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여의주의 향을 지우는 방법2016.03.20.
자드락은 즐거워 보였다. 그는 약초를 붙이며 알 수 없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서란은 손목을 내준 채 지켜보고만 있었다. 자드락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이 노래 어때?”
“처음 듣는 가락이네. 봄 느낌이 난다.”
“그렇지?”
그는 입을 헤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오는 목소리는 살짝 들떠 있었다.
“내 보주가 만든 노래야. 걔가 금을 정말 잘 탔거든. 이건 꽃놀이 갔을 때 걔가 즉석에서 탄 가락인데, 내가 너무 좋아하니까 제목에 내 이름을 붙여 줬어.”
“소중한 노래구나.”
“응. 나중엔 가사도 지어서 불러 줬어. 자주 불러 줬는데, 이제 다시는 그 애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들을 수 없지.”
자드락이 일어나서 붕대를 꺼내 왔다. 그는 이로 붕대를 물어 적당한 길이로 끊었다.
그가 다시 의자에 앉아 약초를 붙인 서란의 손목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난 이거 부를 때 가사를 붙여서 부르지 않아. 걔가 불러 줬던 걸 까먹고 싶지 않거든. 솔직히 노래는 금 솜씨만 못했지만. 노래는 그만두고 금이나 타 줬으면 하고 속으로 맨날 투덜거렸는데.”
“…….”
“그 애가 살아 있을 땐 꼬박꼬박 ‘보주, 보주’ 하면서 공경을 다했는데 이제는 없다고 막 말하게 되네.”
무슨 말을 해도 공허한 위로일 것이다. 서란은 침묵했다. 자드락이 실낱처럼 가느다랗게 중얼거렸다.
“이무기 수명은…… 너무 길어.”
빠른 속도로 붕대가 감겼다. 매듭을 짓고 그가 눈웃음을 지었다.
“너와 저 녀석도 이렇게 될까?”
“……그는 괜찮을 게다.”
“흐응. 치료 다 됐어.”
자드락이 서란의 손목을 놓았다. 그녀는 깔끔하게 감긴 붕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가 “으차” 하며 몸을 일으켰다. 실실 웃고 있는 얼굴에서 눈만은 어둠을 담아 짙었다.
“한 번쯤은 기적이 일어나는 게 보고 싶어. 그래서 가르쳐 주는 거야.”
“착하구나.”
서란의 말에 그가 굳었다. 가만히 그녀를 보던 그가 기가 찬 듯 눈썹을 모았다.
“너 스물? 그쯤 되지? 새파랗게 어린 게 뭐라는 거야. 내가 몇 살인 줄은 알아? 하다못해 인간 기준으로도 내가 연상으로 보이거든?”
“진심이었는데. 기분이 나빴느냐?”
“……그건 아니고.”
자드락이 웅얼거리는 뒤로 발소리가 들렸다.
여울이 상을 들고 오고 있었다.
낡은 상 위에 소복한 밥 두 공기와 구운 사슴고기, 깨끗하게 씻은 야채와 장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그 가운데에 한 그릇은 고기를 잘게 찢어 넣은 죽이었다.
여울은 상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장에서 쟁반을 꺼내 죽을 받쳐 서란에게 다가왔다.
“드십시오.”
“네가 끓인 것이냐?”
“예.”
“이런 건 어디서 익혔느냐?”
“그냥 끓인 것입니다.”
그가 무뚝뚝하게 쟁반을 내려놓았다. 서란은 그것을 받아 들었다.
고소한 향이 코를 찔렀다.
“그냥 끓였다니, 제대로 된 죽으로 보이는데.”
“낭인으로 떠돌다 보면 잡기가 늡니다.”
여울이 몸을 돌려 상 앞에 앉았다. 자드락은 곰 가죽이 깔린 바닥에 이미 냉큼 앉아 있었다.
“이야, 제법이네. 맛있겠다.”
자드락이 신이 나서 수저를 들었다. 여울은 묵묵히 식사를 했다.
서란은 그들로부터 시선을 떼고 죽 그릇을 응시했다.
