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각자의 길2016.07.24.
“괜찮을 거라며? 왜 정신을 못 차리는데?”
희나리가 윽박질렀다. 겉보기에는 손녀뻘로 보이는 소녀에게 멱살을 잡힌 의원은 쩔쩔매며 아무 말도 못했다. 보다 못한 온이 다가와서 그녀를 떼어 내고는 의원을 내보냈다.
희나리는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쓸어 넘겼다. 그녀의 시선이 침상에 누워 있는 소년에게 가 닿았다. 야로는 나흘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니까 기다리면 일어날 거다.”
온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랫입술을 앙다물고 있던 희나리가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다리를 다친 그녀에 비해 운신은 자유로웠던 온이 일어나 막사 입구로 다가갔다. 그가 천을 젖히기 전에 불쑥 들어온 자가 있었다.
“오랜만이네?”
검은 곱슬머리의 청년이 싱긋 웃었다. 희나리와 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희나리가 그 이름을 씹어 뱉듯 중얼거렸다.
“……느루.”
“빨리도 왔군.”
“너희 일처리가 아주 가관이라서 말이야.”
느루는 희나리의 침상 곁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 걸터앉았다. 그의 눈이 희나리의 다리에 감긴 붕대와, 온의 어깨, 관자놀이, 손을 감은 붕대를 거쳐 누워 있는 야로에게 가 닿았다. 그가 턱짓했다.
“쟤는 왜 자고 있어?”
“듣지 못했나?”
“뭐, 살 쏘아 보낸 반동? 그게 언젠데 아직도 골골거려?”
느루가 일어나 야로의 침상으로 다가갔다. 희나리가 움찔거렸다. 온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느루가 소년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리더니 뺨을 툭툭 두드렸다.
“겉보기엔 멀쩡한데? 야. 일어나 봐.”
“뭐 하는 짓이지?”
온이 멀쩡한 손으로 느루를 붙잡았다. 느루가 흘깃 그를 돌아보았다.
“깨우려는 거잖아. 내가 애를 때린 것도 아니고 무슨.”
“내려놔라.”
“아주 여유와 인정이 넘치네, 너희.”
느루는 비뚜름하게 입술을 올렸다. 그러곤 야로를 내려놓고 되었느냐는 듯 손바닥을 펴 보였다. 희나리가 까득, 이를 갈았다. 느루가 다시 의자를 당겨 앉더니 팔짱을 꼈다.
“내 보주께서 심기가 몹시 안 좋으시다.”
느루의 시선이 다시 그들의 부상을 훑었다. 그가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
“대결계까지 쳐 줬는데, 뭐? 셋이서 여울 하나를 못 잡아? 거기다 저 녀석은 제 맘대로 저주 쓰다 반동으로 쓰러졌다고? 무능하기 짝이 없군. 덕분에 나까지 오게 됐잖아.”
“여울이 강한 거야.”
“핑계 대기는.”
울컥한 희나리를 느루가 조롱했다. 온이 가만히 희나리의 어깨를 짚었다. 그녀는 간신히 분노를 참았다. 그사이 느루가 품에서 명령서를 꺼냈다.
“시간을 한 달 주셨다.”
희나리와 온의 시선이 그의 손에 들린 종이에 쏠렸다. 느루는 그것을 희나리가 앉아 있는 침상에 내려놓았다.
“한 달 안에 마니를 잡지 못하면, 다음 마니를 뽑는다.”
교룡들 사이에 공포가 밀물처럼 차올랐다. 느루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게 잘 좀 하지 그랬어.”
“너……!”
“어이, 화내지 마. 친히 도와주러 왔잖아?”
느루가 느물거리면서 대꾸했다. 새파랗게 노기를 담은 눈으로 느루를 노려보는 희나리의 앞을 온이 가리며 화제를 돌렸다.
“……야로는 어떻게 할 건가?”
느루는 태연하게 눈을 깜박였다.
“야로가, 뭐?”
“야로는 돌려보내는 거겠지?”
“왜?”
