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수배령2016.04.03.
다음 날 아침, 마차를 버리고 나루로 향한 그들은 벽에 붙은 수배령을 발견했다.
〈마니를 납치한 이무기 여울과 실종된 마니 화예옹주를 수배한다. 생포는 천 냥, 제보는 백 냥. 용모파기는 다음과 같다〉
나루의 입구에는 포졸들이 몰려 드나드는 사람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었다. 여울은 그것을 보자마자 서란을 이끌고 몸을 돌렸다.
서란도 그 광경을 보았다.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여울은 처마 아래의 그늘에 숨어 나루 쪽을 다시 확인했다. 포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온이 보였다. 그는 낮게 혀를 찼다.
“실례하겠습니다, 보주.”
여울이 서란을 안아 올렸다. 그러곤 뒷골목 사이를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는 도하 시내에 익숙했다.
성문이 보이는 곳에 이른 그가 걸음을 멈췄다. 서란은 고개를 돌려 그가 보는 쪽을 보았다. 성문에도 포졸들이 깔려 있었다.
그 틈에 이질적인 아이가 있었다. 야로였다.
여울은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여 물러났다.
대낮인데도 어둑한 담장과 담장 사이 좁은 골목에서 그가 그녀를 내려 주었다. 그녀가 물었다.
“방도가 있느냐?”
“성벽을 넘어야겠습니다. 밝을 때는 눈에 띄어 무리니 해가 지길 기다려야 합니다. 일단 다시 객잔으로 돌아가서…….”
“아니 된다. 잊었느냐? 네가 배를 예약해 두었잖느냐.”
서란이 그의 말을 끊었다. 그녀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예약해 두고 배에 타지 않은 사람이 사미국 출신으로 보이는 갈색 피부의 남자라고 하면 교룡들이 곧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객잔이 들키는 건 금방일 것이니라.”
그녀의 말이 옳았다.
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서란을 보았다. 하얗게 질려 있는 걸 보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닐 텐데, 말하는 것은 침착하고 판단은 냉정했다.
서란은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말대로 교룡들이 도하 안에 그들이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되면 포졸들을 풀어 샅샅이 뒤질 것이다.
도하는 거대한 도시지만 수배령이 붙은 이상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숨는다는 건 무리였다.
여울은 은밀히 일을 처리하는 살수가 아니었다. 은신 기술이나 기척을 지우는 데 도움이 될 법한 주술은 아는 것이 없었다.
해가 질 때까지 숨어 버티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밝은 대낮에 성벽을 타고 오르다간 화살꽂이가 될 확률이 높다.
수도로 가는 관문 도시라는 건 유사시에 최후의 방어선이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도하의 성벽은 궁궐의 담보다 훨씬 높고 견고했다.
그 혼자라면 몰라도 서란을 데리고 넘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들키지 않고 빠져나간다는 건 어딜 봐도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들켜도 유리한 곳으로 가는 것이 낫다.
여울은 다른 길을 제시했다.
“강을 건너겠습니다.”
“강? 흑룡강을? 어떻게?”
“걸어서 건널 것입니다.”
흑룡강은 대하(大河)였다.
물론 서란은 흑룡강을 직접 본 적은 없다. 그러나 흑룡강이 예락에서 가장 넓은 강이라는 건 안다. 도하와 닿아 있는 흑룡강의 너비는 10리에 달했다.
그것을 어떻게 건넌다고?
서란은 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반문을 입 밖에 내기 전에 그녀는 담담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검은 눈동자를 보았다. 그 안으로 얼핏 보이는 동공은 세로로 긴 뱀의 것이었다.
그는 이무기였다. 이무기는 물을 다스리는 영물이다.
그제야 서란이 깨달은 표정을 짓자 여울이 다시 그녀를 이끌었다.
길거리에 포졸들이 몰려다녔다. 그들이 머물렀던 객잔 쪽이 소란했다.
여울은 흑룡궁을 빠져나갔을 때처럼 서란을 한 팔로 안아 올렸다.
그는 귀신같이 사람의 기척을 피해 골목 사이를 누볐다. 서란은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그에게 안겨 있었다.
여울이 걸음을 멈췄다. 서란은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골목 사이로 강변이 보였다.
흑룡강은 검은 강이었다.
가장자리는 찻물이나 낙엽을 우려낸 것처럼 갈색 빛을 띠었고 중앙으로 갈수록 깊어져 검은 물로 보였다.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면 그 이름 그대로 거대한 검은 용이 굽이치며 드러누운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여울이 서란의 귓가에 속삭였다.
“지금부터 강을 건널 것입니다. 제게서 절대 떨어지면 안 됩니다. 강에는 숨을 곳이 없어 들킬 확률이 높습니다.”