한술 떠 후후 불어 입 안에 넣었다. 부드러운 쌀죽에 잘게 자른 고기와 버섯이 씹혔다. 간장 종지까지 살뜰하게 놓여 있었다.
허기지고 기운이 없던 몸에 온기가 돌았다. 어쩐지 가슴속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맛있다.”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녀가 중얼거린 말에 등을 돌리고 앉아 있던 여울의 수저질이 아주 잠깐 멈추었다. 자드락은 입 안 가득 밥을 욱여넣은 채 실실 웃었다. 곧 조용한 식사 소리만 동굴 안에 퍼졌다.
“잘 먹었어.”
자드락이 가장 먼저 수저를 내려놓았다. 서란까지 식사를 마치고 여울이 그릇을 치우고 나자, 그가 의자를 뒤로 돌린 채 등받이에 팔을 올리고 앉았다.
“자, 그럼 약속대로 여의주 향 얘길 해 볼까. 야, 너.”
그는 벽에 기대선 여울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여울이 눈썹만 치켜 올렸다. 자드락이 악동 같은 얼굴로 물었다.
“너 주술은 못하지? 무공에 집중한 거 같은데. 특히 검.”
“잘하는 편은 아니다.”
“그게 못하는 거지.”
이무기마다 특기나 관심사가 조금씩 달랐다.
소룡전에서는 기본적인 무술과 이무기라면 누구나 가능한 도술, 교양과 학문을 우선적으로 가르쳤고 이후로는 흥미와 재능에 따라 교육 과정이 달라졌다.
자드락이 콧방귀를 꼈다.
“그럼 이건 못 배워. 내가 도망 다닐 때 쓴 건 주술이거든. 직접 만든 아주 고난도의 주술이지. 내가 좀 주술 천재라서.”
“그럼 방법이 없느냐?”
서란이 끼어들어 물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초조한 기색을 내비쳤다. 자드락이 그녀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좀 무식한 방법이 있어. 이무기의 향으로 여의주의 향을 덮어 버리면 돼.”
“무슨 수로?”
“이무기의 체액을 먹어.”
“……체액?”
“피나, 침이나, 땀이나…… 뭐 그런 거. 많이 먹을 필요는 없고, 이무기가 향을 맡았을 때 여의주 향보다 자기 향이 강하다 싶을 정도만. 먹은 다음에 여울 쟤가 맡아서 확인하면 돼.”
여울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자드락이 유쾌한 듯 말을 이었다.
“한 모금 정도면 하루는 갈 거야. 더 짙고 오래가는 건 운우지락을 나누면 되는데 뭐, 귀찮으면 그거로 하든지.”
그의 눈매가 야살스럽게 휘었다. 여울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서란은 알아듣지 못한 듯 멍하니 자드락을 쳐다보다가 그가 킬킬거리자 뒤늦게 깨달았다.
운우지락이라면 남녀 간의 교합이 아닌가. 그녀의 귓불이 살짝 붉어졌다.
여울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서란이 앉아 있는 침상 쪽으로 다가오며 무복의 소매를 걷었다.
왼팔을 드러낸 그가 제 옆에서 검을 뽑아 드는 것을 본 서란이 급하게 그의 검 손잡이를 움켜쥐고 막았다. 여울이 눈살을 찌푸렸다.
“혈액이 가장 낫지 않습니까.”
“매번 상처를 낼 작정이냐?”
“이무기는 회복이 빠르니 괜찮습니다.”
자드락은 등받이에 턱을 괸 채 흥미진진하게 그들을 보고 있었다.
서란은 잠시 고민하더니 여울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여울이 순순히 그녀에게 허리를 굽혔다.
그녀는 그대로 그의 멱살을 잡고 제게 힘주어 끌어당겼다.
“보주, 잠…….”
당황한 여울이 입을 벌리는 순간 그녀가 그에게 입을 맞췄다. 구경하던 자드락이 “힉” 소리를 내더니 눈을 치떴다.
여울은 휘청거리다가 그녀의 위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 한 팔로 침상을 짚었다.
그녀의 혀가 그의 입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혀 아래에 고인 타액을 훔쳐 냈다. 꿀꺽, 소리가 났다.
