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룡의 주인-45화 (45/70)

45. 결말을 보지 않을 거야2016.08.04.

청화는 걱정스러운 낯으로 자드락을 지켜보았다. 그는 호리병에 담겨 있는 서란의 피를 마시다 말고 그녀에게 시선을 주었다.

“왜?”

“거짓말, 잘하신다면서요.”

“잘하잖아?”

“그게 잘하는 거예요?”

청화가 미간을 모았다. 자드락은 탑승인 명부에 이름을 여울이라 쓰자마자 그녀를 이끌고 배의 구석으로 가더니 난간을 붙들고 한바탕 피를 토해 냈다.

호리병 뚜껑을 닫은 자드락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예 못하는 놈들보다야.”

“자드락 님은…….”

청화는 말끝을 흐렸다.

산에게 귀띔 받긴 했지만 함께 이동하니 확신이 섰다. 아무리 봐도 뒷일을 생각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정말 돌아갈 생각이 있긴 하느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그렇게 보지 마.”

“네?”

“그렇게 안 봐도 내가 불쌍한 건 잘 알아.”

자드락이 히죽 웃었다. 청화는 화들짝 놀라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실례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해요.”

“사과하란 뜻은 아니었는데. 미안하면 비밀로 해 줘.”

“뭘요?”

“뭐긴, 이런 거.”

자드락이 조금 전까지 붙들고 있던 난간 너머를 가리켰다.

피를 토한 걸 말하는 거겠지.

청화가 난감한 얼굴을 하자 그가 팔짱을 꼈다.

“대놓고 거짓말한 것도 아니고, 원래는 명부에 자기 이름 쓰란 말에 남 이름 썼다고 이렇게까지 반동이 오진 않아.”

“……유배지 밖에 계셔서 그런 건가요?”

“아무래도 그렇지? 계속 누적되고 있는 셈이니까.”

“……배에서 내리고 나면 바로 돌아가시는 게 좋겠어요.”

자드락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호리병을 챙겨 넣고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일단 연기 좀 하러 가자고.”

“바로요? 괜찮으시겠어요?”

“빨리 끝내고 쉬는 게 낫잖아?”

자드락이 벗어 뒀던 삿갓을 눌러썼다. 그가 앞서라는 듯 손짓했다. 청화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승객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사람들이 근처에 있을 때를 노려 들으란 듯이 몇 번 여울이라 불렀다. 자드락은 능숙하게 그녀를 모셨다. 그녀를 이끄는 손놀림이나 시중을 드는 태도가 무척이나 정중했다.

청화는 극진하게 모셔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녀는 면사 아래에서 질린 얼굴로 속삭였다.

“저, 적당히 해 주세요. 왜 이렇게 능숙하세요? 안 어울려요…….”

“잊었나 본데, 나 교룡 출신이거든? 내 보주가 누군지 못 들었어?”

전대 마니, 희명옹주.

청화의 입이 단번에 다물렸다. 괜히 말을 꺼냈다 싶었다. 그녀가 기가 죽자 자드락이 픽 웃었다.

“됐어, 이정도면 충분한 것 같으니 슬슬 가지.”

“네?”

“꽉 잡아라.”

자드락이 청화를 훌쩍 안아 올렸다. 주위의 시선이 몰린 것을 확인한 그는 곧바로 난간을 뛰어넘었다.

“저, 저……!”

“이봐요!”

기겁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자드락은 가볍게 물을 디뎠다. 뒤에서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와 놀라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성큼성큼 강물을 밟고 걷기 시작했다.

“히익.”

청화는 새파랗게 질려 그의 어깨에 매달렸다. 발아래로 지나가는 물살을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뒷골목에서 구르다 구해져 산의 비서로 일하면서 보통 여인들보다 훨씬 거친 꼴을 많이 봤지만, 이런 비상식적인 건 익숙하지 않았다. 그녀는 겁에 질려 눈을 감아 버렸다.

강 위를 가로질러 걷던 자드락은 배가 완전히 멀어지자 강변에 올라섰다. 그가 강가의 풀밭에 청화를 내려놓았다. 청화는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좀 쉬었다 가자.”

자드락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는 호리병을 꺼내 다시 피를 들이켰다. 겨우 진정한 청화가 그를 돌아보았다.

“그거 무슨 맛이에요?”

“이거? 그냥 피 맛이지. 달콤한 냄새가 나긴 하지만.”

“네? 피에서 달콤한 냄새가 나요?”

“너흰 못 맡아. 이무기니까 여의주 향을 맡는 거야.”

“아…….”

“난 눈 좀 붙일 테니까 한 시진쯤 있다 깨워. 그동안 밥이라도 먹든가.”

그렇게 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코 고는 소리를 냈다. 하릴없이 앉아 있던 청화는 미리 싸 왔던 도시락을 혼자 먹었다.

