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세 번째 명령(2)2016.08.28.
여울은 해안선을 따라 움직였다. 다른 것을 생각할 틈은 없었다. 최대한 멀리. 어떻게든 용과 거리를 벌려야 했다. 임시방편일 뿐임을 알아도, 지금 이 순간 붙잡힐 수는 없었다.
그는 용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물론 소룡전 출신의 이무기이며, 헤살이 소룡전의 선생들 중 하나이기도 했던 만큼 보통 사람보다는 훨씬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의 실력은 몰랐다. 그저 용의 존재감을 느낀 순간 직감했다. 그는 무슨 짓을 해도 용을 이길 수 없었다. 검을 아무리 휘둘러도 폭포를 베어 낼 수는 없듯이.
몽해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마차가 있던 벼랑도 손가락만 하게 보일 정도로 멀어졌다.
‘도망칠 수 있을까?’
그리 희망을 가지는 찰나에, 해일이 일었다.
바다가 몸을 일으켜 벽처럼 굽어본다. 가로로는 모래밭에서부터 잘 보이지도 않는 수평선 끝까지, 세로로는 해를 가리고 그림자를 드리울 만큼.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맙소사…….”
서란이 신음을 흘렸다. 여울은 망설이지 않았다. 바로 앞에 해일이 일어나자, 그대로 선회하며 모래사장 쪽으로 몸을 틀었다.
마른하늘에 구름이 꼈다. 검게 모여든 구름에서 빛이 번쩍였다. 벼락이 내리꽂혔다. 잎맥처럼 가지를 뻗으며 지상으로 질주한 번개가 수면을 후려쳤다.
여울은 유연하게 그것을 피했다. 물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전류도 기를 일으켜 막았다.
우릉. 우릉.
빛보다 느린 우레가 꼬리처럼 달라붙었다. 이무기는 내리치는 번개를 이리저리 피하며 바닷가로 향했다.
서란은 새파랗게 질린 채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름답게 보였던 바다는 이제 재앙처럼 보였다.
일어선 바다가 해일이 되어 그들을 뒤쫓았다. 비는 한 방울도 오지 않는데 번개만이 발자국처럼 따라왔다. 하늘은 구름을 드리웠고 그 사이 천둥이 울부짖었다.
온 세상이 그들을 붙잡으려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그런 광경이었다. 아직 용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도.
“이것이, 용의…….”
용이 나섰다는 것의 의미를 그 광경이 보여 주고 있었다.
*
용은 수신(水神)이라 불리기도 한다.
까마득한 하늘에서, 희나리와 온은 용의 권능을 보며 왜 용이 수신이라 불리는지 깨닫고 있었다. 비를 뿌리고 물을 다루는 이무기의 힘도 굉장한 것이나, 용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너무 크게 일을 벌이는 것 아니야?”
희나리가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해일이 일고 벼락이 내리치는 바다는 멸망 직전의 세계처럼 보였다.
“격차를 보이는 편이 나을 테니.”
“격차?”
“나는 그들을 상처 입히고 싶지 않다. 스스로 포기해 줬으면 좋겠군.”
그리 말하는 헤살은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다. 주홍색 눈은 몸부림치듯 움직이는 검은 이무기를 뒤쫓고 있었다. 온이 머뭇거리다 물었다.
“여울이…… 포기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럼 어째서…….”
“내가 그를 죽이길 바라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헤살이 온을 흘깃 돌아보았다. 그는 씁쓸한 낯으로 중얼거렸다.
“이 짓을 두 번이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희나리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 온은 눈을 내리깔았다. 선대 마니의 교룡인 자드락은 1년간 도주 생활을 했다. 그 기나긴 추적에 당시 세자의 교룡이었던 헤살도 당연히 참여했을 것이다.
헤살은 자신이 내리치는 벼락을 피해 모래사장에 도달한 이무기를 응시했다. 그는 희나리와 온을 데리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
모래사장으로 다가가며 물이 얕아지는 순간, 여울은 인간의 태로 돌아왔다. 거대한 이무기의 몸이 사라지자 아래로 뚝 떨어지는 서란을 그가 받아 안았다. 그의 숨은 몹시 거칠었다.
“여, 여울. 어찌 하려는 것이냐?”
서란이 불안하게 그를 불렀다. 여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팔로 그녀를 안고 다른 손에 검을 쥔 채 모래사장 위를 달렸다.
모래사장 너머에는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었다. 여울은 그 숲에 뛰어들려다 급히 멈췄다. 그가 멈춘 코앞으로 쾅 소리가 나며 바람이 채찍처럼 내리쳐졌다. 모래가 폭발하듯 허공으로 튀었다.