입맞춤은 길지 않았다. 그의 침을 삼킨 그녀가 그를 놓아주었다.
여울은 주춤주춤 물러나며 손으로 제 입을 가렸다. 서란이 소맷자락으로 입가에 흐른 것을 닦더니 태연히 말했다.
“상처를 내느니 이게 훨씬 간단하잖느냐.”
여울이 입만 벙긋거렸다. 짙은 피부인데도 티가 날 정도로 얼굴이 붉어졌다.
이토록 흐트러진 그의 모습은 처음이라 서란은 약간 재미있어졌다.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벽에 닿을 때까지 뒤로 물러나더니 머리를 숙였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접문이 처음이더냐? 음, 미안하구나. 나도 처음이었으니 그걸로 퉁치렴.”
“처음은 아닙니다.”
서란의 말에 여울이 울컥하며 고개를 들고 부정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손등의 흉터를 감추듯 손을 움직였다.
그녀가 화사하게 웃었다.
“다행이네. 그럼, 와서 맡아 보렴. 이제 네 냄새가 나느냐?”
“그…….”
뭐라 말하려던 그는 결국 입술을 꾹 다물었다.
지켜보고 있던 자드락이 폭소를 터트렸다. 그는 미친 듯이 웃으며 의자를 흔들더니 결국 바닥의 곰 가죽 위로 떨어져 뒹굴었다.
여울은 잠시 실례하겠다고 내뱉고는 훌쩍 동굴 밖으로 나가 버렸다. 자드락은 웃다 지쳐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비실비실 몸을 일으켰다.
“다 웃었느냐?”
“아니, 덜 웃은 거 같긴 한데.”
그가 서란에게 거침없이 다가오더니 목덜미에 코를 파묻었다. 그녀는 흠칫 놀라긴 했지만 물러나지는 않았다.
자드락은 킁킁거리다가 금세 떨어졌다.
“응, 아주 바싹 붙기 전엔 향 안 나. 저놈 냄새만 나네. 이거 하루 정도밖에 효과 없으니까 앞으로 매일, 매일…… 푸하하.”
자드락은 말하다 말고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서란은 찡그린 얼굴로 그를 보았다.
“뭐가 그리 우스우냐.”
“그냥. 아, 큰일이네. 너 좀 마음에 든다. 이름이 궁금해질 정도야.”
“이름? 나는…….”
자드락이 손을 뻗어 그녀의 입을 막았다. 서란이 의아하게 올려다보았다.
그는 천천히 손을 떼고 그녀로부터 돌아섰다.
“아니, 말하지 마. 마니의 이름은 알고 싶지 않아. 나가 있을 테니 옷이나 갈아입어.”
동굴 밖으로 나온 자드락은 여울을 찾았다. 여울은 나무 아래에 주저앉아 한 손으로 머리를 짚고 있었다.
자드락은 또다시 새어 나오는 웃음을 굳이 감추지도 않은 채 그에게로 다가갔다.
여울은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자드락이 그의 곁에 서서 발끝으로 그를 툭툭 쳤다.
“야, 우냐?”
“무슨 헛소리냐.”
여울이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자드락이 그의 앞에 싱글거리며 쪼그리고 앉았다. 긴 머리카락이 흙바닥에 멋대로 흘러내리는데도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그럼 왜 이렇게 쭈그리고 있어?”
“……좀 당황했을 뿐이다.”
여울이 지친 목소리로 답했다. 자드락이 거슬리는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뒤를 자드락이 졸졸 따랐다. 여울이 휙 뒤돌아보았다.
“왜 따라오는 거지?”
“알았다! 너 지금 쟤가 여자로 보인 거지? 접문해서?”
동문서답이었다. 자드락은 저 혼자 신이 나서는 박수를 치며 그의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여울은 거칠게 그를 밀어냈다.
“네 마음대로 생각해라.”
“내가 예언 하나 할까.”
여울은 그를 무시하고 산길 쪽으로 가려 했다.
자드락이 다시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사나운 눈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야릇하게 웃었다.
“너는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지고, 죽어도 좋을 정도로 행복해질 거다.”
