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룡의 주인-48화 (48/70)

48. 대안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2016.08.14.

작은 어촌에는 따로 성벽이나 관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한낮이라 다들 바다로 나가 일을 하는지 마을은 한적했다.

현음당의 집을 찾는 것은 무척 쉬웠다. 몽해에서 관아를 제외하고 가장 큰 기와집이 현음당 일가가 사는 곳이었다.

마차를 타고 현음당의 집에 드나드는 객이 자주 있는 터라 주민들은 시큰둥하니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골목에서 뛰놀던 아이들만이 간혹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마차를 흘긋거렸다.

여울은 대문 앞에 마차를 세우고 뛰어내렸다. 그러곤 문을 두드렸다.

“뉘시오?”

걸걸한 하인의 목소리가 물었다. 여울은 삿갓을 꾹 눌러쓴 채 나직하게 답했다.

“금산상단의 객이라 전하시오.”

“잠시 기다리슈.”

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이 열렸다. 문을 연 것은 하인이었고, 그들을 맞이한 것은 앳된 소년이었다. 단정한 차림의 소년이 꾸벅 인사를 했다.

“안민열이라 합니다. 조모께서 많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마차를 마당으로 들여놓은 뒤, 대문이 굳게 닫혔다.

대청마루 앞에 노부부와 중년의 부부, 어린아이까지 일가가 모두 나와 있었다. 노인이 읍을 했다.

“교룡을 뵙습니다. 안승호라 합니다.”

“화예교룡 여울이다. 신세를 지게 되겠군.”

“영광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안승호가 앞장서서 안내했다. 현음당이 뒤따랐다. 나머지 일가는 인사만 하고 물러났다.

여울은 마차를 이끌어 안쪽의 별채 마당까지 들어갔다. 내부에 또 둘러친 담으로 구별된 별채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정갈했다. 그 안까지 도착하고 나서야 그는 마차의 문을 열었다.

면사를 쓴 서란이 여울의 도움을 받아 마차에서 내렸다. 현음당과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현음당은 서란의 기억 속 모습보다 조금 더 주름이 늘었고, 약간 더 말랐다. 어린아이처럼 반짝이는 눈은 그대로였다. 순간 감정이 벅차올랐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옹주마마.”

“……스승님.”

간신히 그리 부르고서 말을 잇지 못했다.

열둘,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현음당을 경계했다. 그냥 여사라 해도 신뢰하지 않을 텐데, 신분에 대해 듣고서는 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시댁이 중전의 가문이고 친가도 공신이라니.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의 주위에는 세자의 손길이 닿은 자들이나 주기적으로 교체되는 궁녀들뿐이었다. 현음당 또한 그런 이들 중 하나라 여겼다.

현음당은 서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솔직하게 서란을 대했다. 그녀가 서란의 마음에 자리 잡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란은 정에 굶주려 있었다. 진심 어린 호감에 순식간에 무너질 정도로. 마음 둘 곳 드물던 그녀의 삶에서 현음당은 의지할 어른이 되어 주었다. 그녀에게는 두 번째 어머니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체념이 힘들었었다. 의연한 척했어도 버림받았다는 생각은 상처가 되었다. 유일하게 남은 여울에게 쉽게 속내를 보이려 하지 않았던 것도 그마저 잃으면 못 견딜 것 같아서였다.

이제는 스승이 자신을 버린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안다. 그 사실을 알려 주지 않은 자들에 대한 뒤늦은 분노보다는 그분을 오해했다는 자책이 먼저 떠올랐다.

사과를 해야 하는데. 뵙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이리 앞뒤 없이 왔는데도 맞아 주어서 감사하다고 해야 하는데. 죄송하다고도 해야 하는데. 정말 보고 싶었다고도.

할 말이 너무도 많았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방문을, 허락해 주셔서, 정말로…… 너무, 뵙고 싶어서…….”

서란의 평정이 흐트러졌다. 여전히 통증이 남아 있어 조그맣게 나오는 목소리가 울 것처럼 떨렸다.

현음당이 다가왔다. 그녀가 서란의 손을 맞잡았다. 예전처럼.

“압니다.”

현음당은 곱게 웃었다. 그녀는 서란의 손을 어루만지다 토닥였다.

“잘 알아요.”

부드러운 목소리.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울음이 나오려 해 입술을 깨물었다. 서란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

안승호는 그들의 재회를 배려해 물러났다. 여울은 방문 앞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별채의 방 안에 서란과 현음당만이 마주 앉았다.

쌓인 이야기가 많았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일상적인 안부부터 시작하여 여태껏 스스로 떠나신 거라고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죄까지 길게 이야기가 흘렀다.