“오랜만이군.”
해송(海松) 꼭대기에 헤살이 내려섰다. 그는 회초리처럼 얇은 나뭇가지 위를 밟고 서 있었다. 나뭇가지는 전혀 휘지 않았다. 헤살의 몸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듯이.
희나리와 온이 뒤이어 모래사장에 착지했다.
여울은 일언반구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삽시간에 응축된 기가 유백색 섬광이 되어 검에서 내쏘였다. 그것은 정확하게 헤살의 목을 노리고 날아갔다.
헤살은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그가 맨손으로 그 검기를 쳐냈다. 피부와 검기가 부딪치는데 쩡, 하고 강철을 칼날로 내리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검기는 허무하게 튕겨 애꿎은 해송의 가지들을 베었다. 잘린 나뭇가지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무의미한 발악이라는 걸 알지 않나, 너도.”
헤살의 말대로, 여울도 공격이 먹히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검을 휘두른 직후에 몸을 낮추고 다시 숲 속으로 뛰어들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의 앞 허공에 물방울들이 생겨나더니 급속도로 늘어나 벽을 이루었다. 방풍림과 모래사장 사이에 사람의 키보다 높고 너비는 다섯 걸음은 될 법한 물의 벽이 생겨났다.
‘뚫고 지나가려하면…… 저 물속에 갇히겠지. 용이 통제하는 물에.’
이무기는 물을 다룰 수 있는 만큼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으므로, 설사 저 안에 갇히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하나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서란은 인간이었다. 여울은 그 안에 뛰어들 수 없었다.
온과 희나리는 끼어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바로 앞에서 헤살과 여울이 대치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포기해라, 여울.”
헤살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의 눈빛에 언뜻 자괴감이 스쳤다.
여울은 의미 없는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헤살이 만들어 낸 물을 통제하려 시도했다. 미동도 하지 않는다. 용의 지배하에 놓인 물은 이무기의 도술 따위에 흔들리지 않았다.
헤살이 느릿하게 손을 움직였다. 허공에 물방울이 맺히고 몸집을 불린다. 물의 벽은 뱀처럼 휘어지며 여울과 서란의 주위를 완전히 둘러쌌다.
여울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그 품 안에 있던 서란이 심호흡을 했다. 그녀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여울, 지금이라도, 나를…….”
“……죄송합니다. 벌은 나중에 받겠습니다.”
“무얼, 아.”
여울이 그녀의 뒷목을 내리쳤다. 정확한 손놀림에 무방비하던 그녀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목의 부상에 좋지 않을 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그녀가 다시 명령을 한다면 못 버티고 명을 따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수는 없었다. 이 자리에서 죽을지언정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축 늘어진 서란을 내려다보던 그는 문득 자드락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쁜 짓. 이 순간을 모면할 방책. 무언가가 떠올랐다. 평소라면 상상조차 못했을 짓이다.
‘하지만 이 자리를 피할 유일한 수단이겠지.’
깊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떠오른 순간, 행해야 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헤살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그들을 보고 있었다. 여울이 나직이 말했다.
“물러나라.”
“…….”
“지금 너희가 물러나지 않으면.”
여울이 검을 들었다. 그는 서란의 심장 위에 제 검을 겨누었다.
“마니의 여의주를 부수겠다.”
“미쳤어?”
곧바로 반응한 건 희나리였다. 그녀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교룡은 보주를 주인으로 받들겠다고 맹세한 존재다. 보주가 직접 명령해서 자신을 공격하라 해도 거부감이 들 판국에, 지금 보주를 기절시켜 놓고 그 심장을 찌르겠다고?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여울이 흘깃 그녀를 돌아보았다. 물의 장벽 너머라 그들의 모습은 일렁이고 있었다.
“뺏길 바에는, 차라리 부술 것이다.”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그의 눈빛이 무섭도록 차가웠다. 차갑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내뱉는 말은 용암처럼 뜨거웠다.
가만 있던 온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자드락 선배도 거짓말을 하더니. 지금 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선배 하나도 기가 막혔는데 또 거짓말하는 이무기라고? 그게 말이 돼?”
“그럼, 교룡이 보주를 죽이겠다는 건 말이 되고?”
온의 반문에 끼어들었던 희나리가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물의 장벽이 사라졌다. 쏴아, 소리를 내며 무너진 물이 모래에 스며들었다. 손을 휘둘러 장벽을 없앤 헤살이 여울이 겨누고 있는 칼끝을 바라봤다.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되었나? 허세 부리지 마라. 내가 아는 너는 그런 짓을 하지 못해.”
