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삼촌?”
“그래, 내가 이 애의 삼촌이오! 여기가 이 애 집이고! 그러니 내 허락 없이 아무 데도 못 가!”
레스티아는 두 눈을 끔벅이며 삼촌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매정하게 자신을 폭력배에게 팔아넘긴 삼촌이었다.
그랬던 그가 오두막집에서 뛰쳐나와 자신이 레스티아의 가족이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레스티아는 희미하게 웃었다.
빚 대신 팔아넘겨야 할 사람이 없어지니 다급해 하는 것이 어린 레스티아의 눈에도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족이라.”
한 차례의 마법을 사용한 이후, 팔짱을 낀 채 침묵하고 있던 리시언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질문했다.
“그럼 왜 얘가 집 앞에서 폭력배한테 맞고 있었는지도 알겠네?”
“그…… 그건……!”
말문이 막힌 삼촌이 허겁지겁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건, 이 애가 말썽을 부려서 그랬소. 말썽을 부리면 어른이 훈육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니오?”
“훈육? 그래서 이렇게 작고 삐쩍 마른 애를 다 큰 남자에게 맞게 내버려 뒀다?”
리시언이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며 앞으로 나섰다.
마치 금방이라도 다시 한 번 폭력배를 불태웠던 불꽃을 만들어 낼 기세였다.
그러자 조엘이 한 손으로 리시언을 저지했다.
“리시언, 참아.”
“…젠장!”
조엘이 잔뜩 화가 난 리시언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리고는 레스티아의 삼촌을 응시하며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스티아의 삼촌이라고 했나.”
“그…… 그렇소.”
리시언과 조엘의 기세에 눌린 삼촌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상하군. 분명 내 아버지가 그대에게 충분한 양육비를 지급한 걸로 알고 있는데…… 왜 빈민가의 구석에서 살고 있지?”
“으응? 당신 아버지?”
“……10년 전, 양육비와 함께 레스티아를 그대에게 맡긴 사람이 있을 텐데. 아버지가 직접 오진 않았을 거고, 사람을 시켰을 거야.”
“아아……!”
삼촌이 무언가 기억해 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양육비요……?”
레스티아는 금시초문이었다.
삼촌은 항상 레스티아에게 네 부모가 땡전 한 푼도 안 주고 너를 떠맡겼으니, 그 빚을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레스티아는 불평불만 없이 매일 새벽마다 꽃을 팔아 생활비를 벌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 했다.
“그…… 그야. 애를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드니까 그랬지!”
우물쭈물하던 삼촌이 마침 변명거리를 찾아냈다는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이 애를 키우느라 돈을 얼마나 많이 썼는지 아시오! 그때 받은 1,000골드는 양육비로 한참 부족해! 이제 와서 다 키워 놓은 애를 공짜로 데려가려고 하다니 날강도나 다름없군!”
“삼촌! 그게 무슨……!”
1,000골드라면 평범한 4인 가족이 10년은 먹고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런 돈이 있었다면, 삼촌과 레스티아는 깨끗하고 넓은 집에서 걱정 없이 살았을 것이 분명했다.
“시끄럽구나! 어른들이 말하는데 끼어들고, 무슨 버르장머리야!”
삼촌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레스티아는 몸을 움찔 떨었다.
삼촌은 레스티아가 잘못을 바로잡으면 말대꾸를 한다며 더 심하게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아, 그래. 돈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군.”
레스티아를 향해서는 줄곧 따뜻한 시선을 건네던 조엘이 눈을 가늘게 좁히며 냉정하게 삼촌을 노려봤다.
그 기세가 살인이라도 저지를 것처럼 무시무시했으나, 돈이라는 말이 나오자 삼촌은 기대감에 찬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그…… 그렇소. 애를 키우는 건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니까.”
“그럼 대화가 쉽겠어.”
조엘이 품에서 수첩을 꺼내 무언가 적더니, 삼촌의 앞에 무심하게 내던졌다.
“1,000골드를 더 주지.”
수표였다.
“헉.”
삼촌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 들었다.
“하지만, 이건 양육비가 아니라 양육을 포기하는 대가야. 다시는 내 동생을 조카라고 칭하지 마. 이 애 앞에 나타나지도 말고.”
“예…… 예에!”
돈을 받아 든 삼촌은 언제 그랬냐는 듯 레스티아에게 신경을 꺼 버렸다.
무서운 기세로 자신의 뒤에서 소리를 지르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인 그 모습에 레스티아는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이런 사람을 가족이라 의지하며 살아왔던 자신이 우습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자, 레스티아. 집에 가자.”
조엘이 다시 달콤하게 웃으며 레스티아에게 말을 건넸다.
“그, 그렇지만 제…… 집은…… 가족은…….”
하지만 삼촌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눈앞의 남자들을 가족이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20실버에 팔려 갈 뻔했던 자신을 1,000골드로 사 들이는 사람들이라니.
그런 대단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자신의 오빠일 수 없었다.
“레스티아, 너의 진짜 가족은 우리야.”
조엘이 레스티아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다정하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정말로 가족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동생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더 비참하고 슬프겠지.
무엇을 선택해야 덜 아프고 덜 고통스러울까.
레스티아는 혼란스러웠다.
“야.”
리시언이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레스티아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그 덕에 레스티아는 눈앞에 있던 조엘도, 삼촌도 볼 수 없었다.
오로지 선명하게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에 시선을 빼앗겨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네가 선택해. 우리를 따라갈래, 아니면 여기 남을래? 누구를 네 가족으로 삼고 싶은지는 네가 정하는 거야.”
