나는 낮은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읍! 으읍!”
그리고 그 소리는 애완조들의 비명 소리에 가볍게 묻혔다.
“끼에에엑! 끼엑!”
레스티아는 이를 악물었다.
‘이래서는 안 돼.’
어떻게든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레스티아는 상체를 일으켜 최대한 세게 마차를 들이박았다.
하지만 마차는 미동도 없었다. 되려 애완조를 날뛰게 할 뿐.
한편, 베르체스터의 형제들은 마부와 짐꾼으로 변장한 괴한과 대치하고 있었다.
“마차 안을 한 번만 살펴보면 돼.”
조엘이 협상을 시도했다. 그러자 마부는 황실의 문양이 새겨진 명패를 베르체스터 형제들에게 들이댔다.
“이 마차는 황궁의 정원으로 가는 애완조를 태운 마차요. 귀하들이 귀족이라 해도 황실의 재산에 멋대로 손을 댄다는 것은 반역이오!”
붉은 가시 면류관을 쓴 검은 독수리. 확실한 황실의 명패였다. 하지만 마티어스는 당장이라도 마차를 전복시킬 기세로 소리쳤다.
“웃기지 마! 카지노 근방에서 나온 마차는 이것뿐이었어. 안을 확인해 봐야 해!”
조엘이 미간을 좁히며 만류했다.
“마티어스, 그만해. 황실과 문제가 생기면 곤란한 거 알잖아.”
“…….”
리시언은 얼굴을 가릴 정도로 기다란 로브를 뒤집어쓰고 못마땅한 듯, 침묵을 지키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엘과 리시언은 마티어스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카지노로 향했다.
조엘에게 돈을 모두 빼앗긴 마티어스가 갈 만한 곳은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마티어스는 그곳에 있었다. 레스티아의 이름을 부르며 건물을 부숴 대고 있었지만.
-내 동생! 내 동생 어디 있어! 리티! 리티!
조엘과 리시언은 레스티아가 사라진 것에 놀랐지만, 우선 마티어스를 진정시키고 베르체스터 공작가의 수색대를 풀었다.
다행히, 카지노 근방에서 이동을 한 수상한 마차는 한 대뿐이었기에 쉽게 용의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마차가 하필이면 황실의 물건이었던 것이다. 건드렸다가는 피곤해질 것이 뻔했다.
“우리가 볼 수 없다면, 자네가 직접 확인해 주게. 마차 안에 내 동생이 있을 수도 있어.”
조엘이 재차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마부는 콧방귀를 뀌었다.
“하하! 그게 무슨 헛소리입니까? 이 안에 있는 건 애완조들밖에 없습니다. 이 소리 안 들리십니까?”
끼에엑! 끼엑!
마차 안에서는 계속해서 애완조가 시끄럽게 끼룩거리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이만 비켜 주시겠소? 어서 황궁으로 이것들을 가져가야 한다오.”
마부는 귀찮다는 듯 투덜거리며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마티어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리티! 리티! 그 안에 있으면 대답해! 리티!”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부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멈추었던 마차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스티아는 본능적으로 기회는 지금뿐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제발.
말 한마디만 오라버니들에게 전할 수 있다면 된다.
“으읍-!”
레스티아는 이를 악물고 목청으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가느다란 목청 소리는 짐마차 가득 채워져 있는 애완조들의 비명에 번번이 묻혔다.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려면…… 조금 더 단어다운 말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입을 막고 있는 이 천을 뱉어 내야만 했다.
‘이걸……!’
레스티아는 손끝으로 방금 전에 만졌던 못의 위치를 가늠했다. 그리고 주저 없이 얼굴을 못 가까이로 들이댔다.
밧줄은 불가능하더라도 입을 막고 있는 이 천 정도는 찢어 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얼굴에 꽉 묶여 있는 천을 못에 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마에 저절로 땀이 배어 나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시도는 계속됐다.
실패할 때마다 녹슨 못 머리가 레스티아의 창백할 만큼 하얀 볼에 날카로운 생채기를 남겼다.
피가 났고 따끔거리고 아팠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했기에 긁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마침내.
천 끝이 못에 걸렸다.
‘……됐어!’
레스티아는 부디 빈틈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며 힘껏 고개를 틀었다.
부우욱-.
입을 막고 있던 천이 가느다랗게 찢어지며 자그마한 틈을 만들었다.
레스티아는 재빨리 혀를 움직여 그 틈새로 입에 물려져 있는 천 뭉치를 뱉어 냈다.
침이 흥건하게 베어진 천 뭉치가 아랫입술로 밀려 나오고 마침내 레스티아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오…… 오라……버니.”
하지만 목이 쉬고 입안이 얼얼해서 제대로 목소리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해내야 했다.
정신이 없어질수록 그 생각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레스티아는 울부짖듯 소리쳤다.
“쿨럭! 오, 오라버니들! 저 여기 있어요!”
부디, 제발.
마차 밖에서 저들이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