“왜라니, 저 애는…….”
천연덕스러운 물음에 반박하려던 온이 느루의 눈빛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희나리가 입술을 깨물었다. 느루는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너희 입장에서도 손 하나라도 더 있는 게 낫잖아? 그럼 쉬고 있으라고. 병사들 지휘는 내가 할 테니까.”
느루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막사를 나갔다.
희나리는 발치에 놓인 세자의 명령서를 움켜쥐어 펼쳤다. 느루가 말한 대로였다. 그녀는 그것을 온에게 넘겨주었다. 온이 탄식을 흘렸다.
밖으로 나온 느루는 추적술사로부터 그간의 상황을 다시 자세히 들었다. 수색은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남은 곳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것저것 지시하는 느루를 백발의 주술사가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눈에 띄지 않게 물러난 그는 제 원래 소속인 금산상단의 주인에게 다음 보고를 보낼 준비를 했다.
*
“부인, 뭘 보고 있소?”
안승호는 별당으로 들어서며 아내를 불렀다. 현음당은 서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창을 열어 둔 채 서찰을 보고 있었다.
정갈한 서체는 그녀가 아는 사람의 것이었다. 그 글은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그러면서도 간절하게 만남을 청하고 있었다.
너무도 뵙고 싶어 어리광을 부리고 있습니다. 허나 스승님께 누를 끼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무리한 부탁임을 압니다.
답서가 오지 않으면 어려우신 것으로 알고 피해 가겠습니다.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평안하십시오.
바다의 비릿한 내음이 창을 타고 들어왔다. 그녀가 주름 진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반가운 손님이 올 모양입니다.”
“손님이라니?”
“그리운 제자가 방문해도 되겠느냐고 청하는군요.”
“당신이 그리 말할 사람이…….”
안승호는 허허거리다가 흠칫 놀랐다. 나라에서 내린 수배령은 이 조그만 어촌에도 붙어 있었다. 현음당은 서찰을 고이 접으며 물었다.
“방문을 수락하고 싶은데, 괜찮습니까?”
“잊을 만하면 보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분이 아니오? 어차피 우린 괜찮소.”
안승호가 빙긋 웃었다.
현 중전은 동림 안씨다. 가문에서 내놓은 자식으로 취급하긴 해도 안승호는 중전의 5촌이었다. 현음당 역시 중조 대부터 이어 온 공신 가문인 문산 최씨 가주의 사촌 누이가 된다.
그들은 관직이나 권력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강등 처벌에 일가 전체가 사직서를 내고 예경을 뜬 것이다. 그에 더 명성이 높아져 따르는 선비들이 학파를 이루고 있었다. 쉽게 건드리기 어려운 배경이었다.
게다가 수배령은 마니가 납치되었다고 하고 있지, 마니가 탈출했다고 한 적이 없었다. 혹여나 발각되더라도 납치되었던 마니를 구해 내려 했었다 핑계를 대면 그만이었다.
왕실은 마니의 탈주에 관한 일을 키우지 않길 원한다. 은폐할 수 있다면 최대한 은폐한다. 들키더라도 공신 가문인 그들을 건드려 괜히 마찰을 빚느니 마니만 끌고 가는 데에서 그칠 것이다.
그렇게까지 위험한 일은 아니다.
안승호와 현음당은 같은 판단을 내렸다. 사실 위험하다 해도 그들은 이런 것을 꺼릴 성정이 아니었다.
“입단속을 하고,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구려.”
“명이에게도 말해 놓아야겠네요.”
현음당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일으켰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부부는 자세히 말하지 않고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았다.
*
건평 21년 10월 12일.
“아, 아.”
나오는 목소리는 무척 작았고 쉬어 있었다. 약간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서란의 목을 살피던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조롭게 낫고 있습니다. 원래라면 이리 빠르게 아물 수 없을 텐데, 그 주술사님 솜씨가 좋으시군요. 이제 말을 하셔도 됩니다만, 많이 하진 마십시오.”
