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룡의 주인-9화 (9/70)

9. 야시장2016.03.31.

와호산맥을 벗어난 후 도착한 첫 마을에서 여울이 혼자 들어가 마차를 구해 왔다.

마차라기보다는 수레에 가까운 낡은 것이었고 말도 비루먹었으나 그는 능숙하게 몰았다.

“마차도 몰아 본 적이 있느냐?”

“상단 호위무사로 일할 때 익혔습니다.”

서란은 그가 보냈던 초기의 서간에 상단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기억 속의 서간들을 더듬었다.

“두 번째 서간에서 벽씨 상단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고 했었지. 네가 이무기들과 지내다 인간들 틈에 오니 적응이 쉽지 않다고 쓴 것이 기억나는구나.”

마부석에 앉아 있던 여울이 멈칫했다. 그는 뒤를 돌아보려다 말았다.

“……그걸 다 외우고 계십니까?”

“시험해 보겠느냐?”

웃음기 어린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제 표정이 이상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등을 보이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가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왜 답서를 아니 보내셨습니까?”

전에도 했었던 질문이었다. 서란이 피했던 질문이기도 했다.

그녀는 이번에도 답하지 않았다. 여울이 말을 덧붙였다.

“저는 보주께서 서간을 보지 않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 생각했으면서 용케도 계속 보냈구나.”

“명령하셨잖습니까.”

서란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도하의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울은 다르게 물었다.

“그럼, 왜 서간을 보내라 하셨는지는 답해 주실 수 있습니까?”

성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차는 건성으로 성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을 지나쳐 갔다.

여울은 그들의 태도에서 수배령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되도록 계속 수배령이 내려지지 않기를 바랐다.

도하는 활기찼다. 수도로 가는 관문인 만큼 사람들이 바쁘게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여울은 대로를 따라 마차를 몰았다. 각종 소음 속에서 서란이 작게 웅얼거리는 대답이 선명하게 귀에 와 박혔다.

“알고 싶었단다.”

“무엇을 말입니까?”

“세상과, 너를.”

그녀는 나갈 수 없는 자신 대신 그가 세상을 돌아보는 것을 기대했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 서간을 보았다. 몇 줄 안 되는 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답서는 홀로 썼다. 마니전의 검은 처마를 올려다보며 쓴 답서를 서간집에 끼워 넣었다.

사실, 답서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녀가 열여섯 살 때였다. 꼬박꼬박 서간을 보내던 여울이 단 한 번 보내지 않았을 때. 걱정이 되어 참지 못하고 답서를 보냈다.

그러나 그것은 되돌아왔다. 여울은 그전 서간을 보냈던 곳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대상을 찾지 못하고 돌아온 답서를 한참 내려다보다 서간집에 정리했었다. 그 뒤 다시 온 여울의 서간에는 ‘안 좋은 일이 있어 보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만이 있었다.

서란은 눌러쓴 면사 너머로 보이는 넓은 등을 응시했다. 그녀가 물었다.

“네가 서간을 한 번 안 보낸 적이 있었지. 그때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여울의 시선이 손등의 상처에 잠시 닿았다. 그의 뒷모습만 보이는 서란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는 대로에 있는 적당한 객잔에 마차를 세웠다. 말의 투레질 소리에 손님이 온 것을 눈치 채고 뛰어나온 소년에게 마차를 넘겼다.

그가 뒤쪽으로 다가와 서란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란은 그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그가 그제야 답했다.

“답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단다.”

서란은 예상했다는 듯 웃었다.

그와 그녀는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여울이 익숙하게 방을 잡는 동안 서란은 면사 속에서 눈만 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늦은 점심 무렵이었다. 왁자하게 떠드는 손님들 사이로 묘기를 부리듯 그릇을 쌓아 든 점원이 지나갔다. 갖가지 음식 냄새가 뒤섞여 공기 중에 흘렀다.

서란은 그릇을 다섯 개나 쌓아 올린 점원 쪽으로 고개가 돌아가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그들은 한방을 잡았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여울은 바닥에 진을 그렸다. 서란이 침상에 걸터앉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배편을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그동안 방 안에 계셔야 합니다.”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여울이 읍을 하고 떠나갔다.