여울이 재차 그를 밀치고 지나갔다.
자드락은 이번에는 따라붙지 않았다. 그가 흘리듯 남긴 말만이 여울에게 따라붙었다.
“바다에 이르기 전에.”
여울은 동굴이 아예 보이지 않는 산기슭으로 올라갔다. 낙엽이 발아래에서 바스러졌다.
오른손을 들었다. 손등을 가로지른 흉터를 들여다보았다.
마지막 탈피를 하고 매끄러워졌던 손등에 스스로 이 흉터를 새기면서 무슨 생각을 했던가.
다시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바다로 데려다 주고 마지막 명령을 받을 것이다. 그뿐이다.
그는 스스로를 다잡듯 흉터 위를 움켜쥐었다.
*
“뭐야, 왜 여기서 뚝 끊겼지?”
야로가 허공에 코를 킁킁거렸다. 사뿐사뿐 다가오던 희나리가 픽 웃었다.
“너, 개 같아.”
“이게 지금 뭐라는 거야!”
발끈한 야로가 덤벼드는 것을 희나리가 가볍게 돌며 피했다. 바닥의 흔적을 살피던 온이 눈살을 찌푸리며 소년과 소녀를 돌아보았다.
“놀러 나왔나, 우리가?”
“그래, 품위 없게 주먹질이나 하고 말이야.”
희나리가 소맷자락으로 입가를 가리며 새침하게 눈을 흘겼다. 야로는 씩씩거리며 발을 굴렀다.
“저가 먼저 시비 걸어 놓고선!”
“시끄러워. 근데 정말 향이 없네.”
줄곧 바닥을 훑던 온이 허리를 폈다. 그가 계곡 아래를 가리켰다.
“흔적은 아래로 이어져 있는데, 향이 없는 게 수상하군. 물이 깊다면 모를까. 이런 시냇물 같은 계곡에 지워질 정도로 여의주 향이 약하진 않은데.”
“시간이 많이 흐른 것도 아니잖아? 이상하긴 하네.”
그들은 어제 준비를 마치고 오늘 새벽에 바로 출발한 참이었다.
왕실에서 마니의 탈주를 은폐하고 싶어 했기에, 대대적인 추격대는 꾸려지지 않았다. 교룡들만이 은밀히 명을 받았다.
온과 희나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야로는 발끝으로 돌멩이를 차올려 계곡에 물수제비를 떴다.
물 위를 날렵하게 튀어 가는 조약돌을 지켜보던 그가 문득 떠오른 듯 말을 꺼냈다.
“이 근처에 소서촌이 있지 않아?”
나머지 교룡들의 시선이 단박에 쏠렸다. 희나리가 가식적인 감탄소리를 냈다.
“야로가 도움이 될 때도 있네.”
“아오, 야! 이 망할 계집애야!”
“자드락 선배가 거기에 유배되어 있지. 그때 선배 교룡들이 고생했던 건 여의주 향이 지워진 탓이었고.”
“거기로 갔을 확률이 높군.”
찡얼거리는 야로를 무시하고 대화를 나누던 온이 머리를 짚었다.
“이미 선배를 만나서 향을 지운 거라면 큰일인데. 쉽지 않겠어.”
“뭐 어때, 바로 잡으면 그만이지. 소서촌으로 가자!”
“기다려, 이 망아지야.”
달려 나가는 야로의 뒷덜미를 희나리가 잡아챘다. 그녀는 고민에 빠진 온을 돌아보았다.
“속임수일 가능성은? 처음부터 향을 지우는 법을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 여울이 밖에서 떠돌며 뭘 익혔을지 누가 알겠어.”
“반반이겠지. 나눠져야겠다.”
온이 결정을 내렸다. 희나리가 버둥거리는 야로를 온 쪽으로 밀었다. 야로가 짜증을 냈다.
“애 취급 하지 마!”
“애 같지 않아야 애 취급을 안 하지.”
“내가 뭘 어쨌다고! 방금도 내 덕에 소서촌이란 걸 안 거잖아!”
“그래, 참 잘했다. 온, 흔적은 내가 따라갈게. 온이 야로 데리고 소서촌으로 가 봐.”
