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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님의 위험한 오빠들-1화 (1/132)

1화

레스티아는 작은 몸을 오두막집 구석에 바짝 붙인 채, 초조한 시선으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어른들을 바라봤다.

“형씨, 그러니까, 돈을 갚을 수 없단 말이지?”

“죄, 죄송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인 삼촌이 험악하게 생긴 폭력배들을 상대로 연신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또 돈을 빌려 쓰고 갚지 못한 모양이었다.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이렇게 폭력배들이 직접 수금을 하러 집까지 찾아온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들의 위협적인 모습에 레스티아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쯧. 이거, 집도 허름한 게 영 돈 나올 구석이 없어 보이는데.”

“별수 없지. 돈을 못 갚으면 몸으로 때울 수밖에. 손가락 하나에 1실버로 할까? 총 20실버니까 발가락까지 합하면 전부 갚겠는걸.”

폭력배 하나가 히쭉 웃으며 날이 시퍼렇게 빛나는 단도를 꺼내 삼촌을 위협했다.

“히……히익!”

“아! 안 돼요!”

폭력배들에게 붙들린 삼촌이 괴성을 내지르자, 레스티아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열한 살의 아이가 삼촌을 지켜 줄 수 있는 방법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촌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레스티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저, 그럼…… 돈 대신 제 조카는 어떻습니까?”

“흠?”

그제야 레스티아의 존재를 확인한 폭력배들이 일제히 그녀를 바라봤다.

값어치를 매기는 듯한 어른들의 계산 어린 눈빛에 레스티아는 숨이 콱 막혀 오는 것 같았다.

“쓸모 있을 겁니다. 저 계집의 어미도 반반해서 몸을 팔아 빌어먹었으니 말입니다.”

그제야 레스티아는 삼촌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삼촌은 빚을 갚는 대신 레스티아를 팔아넘기려 하고 있었다.

“사…… 삼촌!”

“아하. 그래. 그나마 이 계집이 돈이 되겠네. 크면 꽤 미인이 되겠어. 뭐, 그 전에 팔아도 좋을 것 같고.”

단도를 들고 있던 폭력배가 히쭉 웃으며 레스티아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 싫어요!”

레스티아는 두려움에 덜덜 떨며 뒷걸음질 쳤다.

빈민가에 살고 있는 이라면, 세 살 먹은 아이라도 사람이 팔려 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았다.

레스티아는 죽을 때까지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아야 하는 그런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처럼 술주정뱅이 삼촌에게 매일같이 손찌검을 당하는 하루하루를 살더라도 말이다.

“삼촌! 삼촌! 제가 더 열심히 꽃을 팔게요. 이제 게으름도 피우지 않을게요. 제발……!”

레스티아는 자신의 유일한 보호자였던 삼촌에게 제 쓸모를 피력하며 목청껏 애원했다.

하지만 삼촌은 되레 짜증을 냈다.

“시끄러! 조용히 따라가거라. 여태까지 먹여 주고 재워 줬으면, 그만 은혜를 갚아야지!”

“삼촌……!”

결국 레스티아는 폭력배의 손에 붙들려 무력하게 오두막집 밖으로 끌려 나가야 했다.

달조차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

바깥세상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타인의 의지로 바깥으로 내몰린 어린 소녀는 그 모든 것들이 구슬프도록 춥고, 끔찍하게도 두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싫어, 이대로 팔려 가고 싶지 않아.’

결국 레스티아는 자신을 붙들고 있는 폭력배의 손등을 궁지에 몰린 어린 짐승처럼 콱 깨물었다.

“악! 이 계집이!”

폭력배가 짜증을 내며, 레스티아를 그대로 눈밭에 내팽개쳤다.

“으윽!”

레스티아의 깡마른 몸이 추위와 고통을 호소하며 맥없이 바닥에 굴렀다.

“빌어먹을 계집. 일단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는 법부터 가르쳐야겠군.”

“이봐, 이제부터 저 계집은 상품이야. 적당히 해.”