서란은 하릴없이 침상에 앉아 방 안을 둘러보았다.

꽤 괜찮은 객잔이었지만 궁에서 살아온 서란이 보기에는 초라해 보였다. 물론 전에 머물렀던 민가에 비하면 호화롭다고 할 만했다.

그녀는 장을 열어 보기도 하고 문갑을 뒤적이기도 하며 방을 구경했다. 별달리 볼 것은 없었다.

방 안을 전부 뒤지고 나자 자연히 시선은 창가로 향했다. 그녀는 벗어 두었던 면사를 다시 단단히 쓴 다음 창호지가 발린 창을 열었다.

그들의 방은 2층이었다. 거리가 내려다보였다. 사람이 많았다.

종자를 거느리고 거들먹거리며 지나가는 귀족, 소를 끌고 가는 농민,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

장옷을 쓰고 여종을 앞세워 걷는 여인, 광주리에 천을 덮어 이고 가는 아낙, 말을 타고 달리는 도포차림의 남자, 가게 주인과 한담을 나누며 곰방대를 물고 있는 노인.

다양한 사람들이 거리에 있었다.

서란은 눈을 떼지 못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모든 것이 신기했다. 그녀는 창턱에 턱을 괴었다. 면사 안에서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녀는 여울이 돌아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거리 구경에 푹 빠져 있었다.

여울은 창에 온몸을 기대고 있는 가느다란 뒷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그녀의 한쪽 발이 긴 치맛자락 아래에서 일정한 박자로 흔들렸다.

“구경하러 가시겠습니까?”

서란이 화들짝 놀라 돌아섰다. 면사를 덮어 쓰고 있어 그녀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니, 되었다. 나다니면 위험하기만 하느니. 배편은 구했느냐?”

“내일 아침 일찍 창릉까지 가는 배를 잡아 두었습니다.”

창릉은 흑룡강 하류에 있는 서해와 닿은 항구였다. 예락의 서해에서 가장 큰 항구이기도 했다. 서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순조롭구나. 향이 지워진 것을 알아채면 수배를 내릴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마니의 탈주를 은폐하는 걸 우선한 모양이다.”

서란은 창가 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았다. 여울은 가만 듣고 있다가 불쑥 말했다.

“도하는 야시장이 유명합니다. 언제나 사람이 많은 만큼 돌아다녀도 눈에 띄지 않을 것입니다.”

면사를 쓴 서란의 표정을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여울은 충동적으로 다가가 그녀의 면사를 걷었다.

주홍색 눈동자가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듯이 도로 물러서며 물었다.

“야시장에 가 보시겠습니까?”

그녀의 눈이 깜박였다. 서란은 금세 그린 듯한 미소를 띠었다.

“아니, 괜찮다. 피곤하니 쉬어야겠느니라.”

그녀는 곧잘 웃었다. 여울은 그녀가 산중에서 식사를 하다 눈을 반짝이며 웃었던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의 웃음은 그때와 달랐다. 그는 이것이 그녀의 가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붕대를 갈아 드리겠습니다.”

여울은 서란을 침상에 앉히고 약초와 새 붕대를 꺼냈다. 모두 자드락이 챙겨 주었던 것들이었다.

서란이 얌전히 손목을 내밀었다. 그의 한 손에 잡히는 손목이었다.

붕대를 풀어 내리고 붙어 있던 약초를 떼어 내자 아물어 가고 있는 상처가 보였다. 뱀에게 물린 것처럼 보이는 두 개의 구멍.

도하까지 오는 여정에서 붕대를 갈기 위해 두어 번 봤지만, 그는 그것을 볼 때마다 심기가 불편했다. 그녀는 자드락과 무슨 거래를 했는지도 끝내 말해 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알 바 아니었던 것들이 지금은 하나하나 거슬렸다. 의미 모를 분노가 속에서 끓어 약초를 새로 붙이는 손길이 거칠어졌다.