그들은 중간에 야숙을 하고 하루를 꼬박 이동했다.

내내 좌룡강의 강변을 따라 걸었다.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청화가 걷기에도 힘들지 않을 정도였다. 자드락은 느긋했다.

좌룡강은 유유히 흘렀고 주위는 계속 한적한 풀밭이었다. 날씨는 소풍을 가야 할 것처럼 좋았다.

앞서 걷던 그가 갑자기 멈추더니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는 주머니의 입구를 풀어 손 위에 올려놓았다.

“그게 뭐예요?”

“미끼.”

청화가 고개를 빼며 묻자 자드락이 건성으로 답했다. 그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너는 이제 돌아가.”

“벌써요?”

“배의 승객들이 죄다 봤을 테니, 이젠 필요 없거든.”

자드락의 말에 청화는 면사를 쓴 채 갸웃거렸다.

“자드락 님은요? 소서촌으로 돌아가셔야죠.”

“축지를 쓸 거야.”

“가시는 것 보고 갈게요.”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청화는 방긋 웃었다. 자드락이 투덜거렸다.

“네 상사가 시켰냐?”

“아니요, 안 시켜도 이 정도는 알아서 해야죠. 대행수의 비서로 지낸 게 몇 년인데요.”

“새파랗게 어린 게.”

“저, 스무 살이에요!”

“뭐? 스물?”

자드락이 혀를 찼다. 기껏 해야 열여섯쯤 된 줄 알았다. 청화가 보란 듯이 턱을 치켜들었다. 그것을 본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야, 스물도 어려.”

“성인인데!”

“성인은 무슨. 애는 집에 가라.”

“먼저 가시라니까요?”

“너 보내고 나서.”

청화가 면사를 벗었다. 까만 눈이 자드락을 올려다보았다.

“자드락 님 같은 눈빛, 본 적 있어요.”

“뭔 소리야.”

“여울 님이 예전에 그런 눈이었어요. 되게 생기 없는 눈.”

그녀가 입술을 비죽였다.

자드락은 새삼스러운 얼굴로 청화를 훑었다. 처음 자드락을 봤을 때는 흠칫거리더니 이젠 거리낌 없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끝내 그가 먼저 가는 것을 봐야겠다는 태도였다.

그는 한 손으로 품을 뒤적이며 그녀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됐으니 집에 가라. 그놈이랑, 너 고이 보내 준다고 약속했으니까.”

“가시는 거 보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드락이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손에 들려 있던 부적을 청화의 이마에 붙이고 물러났다. 장거리 축지용 부적이었다. 매개체는 호명 객잔에 미리 만들어 놓았다.

“저기, 이건……!”

공간이 흔들렸다. 무어라 말하려던 청화의 모습이 지워지듯 사라졌다. 자드락은 그녀가 무사히 축지한 것을 확인하고 홀가분하게 돌아섰다.

그는 강가로 다가가 걸터앉았다.

흑룡강의 위압적인 넓이에 비하면 좁은 편이라지만 좌룡강도 충분히 넓은 강이었다. 푸른 물은 흐르고 있음에도 깊고 고요했다. 그는 물을 들여다보다 누렇게 말라붙은 풀밭에 벌렁 드러누웠다.

근처에는 민가 하나 없었다. 조용한 풍경이었다.

자드락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들여다보았다. 열려 있는 그 주머니는 여의주의 향을 봉하는 진이 그려진 향낭이었다. 안에 서란의 머리카락이 담겨 있었다.

여의주 본인이 아니라 머리카락 정도로는 향이 강하지도, 오래 가지도 않지만, 내내 봉해 놨던 덕에 여는 순간 제법 뚜렷하게 향을 맡을 수 있었다.

“오래 걸리려나.”

중얼거리던 자드락은 그 안에 코를 들이밀었다. 옅은 향이 배어 나왔다. 그리운 여의주의 향. 그의 보주를 떠올리게 만드는 냄새. 그는 그 향을 삼키며 설핏 웃었다.

해가 저물고 밤이 깊어 갔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 왔다.

건평 21년 10월 16일.

자드락은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밤을 샜다. 종종 바닥에 무언가를 그렸다.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공중에 맴돌았다.

해는 중천에 떠올랐다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그는 쪼그리고 앉아 불을 피웠다. 서란의 머리카락을 향낭 째로 불속에 던져 넣었다. 고운 비단이 불에 그슬리며 오그라들었다.

머리카락이 타는 냄새에 여의주의 향이 섞여 공기 중에 흩어졌다. 까맣게 전부 타 버릴 때까지 그는 물끄러미 불 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벌건 불이 검은 눈에 비쳐 일렁거렸다.

