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13화 (13/132)

13화

“자! 도착! 짜잔! 여기가 바로 모르카티움의 수도에서 두 번째로 큰 번화가야.”

마티어스가 레스티아를 데려간 곳은 방금 전까지 산 위에서 바라봤던 번화가였다.

이곳은 레스티아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을 정도로 화려하고 큰 건물들이 들어차 있었고, 가지각색의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그것들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은 채, 걱정스레 마티어스를 올려다보았다.

마티어스는 그 반응에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레스티아가 산 정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뛸 듯 기뻐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리티, 여기 별로야? 다른 데 갈까?”

“아, 아니에요. 그냥 오라버니가 걱정돼서요.”

“뭐? 걱정?”

뜻밖의 말에 마티어스가 두 눈을 끔벅였다.

걱정이라니.

수십 번의 가출 경력을 세우는 동안, 그 누구에게도 받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형제 조엘조차 하지 않는 그것을 오늘 처음 만난 배다른 동생이 해 주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

할 말을 잃어버려 멍하니 서 있는 마티어스에게 레스티아가 조심스레 말했다.

“저, 마티어스 오라버니, 이렇게 마법을 쓰셔도 괜찮으세요? 마법을 사용하면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자주 쓰시면…….”

레스티아는 마티어스가 자신을 이곳저곳으로 데려다주기 위해서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마티어스는 호쾌하게 웃어 보였다.

“우와, 리티, 리티, 이 오라버니를 걱정해 주는 거야?”

마티어스가 느낀 이상한 기분은 어느새 기쁨이 되어 있었다.

타인에게 이렇게 따뜻한 염려를 받아 본 적이 얼마만일까.

조엘이 찾아와 배다른 여동생을 저택에 데려왔으니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했을 때 생각했다.

지루하고, 재미없고, 짜증나기만 하는 베르체스터에 흥미로운 애완동물이 들어왔네.

어렸을 때 선물 받았던 강아지가 생각나. 금방 죽어 버렸지만.

그래도 이번에 들어온 애완동물은 강아지가 아니라 사람이라니까 대화는 통하겠지? 조금 귀여워해 줘 볼까.

레스티아라고 했나.

그 애완동물의 애칭은 리티로 해야겠다.

짧고 부르기 쉽게.

그렇게 생각했는데…… 애완동물이 아닌 진짜 가족이 생긴 기분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베르체스터들과 다르게 사람답게 관심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가족 말이다.

“여동생이라는 거 진짜 좋구나.”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걱정 마! 말했지? 나는 즐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니까.”

마티어스는 손끝으로 자신의 귀에 다닥다닥 매달려 있는 녹색 피어싱을 가리켰다.

“충분해.”

그 말을 끝으로 마티어스는 레스티아의 팔을 잡아당겼다.

“걱정 말고 빨리 놀러 가자!”

“오, 오라버니.”

레스티아는 결국 마티어스와 함께 인파가 북적이는 번화가의 중심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아…….”

그제야 레스티아의 시야에 주변의 화려한 상가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절로 구매욕을 자극하는 알록달록한 쇼윈도.

빈민가에서 벗어난 적 없는 레스티아의 눈에는 그 모든 것들이 별천지로 보였다.

하지만 레스티아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쇼윈도가 아닌 간판이었다.

간판에 쓰여 있는 단어들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기만 했다.

‘나, 글자를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게 됐나 봐.’

레스티아는 속으로 환호성을 내지르며 간판들에 쓰여 있는 글자 하나하나를 빤히 쳐다봤다.

구두점, 카페, 의상실…….

‘이런 글자로, 이렇게 의미를 전달하고 있었던 거였구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레스티아가 간판에 시선을 떼지 못하자, 마티어스가 우뚝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리티, 저게 마음에 들어?”

“네?”

레스티아는 자신의 시선이 멈추어 있는 있던 간판을 바라봤다.

액세서리 상점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아차 싶었다. 아무래도 마티어스는 레스티아가 액세서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 착각한 모양이었다.

“아니, 아니에요! 그냥 간판을 본 것뿐인걸요.”

레스티아가 화들짝 놀라 손사래 치며 마티어스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마티어스는 ‘헤에’ 하고 히쭉 웃어 보이더니 말했다.

“리티, 아까는 리티가 좋아하는 산책을 했으니까. 지금부터는 이 오라버니가 좋아하는 걸 할까 해.”

“네……? 네, 좋아요! 마티어스 오라버니, 무얼 하고 싶으세요?”

레스티아는 내심 마티어스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쇼핑!”

마티어스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네? 쇼핑이요?”

“그래, 그래. 원래 노는 건 돈을 쓰는 거거든!”

“도……돈을 쓰는 거라고요?”

레스티아가 의문을 표했으나, 마티어스는 대답도 해 주지 않고 문제의 액세서리 상점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오라버니!”

목청껏 불러 봤으나, 마티어스는 대답이 없었다.

레스티아는 초조하게 주변을 살폈다. 번화가에는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은 처음이었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여기서 혼자 서 있다가는 길을 잃을 수도…….’

레스티아는 결국 마티어스의 뒤를 쫓아 상점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거랑, 이거. 이거. 이것도 사고, 이것도 마음에 드네.”

마티어스는 그 짧은 시간에 벌써 수십 개의 장신구를 골라 온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예예! 도련님! 안목이 높으십니다! 과연! 뭘 좀 아시는 분이군요!”

