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레스티아가 침대에서 자도 되는지까지 물어볼 줄 몰랐기에, 리시언은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당연하지. 여기는 네 방이야. 저 침대는 너만 쓸 수 있어.”
살벌한 분위기에 레스티아는 또다시 움츠러들고 말았다.
“이런, 화내서 미안. 너한테 화를 낸 건 절대로 아니야.”
리시언은 잠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가 레스티아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이리 와 봐.”
그리고 답이 없다는 듯, 레스티아를 또다시 번쩍 안아 들었다.
“무……무슨!”
“이렇게 안 하면 침대 위로 올라갈 생각이 없잖아, 너.”
리시언은 레스티아를 품 안에 안고 침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품 안에 안긴 소녀는 너무나도 마르고 가벼웠다.
리시언은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고작 세 살 어릴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가벼울 수 있는지.
누가 이 애를 열한 살로 볼까.
많아도 아홉 살짜리로 보였다.
이런 종잇장 같은 몸으로 그 술주정뱅이에게 학대당하며 살았다고 생각하니,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삼촌이 밉지 않아?”
“네?”
“말해 봐. 사라지거나 없어지면 좋겠지?”
말만 해.
네가 허락하면 없애 버리고 올게.
그런 의도가 담긴 질문이었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삼촌이 싫냐는 질문으로만 이해했다.
“가끔, 아니, 정말 자주 미웠지만……. 아주 어렸을 때는 삼촌에게 의지할 수 있었는걸요. 다섯 살까지는 그래도 저한테 무척 잘해주셨어요. 그때 까지는 술도 잘 안 드시고 그래서…….”
“……그래서 사라졌으면 좋겠지?”
리시언이 집요하게 질문했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리시언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냥, 저는 삼촌이 이제 술을 끊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쓸데없이 착하네.”
결국 리시언은 삼촌에 대한 처분을 잠시 미뤄 둔 채, 레스티아를 침대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하라는 첨언을 끝으로 말이다.
“…….”
원래대로라면 리시언은 여기까지만 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품에서 떨어져나가는 레스티아의 깡마른 몸이 새삼스레 다시 신경 쓰였다.
그래서 어울리지 않게…….
레스티아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 베개를 챙겨 준 뒤, 이불까지 덮어 주는 친절을 행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문득 레스티아와 눈이 마주쳤다.
레스티아는 리시언의 친절에 놀란 듯, 더듬더듬 말했다.
“고, 고맙습니다.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리시언은 아차 싶었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행동이 너무 과하지 않았나.
“젠장.”
“제……제가 또 뭔가 잘못 했나요?”
“아니, 그게 아니야. 말이 헛나갔어. 자, 어때. 네 침대가 어떤 것 같아?”
리시언의 질문에 레스티아가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침대가 정말…… 푹신푹신해요. 정말로 제가 여기서 자도 되나 모르겠어요.”
“하여간.”
리시언은 여전히 어색해하는 레스티아에게 세뇌시키듯 또박또박 말했다.
“잘 들어. 여기는 네 방이야.”
“네……?”
“앞으로 너만 쓸 수 있는 곳이야. 알았어?”
“네, 네!”
“그러니까 내일까지 여기 있는 모든 물건을 다 사용해 보도록 해.”
“……네?”
“대답.”
“네…….”
레스티아는 큰 눈을 끔벅거리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자라.”
리시언은 짧게 말하고, 방을 밝히고 있는 등을 하나 껐다.
순식간에 넓은 방에 어둠이 드리워졌다.
“앗……!”
레스티아가 화들짝 놀라며 작게 탄식했다.
이렇게 넓고 어두운 공간에 혼자 있게 된다는 것이 낯설고 무서웠다.
그 사실을 기민하게 알아차린 리시언이 말했다.
“왜, 무서워?”
“조……조금요…….”
“그래도 어두워야 푹 잘 수 있어.”
“네…….”
리시언은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열심히 고개만 끄덕이는 레스티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아귀에서 새하얀 나비를 한 마리 만들어 보였다.
나비는 리시언의 손아귀에서 포르르 날아오르더니 사방으로 흩어지며 여러 마리로 늘어났다.
하얀 나비들은 마치 밤의 숲을 유영하는 반딧불처럼 방 안을 날아다니며 어두운 방을 아주 은은하게 밝혔다.
“이건……?”
“마법이야.”
리시언은 손짓으로 나비 몇 마리를 레스티아를 향해 날아가게 했다.
아름다운 나비가 원을 그리며 나풀나풀 레스티아의 곁을 날아다녔다.
레스티아는 그것을 만져 볼까 말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골똘히 고민에 잠긴 그 모습이 딱 제 또래의 아이 같아서 리시언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만져도 돼. 뜨겁지 않아. 그냥 빛만 만든 거니까.”
리시언의 말에, 레스티아가 마침내 그 나비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나비는 포르르 날아가 레스티아의 손바닥 위에 앉았다.
“……신기해요. 예쁘고.”
마침내 레스티아가 미소 지었다.
오두막에서 출발해서 베르체스터의 저택에 올 때까지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맑고 아이다운 미소였다.
“아.”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어 냈다.
조엘이 말했던 마력 중화석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법을 쓰시면…… 그 중화석이라는 걸 쓰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리시언은 고개를 저었다.
“고작 이 정도 쓴다고 그게 필요한 건 아니야.”
나비가 다시 레스티아의 손등에 앉았다.
“내일 아침까지 이대로 둘게. 어때, 조금 덜 무섭지?”
레스티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감사 인사와 함께 환한 미소가 리시언에게 향했다.
어쩐지 그 미소가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리시언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버렸다.