의원이 약재와 고약을 건네주고 목의 상처에서 풀어낸 실밥을 가지고 나갔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울이 약들을 챙겼다. 의원과 교대하듯 들어온 것은 산이었다.
“마차, 준비됐어. 어때, 몸은 괜찮아?”
“네.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됐고, 가는 길에 잘 생각해 봐. 저 진실들, 어떻게 쓸지.”
산의 말에 서란은 웃기만 했다. 그녀는 산을 따라 방을 나섰다. 여울이 짐을 챙겨들고 뒤를 따랐다.
거실 창가에 자드락이 방만하게 기대앉아 있었다. 서란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우뚝 멈췄다. 귀신처럼 산발이었던 머리가 단정히 잘려 있었다.
그녀의 기척에 돌아본 자드락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이거 가져가.”
여전히 형편없는 조준이었다. 여울이 그녀를 지나쳐 제 얼굴로 날아드는 것을 잡아챘다. 자드락의 비늘이었다. 그는 물끄러미 그것을 보다가 서란에게 주었다. 서란은 촘촘한 문양이 새겨진 익숙한 비늘을 내려다보았다.
“축지를 걸어 둔 것이냐?”
“어. 약간 개량을 했지. 저번엔 너무 뜬금없이 소환되서 아무것도 못 챙겼거든. 어쨌든 쓸 일 없길 빈다.”
“머리는 왜 갑자기 그리 잘랐느냐?”
“기니까 움직일 때 귀찮아서. 야, 말 많이 하지 마. 상처 도지고 싶어?”
“……항상 고맙구나. 조심해서 돌아가렴.”
“고마우면 몸이나 사려.”
그녀는 자드락이 소서촌에 돌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자드락은 나른하게 웃었다. 산은 티 나지 않게 한숨을 쉬고 먼 하늘만 보았다.
자드락이 서란에게 다가오더니 대뜸 손목을 잡았다. 여울은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제지하지는 않았다.
“어디 보자.”
자드락은 가늘게 뜬 눈으로 그녀의 맥을 확인했다. 그가 그녀의 손목을 놓더니 빈 호리병을 내밀었다.
“그다지 팔팔하진 않지만, 그래도 죽진 않겠네. 피 줘.”
여울이 병을 받아 들었다. 서란은 소매를 걷어 그에게 내밀었다. 여울은 검 손잡이를 쥔 채 그 흰 손목을 가만 보기만 했다.
검이 움직이질 않았다. 의미 없는 두려움이 솟았다. 그녀의 피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 꼴을 보던 자드락이 기가 차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비켜 봐.”
자드락이 여울을 밀치고 그녀의 손목을 쥐었다. 망설임 없이 이가 드러났다. 날카로운 통증에 서란은 살짝 눈을 찡그렸다. 새빨간 피가 호리병 안으로 흘러 떨어졌다.
병을 거의 다 채우자 여울이 그녀의 손목을 당겨 상처를 치료했다. 자드락은 호리병을 허리춤에 달고 물러났다.
“잘 가.”
“참, 빌렸던 면사, 가져가렴.”
서란은 휘적휘적 물러나는 그를 불러 세웠다. 그녀가 면사를 꺼내는 걸 본 자드락이 고개를 저었다.
“가져, 그냥.”
“네 보주의 것이지 않느냐. 나는 다른 것을 구하면 된다.”
“이제 필요 없어.”
자드락은 그 말을 끝으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제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뒷모습을 서란은 기이한 기분으로 지켜보았다. 무언가 불안했다.
방관자처럼 떨어져 있던 산이 관심을 돌리듯 짝, 박수를 쳤다.
“자, 지체할 시간 없어. 슬슬 가야지.”
그가 문을 열었다. 서란은 닫힌 자드락의 방문을 잠시 응시하다가 돌아섰다. 산이 앞서가며 말을 이었다.
“길은 잘 확인해 놨지? 몽해까지 가는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경로다. 그대로 가. 너희가 좌수로 간다는 소문은 알아서 퍼뜨려 둘 테니까.”