재만 남자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강물이 저절로 떠올라 날아왔다. 그는 불 위에 물을 끼얹어 껐다.

호리병을 꺼내 남은 피를 모조리 마셨다. 입맛을 다시다가 빈 병은 강물에 던져 버렸다. 호리병이 물살에 실려 사라졌다.

이제 그는 완전히 빈손이 되었다.

해가 저물어 간다. 주저앉아 있던 자드락이 한쪽을 응시했다. 먼 곳에서 감각에 잡히는 기척이 있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왔네.”

여의주의 향을 추적해 온 교룡들이었다. 그들의 속도는 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정도의 거리가 되었다.

가장 앞서 오던 느루가 자드락을 보고 멈췄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무기인 것은 단번에 알아보았으나 찾던 여울이 아니라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누구냐, 넌?”

“후배들, 안녕?”

자드락은 쾌활하게 손을 흔들었다. 연달아 도착한 온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희나리는 처음 보는 이무기의 모습에 당황했다. 야로의 표정만이 죽어 있었다.

자드락은 어두운 소년을 흘깃 보고는 중얼거렸다.

“사고 친 꼬맹이도 있네.”

“자드락 선배?”

그를 알아본 온이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 자드락은 박수를 쳤다.

“정답. 다들 반가워.”

“어떻게 여기에? 유배 중이잖습니까?”

“……누구라고? 자드락?”

“자드락 선배?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잖아!”

혼란에 빠진 이들이 두서없이 말을 흘렸다. 자드락이 그들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온, 야로, 여자 애는 희나리겠고, 남은 하나는 느루? 네가 세자의 교룡이라던 느루 맞지? 야로랑 온만 구면이네.”

교룡들 중에서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한 건 온이었다.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여울이라 이름을 댄 게 설마 선배입니까?”

“그게 가능해? 거짓말을 했다고? 이무기가?”

자드락이 답하기도 전에 희나리가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온이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유배지 밖에 있다는 것부터 이미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태잖아. 선배, 그럼 그때 마니와 마니의 교룡을 본 적이 없다는 것도 거짓말이었습니까?”

“응, 내 특기거든. 거짓말.”

자드락이 화사하게 웃었다. 희나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얼굴에 불신과 경악이 가득했다. 이무기의 입장에서 거짓말을 하는 이무기란 제 몸에 자해를 하고 있는 꼴로 보였다.

“미쳤어. 소문대로 정말 미쳤나 봐. 언제부터 여울을 도운 거야? 결계 때도 당신 수작이었어?”

“자드락이라고? 희명교룡? 소서촌에 유배된 그 자드락 선배?”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느루가 기가 찬 듯 중얼거렸다. 온이 멍하니 끄덕였다. 그들로서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인상을 쓴 채 하늘을 보던 느루는 어깨를 으쓱이고 돌아섰다.

“됐어, 돌아가지. 여울이랑 마니가 어디로 갔는지 물어봤자 대답해주지도 않을 테고. 헛걸음을 했군.”

“……그냥 간다고?”

희나리가 의외라는 듯 그를 돌아보았다. 느루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이런 것까지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하나? 저 선배는 어차피 소서촌 밖에서 오래 버티지도 못할 텐데 쓸데없이 왜 싸워. 우리 목적은 마니를 잡는 거다. 가자.”

“난, 가는 거 허락한 적 없는데?”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던 자드락이 끼어들었다. 교룡들의 시선이 동시에 쏠렸다. 그는 악동 같은 얼굴로 발을 굴렀다. 그의 발끝을 타고 기가 흘러 대지 위를 얇게 휩쓸었다.

그 기운이 방아쇠가 되어 미리 깔아 두었던 진들을 발동시켰다. 보이지 않는 벽이 솟구쳤다. 결계가 사방을 둘러쳤다. 교룡들의 얼굴이 굳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자드락 선배?”

“내가 말이야. 생각을 해 봤거든.”

자드락이 팔짱을 풀고 양 팔을 늘어뜨렸다. 넓은 소맷자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저녁에 가까워지고 있는 하늘에 새카만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더라고.”

“무슨 헛소리야?”

“너네한테 하는 말 아니니까 닥치고 있어.”

이를 드러내는 자드락의 눈빛이 섬뜩했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온과 희나리가 각자 무기를 쥐었다.

손바닥이 완전히 뚫렸던 야로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부상이 대부분 아물어 붕대를 푼 후였다. 느루는 주술을 특기로 삼은 교룡이라 손을 들어 수인을 맺을 준비를 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는 자드락의 얼굴에 볼우물이 파일 정도로 깊은 미소가 떠올랐다.