아팠는지 서란의 손목이 움찔 떨렸다. 여울은 반사적으로 손을 늦추었다.

그는 붕대를 다시 감으며 자책했다.

그 자신도 그녀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녀라고 다를까. 그는 조심스럽게 매듭을 마무리지었다.

“……저녁은 방 안에서 드시지요.”

“아무래도 그게 낫겠지.”

“그 후에 야시장을 갈 것입니다.”

여울이 덤덤하게 말했다. 서란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쉬겠다 하지 않았니.”

“제가 가 보고 싶습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보주를 모시고, 라는 말이 생략되었을 뿐.

그녀가 의아하게 그를 봤다. 여울은 식사를 시키러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왔다.

문을 닫고 잠시 멈춰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가슴속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 같다던 서란의 말이 이해되었다. 지금이 꼭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저녁을 먹고 서란은 면사 위에 장옷까지 뒤집어썼다. 여울도 구해 온 삿갓을 깊이 눌러썼다.

낮의 거리는 양반이었다. 해가 지자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노점이 가득 늘어섰다. 긴장하고 있던 서란은 장옷을 쓴 여인들이 많은 것을 보고 내심 안심했다.

그녀는 겨우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각양각색의 등이 내걸렸다. 우렁찬 호객 소리가 울려 퍼지고 길거리 음식이 구워지는 고소한 냄새가 흘렀다. 어디선가 음악 소리도 들려왔다.

서란은 면사 안에서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녀는 제 뒤에 바싹 붙어 있는 여울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게 축제라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저 매일 열리는 야시(夜市)일 뿐입니다.”

“이 규모가?”

“도하는 예경으로 드나드는 물류가 모이는 곳이라 활발한 편입니다. 예경에 비해 통제가 덜한 탓에 도하가 더 유동 인구가 많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가시지요.”

서란은 홀린 듯이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머리가 정신없이 움직였다.

여울은 곁에 붙어서 그녀가 사람에 치이지 않고 걷도록 유도했다. 그는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머리 하나는 컸기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서란은 제가 이 인파 속에서 쉽게 걷고 있는 것이 그의 솜씨 덕분인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소란하여 넋이 나갈 것 같았다.

그녀는 글로만 접했던 세상의 일부가 피부로 와 닿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호객하는 상인들도, 흥정하는 손님들도, 웃고 떠들거나 심지어 시비가 걸려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놀라웠다. 다양한 삶의 풍경이 시야로 쏟아져 들어왔다.

마니전의 검게 가라앉은 고요 속에서 살아왔던 그녀에게는 그 모든 것이 벅차오르는 감동이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알던 평민들의 모습이란 흑룡제를 치르기 위해 궐 밖을 이동할 때 가마의 창문 사이로 훔쳐본 것뿐이었다. 그것은 바닥에 조아려 왕족의 행렬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정물 같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것은 까닥하면 휩쓸려 버릴 정도로 강렬한 활기였다. 오후에 창가에서 내다볼 때도 놀라웠으나 직접 그 사이를 걷자 충격적일 정도였다.

이것이 예락이구나.

예락이라는 나라의 극히 일부이며, 그중에서도 밝고 활발한 일면일 뿐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다. 불과 며칠 전에 방납인을 피해 산중에 숨어 든 민가에 머물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 광경이 그녀가 어렴풋이 더듬고만 있었던 ‘예락’이었다.

조금씩 그 활기와 인파에 적응하자 호기심이 차올랐다. 눈에 보이는 대부분이 생전 처음 보는 것이니 견딜 수가 없었다.

“저건 무엇이냐?”

그녀는 참지 못하고 그의 소매를 당기며 속삭였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가리킨 것은 재인(才人)이 데리고 있는 원숭이였다.

“원숭이입니다. 남방에서 들여온 동물로, 꽤 영리한 편입니다.”

“저것을 데리고 뭘 하는 것이냐?”

“주로 재주를 가르쳐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돈을 받습니다.”

마침 원숭이가 재인의 손짓에 따라 외줄 위로 뛰어올랐다. 조그만 짐승이 가느다란 밧줄을 밟고 거침없이 걸어간다. 왁자한 소리와 박수 소리, 재인이 든 꽹과리 소리가 요란했다.