홍평이나 도하 때와 달리, 그들이 임천 호명객잔에 머물렀다는 건 찾아내기 쉽지 않을 터였다. 금산상단의 이름으로 예약한 것도 아니고, 들어올 때도 정문이 아니라 밤중에 담을 넘었기 때문이었다.
호명객잔은 금산상단과 관계가 있지도 않았다. 좌룡강을 타고 움직이는 물류가 대부분 거쳐 가는 임천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객잔이라 별관의 수도 많았다.
서란은 엊그제 산이 설명해 주었던 것을 떠올렸다.
[배편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위험해지지 않겠습니까?]
서란은 산이 제시한 계획에 동의했었다.
사실 워낙 심한 중상이었기에 요 며칠간 대부분의 시간을 잠들어 있느라 깊이 생각할 체력이 없었다. 주술을 동원한 치료가 아니었으면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있지도 못했을 터였다.
몸이 확연히 축난 게 느껴졌다. 오늘 출발하는 것도 꽤 무리한 일정이었다. 조만간 대결계가 한계에 이를 예정이라 어쩔 수 없었다.
별관의 마당에 마차가 서 있었다. 옻칠을 한 마차는 검었고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에는 푹신한 보료가 깔려 침상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여울이 서란을 부축해 안으로 들였다. 서란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면사를 썼다. 자드락이 끝내 받지 않았던 면사였다.
산은 덧창 안으로 그녀가 자리를 잡는 것을 들여다보았다.
“란아.”
서란이 그를 돌아보았다. 드리운 너울 너머로는 그녀의 주홍색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산은 머뭇거리다가 제 머리를 긁적였다.
“더 찾아볼 거다, 나는.”
“네?”
“예락의 왕족이 남긴 시험에 대한 내용 말이다.”
왕의 자질을 증명하는 시험으로 기능했다는, 이무기를 용으로 만드는 방법.
서란은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포기했으니까. 그녀가 고개를 기울였다.
“지금도 계속 신세를 지고 있지만 염치불구하고 또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오라버니라고 불러 주면.”
“산 오라버니.”
귀를 기울여야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에는 웃음이 담겨 있었다. 산은 약간 민망한 기분으로 마주 웃었다. 그녀가 이어 말했다.
“나중에라도 그걸 찾아내면 진실과 함께 공개해서, 제 이후로는 마니가 없도록 만들어 주세요.”
“너무 거창한 부탁인데?”
“역시, 그런가요?”
“아니, 못하겠다는 건 아니고. 네 손으로 하란 말이다, 그런 건. 도와줄 테니까.”
서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몸을 일으켜 덧창 쪽으로 다가왔다. 면사를 걷고 궐의 예법대로 나붓이 인사를 했다. 우아한 동작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배다른 오라비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산이 당황했다.
“산 오라버니.”
“어, 응?”
“그대로 저를 버리는 게 훨씬 편했을 텐데, 버리지 않아 주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아니, 그, 뭐…… 어, 네가 물어본 건 나도 알고 싶었으니까.”
그답지 않게 말이 서툴게 나왔다. 서란이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고마웠어요.”
“…….”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도 생각합니다. 오라버니를 만나서.”
“너 왜 이러냐. 다신 안 볼 사람처럼.”
산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가 무어라 말을 더 하려다 말고 고개를 젓더니 불쑥 말했다.
“란아, 너 바둑 둘 줄 아냐?”
“바둑요?”
“그래. 바둑.”
“스승님께 배워 할 줄은 압니다. 다른 사람이랑은 둬 본 적이 없어요.”
“승률은?”
“반반 정도일까요.”
“현음당의 바둑 실력은 모르겠지만 제법 둘 것 같은데. 란아, 그거 알아? 여울 저 녀석, 나랑 바둑 두면 승률 개판이다. 다섯 판 두면 한 판 이길까 말까.”
“의외네요.”
“의외라니. 내가 바둑을 얼마나 잘 두는데. 물론 여울이 못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짐짓 으스댄 산이 소년처럼 웃었다.
