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살가워졌구나2016.05.19.
그들은 해가 뜨자마자 출발했다. 쉼 없이 말을 달려 북서로 향했다.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암묵적인 약속처럼 둘 모두 전날의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서란은 옆으로 앉아 그의 가슴에 기댄 채 단단한 팔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넓은 황무지. 야트막한 언덕과 수풀. 거칠 것 없는 하늘.
그 사이로 무언가 거뭇한 것이 보였다. 그녀는 가늘게 눈을 치뜨고 그것을 응시했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알유(窫窳)라고 하는 요마입니다.”
그녀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아챈 것처럼 여울이 말했다.
아기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요마들이 내는 소리였다. 허허벌판에서 들리는 그 소리는 소름끼치도록 기괴했다.
여울이 고삐를 왼손으로 쥔 채 오른손을 검에 가져다 댔다.
“이 근방에 사람이 살지 않는 것은 저것들의 서식지이기 때문입니다.”
말은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다. 말에 익숙하지 않은 서란은 혀를 깨물까 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럼 원래는 이 땅에 마을이 많았는지, 언제부터 요마가 이리 늘었는지 알고 싶었으나 묻지 못했다.
요마들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붉은 털의 요마는 소와 비슷했지만 다리는 말과 같았고 일그러진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더러운 수염에 파묻힌 투실투실한 입이 벌어지자 그 사이로 앵앵거리는 아기 울음소리가 났다.
수십에 달하는 알유들이 달려 그들을 에워쌌다. 엄청난 속도였다.
그들이 탄 말은 고삐에 묶여 그나마 괜찮았지만 새끼줄로 연결해 둔 다른 한 마리는 공포에 질려 줄이 팽팽해질 정도로 날뛰었다.
서란은 처음 보는 요마의 모습에 하얗게 질렸다. 사람과 짐승, 노인과 아기가 뒤섞인 모습에서는 섬뜩한 악의가 느껴졌다.
“꽉 잡으십시오.”
여울이 그녀의 어깨를 안아 제 품으로 당겼다. 서란이 반사적으로 그의 허리를 감싸안고 매달렸다.
그는 말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한 손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누런 이를 드러내며 덤벼드는 알유를 향해 검광이 번뜩였다.
“으에에엥.”
어린애의 비명 같은 소리를 내는 알유의 잘린 목이 허공을 날았다. 시뻘건 피가 솟구쳤다.
몇몇 알유가 멈춰 서서 동족의 시체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서란은 나오는 구역질을 겨우 참았다.
여울이 품안의 그녀가 숨을 들이켜는 것을 알아채고 속삭였다.
“보기에 좋지 않으니 눈을 감으시지요.”
서란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요마들을 주시했다.
여울의 검이 다시 유려한 선을 그렸다. 검은 가까이 접근하는 알유들의 목을 베어 날렸다.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이었다.
머리가 잘린 알유는 동족의 먹잇감이 되었다. 그렇게 십여 마리를 베자 알유들은 더 이상 쫓아오지 않고 죽은 동족을 먹어치우는 데 집중했다.
말들은 겁에 질려 거품을 물고 사력을 다해 달렸다. 요마의 모습이 멀어졌다.
여울이 허공에 검을 휘둘러 묻은 피를 털어 낸 후에 갈무리했다.
완전히 요마들을 따돌리고 커다란 바윗돌 근처에 이르자 그가 말을 멈추었다. 해가 중천에 걸려 있었다.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말이 지쳤을 듯하여.”
먼저 뛰어내린 여울이 그녀를 안아 내려 주었다.
서란은 토기를 참는 듯한 손으로 입가를 꾹 누른 채 걷다가 휘청거렸다. 그녀를 주시하고 있던 여울이 빠르게 받쳐 잡아 주었다.
“……고맙다.”
그가 수통을 내밀었다. 서란이 물을 들이켜는 동안 그는 말들을 챙겼다.
근처의 돌 위에 주저앉은 그녀가 그를 향해 말했다.
“아기 울음소리를 내는 요마는 사람을 유혹해서 잡아먹는다고 들은 적이 있느니라. 사실이냐?”
“사람을 즐겨 먹는 것들이 그런 울음소리를 많이 내긴 합니다.”
“소름 끼치는 것들이구나. 언제부터 여기에 저것들이 나타난 거냐?”
“생긴 시기는 잘 모르겠으나, 마을이 비기 시작한 것은 20년쯤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서란은 그들이 지나쳐 온 방향을 응시했다.
오는 동안 종종 폐가들이 보였었다. 요마가 늘어 버려진 대지. 갈수록 요마가 증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제야 실감이 났다.