“알겠다.”
서란은 심장이 바짝 조였다.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할 것인지는 차마 묻지 못했다.
그녀는 힘주어 그의 목을 안았다.
여울은 지그시 눈을 내리깔고 잠시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단번에 골목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 걸음은 강에 이르러서도 속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강가에는 다양한 배가 많았다. 그는 배의 그늘과 사각으로 움직였다.
소리는 없었다. 물을 디딜 때마다 그려진 둥근 파문은 유유하게 흐르는 강물에 순식간에 휩쓸려 사라졌다.
아래로 검은 물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며 서란은 터져 나오려는 경악성을 간신히 눌렀다.
배들이 대어 있는 강변을 벗어났다. 이제부터는 시야를 가려 줄 게 없다.
여울은 속도를 높였다. 강의 건너편에는 낮은 땅이 이어져 있었다. 까마득한 검은 강이 이루는 수평선의 끄트머리에 그 평지가 선처럼 걸렸다.
여울은 바로 그 곳을 목표로 달렸다. 몸을 낮추고 수면 위를 미끄러진다.
서란은 귀를 스치는 바람 소리에 눈을 질끈 감았다. 강의 풍광에 감탄할 여유는 없었다.
제발, 이대로.
강의 중간 즈음에서 여울은 물의 이변을 감지했다. 그는 서란을 안지 않은 손으로 수면을 짚으며 발을 뒤로 젖혀서 급하게 멈췄다.
손끝에 걸린 강물이 할퀴어지듯 허공에 튀었다.
그가 멈춘 곳 바로 앞의 강물이 괴물의 입처럼 갈라졌다.
거인이 투명한 손가락으로 강물을 누른 것처럼 보였다. 멈추지 않았다면 그 아래로 떨어지며 물에 대한 통제를 잃고 빠졌을 것이다.
정신 나간 이적이었다. 이런 이적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이무기나 용밖에 없다.
여울은 뒤를 돌아보았다. 온이 수면 위를 달려오고 있었다.
그보다 더 멀리 강변의 배에서 작은 몸집이 강물 위로 뛰어내리는 것도 보였다. 야로일 것이다.
들켰다.
예상했던 일이다. 강 위에서는 이무기들 말고는 다른 사람이 참견할 수 없다.
여울의 눈이 날선 검처럼 차가워졌다.
*
금산 상단은 예락의 동부 최대의 항구인 용미를 거점으로 하는 상단이었다.
해로국, 사미국, 월국 등 동해를 통해 들어오는 타국의 물품은 죄다 용미를 거쳤고, 그중 대부분이 금산 상단을 통해 국내로 유통되었다.
생긴 지 몇 년 되지 않은 금산 상단이 이토록 커진 것은 기존에 용미를 주름잡던 벽씨 상단을 흡수한 덕이었다.
금산 상단의 주인인 대행수는 젊은 청년이었다.
상계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기린아로 불리는 류산(柳山)은 도하에서 가장 비싼 객잔 안의 침상에 늘어져 있었다.
만사 귀찮은 듯 드러누운 그의 얼굴 위로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반쯤 졸고 있던 산이 얼굴을 덮은 종이에 푸푸 숨을 뱉더니 그것을 집어 들고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뭐 하는 짓이냐, 소청화?”
“읽어 보세요, 대행수.”
“키워 놨더니 이제 아주 저가 상전인 게지.”
산은 투덜거리며 종이를 집어 들었다. 첫 줄을 읽자마자 그의 표정이 급변했다. 비스듬히 입술이 틀리며 헛웃음이 나왔다.
“하. 청화야. 이 병신 같은 건 뭐냐?”
“말할 때 품위 좀 지키세요.”
“장사치가 품위는 무슨. 이거 뭐야? 오늘 붙은 것이더냐?”
산이 그의 비서인 청화의 앞에 종이를 까닥까닥 흔들었다. 수배령이었다.
청화가 허리에 손을 짚은 채 대꾸했다.
“오늘 새벽부터 나붙었어요. 그리고 지금 나루랑 성문에 이무기가 한 마리씩 있더군요.”
“……토끼몰이를 하나?”
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화려한 술이 드리워진 부채를 펄럭이며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수배령을 읽어 보았다.
“광증이 도진 이무기가 마니를 납치하여…….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건 분명 형 놈 대가리에서 나왔겠군.”
“대행수. 바른 말, 고운 말.”
“너밖에 없는데 뭔 상관이냐.”
“제 귀가 썩는 것 같아요.”
“넌 이미 썩을 대로 썩었으니 괜찮아.”
“조신한 아녀자한테 그게 무슨 악담이시죠?”