“적당히는 무슨. 이번 기회에 도망치면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 알려 줘야지. 그래야 앞으로 다루기가 편하다고.”

레스티아에게 손등을 물어뜯긴 폭력배가 그녀를 위협하며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

두려움에 질린 레스티아가 도망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일어설 수 없었다.

반항하다가 발목이 접질린 모양인지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망칠 수 없어.’

지독한 무력감에 레스티아의 회색 눈동자가 절망으로 물들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모든 것을 포기하게 했다.

그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익숙함과 마주하는 것은 매번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괴로운 일이었다.

레스티아는 맥없이 주저앉아, 자신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폭력배의 손아귀를 멍하니 응시했다.

그때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이 나타나 레스티아를 위협하는 그 손을 저지한 것은.

“야, 손 치워.”

눈보라를 가르며 울려 퍼지는 소년의 나직한 목소리가 마치 맹수의 경고와도 같았다.

폭력배들은 꿀꺽 침을 삼키며 소년을 바라봤다.

기다란 로브에 가려진 체구는 분명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남자아이의 것이었다.

그런데도 소년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압도당해 채 몸을 굳혔다.

“치우라고.”

또 한 번의 경고와 함께 거센 돌풍이 불어 소년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로브를 벗겨 냈다.

그러자 밤하늘보다 어두운 흑발이 눈송이와 함께 흩날리며 선명한 황금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레스티아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소년의 아름다운 두 눈동자가 레스티아를 뚜렷이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고귀한 색상의 눈빛.

그 올곧고 선명한 시선이 탁하고 흐려진 레스티아의 은회색 눈동자에 한 줄기 빛이 되어 못처럼 박혔다.

“뭐, 뭐야? 꼬마야, 다치기 싫으면 어른이 하는 일에 끼어들지 마라.”

소년의 기세에 주춤거렸던 불량배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질세라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소년을 위협했다.

하지만 소년은 그 위협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말이 안 통하네.”

소년의 손아귀에서 불꽃이 피어오른 것은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화르르륵-.

이글거리는 불덩어리가 새카만 밤하늘 아래에서 찬란하고 아름다운 호선을 그리며 레스티아의 적을 덮쳤다.

“으아아아악!”

불덩어리를 직격으로 맞은 폭력배가 팔을 붙잡고 비명을 내지르며 눈밭으로 나동그라졌다.

그리고 제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히이이익! 마법사? 마법사가 왜 여기에!”

“살짝 닿은 거 가지고, 엄살은.”

레스티아는 화들짝 놀라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소년을 다시금 쳐다봤다.

소년은 마법사였다.

전 대륙에서 몇 없다는 마법사.

그 엄청난 정체를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낸 소년이 돌처럼 굳어 있는 폭력배들을 향해 엄포를 놓았다.

“한 번만 더 얘한테 손대면 산 채로 태워 버릴 거야.”

소년의 경고에 폭력배들이 일제히 허겁지겁 뒷걸음질 치더니, 이내 전부 꽁지 빠지게 도망쳐 버렸다.

“이런, 리시언. 제라르 형님이 조용히 동생만 데리고 돌아오라고 하셨잖아.”

언제 나타난 걸까.

리시언이라 불린 소년 가까이로 훤칠한 키에 선한 인상을 가진 우아한 청년이 다가와 서 있었다.

“아무도 안 죽였잖아. 그럼 된 거지.”

리시언이 잘생긴 입매를 삐뚜름하게 비틀며 팔짱을 끼자, 청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레스티아 가까이로 다가왔다.

레스티아는 청년의 잘 정돈된 짧은 레몬 색의 머리카락과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추운 날씨에도 참 따스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미안, 놀랐지?”

그는 몸을 숙여 레스티아와 눈높이를 맞추곤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아까 그건 그냥 마법일 뿐이니까.”

“네……?”

그냥 마법일 뿐이라니.