말들을 쉬게 둔 여울이 그녀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보기 흉한 광경일진대 왜 지켜보셨습니까?”
“그냥, 봐 두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랬느니.”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서란은 여울을 돌아보았다. 그는 그녀의 곁에 시립해 있었다.
궐을 막 나올 때만 하더라도 그녀가 묻는 것에도 잘 대답을 않던 그였다. 그런 그가 그녀에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서란이 설핏 웃었다.
“살가워졌구나, 여울.”
“……싫으십니까?”
그녀는 웃는 얼굴로 갸웃거리더니 이내 다른 말을 꺼냈다.
“사람의 악의나 원념이 늘어나면 요마의 수가 늘고 힘도 강해진다고 들었단다. 글로는 이것저것 배웠으되 실제로 본 게 없으니 봐 두고 싶었다.”
“요마에 대한 것도 배우셨습니까?”
“산해경 정도만 겨우 본 것이다.”
각지의 요마에 대해 기록해 둔 책이 산해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요마 도감일 뿐, 요마와 원념의 관계 같은 지식은 없었다.
요마를 삿된 것, 퇴치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여울은 망설이다 물었다.
“산해경에 나와 있는 것보다 많이 아시는 듯합니다.”
“그저 풍문으로 들었느니라.”
“누구에게 들으셨습니까?”
서란이 입을 다물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너무 캐물었는가. 여울은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내심 후회되었다. 그래도 알고 싶었다.
이제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담긴 의미까지 알아내고 싶었다. 흘러가 버린 시간 속에서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싶었다. 조금 더 말을 나누고 싶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 아래에서 그런 갈망이 들끓었다.
“스승님께 들었단다.”
나지막한 답이 들려왔다. 여울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어느새 지평선으로 시선을 두고 있었다.
먼 곳에 병풍처럼 늘어선 산맥이 어른거렸다. 가늘게 불어 온 바람에 그녀의 귀밑머리가 살랑였다.
여울이 무엇을 묻고 싶은지 아는 것처럼 서란은 이어 말했다.
“나는 종학(宗學)에 나가는 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스승님이 오셨었지. 그분께 많은 것을 배웠느니라.”
종학은 세자를 제외한 왕족들을 위한 교육 기관이었다.
마니를 그곳에 보낼 수는 없고, 아무리 그래도 옹주에게 교육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기에 학식이 뛰어난 사대부의 부인을 들여 그녀를 가르치도록 했다.
다들 내켜 하지 않는 자리에 자원한 부인이 있었다. 서란은 작게 미소를 띠었다.
“그분을 만난 건 내게 행운이었다.”
“어떤 분이셨습니까?”
여울은 서간집에서 스승이라는 표현을 몇 번 보았던 기억이 났다. 그녀는 주로 여울의 서간에 대해 쓰느라 자신의 이야기는 별로 쓰지 않았었다. 스승에 대한 언급도 드물었다.
여울의 말에 서란이 기억을 되새기듯 턱을 괴고 눈을 굴렸다.
“음, 엄하지만 공정한 분이었느니. 그러면서도 파격적이셨단다.”
서란은 여기까지라는 듯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그를 돌아보았다.
“말들은 어떠하냐? 출발할 수 있겠느냐?”
“조금 더 쉬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쉬는 김에 식사를 하고 가지요.”
여울이 건량을 끄집어내었다. 그가 건량 꾸러미를 풀어 그녀가 먹기 좋게 정돈하여 내밀었다. 육포와 곡물 가루를 뭉쳐 굳힌 것 등이었다.
“제대로 된 음식이 아니라 죄송합니다.”
“불을 피울 상황이 아니잖으냐.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니.”
서란은 맨손으로 빠르게 식사를 했다. 예법을 평생 익혀 습관이 되었지만 궐을 나온 후로는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말에 올랐다. 와호산맥까지는 전속력으로 달린다는 가정 하에 약 하루 거리가 남아 있었다.
*
같은 시각, 교룡들은 홍평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들은 무사들에게 들었던 노숙 장소를 금방 찾아냈다. 불을 피운 흔적이나 천막을 쳤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무사들은 근처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그래도 일단 수색을 해 봐야 했다. 비늘을 서로 나눠 가진 다음 방향을 달리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홍평 쪽으로 갔던 희나리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야로와 온의 비늘을 부쉈다. 그녀는 돌아온 두 교룡에게 말했다.
“희미하게 약 냄새가 남아 있어. 여울 부상이 아직 안 나았겠지?”
“거동하는 데 불편이 없을 정도만 따져도 열흘은 걸릴 거다.”