헤살은 여울이 첫 탈피를 한 이후부터, 세 번째 탈피를 할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가 몹시 특이한 이무기였기 때문에, 그리고 탁월했기 때문에 더 눈여겨보았었다.
세자가 가장 뛰어난 이무기를 알려 달라 했을 때 여울과 느루를 꼽아 주었던 것도 헤살이었다.
마니가 교룡을 선택할 때 마니의 이무기가 될 생각이 없느냐고, 여울에게 눈짓으로 물었던 것도 그였다. 여울이라면 괜찮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여울은 용이 되는 것에도, 여의주에게도 집착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눈앞의 그는 더 이상 헤살이 아는 여울이 아니었다. 여울은 덤덤히 거짓말을 내뱉었다.
“거짓이 아니다.”
여울이 검을 움직였다. 새파란 칼끝이 그녀의 옷을 가르고 피부에 닿았다. 너무 쉬웠다. 손끝에 아주 약간의 힘을 싣는 것만으로도, 옷자락 위로 붉은 피가 퍼지기 시작했다.
“미, 미, 미쳤…….”
희나리가 정신없이 고개를 저었다. 헤살은 눈살을 찌푸렸다. 여울이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헤살은 그의 목덜미 어림에 돋아난 비늘을 보았다. 온이나 희나리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 헤살이 한숨을 흘렸다. 그러곤 내키지 않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무기를 버려라.]
헤살이 내뱉은 것은 용언(龍言)이었다. 힘을 가진 언어. 용의 신성에 기초하여 하위의 생물들을 복종시키고, 이적을 일으키는 말이다.
여울의 몸이 덜컥 흔들렸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바람에 칼이 움직여 그녀의 피부를 더 파고들었다. 크게 베인 옷깃이 점점이 피로 물든다.
그것을 내려다보는 여울의 눈동자에서 격랑이 일었다.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자신의 검으로, 그녀에게.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 외에는 이 자리에서 벗어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기를 버려라.]
헤살이 다시 내뱉었다.
여울은 이제 어깨까지 떨리고 있었다. 검을 놓으려는 몸과, 놓지 않으려는 그의 의지가 싸웠다.
그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이 터지고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지자 용언을 거부하는 것이 좀 더 수월해졌다.
통증. 통증이 필요했다.
“여울. 나 역시 이런 일은 내키지 않는다. 너라면 마니에게 정을 붙이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내가 마니 곁에 있지 말라 하지 않았더냐.”
헤살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여울이 맹약을 하자마자 마니 곁을 떠났다는 말에 안심했었다. 기대했던 대로 그가 마니에게 정을 붙이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을 놓았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11년 만에 돌아왔던 그에게 경고도 했었다. 마니 곁에 있지 말라고. 헤살은 진심으로, 자드락과 같은 사태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제가 직접 가르친 이무기였다.
그는 이마를 짚었다. 세 번째로 용언을 사용했다.
[무기를 버려라!]
여울은 제 의지에서 벗어나려는 몸뚱이를 움켜쥐고 생각했다.
검을 놓아서는 안 된다. 여기서 놓으면, 그는,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가 보게 될 것은, 그녀의 심장으로 용이 된…… 구역질이 난다.
다시는 그녀가 웃는 것을 보지 못하겠지.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겠지. 자드락이 울부짖었듯이, 그녀의 죽음조차 볼 수 없겠지.
그녀의 체온에 옮아 자신의 체온이 올라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영원히 차가운 몸으로 끔찍하게 긴 수명을, 그녀의 부재를, 버텨 나가라고?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약했다.
체온을 알아 버렸다. 연정을 알아 버렸다. 공포를 알아 버렸다.
그녀로 인해 알게 된 것들. 그래서 그는 약해졌다.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용언의 영향력이 전신을 짓눌렀다. 통증. 용언을 버텨 내기 위해 통증이 필요했다. 제 검에 상처 입는 서란의 가슴께를 내려다보며 여울은 필사적으로 고민했다.
다리는 안 된다. 이동해야 하니까. 팔 역시 안 된다. 한쪽 팔은 그녀를 안아야 하고, 다른 팔은 검을 쥐어야 한다.
배나, 옆구리는? 그런 곳에 부상을 입으면 행동에 제약이 생긴다. 등을 다쳤을 때 제대로 이동하지 못했듯이. 손이나 발도, 당연히 안 된다.
다쳐서는 안 되는 곳들을 제외하자 남은 부위는 몇 없었다. 그중에 없어져도 치명적이지 않으며, 충분히 고통스러운 곳은?
판단을 내리자 행동까지는 찰나였다.
“헉.”