서란은 넋을 놓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아무래도 묻고 싶은 것이 더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를 보고 있던 여울이 나직이 말했다.

“뭐든 물으셔도 됩니다.”

“귀찮지 않느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가 묘하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녀가 그를 돌아본다. 삿갓 아래로 보이는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녀의 눈이 지나쳐 가는 사람들의 손에 들린 잡다한 물건들에 흘깃 닿았다. 면사 너머로 어렴풋 보이는 그녀의 입술이 망설이며 움찔거렸다.

여울은 불현듯 그 입술의 감촉을 떠올렸다. 접문할 때 느꼈던 부드러움. 파르라니 떨리던 눈꺼풀.

갑자기 왜 그것이 떠오르는지. 그는 내심 당황했으나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갈등하던 서란이 결국 호기심에 진 모양이었다. 그녀가 그의 옷자락을 잡은 채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저 사람이 들고 있는 건 무엇이냐?”

“메뚜기 튀김입니다.”

“메뚜기? 벌레가 아니냐? 그것을 먹는다고?”

“예. 제법 흔한 별미입니다.”

“……너도 먹어 보았느냐? 무슨 맛이기에?”

“새우와 비슷합니다. 드셔 보시겠습니까?”

“아니, 되었다.”

서란은 기겁하여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여울이 그것을 먹자 할까 두렵기라도 한지 다른 쪽으로 급히 눈을 돌렸다. 그는 미세하게 들뜨는 기분을 느꼈다. 유쾌해졌다.

“그럼, 저것은?”

그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면사 사이로 들뜬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여울은 그 재잘거리는 음성이 새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듣기가 좋았다.

그는 제가 희미하게 웃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 큰 데서 어떻게 찾아? 좀 쉬자, 피곤해 죽겠어!”

소란한 가운데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파고들었다. 여울은 얼굴을 굳혔다.

엿가락을 입에 물고 있는 소년의 뒷모습이 익숙했다. 야로였다. 소년을 내려다보고 무어라 말하고 있는 건 온이었다.

여울은 반사적으로 서란을 잡아끌었다. 물들인 종이로 만든 공예품 가판대로 향하던 서란이 그에게 붙들렸다.

“왜…….”

그녀는 의아하게 묻다가 그의 다물린 입매를 보고 조용해졌다. 여울은 그녀를 품안으로 당겨 안으며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교룡이 있습니다.”

그녀의 몸이 얼어붙는 게 느껴졌다. 그는 주의 깊게 움직였다. 한손은 자연스럽게 검 손잡이 위로 올라갔다.

여울은 서란을 이끌고 사람들 사이로 눈에 띄지 않게 파고들어 그들로부터 멀어졌다. 야로가 발을 구르며 말하고 온이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한참을 돌아 한적한 골목까지 빠져나오고서야 그는 검에 올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품안의 서란은 숨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긴장하고 있던 그녀의 어깨가 그제야 내려갔다. 그녀가 지친 듯이 그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돌아가자꾸나.”

야시장의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어둑한 골목에 등불의 빛이 아스라하게 비쳐 들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목 안이 깔깔하였다.

좀 더 그녀가 둘러보게 해 주고 싶었다. 그녀가 눈여겨보던 소소한 것들을 사 주고 싶었다. 답답한 면사나 장옷을 걷어 내고 저번에 보았던 그 웃음을 다시 보길 원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문득 그것이 못 견디게 쓰렸다.

“이쪽입니다.”

여울이 앞서 걸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객잔으로 돌아왔다. 방 안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글 때까지 둘 모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서란이 비틀거리며 장옷을 떨어뜨리고 침상에 주저앉았다.

“우리가 도하에 있는 것을 저들이 알고 온 것일까?”

“그저 짐작일 확률이 높습니다. 여기는 관문 도시니까요.”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여울이 그녀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떠나면 마주칠 일이 없을 겁니다. 수배령도 아직 내려지지 않았으니 괜찮습니다.”

서란은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예감은 들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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