그리고 대화는 궐을 나와 있었던 일들로 이어졌다. 그것은 결국 서란이 알게 된 진실에 가 닿았다.

서란은 모든 것을 말해야 할지 찰나 고민했다. 결론이 뻔한 고민이었다. 여울을 제외하면 그녀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현음당이었다.

그녀는 산에게 전해 들었던 것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결국 용이 되는 방법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까지도.

현음당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녀가 쓰게 웃었다.

“마마. 예락은 왕실의 권위가 강합니다. 용과 이무기들이 수호하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신들은 과한 이득을 누리며 왕족들에게까지 왈가왈부할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의 근본이 무엇이리라 생각하십니까?”

“중조 반정 때에 공을 세운 결과가 아니었습니까? 중조의 반정은 명분이 부족한 역천이었으니 공신에게 그만큼 많이 보상해 줄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확실히 시작은 그랬겠지요. 허나 중조 반정으로부터 2백여 년이 흘렀습니다. 권력이 흐려질 법도 한데 어찌 이리 계속 강성할까요?”

현음당의 말에서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서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더듬더듬 답했다.

“혹, 공신 가문들이 지워진 역사를 알고 있습니까?”

“정확하십니다.”

현음당은 무겁게 가라앉은 얼굴로 긍정했다. 그녀는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밝혀지면 왕실의 권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진실. 그것이 공신들이 지금껏 흔들리지 않고 대대로 강성할 수 있었던 힘입니다.”

“……그 내용을 알고 계셨습니까?”

“저는 가주가 아니니 거기까진 알지 못했습니다. 가주들에게만 전해졌으니까요. 허나 그런 것이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요.”

“그럼, 스승님께서도…….”

“예, 옹주마마께서 기록을 뒤져 단절을 알아냈듯이 저 또한 기록을 뒤졌고, 제 지아비 역시 그런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도 공신 가문 출신이니까요. 우리는 평생을 그것을 추적해 왔답니다. 창의 기록들도 손이 닿는 대로 찾아보았지요.”

서란은 멍하니 스승을 보았다. 열여섯, 해답을 찾아 헤매다 스승에게 질문을 던졌던 것을 기억한다.

현음당은 그때, 대답을 주지 않았다. 서란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을 그대로 입 밖에 내었다.

“이미 알고 계셨다면, 왜 제게는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까?”

현음당이 가만히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에게서 보이는 복잡한 감정에 서란은 깨달았다. 그것은 그녀가 여울에게 제 생각과 결정을 숨기려 했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서란은 흐리게 웃었다.

“제가 걱정되셨군요.”

“……많은 것을 찾아내었으나 가장 중요한 것. 그 시험의 내용, 그것만은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유리왕조의 왕족들 사이에서 구전으로만 전해 왔던 모양입니다. 글로 남겨진 적이 없으니 2백 년이 넘게 흐른 지금 와서 찾으려 해도 보이질 않더군요.”

절망을 재차 확인받는 느낌이었다. 서란은 목 위로 차오르는 것들을 삼켰다. 흐트러지는 마음을 재차 가다듬었다. 깊은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던 현음당이 다시 말을 꺼냈다.

“용에 대해 많이 찾아보았습니다. 창의 황족이 용의 혼혈이지요. 그 쪽으로 이것저것 뒤지다가 몇 가지 알아낸 것이 있습니다. 시험과 관계된 것은 아닙니다만, 마마께서 미처 알아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해답이 될 만한 정보가 있었습니다.”

“어떤 것을 이르십니까?”

“만국유사의 마지막에 있던 의문 말입니다.”

씁쓸하게 웃은 현음당이 잠시 말을 골랐다.

“용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비늘의 색으로 구별하는 정도밖에 알지 못합니다. 창 황실의 시조가 푸른 비늘이라 청룡, 태조의 용 마파람이 검은 비늘이라 흑룡이라 들었습니다.”

“다른 분류로 반룡(蟠龍)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승천하지 못하고 땅에 서려 있는 용을 일컫는 말입니다. 창의 황족들이 저들끼리 비하하거나 자조할 때 가끔 스스로를 반룡이라고 칭합니다.”

“비하한다고요?”

“그들은 용의 후손이지 않습니까. 용이되 하늘에 오를 자격이 되지 않는 용이라는 뜻으로 반룡이라 자조합니다.”

“하늘에 오를 자격이 되지 않는 용…… 이라면.”