신음을 내지른 건 여울이 아니라 온이었다. 희나리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헤살의 눈이 커졌다.
여울이 검으로 제 귀를 잘라 냈다. 잘린 귀가 피를 뿌리며 모래사장에 나뒹굴었다. 날카로운 통증이 온몸을 뒤덮자, 용언의 영향력이 흩어졌다.
“물러나라고 했다.”
한쪽 뺨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여울이 다시 말했다.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그 눈에는 광기가 돌았다.
몸의 통제를 되찾으며 그가 검을 바투 쥐었다. 서란의 가슴에 검을 겨누었다.
정확히 심장 위쪽이었다.
하얗게 빛나는 날에 기까지 은은하게 어렸다. 살짝 힘만 주어도 그 날은 가느다란 여인의 살과 뼈 따위는 종이처럼 갈라 버리고 심장에 닿을 것이다.
여의주를 부숴 본 경험은 누구에게도 없었다. 그것이 가능한지도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만약 정말 부서진다면?
교룡들은 새파랗게 질렸다. 헤살이 주홍색 눈동자로 여울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긴 정적이었다. 여울의 귓가에서 쏟아진 피가 그의 목덜미를 흠뻑 적시고, 옷깃을 물들이며 넘쳐흐를 때까지. 그는 꼿꼿하게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를 좀 식힐 필요가 있겠군.”
헤살은 느릿하게 중얼거리더니 간단하게 수인을 맺었다. 그를 중심으로 확 퍼져 나간 기가 순식간에 거대해지더니 결계를 만들었다. 수백의 주술사가 만든 것보다도 강한 결계였다. 그것이 몽해 근처를 완전히 뒤덮었다.
“나중에 보지.”
헤살이 몸을 공중에 띄웠다. 그가 부리는 바람에 휘감겨 온과 희나리가 함께 떠올랐다. 당황한 희나리가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용의 힘은 그녀가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순식간에 모래사장에서 벗어나 몽해 쪽으로 날아갔다.
하늘을 가로질러 몽해 외곽에 내려서자 희나리가 입을 열었다.
“왜…….”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희나리가 질문을 끝마치기도 전에 헤살이 툭 던지듯 말했다. 온이 의아하게 물었다.
“거짓말이라고요? 거짓을 말하고도 저리 멀쩡하단 말입니까?”
“참은 거겠지. 지금쯤 만신창이가 됐을 거다.”
“그게 가능해? 아니, 그럼 무시하고 잡았으면 되잖아.”
“가능하니 저러는 것 아니겠나. 그리고 거짓말이라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가 방금 그 상황에서 자극했다간 정말 저지를지도 모르니.”
여울이 방금 내뱉은 말들과 하는 행동들을 모두가 보았다. 헤살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희나리는 신음을 흘렸고, 온은 창백해진 얼굴로 되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결계를 쳐 두었으니 빠져나가진 못한다. 어차피 거짓의 반동으로 혼절하기 직전일 터. 제 스스로 몸뚱이에 상처도 냈지 않나. 우리가 보이지 않게 되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거다. 그때 가서 마니를 빼내면 된다.”
“……저기, 여울이 제정신이 아니란 걸 가정하고 하는 말인데.”
희나리가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그녀는 꿀꺽 침을 삼키더니 말을 이었다.
“이러다 걔가 마니의 여의주로 용이 되어 버리면 어떡하려고? 뺏기느니 부수겠다고 했는데, 그럴 수도 있잖아.”
“그 경우엔 내가 그의 여의주를 빼앗으면 된다.”
헤살이 망설임 없이 답했다. 희나리가 멍하니 그를 보았다.
“용이 되면 바로 승천하는 것 아니야? 주인이 없는 경우엔. 그런데 어떻게 뺏어?”
“용이 되는 과정은.”
헤살은 찰나 망설였다. 그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희명옹주의 마니식이 떠올라 버렸다. 검은 손에 마니의 핏물이 보이는 듯해서, 그는 눈을 감았다.
“……지독히 고통스럽고, 지극히 무방비하다. 시간도 꽤 걸리지. 새를 하나 지배하여 감시로 붙여 놓을 테니, 무슨 짓을 하든 내 눈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용이 되려 하면 변화하는 때를 노리면 그만이다.”
용이 되는 과정에 대해 아는 것은 직접 그 몸으로 경험한 헤살뿐이었다.
그런데, 고통이라니.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온이 물었다.
“고통요? 용이 되는 게 고통스럽단 말입니까?”
“……기다리는 동안은 쉬도록 하지. 관아로 가는 편이 좋겠군.”
헤살은 온의 물음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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