“그러니까, 바다 다녀오면 대국 한번 하자. 기다리고 있으마.”
서란이 눈을 깜박였다. 그는 그녀의 대답을 듣기가 두려운 것처럼 덧창을 닫아 버렸다.
산이 마차 옆에 기대서서 내내 듣고 있던 여울을 돌아보았다.
“넌 괜찮아?”
“무엇이?”
“다.”
얼버무렸지만 산이 뭘 묻는지는 뻔했다. 바다에서 그녀가 뭘 하려는지 이제 둘 다 알고 있다. 여울은 침묵했다. 산이 그에게서 대답을 듣는 것을 포기하려는 찰나, 그가 대꾸했다.
“네겐 감사하고 있다.”
“……주인이나 교룡이나 똑같아서 원. 인사는 됐으니 무사히 다녀와라.”
“너도.”
“내가 뭐 위험하다고.”
“우리를 돕기 위해 무리했으니까.”
“무리는 무슨. 그냥, 둘 다 멀쩡한 얼굴로 돌아오기나 하라고.”
산은 여울을 지나쳐 걸어가며 가볍게 그 어깨를 두드렸다. 여울은 대답 없이 눈인사를 했다.
여울이 마부석에 올라탔다. 마차는 몽해를 향해 출발했다.
*
소청화는 대갓집 규수처럼 호화로운 차림이었다. 그녀는 쓰개치마를 한쪽 팔에 걸치고 면사를 든 채 방에서 나왔다. 대청마루에 걸터앉은 산이 못마땅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겁 없는 것.”
“안전할 거라고 한 건 대행수잖아요.”
“시끄러워. 사람 구해 오랬지, 직접 가라고 한 적은 없단 말이야.”
“소문날 위험도 없고, 키도 비슷하고, 최적이잖아요?”
“어디 다쳐 오면 평생 월급 안 준다.”
“그럼 서해상단에서 일자리 구할 거예요. 전에 거기서 비서 구한다던데.”
“여기선 안 다칠 거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응? 가긴 어딜 가. 상단이란 상단은 죄다 망하게 만들 테다.”
불퉁한 말에 그녀가 작게 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드락이 나왔다. 검은 무복을 걸치고 검을 찬 그는 단정한 차림새 때문에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산은 휘파람을 불었다.
“옷이 날개네.”
“원래 잘생겼는데, 뭘. 이럴 땐 금상첨화라고 하는 거다.”
“허이구, 개뿔이.”
산이 그에게 돈주머니를 던졌다. 자드락은 그것을 받아 들지 못하고 놓쳤다. 그가 투덜거리며 주머니를 주웠다. 산은 혀를 찼다.
“주술은 인정하겠는데 몸뚱어리는 몸치구먼.”
“너도 늙어 봐라.”
“나이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너 검 쓸 줄은 아냐? 여울 흉내라도 내야 할 거 아냐.”
“검을 뭐 하러 써. 이제부터 배를 탈 건데. 강이잖아? 내내 물이 많다고. 도술 쓰면 순식간에 소문이 나겠지.”
자드락이 낄낄거렸다. 산은 미간을 모았다. 그는 턱을 괸 채 한숨처럼 말했다.
“대역으로 오래 버티긴 어려우니 나는 철호 데리고 곧바로 예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청화를 잘 부탁하지.”
“곱게 돌려보내 줄 테니 걱정 마.”
면사를 쓴 청화가 자드락을 향해 살짝 인사를 했다. 그들이 마루 아래로 내려섰다. 청화와 함께 마당을 가로질러 떠나는 그를 산이 불렀다.
“자드락.”
“왜?”
“어째 네가 묏자리 찾아가는 기분이 드는데. 내 착각이지? 적당히 유인만 하고 빠져라.”
자드락이 고개를 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산과 시선을 마주친 그가 씩 웃었다. 무척 기분이 좋아 보이는 미소였다.
그는 가벼운 걸음으로 별관 대문을 넘었다. 청화가 그의 뒤를 종종 쫓아갔다. 산은 인상을 쓴 채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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