“그 이무기 여인이 했다는 말. 천륜을 어기고 피를 묻힌 여의주로 진정 용이 될 수 있다고 믿느냐 하던 일갈. 저는 그것이 반룡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천륜을 어겼기에 승천할 자격을 잃은 용이란 말입니까?”

“아마도 그러하겠지요.”

서란은 아뜩하여 이마를 짚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여태껏 마니식으로 용이 된, 아니, 반룡이 된 자들은 도대체…….”

“반룡이 천계에 들려 하면 도로 추락하여 뱀이 된다고 하더군요. 창 황실 쪽에서 전해지는 전설입니다.”

“맙소사. 세자의 교룡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모르지 않았을까요. 승천을 시도하기 전까지는. 비교해 볼 대상도, 알려 줄 선배도 없으니 말입니다. 승천하고 나면 하계에 소식을 전할 방법이 없다고 알고 있으니까요.”

어찌 보면 적확한 천벌이었다. 형제끼리 살해하는 꼴을 자신이 용이 되기 위해 방관하거나 거든 자들이었으므로.

현음당이 말을 이었다.

“반대로 천룡(天龍)은 하늘을 나는 용이라는 뜻입니다. 하늘에 오를 자격이 되는 용을 말하는 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창의 고문서들에서 가끔 ‘예락의 천룡’이라는 표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마 중조 이전의 왕들은 모두 천룡을 거느렸을 터고, 중조부터는 반룡을 거느렸겠지요.”

“반룡과 천룡이라니. 그런 단어가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그들이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존재란 뜻 아닌가요?”

“맞습니다. 승천 자격의 유무를 제외해도, 눈에 띄게 구별할 수 있는 차이가 있었으니 이런 표현이 남아 있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반룡은 용의 신성함이 없는, 그저 좀 강한 생물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이게 밝혀진다면 예락의 왕실은 더 이상 권위를 유지할 수 없겠군요. 그래서 지금까지 어떤 왕도 공신들을 건드리지 못했군요. 어쩐지 견제할 방법이 그리 간단하고 많음에도 아무도 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망연히 말을 늘어놓던 서란이 흠칫했다. 현음당은 그녀가 왜 그러는지 알아채고 설핏 웃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나 제 지아비나 가문의 혜택을 많이 보았지요. 허나 옳지 않은 걸 모른 척하느니 그 혜택을 모조리 토해 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르다 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가라앉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세울 대안만 있었다면, 말입니다.”

“……무너뜨리기만 하고 끝나면, 창 제국만 좋아할 일이 될 테니까요.”

“신성한 용, 그 용이 복종하는 왕, 용을 거느린 왕이 다스리는 나라. 마마께서도 아시다시피 이것들이 예락이 유지되는 이유지요. 황족 대부분이 용의 힘을 가진 창 황실을 상대로 말입니다. 그래서 진실을 알아내고 나서도 공개할 수 없었습니다.”

“저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서란이 나직하게 답했다. 현음당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주름 진 눈매 속에서 시선이 선명했다.

“마마께서 그 대안이 되시지 않을까, 이 늙은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말이 서란의 안에 침잠해 있는 늪을 뒤흔들었다. 검은 물이 출렁였다. 그녀는 태연히 미소하며 절망을 입에 담았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현음당은 서란이 무슨 심정인지 모르지 않았다. 그녀가 나직하게 말했다.

“옹주마마께서는 제가 가르친 이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탁월하셨습니다. 자질은 물론이고, 끈기나 인내, 성정까지도.”

“과찬이십니다.”

“하나 지나치게 포기가 빠르십니다.”

“…….”

“그것이 마마의 단점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리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셨지요. 그러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드셨을 테고요.”

씁쓸한 말이었다. 현음당은 막막한 서란의 낯을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문득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화예교룡과의 사이는 어떠십니까?”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에 서란의 얼굴이 일순 달아올랐다. 그녀가 입을 다물자 현음당이 그녀 쪽으로 몸을 바짝 기울였다.

“찰나 보았을 뿐이지만, 워낙 두 분 눈빛이 애틋하셔서. 연인이 되신 것 같더군요.”

“……티가 납니까?”

서란이 조그맣게 되물었다. 현음당이 은근한 얼굴로 속삭였다.

“합방은 하셨습니까?”

“스승님!”

정수리까지 화끈해지는 기분이었다. 서란이 새된 목소리를 내다 신음을 흘렸다. 아직 목소리를 높이는 건 무리였다.

툇마루에 있던 여울이 높아진 목소리에 놀라 달려와 창호지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보주? 괜찮으십니까?”

차마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오진 못했으나 안절부절못하는 꼴이 당장이라도 쳐들어올 기세였다. 현음당이 작게 웃었다. 서란은 그에게 보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다! 가 있어라.”