“그러지. 발견하면 연락해.”
온이 소매 속으로 손을 넣더니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길이의 비늘을 뽑아냈다.
금속 같은 광택이 도는 검은 비늘은 얇고 유연했다. 이무기의 비늘이었다.
희나리도 제 비늘을 꺼내 온과 교환을 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희나리는 계곡에 남은 흔적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천으로 둘둘 말아 둔 창을 등에 진 그녀의 모습이 계곡의 바위 위를 날듯이 뛰어넘으며 멀어졌다.
온은 불퉁하니 입을 내민 야로를 이끌고 소서촌으로 향했다.
*
“옛다, 받아라.”
옷을 갈아입고 동굴을 나서는 서란에게 자드락이 비늘을 던졌다.
그녀는 손을 벌려 그것을 받으려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녀의 머리 위로 날아가 버리는 비늘을 여울이 잡아챘다.
자드락은 심드렁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쟤 맘에 안 들면 그거 부러뜨려. 쟤 대신에 내가 너 교룡 해 줄게.”
서란의 손에 비늘을 쥐여 주던 여울의 표정이 굳었다.
서란은 꽤 커다란 검은 비늘을 손바닥 위에 놓고 들여다보았다.
신기한 재질이었다. 묘하게 서늘하기도 했다. 문양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자드락이 여울을 보더니 씩 웃었다.
“농이고, 위험할 때 부러뜨려. 주술 걸어 놨다. 아, 잠시 기다려 봐. 깜박할 뻔했네.”
자드락이 동굴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서란이 햇빛에 비늘을 이리저리 비춰 보다 여울에게 물었다.
“이거, 이무기의 본체 비늘인 것이냐?”
“예.”
여울은 내키지 않는 태도로 설명했다.
“자신의 비늘이 부서지면 아무리 멀어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무기들이 누군가와 연락할 때 종종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걸 부수면 자드락에게 연락이 간다는 게로구나.”
“그러합니다. 하지만 유배된 몸으로 연락을 받아 뭘 하겠습니까. 주술을 걸어 놨다니 그런 용도라기보다는 아마 공격용일 겁니다. 이무기의 비늘은 주술을 담기에 좋은 소재니까요.”
“신기하구나.”
서란은 비늘을 만지작거리다 품에 넣었다. 그사이 뛰어나온 자드락이 서란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내 보주가 쓰던 건데, 가져가.”
“이건…….”
그것은 얼굴에 쓰는 면사였다. 얇은 너울이 매끄러웠다. 서란은 그것을 자드락에게 도로 돌려주려 했다.
“네 보주의 것을 내가 어떻게 받겠니.”
“왜, 죽은 애 거라 불길해?”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 알잖느냐.”
“난 모르겠는데?”
“네게 소중한 물건이니 받지 않겠다.”
“몰라, 난 줬어.”
자드락이 면사를 서란의 품에 떠밀었다. 그는 휘적휘적 손을 흔들며 인사도 없이 동굴로 들어가 버렸다.
서란이 난감한 표정으로 자드락의 뒷모습과 제 품의 면사를 번갈아 보았다. 여울이 그녀의 손에서 면사를 빼앗듯이 가져가더니 그녀에게 덮어 씌웠다.
이질적인 주홍색 눈동자가 안개처럼 드리운 너울에 희미해졌다. 서란이 어색하게 고개를 들었다.
“눈, 가려지느냐?”
“자세히 들여다보지만 않으면 티가 안 날 것입니다. 시선을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알았다.”
여울이 그녀에게 등을 보였다. 업히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이번에는 순순히 그의 등에 올라탔다.
그가 어디서 구해 왔는지 장옷을 그녀에게 건넸다. 바람막이용이었다. 서란이 장옷을 단단히 뒤집어쓰자 여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속삭였다.
“나중에 이 면사는 네가 자드락에게 돌려주어라. 잠시만 빌리는 것이다.”
“직접 돌려주시지요.”
서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속도를 높이며 비탈길에 접어들어서인지, 대답을 피하려는 것인지 여울은 구별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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