레스티아는 이런 것을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하지만 청년은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다정한 어조로 더욱 믿지 못할 말을 꺼냈다.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지는 몰랐지만, 반가워. 이제야 만나게 됐네, 내 동생. 우리는 네 오빠야.”

“네? 오빠라고요?”

레스티아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커다란 두 눈을 깜박였다.

“그래. 나는 네 둘째 오빠 조엘이고, 여기 리시언은 우리 집안의 막내, 아니, 이제 막내는 너니까, 네 막내 오빠야.”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레스티아는 객사한 창녀의 딸.

빈민가에 위치한 술주정뱅이 삼촌의 오두막에서 꽃을 팔아 겨우겨우 먹고살아 왔다.

그런 천한 계집이 눈앞에 있는 귀공자들의 동생일 리 없었다.

“저어…… 무언가 잘못 아신 것 같아요. 제게 오빠가 있을 리가 없어요.”

“아니, 레스티아, 네가 맞아. 은회색 홍채에 크림 같은 하얀 머리카락. 우리가 찾던 막냇동생이 확실한걸.”

레스티아는 조엘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화들짝 놀랐다.

유일한 피붙이인 삼촌조차도 제대로 불러 주지 않는 이름이었다.

“제 이름을…… 어떻게…….”

“오빠가 동생 이름을 몰라서야 되겠어?”

조엘이 사르르 웃으며 다정한 손길로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는 레스티아의 하얀 머리카락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기분 좋은 선풍이 불어와 레스티아의 몸에 묻은 눈송이들을 가볍게 털어 냈다.

레스티아는 깜짝 놀라 제 몸을 바라봤다.

눈밭을 구른 탓에 차갑고 축축했던 것들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이것도, 마법이군요.”

“우리 동생, 똑똑한걸. 리시언은 불을, 나는 바람을 다룰 수 있어.”

귀한 마법사가 두 명.

그들은 레스티아를 자신들의 동생이라 주장한다.

레스티아는 더더욱 눈앞에 있는 귀공자들의 주장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조엘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자세한 말은 집에 돌아가서 하자. 할 이야기가 아주 많아.”

“집……이요?”

“그래. 형제들이 있는 집에 가는 거야, 레스티아.”

조엘은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레 커다란 손을 뻗어 눈밭에 주저앉아 있는 레스티아를 일으켜 세웠다.

“이런, 너무 가벼운걸? 이제 네가 몇 살이지? 열한 살 아니었나?”

“읏……!”

레스티아의 입에서 대답 대신 저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 작은 신음 소리에 다정하게 레스티아를 바라보던 조엘의 녹음을 품은 눈동자가 짙게 가라앉았다.

“레스티아, 잠시 실례할게.”

조엘이 곧바로 레스티아의 옷소매를 걷어 올렸다.

한겨울에 입기에는 지나치게 얇고 헐거운 옷이 너무나도 손쉽게 속살을 내보였다.

그러자 창백하리만큼 새하얀 피부 위로 곰팡이처럼 피어 있는 푸른 멍 자국들이 드러났다.

지난날 삼촌에게 맞아 생긴 멍들이었다.

“이건.”

그 상처를 확인한 조엘의 미간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니?”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레스티아는 허겁지겁 옷소매를 내려 버렸다.

제 몸뚱어리가 이 아름답고 우아한 사람이 잡으면 안 될 누더기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조엘은 고슴도치처럼 날을 잔뜩 세운 레스티아를 다독이며 말했다.

“그래, 레스티아.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지금 발목도 아픈 거 맞지?”

레스티아는 얼굴을 붉혔다.

가까스로 서 있었는데, 자세가 어정쩡했는지 들킨 모양이었다.

“어서 집에 가서 치료하자.”

조엘이 재차 부드럽게 강조했다.

“하지만 제 집은…….”

레스티아가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꾹 닫았다.

빈말로라도 자신을 팔아넘긴 삼촌이 있는 오두막집을 자신의 집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때, 뒤편에서 삼촌이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보시오! 당신들! 그 애는 내 조카요! 내 허락도 없이 어디를 데려가겠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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