“걔네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모르겠어. 나처럼 재만 남게 될지, 아니면, 아니면 정말로, 기적을 일으키게 될지. 나로선 짐작할 수가 없어. 사실 그 빌어먹을 역천 이야기를 알기 전에는, 그냥, 기적이라도 봤으면 했는데.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어. 뭐가 뭔지 모르겠어.”

“우리는 선배와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결계를 푸십시오.”

중얼거리는 그를 향해 온이 침착하게 말했다. 자드락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느릿하게 팔을 들어올렸다. 하늘이 완연히 어두워졌다. 그는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계속 생각해 봐도 확신할 수 있는 건 이거뿐이더라. 어떤 결말이 나든, 나는 그걸 버티지 못할 거야. 부러워서든, 절망해서든. 마니가 죽는 걸 또 볼 자신이 없어. 그렇다고 내가 해내지 못한 것을 해내는 걸 보고 미치지 않을 자신도 없어. 어느 쪽이든 알고 싶지 않아. 그래, 이젠 못 버텨.”

“도대체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희나리가 짜증스레 투덜거렸다.

“결말을 보지 않을 거야. 그 전에 내 손으로 끝을 내려고. 이왕 끝낼 거면, 화려하게 말이지.”

자드락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그 손끝에서 미세한 전류가 피어났다. 희미하게 바직거리던 전류는 삽시간에 몸을 불렸다. 그것은 공중에 빛의 선을 수놓으며 번개가 되어 교룡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몰려든 구름이 억수같이 비를 퍼붓기 시작했다. 자드락은 하얗게 웃었다.

“그러니까 좀 도와라, 후배들아.”

*

임천에서 출발한 지도 벌써 나흘째였다. 평온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마을을 전부 피해 가긴 해도 마차가 있어 야숙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쫓긴다기보다는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이어졌다.

서란은 계속 마부석에 앉아 있다가 찬바람에 기침을 하는 바람에 여울에게 쫓겨났다.

그는 한마디 지적도 없이 그녀를 정중하게 안아서는 마차 안에 앉히고 모포를 둘러 주었다. 그러고 나서 문을 닫고 마부석으로 가 버렸다.

그녀는 마차의 창을 열고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불길할 정도로 붉은 해가 산 너머로 잠겨 들고 있었다.

그녀가 창문을 열고 있는 걸 알아챈 여울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주위는 인적 없는 산길이고 면사도 쓰고 있으니 눈에 띌 염려는 없었지만, 그녀가 감기라도 걸릴까 봐 걱정이었다.

그래도 밖을 보고자 하는 그녀의 심경을 잘 알아 말릴 수도 없었다. 대신 그녀의 기척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한 번이라도 더 기침을 하면 창을 닫을 작정이었다.

그리 집중하고 있었던 덕분에 여울은 그녀의 작은 부름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여울. 잠시만.”

마차를 세운 그가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서란은 당황한 얼굴로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게 갑자기 뜨거워져서. 왜 이런지 아느냐?”

그녀가 내민 것은 자드락이 주었던, 축지를 새긴 비늘이었다. 여울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델 정도는 아니었으나 열이 오르는 것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낯선 현상이었다.

여울은 미간을 찌푸리고 비늘을 주의 깊게 살폈다. 온도가 올라갔을 뿐, 외관상에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그리 생각하는 순간 변화가 일어났다.

“응?”

서란이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여울의 손바닥 위에 있던 비늘이 짧은 순간 빛을 내었다. 사그라들기 직전의 불꽃처럼.

그 빛이 사라지고 나자 비늘이 변했다. 반들거리던 광택을 잃어버리고 돌조각처럼 뻣뻣해졌다. 새겨진 진은 그대로였으나 마치 죽은 생물의 비늘 같이 보였다. 가슴께가 서늘해졌다.

“이건…….”

“저도 처음 보는 현상입니다.”

여울이 당황하여 답했다. 그는 비늘을 이리저리 뒤집어 가며 살펴보았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울이 기를 불어 넣어 비늘을 훑었다. 새겨져 있는 주술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았다. 그는 망설이다 그녀에게 비늘을 돌려주었다.

“걸린 주술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가지고 계십시오.”

“……어쩐지 불길하구나.”

새빨간 노을이 검은 비늘을 붉게 물들였다. 그녀는 떠나기 직전 보았던 자드락을 떠올렸다. 왜 갑자기 머리를 잘랐을까.

그때엔 피곤하고 급하여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되짚어 보았다. 산이 했던 말과 끼워 맞춰 보았다. 튀어나온 결론에 그녀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보주?”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설마.

서란은 떠오른 추측을 부정했다. 그녀는 자신을 걱정하는 여울을 떠밀어 보내고 다시 비늘을 내려다보았다.

생기를 잃은 비늘은 언제 뜨거웠느냐는 듯 평소보다 더 차가워졌다. 그녀는 불안을 삼키며 그것을 도로 챙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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