“……무리하지 마십시오.”

사정하듯 속삭인 그의 그림자가 멀어졌다.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원망스럽게 스승을 바라보았다. 현음당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서란은 여울을 본 순간 떠올랐던 것을 물었다.

“스승님. 마니식을 치른 용이 반룡이라면, 다른 왕족들의 용은 어찌 된 것일까요?”

“맹약대로 보주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충성한 교룡들 말이십니까?”

“예. 그들은 천륜을 어기지 않았잖습니까.”

“그렇지요. 그들은 반룡이 아니고, 약속을 지켜 정당한 대가를 얻은 것이니…… 아마 무사히 승천하지 않았을까요. 천룡과 무엇이 다른지는 알 수 없지만요. 천룡의 조건도 모르니 말입니다.”

“천룡이 되진 못해도, 그들이 얻은 것은 자신의 보주이니 그러하겠지요?”

밝아진 그녀의 말에 현음당이 불쑥 낯빛을 굳혔다.

“지금, 마마께선 포기할 각오를 하고 계시지요?”

정확했다. 서란은 부정할 수 없었다. 웃음기를 지운 현음당이 엄한 목소리를 냈다.

“마마께서 계속 도주하실 생각이었다면 제게 방문을 청하지도 않았겠지요. 잡히기 전에 죽어 그를 용으로 만드실 작정이시지요? 당장 내일이라도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 걸 물으시는 것 아닙니까.”

현음당은 서란을 가르친 사람이었다. 한눈에 꿰뚫어 보았다. 그녀가 답 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현음당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버텨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네?”

“태조와 마파람은 반려였지요. 비록 용의 혼혈이 아니라 해도, 유리 왕족이 그 둘의 후손인 건 확실하니까요.”

용의 혼혈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태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은 용과 인간이 교합해도 태어나는 건 인간이다. 용의 혼혈을 낳는 비법은 창 황실을 유지하는 근간이기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

“마마께서도 그들처럼 교룡과 연인이 되셨잖습니까. 시험의 정확한 내용은 모르나, 신뢰라는 표현을 보면 교룡과 보주 간의 관계가 핵심이리라 짐작됩니다. 비슷한 조건이니 어쩌면, 잃어버린 그 방법을 다시 알아내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언제 알아낼 수 있을지, 평생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은…….”

“마마께서 우리의 대안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무거운 말이었다. 서란은 커다랗게 뜬 눈으로 그녀를 보다가 나직하게 물었다.

“‘우리’라니요?”

“저와 제 지아비가 모은 사람들입니다.”

“반역을 꿈꾸셨습니까?”

“반정이겠지요.”

“허황된 꿈입니다.”

“예, 지금은 노파의 망상에 불과하지요. ‘우리’도 그저 동문수학한 선비들에 불과하고 말입니다. 하나 만약, 마마께서 해내신다면.”

현음당의 눈빛은 또렷했다. 그녀가 선언처럼 말했다.

“그것은 현실이 될 겁니다.”

서란은 현음당의 눈을 피했다. 애꿎은 치맛자락을 내려다보았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온갖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그런 그녀에게 현음당이 약간 달라진 어조로 말을 건넸다.

“어쨌든, 이런 거창한 건 집어치우더라도, 마마.”

단언하던 현음당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녀의 목소리는 서글프게 들렸다.

“너무 쉽게 포기하진 마시지요. 마마를 아끼는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서란을 아끼는 이들. 그런 사람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했다. 없도록 만들었다. 아무도 그녀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길 바랐다.

한편으로는 그런 이들이 있길 원했다. 그녀를 아껴 줄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그녀가 마니식을 맞이할 때, 외롭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이중적인 마음이 그녀 안에 공존했었다.

그리고 짧은 사이에 그런 사람들이 생겨났다. 기적을 보고 싶다던 이무기와, 돌아오면 대국을 하자던 오라버니부터, 잃은 줄 알았던 스승과, 포기할 수 없다 말하는 연인까지. 그녀가 사라지면 슬퍼할 것이 분명한 사람들이.

뭉근한 것이 몸을 덥히며 피어올랐다. 다듬어 놓았던 마음이 흔들렸다.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현음당이 다정하게 물어 왔다.

“오늘은 어찌 하실 예정이었습니까?”

“스승님을 뵙고 나면 바닷가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이 별채를 내어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머무시지요.”

“허나.”

“최소한 오늘밤만이라도 그리 하십시오.”

현음당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녀는 숙제를 내주듯 덧붙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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