부상을 입힌 장본인인 온이 답했다. 야로가 허공에 코를 킁킁거리더니 혀를 날름했다. 본신이 뱀에 가까운지라 발달된 후각에 약내가 잡혔다.
“고약 냄새 맞네.”
“여울이 아닐 수도 있지만, 어차피 홍평 방향이니까 따라가 보자.”
희나리의 말에 동의한 교룡들은 희미한 약 냄새를 따라 길을 벗어났다. 메마른 황무지라 물이나 잡다한 냄새가 적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흐려지는 것을 겨우 추적한 끝에 늦은 밤이 되어서야 그들은 버려진 마을을 발견했다. 그곳의 한 폐가 근처에 말발굽 자국이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
“아무래도 의심스럽군.”
폐가 안에는 말이 남긴 흔적이 있었다. 두 마리의 말발굽 자국은 북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멀쩡한 길을 두고 요마가 있을 황무지 쪽으로 간 게 이상했지만, 실력 있는 낭인이면 그럴 수도 있었다. 여기까지면 그냥 지나가던 과객이 남긴 것이겠거니 했을 터였다.
“들어온 발굽 자국은 없고 나간 발굽 자국만 있어. 폐가에서 말이 저절로 생겨났거나 엄청난 실력의 주술사가 말을 데리고 축지를 쓴 게 아니라면, 들어올 때 남은 흔적을 지웠단 소리잖아. 왜 일부러 지웠을까?”
“말이 오래 여기서 살았는데, 떠난 건 얼마 안 돼서 그럴 수도 있잖아.”
야로가 끼어들었다. 예전 같으면 핀잔을 줬을 희나리는 그저 고개만 저었다.
“주위를 봐. 사람이 안 산 지 오래된 마을이야. 말이 여기에 길게 머물렀다면 오래된 배설물 같은 게 남았을 거야. 하지만 최근의 흔적뿐이잖아. 머문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단 소리지.”
“아…….”
야로가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온이 말했다.
“누군가 마을과 길 사이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한 모양이다. 나가는 말발굽은 황무지 방향이니, 일부러 여기까지 오지 않는 한 발견될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내버려 둔 걸 테고.”
“잠깐 길 쪽에 다녀올게. 이 근처 흔적을 지웠어도 길에는 남아 있을 거야.”
희나리가 유심히 자국을 관찰하더니 일어났다. 온과 야로가 폐가에서 하룻밤 머물기 위해 정리를 하는 사이 그녀는 멀지 않은 길까지 달려갔다.
황무지라도 사람과 마차와 수레가 오며 가며 다져진 길이 있다. 홍평과 흑룡강 나루터를 잇는 길이기에 제법 관리도 되고 있었다.
길에 다녀온 희나리가 흐트러진 머리칼을 손으로 빗으며 말했다.
“홍평 쪽에서 세 마리가 왔다가, 길 중간에서 갑자기 멈춘 다음, 한 마리만 돌아갔어. 그리고 그건 황무지 쪽으로 간 두 마리가 아닌 다른 놈이야.”
편자 모양은 말마다 조금씩 다르다. 눈썰미가 좋다면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날짜가 별로 지나지 않았기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녀의 말에 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말을 둘 데리고 와서 폐가에 두고, 흔적이 남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돌아갔군. 그리고 그 두 마리는 똑같은 홍평 방향인데 굳이 길을 피해 황무지로 가고.”
“일부러 이런 외진 곳까지 말을 끌고 와서 버리고, 누가 재수 좋게 그걸 줍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차라리 세 명 이상의 사람이 각각 말을 타고 왔다가 여기서 머문 다음 흩어졌다는 게 말이 되겠군. 황무지로 간 건 요마를 잡으려는 낭인 무사라거나.”
“그럼 뭣 하러 길이랑 폐가 사이의 흔적을 지우겠어?”
희나리와 온의 시선이 마주쳤다. 야로가 그들을 번갈아 보며 불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
“넌 몰라도 돼. 그냥 결론만 들어.”
“결론이 뭔데?”
“황무지 쪽으로 향한 말 두 마리에 마니랑 여울이 타고 있을 확률이 있다는 거.”
희나리의 말에 야로가 입을 헤 벌렸다. 그녀가 땅을 짚고 있던 제 창을 챙겨들었다.
“가 보자. 기왕 홍평으로 돌아가던 참이고, 같은 방향이니까. 밑져야 본전이야.”
야로는 울상이 되었지만 불만을 토해 내진 않았다. 소년은 그저 아랫입술을 깨물고 지친 몸을 일으켰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태세인 희나리를 말린 건 온이었다.