“감사 인사는 됐고, 빨리 자라. 너무 늦었어.”
리시언은 방의 등을 모두 끄고, 조용히 방문을 닫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타악.
방문이 닫혔다.
레스티아는 침대 위에 누워 멍하니 방 안을 날아다니는 작은 나비들을 바라봤다.
오늘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저 나비들처럼 마법 같았다.
‘나도 마법을 쓸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정말로 베르체스터라고 생각했을 텐데.
진짜로 가족들을 만난 거라고 기뻐했을 텐데.
두려움과 설렘이 얼기설기 엉켜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아니야. 조엘 님이 마법을 못 써도 내가 베르체스터라고 하셨어.’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억눌렀다.
그러자 어느새 눈이 스르륵 감기고, 사방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아까 전처럼 두렵지 않았다.
꿈속에서도 반짝거리는 나비가 날아다니며 곁을 지켜 줄 것 같았으니까.
레스티아는 오랜만에 깊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하루아침에 여동생이라니.”
리시언은 방문 밖으로 나와 어두운 복도를 뚜벅뚜벅 걸었다.
“건방진 형이 하나 더 생기는 것보다는 낫나.”
마지막에 보았던 레스티아의 미소를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근사하게 말려 올라갔다.
하지만 리시언은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 * *
베르체스터 공작저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막내 공녀님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많았기 때문이다.
공작가에는 아주 오랫동안 집안에 어린 소녀가 없었다. 그래서 파악해 두어야 할 것이 많았다.
어린 공녀님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부터, 어떤 색상의 옷감이 어울리는지, 요즘 제국의 귀족 소녀들에게 유행하고 있는 장신구나 장난감 등이 무엇인지, 그 모든 것들이 공작가의 격에 맞는지까지 모두 확인해야 했다.
짧은 시간 안에 그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했기에 저택의 사용인들이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고생하고 있었다.
“전대 공작님의 장례식이 끝난 게 엊그제 같은데, 또 할 일이 많네.”
“그러게 말이야. 쉴 틈이 없어. 모셔야 할 사람도 한 명 더 늘었고.”
어떤 사용인들은 피로감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도라가 말하기를, 공녀님께서 2층에 마련한 방을 무척 좋아해 주셨다는데?”
“휴. 그건 정말 다행이네.”
사용인들은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피로를 풀었다.
노동이 힘들었다고 해도, 바깥세상에서 고생한 티가 역력한 그 작은 소녀가 푹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이 나름 뿌듯했다.
“그런데, 공녀님이 정말 전대 공작님의 딸이 맞는 거야?”
수다를 떨던 이 중 하나가 슬며시 의문을 표했다.
“무슨 소리야. 너도 공녀님 봤잖아. 입매가 공작님과 많이 닮았던걸.”
“전대 공작님은 부인이 돌아가신 이후, 여자를 가까이하신 적이 없잖아.”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애인을 저택에 안 데리고 오신 걸 수도 있지.”
“그렇지만 머리색과 눈 색은 전혀 딴판이잖아. 그리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큰 의문점이었다.
마법은 그만큼 베르체스터 가문의 지문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럼! 당연히 따님이시지! 아가씨는 제라르 공작님이 인정하신 베르체스터의 하나밖에 없는 공녀님이야! 떠들 시간이 있으면, 청소나 해!”
불쑥 나타난 도라가 큰 소리로 수군거리는 사용인들을 모두 물리쳤다.
“이걸 어쩐다.”
한편, 주방은 큰 시름에 빠져 있었다.
“리시언 님께서 아가씨께서 드실 음식은 특별히 신경 쓰라고 하더군.”
어떤 음식이 나오든 항상 무심하던 리시언이었다.
그런데 그가 각별히 음식에 신경을 쓰라고 말한 것이다.
“어젯밤에 공녀님께서 고기를 많이 드신 것 같았어. 아침 식사는 고기로 채우자!”
“아니, 성장기니까, 고기만 먹으면 안 된다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하실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
“멍청이들아! 후식은 어떤 걸 좋아하시는지부터 알아 왔어야지! 후식이 맛있어야 좋은 식사라고 기억된다고!”
모두가 그렇게 나름의 고통에 빠져 있었다.
그들이 분주하게 움직여 준 덕일까.
레스티아는 눈을 뜬 순간부터 계속해서 감탄사를 터뜨렸다.
“와…….”
눈부신 햇빛이 쏟아지는 방은 늦은 밤에 봤을 때보다 더 안락하고 포근했다.
레스티아는 폭신폭신한 침대가 마음에 무척 들어서 하마터면 일어나지도 못할 뻔했다.
하지만 애써 침대 밖으로 몸을 빼내었다.
‘게으름 피우지 말자. 분명 리시언 님이 방 안의 물건을 다 써 보라고 하셨지.’
레스티아는 조심스럽게 토끼털 실내화에 다시 두 발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벽에 걸린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유명한 화가가 정성 들여 그려 냈을 그 그림들은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명화 감상 같은 것은 해 본 적이 없으니까.
‘뭔가, 내가 써 볼 수 있을 만한 게 없을까.’
주변을 열심히 둘러보던 레스티아는 일단 눈앞에 보이는 의자에 앉아 보기로 했다.
그래서 조심스레 풀썩 주저앉아 보았다.
굉장히 어색했지만 푹신푹신한 쿠션과 단단한 등받이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건, 책상…….’
의자 앞에는 당연하다는 듯 책상과 책꽂이가 있었다.
레스티아는 무심결에 책꽂이에 있는 책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바보. 읽을 수도 없으면서. 이 책으로 뭘 하려고?’
모든 물건을 다 사용해 보라는 리시언의 지시 사항을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때였다.
똑똑.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