악세사리 상점의 상인은 양손을 공손히 모은 채, 굽신거리며 마티어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고 말이다.

“리티, 이리 와 봐. 너한테 어울릴 만한 걸 전부 사기는 했는데,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골라 봐.”

“네에?”

갑작스레 액세서리라니.

“마티어스 오라버니, 저는 이런 것을 해 본 적도 없고 가지고 싶지도 않아요.”

레스티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거절했다.

“리티, 리티! 무슨 소리야. 태어날 때부터 액세서리를 하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 이제부터 하면 되는 거야.”

하지만 마티어스는 막무가내로 보석이 잔뜩 박힌 액세서리를 종류별로 레스티아의 온몸에 걸쳐 보였다. 그리고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내 여동생! 안 어울리는 게 없잖아? 새하얀 도화지 같아. 창작 욕구가 샘솟는걸?”

그에 질세라 상점 주인도 거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동생분에게 안 어울리는 보석이 없군요. 이 루비 목걸이는 어떻습니까?”

“좋은데? 이거 말고도 내 동생에게 어울릴 만한 거 전부 다 꺼내 봐!”

그렇게 시작된 마티어스의 마네킹 놀이는 레스티아가 마음에 든다는 말을 꺼낼 때까지 반복되었다.

“이건 어때? 이것도 별로야?”

“아니, 저, 오라버니. 저는 이런 장신구가 필요치 않아요!”

“내 동생이 이거 별로래. 다른 거 가져와 봐!”

“그, 그게 아니라요.”

“좋아, 좋아. 이 에메랄드 브로치도 잘 어울리겠어.”

마치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와 같은 상태였다.

그리하여 레스티아는 “마음에 드니?” 하는 질문에 얌전히 “네”라는 대답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전부 포장해 줘.”

마침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기나긴 액세서리 쇼핑이 끝났다.

레스티아는 조금 지친 표정으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언가를 사기 위해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소모해 본 적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예! 도련님, 구매하신 물건의 가격은 이렇게 나왔습니다!”

상인은 방긋방긋 접대용 미소를 지으며 마티어스를 향해 계산서를 내밀었다.

마티어스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러고는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라? 돈이 없네?”

하지만 곧바로 깨달았다는 듯 히쭉 웃었다.

“맞다. 조엘한테 전부 뺏겼었지.”

베르체스터 저택으로 돌아올 때, 돈이 있으면 허튼짓을 하니까 압수해야겠다며 가져가 버렸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지금 땡전 한 푼 없다는 말이었다.

가게 주인은 스스로 돈이 없다고 말하는 마티어스를 바라보며 설핏 얼굴을 구겼다.

여태껏 그가 시키는 대로 액세서리를 꺼내느라 얼마나 고생했던가.

하지만 그는 장사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이미 마티어스와 레스티아의 옷차림을 보고 그들이 귀한 집 자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하! 도련님. 귀하신 분이 무겁게 돈을 왜 들고 다니겠습니까? 가문의 이름으로 차용증만 써 주시면, 제가 따로 찾아가서 받도록 하겠습니다.”

“음. 그건 싫어.”

“예?”

“이건 내가 여동생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산 것들 이니까. 가문의 이름으로 사면 의미가 없잖아?”

마티어스는 가문의 이름을 대는 대신, 주저 없이 자신의 귀에서 피어싱 하나를 빼서 계산서 위에 올려 두었다.

“돈 가지고 올 테니 맡아 둬.”

상점 주인은 마티어스가 건넨 피어싱의 정교한 모양새와 영롱하게 빛나는 초록색 마력 중화석을 보고 턱을 떨어뜨렸다.

오랫동안 액세서리를 취급하며 보석이란 보석은 모두 봐 온 자였다.

한눈에 봐도 이 피어싱은 흔히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절대로 아니었다.

“마티어스 오라버니! 그건 안 돼요……!”

레스티아가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매사 조용조용한 레스티아라고 해도 이 상황에서는 저절로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티어스는 담담하기만 했다.

“괜찮아, 괜찮아. 리티! 따라와. 이 오라버니가 돈을 벌어 볼 테니까.”

“네?”

“돈도 벌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곳이 있거든. 어차피 다음 코스였어.”

마티어스는 히쭉 웃으며 마력 중화석을 담보로 액세서리 상점 주인에게 빵 두 개를 살 만큼의 돈도 뜯어냈다.

그리고는 레스티아의 손을 꼭 잡고 또 어딘가를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그 돈으로 대체 무얼 하시려고요?”

레스티아는 초조하게 마티어스를 따라가며 물었다.

“음. 이건 초기 자금이야.”

“초기 자금이요?”

빵 두 개를 살 만큼의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으로 돈도 벌고 놀 수도 있는 곳이 있다니.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아, 벌써 도착했네.”

마티어스는 얼마 안 가 화려한 조명이 빛나고 있는 으리으리한 건물 앞에 우뚝 멈추어 섰다.

“여긴……?”

번화가에서 봤던 건물 중 제일 화려한 간판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었다.

레스티아는 그간 배운 글자를 복습하듯, 건물의 간판을 더듬더듬 읽어 보았다.

“행운의…… 신이 굽어보는…… 카지……노? 일확천금을 노리세요?”

마티어스가 도착한 곳은 번화가 중앙에 위치한 카지노였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간판에 적힌 단어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어, 결국 또다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마티어스 오라버니. 카지노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마티어스가 그 질문에 해맑게 대답했다.

“여기가 바로 놀면 돈 주는 곳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