“조신은 개뿔이.”
산이 종이를 구겨 내던졌다. 청화는 투덜거리며 그가 던져 버린 종이를 주워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허공을 보고 있던 산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청화야. 한 시진 안에 제일 빠른 배랑 제일 빠른 마차 준비해. 짐도 싸 놓고.”
“그러실 줄 알았어요. 이미 시켜 놨거든요.”
“소청화가 이럴 땐 예쁘단 말이지.”
그가 능글맞게 웃었다. 청화는 질색하는 표정이 되었다.
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지개를 켰다.
“자, 그럼 우리의 토끼 친구가 어느 쪽으로 튈까? 청화야, 네가 보기엔 어떠냐? 좀 찍어 봐라.”
“저한테 떠맡기지 마세요. 틀리면 제 탓 하실 거잖아요.”
“이러면 안 예쁜데.”
“그냥 처박혀서 기다리세요. 소동이 일어나는 쪽에 대행수의 토끼 친구가 있겠죠. 토끼보다는 뱀이겠지만.”
“오, 똑똑해. 역시 내 아내감.”
청화의 인상이 있는 대로 찌푸려졌다.
산은 한껏 약이 오른 비서를 모른 척하며 창가로 다가갔다. 가벼운 태도와 달리 진지한 눈이 도하의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이왕이면 소동 없이 빠져나갔으면 좋겠는데, 친구야.”
산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이무기는 물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것은 용의 권능이었다.
이무기가 가능한 일은 이미 있는 물을 조종하는 것이나 비를 내리는 정도였다. 타고난 이런 능력을 도술이라 했다.
이무기끼리의 전투는 결국 존재하는 물에 대한 통제권 다툼이 된다.
여울은 한 팔 안에 있는 서란을 힘주어 안았다. 그녀가 긴장했다는 것이 닿아 있는 몸으로 느껴졌다. 그가 빠르게 속삭였다.
“지켜 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울…….”
그 부름에는 두려움과 걱정과 미안함이 뒤섞여 있었다. 서란은 흐트러진 얼굴을 그의 품에 파묻었다.
여울은 강물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았다. 온의 통제권을 뺏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움푹 파였던 강물이 다시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 잠깐의 지체에 이미 온이 그를 따라잡았다.
여울의 앞을 가로막은 그가 검을 뽑아 겨누었다.
“포기해라, 여울.”
온이 씁쓸한 기색으로 말했다. 여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온도 그가 마니를 내놓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말로 설득이 될 것 같았으면 애초에 탈주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안하다.”
온이 서란을 안고 있는 여울의 팔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여울이 반 바퀴 몸을 틀며 검로를 가로막았다.
칼날이 부딪쳐 미끄러지며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흐르는 강물 위를 둘 모두 평지처럼 밟고 있었다. 수면에 남았던 발자국은 이무기들이 발을 떼는 순간 강물의 흐름에 의해 지워졌다.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온은 여울처럼 검을 주력으로 익혔다. 그의 검은 빠르고 화려했다.
반면 여울의 검은 언뜻 보기에는 느리고 단순했다. 그러나 그 검은 온의 현란한 검이 다가오는 경로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온은 그의 검을 도저히 뚫을 수 없었다.
검을 다투면서도 그들은 보이지 않는 통제권 싸움을 함께하고 있었다. 물이 들썩이다 일부가 솟구치고 도로 가라앉았다.
여울은 반격하지 않고 온의 공격을 쳐내기만 하며 반대쪽으로 계속 이동했다.
온은 그를 가로막기에도 벅찼다. 여울이 한 팔에 지켜야 할 마니를 안고 있는데도 그러했다.
여울은 전투 와중에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그 빈틈을 노려 온이 허리를 노리고 검을 찔러 갔다. 여울의 검 끝이 움직이는 순간 온의 검이 급변하여 허벅지를 베려 들었다.
그 속임수를 이미 알고 있었던 양 여울의 검이 어느새 그 자리에 있었다. 검과 검이 재차 부딪쳤다.
여울은 부딪치는 순간 검날을 비틀었다. 어긋난 힘에 검이 옆으로 튕겨 나가며 온이 휘청거렸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여울이 온의 오금을 걷어찼다.
완전히 균형을 잃으면서 물에 대한 통제권을 놓친 온의 발이 강물 속으로 푹 빠져들었다. 여울은 그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뒤로 몸을 날려 달아나려 했다.
“여울!”
소년의 외침이 날아왔다.
강물이 살아 있는 뱀처럼 일어나며 그의 뒤를 가로막았다. 검은 강물로 만들어진 검은 뱀이었다.
여울은 그 물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사이 정신을 차린 온이 등 뒤를 베어 왔다. 여울은 돌아서며 온의 검을 막았다.