“우린 이틀 밤을 샜다. 여기서 더 무리하면 찾아내 봤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해. 일단 조금이라도 쉬도록 하지.”
희나리가 항변하려다 거뭇한 야로의 눈가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들은 지쳐 있었다.
“……알았어.”
그녀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
백 리 밖에서도 느낄 수 있는 여의주의 향과 달리 이무기의 냄새는 무향에 가깝다.
물비린내와 유사하고 주위의 냄새에 금방 녹아들기 때문이었다. 물가를 거치거나 사람이 많은 도시를 지나면 흔적도 남지 않는다.
피 냄새도 그러했다. 그래서 이무기의 피는 인간의 피와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피비린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무기 핏자국 맞아.”
흙바닥에 코를 파묻을 듯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있던 야로가 허리를 펴며 말했다.
이른 아침부터 말발굽 자국을 따라 추적하다 발견한 혈흔이었다. 말라비틀어진 나무 근처에 야숙을 한 흔적이 있었다.
온이 쓴웃음을 띠었다.
“하늘이 돕는군.”
희나리가 말발굽이 향하는 쪽을 응시하다 말했다.
“이 방향이면 전에 추측한 게 맞겠네.”
“창으로 가고 있는 건가.”
“아마도.”
온이 희나리와 대화하는 사이 야로는 조심스럽게 흙을 팠다. 그가 무언가를 챙겼다.
그러고 나서는 여울의 피가 스며든 흙을 수건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소년의 어깨 너머로 그가 뭘 하는지 본 희나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야로, 뭐 해?”
“혈흔이니까, 챙겨 둬야지.”
“응?”
“피로 위치를 추적하는 주술이 있어. 의금부나 금군에서 수사할 때 쓴다더라고.”
“뭐? 그럼 진작…….”
“난 할 줄 몰라. 이런 일을 하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단 말이야.”
소년이 힘없이 대꾸했다. 희나리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라고 이런 일을 하게 될 거라 생각한 적은 없다.
단번에 가라앉은 분위기를 온이 손뼉을 치며 환기했다.
“자, 확실해졌으니 계속 추적하기 전에 홍평에 들리자. 전서구를 보내야겠어.”
야로가 손을 들었다.
“내가 다녀올게.”
“아니, 다 함께 간다.”
“어? 그럼 추적은?”
“둘이서 찾아내 봤자 도하에서의 재현이 될 확률이 높잖아. 함께 움직여야 해.”
그 말에 야로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희나리가 참견했다.
“여울 부상, 덜 나았을 텐데? 그리고 이 근처엔 물도 없잖아. 그럼 해 볼 만하지 않아?”
온은 잠시 고민하더니 신중하게 말했다.
“하긴, 찾아낸다고 바로 싸울 필요는 없으니까…….”
“그럼 야로가 다녀오고, 우리는 추적을 계속하자.”
“야로, 할 수 있겠나?”
야로가 끄덕였다. 전이라면 무시하는 거냐고 발끈했을 소년은 담담하기만 했다.
희나리는 조금 쓴 기분이 되었다. 그녀가 비늘을 하나 뽑았다.
“다녀오는 데 이틀이면 되겠지. 일 끝나면 이거 부숴. 그럼 내가 네 비늘을 부술 테니 알아서 찾아와.”
“응.”
야로는 순순히 그것을 받아 들고 제 것도 그녀에게 건넸다. 소년은 인사도 없이 돌아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 작은 뒷모습을 보던 희나리가 중얼거렸다.
“쟤, 괜찮을까?”
“글쎄…….”
온은 말끝을 흐렸다. 야로의 상태가 어떻든 그들이 어찌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들은 더 이상 소년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묵묵히 추적을 재개했다.
야로는 충분히 거리를 벌린 다음 잠시 멈췄다. 품에 챙겨 둔 것을 몰래 꺼내 확인했다. 혈흔을 챙기기 전에 몰래 숨겼던 것이다.
천에 감싸인 길고 검은 머리카락.
여울의 혈흔 근처에 있던 것이다. 이리 긴 것은 아마 그 마니의 머리카락일 터다.
야로는 주술을 특기로 삼았다. 소년은 이 머리카락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도.
“홍평에서, 준비해 놔야겠지…….”
보고하러 가는 일에 먼저 나선 이유는 그걸 위해서였다.
희나리도, 온도 야로만큼 여울을 위하진 않는다. 그들이 그의 계획을 알게 되면 반대할 터다.
야로가 생각하기엔 이것이 여울을 위한 최선이었다. 소년은 멍하니 머리카락을 내려다보다 그것을 챙겨 넣고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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