귀찮으니 빨리 대답하라는 어투와 표정은 냉담하고 싸늘했다.
정말로 이 사람들을 따라가도 될까? 이 두렵고 신비한 사람들을?
“빨리 말해. 넌 춥지도 않냐? 옷도 얇게 입고선.”
리시언이 투덜거리며 자신의 로브를 벗어 레스티아의 몸을 감쌌다.
“으흠.”
그리고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다는 듯 손바닥을 펼쳐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을 레스티아의 옆에 만들어 냈다.
“아…….”
그건 정말이지, 따뜻했다.
그리고 이상했다. 손아귀에서 피어나는 불꽃이라니. 이런 신기한 것을 보면 두렵다고 생각해야 하는 걸 텐데.
정말 이상하게도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따뜻하고 포근했다.
불나방들의 심정이 이런 걸까.
타오르는 불꽃이 분명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 뛰어드는…….
“저는…….”
마침내 레스티아는 조그마한 입을 벌려 작게 대답했다.
“저는, 따라가겠어요.”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이들이 정말 자신의 오빠인지 아닌지, 그건 중요치 않게 느껴졌다.
그저 차가운 몸을 따스하게 녹여 주는 저 온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뿐.
“잘 선택했어, 레스티아.”
조엘이 눈꼬리를 곱게 접어 웃으며 레스티아를 조심스레 품에 안아 들고 그들이 타고 온 마차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리시언 역시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레스티아의 삼촌이 리시언을 향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 참, 이보시오. 그런데 레스티아의 아버지가 되는 자가 누구요? 누구기에 이리 돈이 많아?”
리시언이 그를 돌아보며 향해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대 베르체스터 공작.”
“베…… 베르체스터? 베르체스터 공작가?”
삼촌이 놀란 듯, 몸을 납작하게 굽혔다.
베르체스터 공작가.
아무리 천한 신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대륙에 그 가문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대대로 마법사를 배출해 내는 엄청난 세력가였으니까.
“그러니까, 허튼짓할 생각하지 마.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 버릴 수 있으니까.”
엄중한 경고를 끝으로 리시언은 주저 없이 오두막집을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낡아빠진 나무집은 화르륵 불길을 만들어 내며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히이이익!”
레스티아의 삼촌은 아까 전의 폭력배들처럼 새하얗게 질려서는 허둥지둥 네발로 눈밭을 기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리시언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다시 앞서가는 두 사람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 * *
레스티아는 조엘의 품에 안겨 마차에 올랐다.
한사코 혼자 걸을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두 남자는 다친 발목으로 걷게 할 수 없다며 바닥에 발도 대지 못하게 했다.
“……고맙습니다.”
“고마워할 필요 없어, 레스티아. 여동생을 에스코트하는 건 오빠로서 당연한 일이니까.”
조엘이 우아하게 웃어 보였다.
레스티아는 그의 미소가 마치 명화에 나오는 천사의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조엘이라면 레스티아가 무슨 잘못을 해도 용서해 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레스티아는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용서 받지 못할 일 같다는 생각에 빠져 버렸다.
자신이 신고 있는 낡고 해진 신발과 남루한 옷가지가 고급스러운 마차를 더럽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름 깨끗하게는 입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빛나는 것과 가까이 있으면 추한 것을 가릴 수가 없구나.
그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어쩐지 스스로가 끝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레스티아는 결국 마차의 맞은편에 앉은 조엘과 리시언의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발끝만 응시했다.
“왜 그래, 레스티아. 혹시 두고 온 것이 있니?”
조엘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 아니요. 챙길 짐은 딱히 없었어요.”
레스티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실제로 레스티아는 가진 것이 없었다.
꽃을 따다가 종종 주어 오곤 했던 반짝거리는 조약돌은 삼촌이 쓰레기라며 오래전에 내다 버렸고, 옷가지는 입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 두고 온 것들은 걱정 마. 전부 새것으로 사 줄 테니까.”
조엘이 옅은 레몬 색의 기다란 속눈썹을 사르르 접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다시 한 번 그 다정함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유 없는 친절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삼촌도 술을 새로 사 올 때만 다정하게 웃어 주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지금 이 사람들의 의도를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저…… 갑자기 저를 왜 찾아오신 거예요?”
저들 말대로 자신이 진짜 동생이라면, 왜 열한 살의 나이가 될 때까지 찾아오지 않았을까.
“최근에 신문 읽어 본 적 있어?”
턱을 괴고 심드렁하게 차창을 바라보고 있던 리시언이 마차의 한쪽에 꽂혀 있던 신문을 레스티아에게 건넸다.
레스티아는 얼떨결에 신문을 받아 들었다.
“그거 읽어 보면 대충 파악할 수 있을 거야. 전대 베르체스터 공작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한동안 난리였으니까.”
리시언 나름의 친절이었다.
그러나 레스티아는 글을 배운 적이 없었다.
신문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글자들은 그저 검고 하얀 그림들로 보일 뿐이었다.
“저, 죄송해요. 제가 글을 읽을 줄 몰라서…….”
마차 안에 침묵이 흘렀다.
레스티아는 그 침묵이 무서웠다.
삼촌은 레스티아가 무언가 모르거든, 그것도 모르냐며 레스티아에게 손찌검했었다.
그 폭력은 레스티아가 몸을 납작 엎드리고 사과해야 끝났다.
“제가 멍청해서……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그래서 늘 해 왔던 대로 허리를 푹 숙이고 사과했다.
하지만 레스티아의 사과를 들은 조엘과 리시언은 순식간에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