온의 뒤쪽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서 있는 야로가 보였다. 온과 여울이 검을 다툰 시간은 극히 짧았는데도 벌써 따라온 것이다.
야로는 도술과 주술이 주력이었다.
소년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이를 악물더니 허공에 작은 손을 휘저었다. 강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뱀이 그 손짓에 따라 그들 셋이 서 있는 곳 주변을 완전히 감쌌다.
그와 동시에 야로는 여울의 발아래 강물을 조종하려 했다.
여울도 그것만은 빼앗기지 않았다.
온의 검이 끊임없이 짓쳐들어왔다.
“야! 그냥 걔 버려! 우리가 뭐 하러 싸워야 하는데!”
야로가 고함을 질렀다. 여울은 대꾸하지 않았다.
온의 검을 재차 쳐낸 여울이 그가 흐트러진 틈을 타 물의 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기가 실린 검에 사람 키보다 굵은 뱀이 길게 베였다.
야로가 그 틈을 메우기도 전에 검과 동시에 튀어 나간 여울이 그 사이를 통과했다. 온이 뒤쫓고 야로가 손을 뻗었다.
흐르는 강물의 곳곳에서 물줄기가 일어났다.
온과 여울 둘 다 수면에 거의 발을 딛지 않았다. 한 번의 디딤으로도 가공할 만한 도약이 가능했다.
거칠 것 없는 강물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계속해서 검이 맞붙었다. 날붙이와 날붙이가 부딪치는데 소리는 숫제 화약이 터지는 듯했다.
여파로 강물의 일부가 갈라졌다 붙기를 반복했다. 애꿎은 물고기들이 허연 배를 드러내며 허공에 튀었다.
“미치겠네.”
물의 뱀으로는 그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야로는 뱀을 흩어 버리고 양손을 모았다. 수인(手印)을 맺는다.
여울은 곁눈으로 그가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여울이 지배한 강물이 곳곳에서 짐승의 송곳니처럼 날카롭게 일어섰다.
야로를 향해 쏘아지는 그 물줄기를 온이 일으킨 물의 장막이 막아 냈다. 그는 주의가 흐트러진 여울을 향해 검을 찔러 갔다.
여울이 그것을 피해 몸을 트는 순간 발을 디딘 곳의 물이 얼어붙었다.
검은 물의 표면에 하얀 얼음이 일어났다.
야로가 무릎을 꿇고 강물 속에 손을 담그고 있었다. 소년의 손에서부터 흐르는 강물의 표면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휘청 미끄러지는 여울의 어깨를 노리고 온의 칼날이 떨어졌다.
여울은 그 자세에서도 용케 무너지지 않고 검을 들어 막았다.
그가 통제한 물이 바닥의 얼음을 부수고 솟구쳐 온을 노렸다. 뒤에서 지켜보던 야로가 그것을 흩어 버렸다.
젖어 있던 발목을 타고 올라온 냉기가 서리를 만들었다.
물이 발목을 잡으며 얼어붙는다. 여울은 끊임없이 얼음을 부수어야 했다.
그 와중에 온의 검은 가차없이 휘둘러지고 있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는 상황에서도 그의 심장은 안정적으로 뛰고 있었다.
그의 품 안에 있던 서란은 눈앞에서 춤추는 칼날에 샘솟는 공포를 닿아 있는 그의 심장 소리로 진정시켰다. 속도가 엄청나서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그의 부담을 덜고자 그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그녀를 감싸안은 팔은 격렬한 움직임 와중에서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교룡들의 인간을 초월한 전투 때문에 강변에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
강물이 얼었다 부서지고 제멋대로 솟구친 후 공중에서 흩어지곤 했다. 물이 꿈틀거리며 움푹 파였다가 소용돌이쳤다.
그 와중에 두 교룡이 휘두르는 검의 궤적을 따라 강물이 갈라지거나 파도가 일었다.
공중에 검은 물이 먹처럼 떠도는 모습은 언뜻 보기에는 아름다워 보일 정도였다. 평생 두 번 보기 힘들 장관이었다.
넋을 잃고 그것을 보던 어린아이 중 하나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파랗던 가을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드는 중이었다.
“비?”
아이가 중얼거릴 때쯤 야로도 그것을 눈치 챘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곧이어 굵은 빗방울이 툭, 툭 떨어졌다. 비는 삽시간에 폭우로 변했다. 야로가 기가 막혀 소리를 질렀다.
“이 와중에 비를 뿌릴 여유가 남아 있었어?”
여울이 끌어들인 비였다. 아까부터 힘의 일부를 비를 부르는 데 쓰는 바람에 그는 물을 소극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